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일호프의 세계유랑버스킹] 무자(Muggia)의 한량, 안드레!

힉스2014.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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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9시 반. 뜨리에스떼(Trieste)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유럽은 기차보다 버스가 많이 싸다. 때문에 잦은 이동을 하는 여행자들은 국제버스를 많이 이용하기도 한다. 심지어 미리 예약을 한다면 버스는 물론 비행기 또한 기차보다도 훨씬 저렴하다. 나름 기차는 고급(?) 교통수단인 셈이다. 우리야 유레일(Eurail)이라는 유럽 내 철도 무제한 이용권을 갖고 있기에 주로 기차를 이용하였지만, 자그레브(Zagreb)에서 뜨리에스떼(Trieste)로 이동할만한 마땅한 열차편이 없어 국제버스를 이용하기로 하였다.

 

뜨리에스떼는 이탈리아와 슬로베니아의 국경에 자리 잡은 국경도시이다. 하지만 그 규모가 작아서인지 이탈리아의 뜨리에스떼에서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로 직접 넘어오는 철로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기차를 이용해서 간다면 거의 15시간 이상을 돌아가야만 하는 말도 안 되는 여정인 것이다. 하지만 버스로는 4시간 남짓의 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었고, 우리는 이것을 이용하기로 했다. 가격은 170쿠나. 한국 돈으로 차면 약 32,000원. 런던에서 맨체스터로 가는 편도 열차가 약 17-18만원(약 100 파운드)한다고 하니 크로아티아의 물가가 싸다고 쳐도 저렴한 편이다. 국제 버스인 것을 감안하면 실로 이는 기차보다 훨씬 저렴하다. 그래서인지 새벽 5시에 버스를 타고 뜨리에스떼 버스터미널에 아침에 도착하였을 때 느껴지는 터미널의 분위기는 다소 익숙치 않았다. 정말 후미지고 인적이 드문 미국 서부어딘가의 선술집 같은 느낌이랄까. 간판 곳곳에는 녹이 슬어 있고 음식의 메뉴를 알리는 가판대 앞 스티커는 색이 바랄대로 바래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그리고 공사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임시로 막아놓은 것인지 알 수 없는 철 구조물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어 흉물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리고 터미널의 화장실의 냄새는 코를 뚫고 내 머릿속 어딘가를 쿡쿡 쑤시고 있다고 느낄 만큼 강렬하였고, 어제 먹은 술로 인한 숙취로 정신을 못 차리던 나에게 구역 감을 느끼게 했다. 터미널을 보고 뜨리에스떼의 느낌을 판단할 수는 없었지만, 생각보다 번화하지 않은 도시인가하는 느낌을 들게 했다.

 

곧이어 안드레에게 공중전화를 걸었다.

 

“어이! 안드레. 어제 말한 대로 9시 반에 도착했어.”

“오오!!! 왔구나!!” 안드레가 답했다.

“지금 근처에 있니?” 내가 물었다. 분명 그 전날의 연락에서는 우리의 도착시간에 맞추어 데리러 온다고 했기 때문이다.

“아니, 집이야. 지금 바로 갈게, 한 시간 안에는 도착할 거야.”

“알았어. 터미널 앞에서 기다릴게!” 하고 전화를 끊었다.

도착시간을 미리 알려줬던 터라 시간을 예상해서 와있을 거라는 예상은 나의 욕심이었을까. 사실 도착 ‘예상’시간이었기에 안드레는 우리가 도착하면 데리러가야겠다고 생각을 했을 진 모르겠지만 막상 한 시간 안에 온다는 안드레의 말은 태평하게 느껴졌다.

 

한 시간이 조금 지나지 않아 안드레가 도착하였고, 우리는 인사를 반갑게 나누며 그의 빨간색 FIAT 승용차에 짐을 꾸겨 넣고 우리도 꾸겨 넣었다. 안드레의 차는 여느 이탈리아차와 같이 크기가 크지 않은 해치백승용차였기에 우리의 짐을 효과적으로 싣기에는 무리가 따랐다.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안드레의 집으로 출발했고, 안드레의 집은 뜨리에스떼 시내에서 차로 40분 정도 떨어진 무자(Muggia)라는 동네에 있었다.

 

워낙 밝고 때론 실없이 깔깔대는 친구라 또 시덥지않은 농담으로 소리를 지르고 신나하며 차를 타고 안드레의 집으로 향했다. 뜨리에스떼의 해안도로를 따라 신나게 달려 그렇게 도착한 안드레의 집은 마당과 정원이 집 크기의 두 세배에 달하는 되는 꽤 큰 집이었다. 집 또한 3층이었는데 안드레네 네 명의 식구만이 생활하고 있었다. 재밌는 사실은 안드레네 집의 1층은 사실 안드레가 독차지하고 홀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이런 식으로 손님접견(?)용으로 안드레가 혼자 사용하는 층인 듯 했다. 혼자 사용하는 층이라 하면 크기가 작을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전혀 아니다. 안방크기의 방에 꽤 커다란 방 하나, 거실, 부엌 그리고 화장실이 딸린 약 20-30평 정도의 온전한 한 집이었다. 본래 조부모님이 사용하시던 층이었지만 조부모님이 몇 년 전 돌아가시면서 자신이 이렇게 쓴다고 했다. 덕분이 프사이와 나는 정말 편하게 그곳에 머무를 수 있었고, 안드레가 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었지만 딱히 부딪히거나 마주칠 기회는 거의 없었다. 본래 안드레네 식구가 2층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공간분리도 잘 이루어졌고, 2층이 1층과 직접 연결이 되어 있지 않고 1층집의 현관과 2층집의 현관이 계단으로 연결되어있어 사실 이웃한 다른 집이나 다름없었다. 때문에 그곳에서 닷새나 편하게 머무를 수 있었던 것 같다.

 

게다가 안드레는 부자였다. 스스로는 아니라고 했지만 이정도 집과 마당을 갖고 있고, 차가 세대 오토바이가 두 대, 큰 강아지가 한 마리, 고양이도 두 마리나 있었다. 한번은 재밌는 일화가 있었는데, 집에서 5분정도 떨어진 부두 앞 공영주차장에서 일어난 일이다. 주차를 하고 주차권을 결제하여야 했지만 안드레는 그렇지 않았다. 한 두 시간 후에 돌아왔더니 30유로 상당의 벌금 딱지가 끊어져 있었고 안드레는 당황해하며 딱지를 끊은 서에가 아닌 엄마에게 계속 전화를 걸었다. 결국 엄마는 받지 않았다. 왜 엄마에게 전화를 거는지 알 수 없었지만 나중에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딱지를 끊고 나서 “이곳은 ‘무자(Muggia)’야. 왜 딱지를 끊었지? 난 단 한 번도 이곳에 주차하면서 돈을 낸 적이 없어!”하며 분개하던 안드레는 계속 출발하지 못하고 주변을 맴돌았다. 딱지를 끊을 이유가 없었단 것이다. 내 생각에는 ‘무자’주민이라고 특별히 다를 것 같지 않았지만 말이다. 경찰이 나타났고 경찰 역시 ‘무자’주민은 돈을 안내도 된다는 조항 따윈 없다고 했다. 결국 발길을 돌려 집으로 갈 수 밖에 없었고, 안드레는 끝까지 이해할 수 없어하며 집으로 돌아가 엄마에게 하소연을 했다. 말다툼을 하는듯한 엄마와 아들의 대화에서는 한편으론 철딱서니 없는 아들의 한심함까지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반전이 그 다음날 있었다. 다음날 안드레가 또 시시덕거리며 나에게 말한다.

 

“나 벌금 안내도 돼! 하하하. 엄마가 무자 경찰이랑 친하거든!”

 

‘그래서 어제 엄마한테 전화를 그렇게 걸었구나.’

 

 

이렇게 하는 것 없이 시시덕거리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안드레가 한국에 온다면 분명 가족도 걱정하고 스스로도 고민을 할 법도 한데 이곳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해수욕장이 개장하는 5월 중순부터 9월초까지 해상구조원으로 활동한다는 안드레는 그이외의 시간에는 그냥 집에서 죽치고 노는 한량이었다. 9월에는 독일어를 공부하러 뮌헨에서 6개월 정도 살 것이라고 했다. 정말 독일어를 이용해서 무언가하고 싶다는 목표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독일어가 갑자기 배우고 싶어서 독일에 가서 산다는 것이다. 이처럼 유럽 애들은 이렇게 자유롭게 생각하고 살아가는 친구들이 정말 많았다. 해수욕장이 개장하기 전까지의 안드레는 하는 일이 없는 한량이었고 그렇기에 우리도 이렇게 며칠간 손님으로 하루 종일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며칠지내면서 알게 된 건데, 아버지는 검사로 일하고 엄마는 시청공무원으로 일한다고 했다. 그래서 경찰 딱지정도는 넘어갈 수 있는 그 지역의 나름 파워 있는 집안인 것 같았다. 하지만 부모가 딱히 자식에게 무언가를 원하거나 푸시하는 느낌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우리나라 기준에서는 다소 어색하게 보일 수도 있을 정도로 말이다. 정말 안드레는 왜곡되고 비뚤어진 느낌하나 없이 그냥 태평하고 즐거운 친구였다. 사회나 어떤 부담감에 반(反)하여 한량스러운 게 아닌 그냥 여유로움과 즐거움 자체였다. 주변과 충돌하여 스스로 느끼는 압박감 같은 것은 전혀 없었기에 이처럼 티 없이 즐거울 수 있는 것 같았다.

 

우리나라와 같았으면 검사와 행정공무원 정도 하는 부모가, 아무것도 안하고 하하호호거리며 여름에나 알바수준으로 라이프가드를 하고, 로마에서 만난 친구를 갑자기 데려와 5일 동안 재워주는 이 바보같이 보이는 한량을 가만히 놔두는 분위기였을까? 하지만 “우리 엄마 별명이 악어야! 하하”하면서 엄마를 놀리는 마냥 즐거운 아들과 그것을 받아주며 같이 즐거워하는 안드레 엄마의 모습에서는 부모와 아들의 관계가 정말 가깝다는 게 느껴졌다. 철없는 아들 때문에 갑자기 찾아와 5일이나 머문 불청객에게도 안드레의 부모님은 거의 아침, 저녁 식사 때마다 음식을 만들어주셨고, 밤 시간에는 한 번씩 불러 와인을 같이 마시기도 하였다. 여유와 행복이 무엇인지 느끼게끔 해주는 가족이었다.

 

이렇게 5일간 때론 늦잠을 자고 주변에 놀러가기도 하고, 영화도 보고, TV로 축구 경기도 보고 안드레를 따라 조깅도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여기서 기사 노릇과 가이드 그리고 일행역할을 모두 충실히 해준 안드레 덕분에 슬로베니아와 이탈리아를 오가며 좋은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사실 나는 여행이 4주가 넘어가면서 공연에도 슬슬 지쳐가고 있었고 프로젝트의 방향성 및 목표도 처음에 비해 많이 희미해지며 의욕이 많이 떨어졌던 터라 쉼표가 필요했다. 이곳에서의 휴식은, 뭔가 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여러 제약들이 맞물리며 스스로 여유를 계속 잃어가며 더불어 의욕도 같이 떨어져가던 나에게 시기적절한 휴식이었다. 사실 이 휴식은 의욕이 떨어지던 나를 다시 부여잡고 의욕을 고취시켜 주었다기보다는 의욕이 떨어질 때 쉴 수 있는 구실과 환경을 만들어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기 때문에, 최선의 휴식이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무언가 모를 것에 쫓기며 마음의 여유를 잃어가고 있던 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휴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즐거운 시간이었으니깐 말이다.

 

프사이의 캠코더가 뜨리에스떼에 도착했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캠코더는 우리의 여행에서 보다 생동감 있는 영상들을 더 많이 담아줄 것이다. 보다 본격적으로 우리의 공연과 모습을 영상에 담고 프로젝트에 대한 의욕을 살릴 수 있는 좋은 터닝 포인트가 될 것이다! 공연 특성상 영상 기록물을 많이 남기면 좋지만, 공연을 하고 있는 입장에서 영상을 남기기가 쉽지 않았다. 그동안 우리의 공연영상을 찍어간 사람들은 많았지만 이런저런 핑계로 우리가 녹화물을 받아볼 수 없어 우리에게 남아 있는 영상물은 사실상 없었다. 하지만 이번엔 안드레의 도움으로 뜨리에스떼에서의 공연 영상을 짧게나마 남길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캠코더도 생겼으니 앞으로 조금 더 영상물을 더 많이 남길 수 있지 않을까. 여러 가지로 즐거움과 도움이 되어준 좋은 친구 안드레와 함께한 뜨리에스떼는 행복한 곳이다.

 

 

안드레가 9월에 독일 간다는 계획을 바꾸고 우선 한국에 놀러온다고 한다. 사실 내년에 보자는 약속은 조금은 기약 없는 약속이 되어 버릴까봐 아쉬움이 있었는데 일찍 온다니 다행이다. 사실 내년에는 다시 학교를 다니면 안드레가 와도 시간을 온전히 낼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하면 역시 음식 아닌가. 안드레가 오면 어느 외국인보다도 한국음식을 많이 먹어본 이탈리아인이 될 수 있게 열심히 먹여야겠다. 나도 고마운 호스트가 되어야지.

 

힉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