한 사람의 부재가 저를 너무 외롭게 합니다

stay2014.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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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것, 견딜 수 없이 아프네요. 지난 일년 동안 그 충격과 고통에서 헤어나올 수 없었기에 지금 세월호 침몰 참사로 인해 애통해하고 계실 많은 분들의 심정을 저도 알 것 같아요. 부디 기적 같은 생환소식이 들려오기를 바랍니다. 잠들지 못하는 새벽, 누구라도 제 이야기를 들어주었으면 하는 심정으로 글을 씁니다.

 

 

중3때부터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와는 중3, 고2에 같은반이었고, 고2 가을에는 동성친구이지만 그 친구에게 고백을 받기도 하는 등, 둘 사이에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나중에는 저도 그 친구에게 우정보다는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어 제대로 된 연애를 해본 것은 아니나, 그후로 (십여년 동안 다른 사람들과 연애를 하면서도) 저는 그 친구를 늘 '연인의 범주'에 두고 지냈던 것 같아요.

 

 

저는 외모가 보이시한 편인데, 그 친구는 외면보다 내면에 남성적인 성향이 많았습니다. 이해심 많고 듬직함이 느껴지는 그 친구에게서 묘하게 이상적인 아버지상을 보았고, 때론 그 친구에게 "네가 그냥 우리 아버지였으면 좋겠다"고 농담처럼 이야기를 건네기도 했어요.

 

 

우리는 보통의 친구사이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연인도 아닌, 마음만 깊은 어정쩡한 관계를 십년 넘게 이어갔습니다. 그 아이는 저에게 이상적인 친구이자 이상적인 연인, 또한 이상적인 아버지이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3월 12일 새벽에 저는 그 친구의 부고를 전해들었습니다. 그 친구가 평소 몸이 좀 약한 편이긴 했지만, 병을 앓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잠을 자던 중 갑작스러운 호흡곤란으로 사망했다고 합니다.

 

 

오랜 친구와 (저는 현재 4년째 잘 만나고 있는 남자친구가 있지만ㅠㅠ) 사랑하는 연인, 그리고 (제 아버지는 살아계시지만요) 존경하는 아버지를 한꺼번에 잃은 것만 같았습니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 차창 밖으로 시선이 향했을 때, 쾌청한 날씨에 기분이 좋다가도 갑자기 눈물이 흘러요. 그 친구는 이렇게 예쁜 풍경을 다시는 못 보겠지? 이렇게 좋은 하늘 아래 너는 없구나, 싶어서요. 사람들과 어울려 웃다가도 눈물이 나서 당혹스러울 때가 많아요. 너하고는 두 번 다시 함께 어울려 웃고 이야기를 나눌 수도 없겠네, 순간적으로 이런 생각들이 스쳤던 것 같습니다.

 

 

그 친구가 떠난 후에 자꾸 꾸는 악몽이 있어요. 그 친구가 저 때문에 죽는 꿈을 꿉니다. 그것보다 가슴 아픈 악몽은 꿈속에서 죽을 뻔한 그 친구를 제가 살리는 건데요. 그런 꿈에서 깨고 나면 그날은 종일 멍하고 몸서리치게 되거든요. 그 친구가 세상을 떠난지 일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악몽에 시달리고 멀쩡히 길을 걷다가도 주저앉고 이제 괜찮아졌나 싶다가도 다시 제자리걸음이에요.

 

 

며칠 전에는 카페에서 마주 앉아 대화하던 한 친구가 (전에는 전혀 몰랐는데) 그 친구와 표정이 많이 닮아보여, 눈물을 후두둑 떨구기도 했습니다. 제가 아직까지 이러는 게 병적인 그리움인지 아직은 이럴 수도 있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김형경 작가님의 '좋은 이별'에 나오는 애도와 용기에 관한 글귀를 보면서 위안을 얻고 잘 지내려 애쓰고는 있지만, 상실감이 너무 커서 힘듭니다. 밝게 지내도 마음이 공허합니다. 제 상황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저 제가 밝고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것 때문에도 가끔은 뭔지 모를 죄의식이 쌓입니다. 저는 언제쯤이면 담담해질 수 있을까요? 흐르는 시간에 기대어 지내는 수밖에 없을까요? 더 이상 그리워하지 않고 마음에서 잘 떠나보내기, 머리로는 알겠는데 실천이 어렵습니다.

 

 

 

 

세상의 모든 가치가 사라지고 생이 무의미해질 때 그런 때조차 묵묵히 살아가는 것이 애도작업의 일부이다. 인간뿐 아니라 신의 존재에 대해서도 의심이 생길 때 의혹을 품은 채 신에게 경배하는 일이 삶의 일부이다. 실패나 시련을 무릅쓰고 다시 미래를 꿈꾸는 것, 밥을 먹는 자신에 대한 역겨움을 참아내며 계속 먹는 일이 바로 용기이다.

 

- 김형경 작가님의 '좋은 이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