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곧 JFK공항이다. 영화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 같았던 꿈 같은 도시 뉴욕.. 나는 이제 곧 뉴욕의 땅을 밟을 것이다. 28의 새로운 시작. 내가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었던가?
사람들은 365일 동안 자신의 나이를 인지하고 살아가기에 그들의 나이에 익숙해 질 수 있다고 하지만 28살로 살아온 지 벌써 반년이 된 나는 아직도 나의 나이가 징그럽다. 그래도 27이란 숫자에서는 무언가 젊은 느낌이 묻어났다.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 지 몰라도 내 생각은 그렇다. 하지만 28이란 숫자에서는 도무지 젊은 느낌이라곤 찾을 수가 없다. 20대의 진정한 후반이 시작되는 느낌. 29이 되면 지금의 심정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지만 역시나 28은 징그럽다.
언제부터 나이 먹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던가? 미용실 언니들이 더 이상 언니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 군인아저씨들이 막내 동생처럼 느껴질 때? TV의 인기스타들이 더 이상 오빠, 언니들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할 때? 결코 적지 않은 28의 나.. 지금껏 나는 내 인생을 장식할 어떤 성과를 이루어왔던가? 젠장.. 떠오르지 않는다. 어쩌면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기에 현재의 나를 과감히 떠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28의 새로운 시작. 지금의 떠남이 나의 인생에 어떤 축복을 가져다 줄 수 있을까? 나는 사실.. 두렵다.
대학의 문턱에서 두 번의 낙방.. 삼수를 하는 동안 내가 이루어낸 유일한 성과는 잘 노는 것이 어떤 것인지 경험했다는 것이다. 재수학원을 등록하던 날.. 나는 우울한 심정을 달래려 죽순이로 소문난 오나리의 손을 잡고 처음으로 클럽이라는 곳을 찾았다. 오나리는 클럽에 들어서자마자 남자의 몸에 자석처럼 들러붙어 온몸으로 육덕진 웨이브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런 오나리의 모습은 순진한 내게 천박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할 만큼 충격적이었지만 신기한 것은 그와 동시에 닮고 싶은 관능적 매력이 있었다는 것이다. 어느새 나는 한 남자의 이끌림에 따르고 있었는데 그의 춤은 꽤나 수준급이었다. 결국 나는 그의 움직임에 온몸을 맡긴 채 환각의 분위기에 흠뻑 빠져버렸고 오나리가 나를 끌어낼 때까지 나는 그의 몸에 잔뜩 들러붙어있었다. 나에게 또 다른 정체성을 알려준 마력의 세계.. 나는 매일 남자들의 끊임없는 손길을 온몸으로 느끼며 나락 없는 환락의 세계로 끝도 없이 빠져들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어떻게 대학을 들어왔는지도 의문일 정도로 나는 매일을 그렇게 클럽과 노래방 호프집 또는 바를 전전하며 보냈다. 그 덕에 노는 것 하나는 남부럽지 않았던 나.. 나는 어디서나 퀸카로 통했다. 클럽에서는 오나리가 혀를 내두를 정도로 끈적이는 웨이브로 수많은 킹카들을 사로잡았고 노래방에서는 소파와 테이블을 넘나드는 화려한 무대매너로 분위기를 장악했으며 웬만해서는 술로 나를 이길 자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년간의 삼수생활은 나의 수학능력에 다분한 학습효과를 자아냈던가 보다. 나는 기적적으로 소위 명문대라고 일컬어지는 대학의 경영학과에 합격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합격의 순간, 가슴을 짓누르던 돌덩이가 사라진 느낌은 이루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입학의 순간부터 나는 물 만난 고기마냥 더욱 노는데 열중하기 시작했다. 선배들은 우리과에 날라리가 날아들어왔다며 경악했고 나는 피래미들에게 노는 것이 어떤 것인지 가르치랴 데이트하랴 정신이 없었다. 나의 폰에는 전화 한 통이면 뛰어나올 수많은 남자들의 번호가 있었기에 외로울 틈도 없이 남자친구를 수없이 갈아치우며 다양한 데이트를 즐겼다. 나는 어디서나 퀸이었다. 그렇게 몇 년간을 나는 천국의 생활을 누리고 즐겼다. 하지만 잘 노는 것이 미래를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그렇게 노느라 바쁜 대학생활에도 한계가 있었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영특하고 파릇파릇한 신입생들을 보고 있자니 더럭 겁이 나는 순간이 있었던 것이다.
오랜만에 들어갔던 경제학 시간이었다. 그 배불뚝이 교수는 굳이 구석에 자리잡은 나를 지명해 우리나라 경제상황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어.. 현재 우리나라 경제상황은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으로 인해 매우 불안정한 상태로서 거시적으로 안정화 정책이 시급하며...”
나는 최대한 경제학 용어를 사용하려고 노력하며 뜬 구름잡는 대답을 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다. 교수는 뭔가 못마땅한 듯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앞쪽에 자리잡은 후배에게 똑 같은 질문을 던졌다. 최한나.. 그 후배는 나보다 일년후배.. 나이로는 3살이나 어린 탱탱한 피부의 동생이었다. 얼굴도 이쁜데다 몸매며 패션감각도 뛰어나 나에게 어느 정도의 위기감을 자아냈지만 워낙 싹싹하고 나를 잘 따랐기에 미워할 수 없는 동생이었더랬다.
“네, 우리나라 경제상황은 외환위기 이후 매년 호황과 불황을 반복하는 불안한 양상을 보이고 있는데…”
한나는 현재 경제불안에 대해 내수부진과 기업투자감소를 어떠한 방법으로 해결할 것인지
그리고 그와 연동하여 정부의 통화정책의 문제점은 무엇이며 다른 나라의 정책은 어떤 것이 있는지 비교 분석 및 향후 경제 전망까지 조목조목 설명하고 있었다. 그녀의 일목요연한 설명을 듣고 있자니 이건 무슨 경제전문가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등허리에 식은땀이 쭉 하고 흘렀다. 배신자들.. 피래미들로만 보이던 모두가 실상 나보다 한 수위였다는 것을 느꼈던 그 반전의 순간.. 나는 온몸을 떨었다. 내가 노는 동안 다른 이들은 모두들 자기계발에 열중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바심이 나서 견딜 수 없었다. 나는 낙오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언제나 퀸이고 싶었다. 나는 절대 지고는 못산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졸업은 다가오는데 취직을 못해 빌빌대는 선배들의 모습이 나의 미래를 비추는 듯 해서 두려워졌다. 정신을 차려야겠구나.. 나는 무턱대고 갖가지 시덥잖은 자격증을 따댔다. 매일매일 경제신문과 잡지를 읽어댔다. 몇몇 사람들과 토익시험을 위한 그룹스터디를 하기도 하고 빵구난 학점을 매우기 위해 방학은 계절학기를 듣느라 바빴다. 하지만 삼수의 그림자는 늘 나를 괴롭혔다. 나의 나이가 상대적으로 많은 것을 간과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남보다 나이가 두 살이나 많았고 그 흔한 해외연수경험도 없었다. 나는 잠을 줄여가며 영어공부와 수많은 기업의 정보를 취합하여 이력서를 작성하기에 바빴다. 수십 장의 면접족보를 외우고 인상적인 자기소개서를 위해 수백명의 성공한 자기소개서를 참고했다. 조바심으로 하루하루 잠을 이루는 것도 고통이었다. 하지만 노력에는 언제나 대가가 따르는 법. 그렇게 바쁘게 보낸 마지막 일년 끝에 나는 한 대기업의 재무팀에 취직할 수 있었다. 대학입학 이후 내가 이루어낸 쾌거였다. 기뻤다. 나의 마지막 문턱인 취업문턱을 넘었으니 나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친구들과 선후배들을 불러 부어라 마셔라 성공의 축배를 들었다.
뉴욕 어글리1-떠남
뉴욕 어글리
떠남.
이제 곧 JFK공항이다. 영화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 같았던 꿈 같은 도시 뉴욕.. 나는 이제 곧 뉴욕의 땅을 밟을 것이다. 28의 새로운 시작. 내가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었던가?
사람들은 365일 동안 자신의 나이를 인지하고 살아가기에 그들의 나이에 익숙해 질 수 있다고 하지만 28살로 살아온 지 벌써 반년이 된 나는 아직도 나의 나이가 징그럽다. 그래도 27이란 숫자에서는 무언가 젊은 느낌이 묻어났다.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 지 몰라도 내 생각은 그렇다. 하지만 28이란 숫자에서는 도무지 젊은 느낌이라곤 찾을 수가 없다. 20대의 진정한 후반이 시작되는 느낌. 29이 되면 지금의 심정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지만 역시나 28은 징그럽다.
언제부터 나이 먹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던가? 미용실 언니들이 더 이상 언니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 군인아저씨들이 막내 동생처럼 느껴질 때? TV의 인기스타들이 더 이상 오빠, 언니들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할 때? 결코 적지 않은 28의 나.. 지금껏 나는 내 인생을 장식할 어떤 성과를 이루어왔던가? 젠장.. 떠오르지 않는다. 어쩌면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기에 현재의 나를 과감히 떠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28의 새로운 시작. 지금의 떠남이 나의 인생에 어떤 축복을 가져다 줄 수 있을까? 나는 사실.. 두렵다.
대학의 문턱에서 두 번의 낙방.. 삼수를 하는 동안 내가 이루어낸 유일한 성과는 잘 노는 것이 어떤 것인지 경험했다는 것이다. 재수학원을 등록하던 날.. 나는 우울한 심정을 달래려 죽순이로 소문난 오나리의 손을 잡고 처음으로 클럽이라는 곳을 찾았다. 오나리는 클럽에 들어서자마자 남자의 몸에 자석처럼 들러붙어 온몸으로 육덕진 웨이브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런 오나리의 모습은 순진한 내게 천박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할 만큼 충격적이었지만 신기한 것은 그와 동시에 닮고 싶은 관능적 매력이 있었다는 것이다. 어느새 나는 한 남자의 이끌림에 따르고 있었는데 그의 춤은 꽤나 수준급이었다. 결국 나는 그의 움직임에 온몸을 맡긴 채 환각의 분위기에 흠뻑 빠져버렸고 오나리가 나를 끌어낼 때까지 나는 그의 몸에 잔뜩 들러붙어있었다. 나에게 또 다른 정체성을 알려준 마력의 세계.. 나는 매일 남자들의 끊임없는 손길을 온몸으로 느끼며 나락 없는 환락의 세계로 끝도 없이 빠져들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어떻게 대학을 들어왔는지도 의문일 정도로 나는 매일을 그렇게 클럽과 노래방 호프집 또는 바를 전전하며 보냈다. 그 덕에 노는 것 하나는 남부럽지 않았던 나.. 나는 어디서나 퀸카로 통했다. 클럽에서는 오나리가 혀를 내두를 정도로 끈적이는 웨이브로 수많은 킹카들을 사로잡았고 노래방에서는 소파와 테이블을 넘나드는 화려한 무대매너로 분위기를 장악했으며 웬만해서는 술로 나를 이길 자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년간의 삼수생활은 나의 수학능력에 다분한 학습효과를 자아냈던가 보다. 나는 기적적으로 소위 명문대라고 일컬어지는 대학의 경영학과에 합격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합격의 순간, 가슴을 짓누르던 돌덩이가 사라진 느낌은 이루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입학의 순간부터 나는 물 만난 고기마냥 더욱 노는데 열중하기 시작했다. 선배들은 우리과에 날라리가 날아들어왔다며 경악했고 나는 피래미들에게 노는 것이 어떤 것인지 가르치랴 데이트하랴 정신이 없었다. 나의 폰에는 전화 한 통이면 뛰어나올 수많은 남자들의 번호가 있었기에 외로울 틈도 없이 남자친구를 수없이 갈아치우며 다양한 데이트를 즐겼다. 나는 어디서나 퀸이었다. 그렇게 몇 년간을 나는 천국의 생활을 누리고 즐겼다. 하지만 잘 노는 것이 미래를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그렇게 노느라 바쁜 대학생활에도 한계가 있었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영특하고 파릇파릇한 신입생들을 보고 있자니 더럭 겁이 나는 순간이 있었던 것이다.
오랜만에 들어갔던 경제학 시간이었다. 그 배불뚝이 교수는 굳이 구석에 자리잡은 나를 지명해 우리나라 경제상황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어.. 현재 우리나라 경제상황은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으로 인해 매우 불안정한 상태로서 거시적으로 안정화 정책이 시급하며...”
나는 최대한 경제학 용어를 사용하려고 노력하며 뜬 구름잡는 대답을 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다. 교수는 뭔가 못마땅한 듯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앞쪽에 자리잡은 후배에게 똑 같은 질문을 던졌다. 최한나.. 그 후배는 나보다 일년후배.. 나이로는 3살이나 어린 탱탱한 피부의 동생이었다. 얼굴도 이쁜데다 몸매며 패션감각도 뛰어나 나에게 어느 정도의 위기감을 자아냈지만 워낙 싹싹하고 나를 잘 따랐기에 미워할 수 없는 동생이었더랬다.
“네, 우리나라 경제상황은 외환위기 이후 매년 호황과 불황을 반복하는 불안한 양상을 보이고 있는데…”
한나는 현재 경제불안에 대해 내수부진과 기업투자감소를 어떠한 방법으로 해결할 것인지
그리고 그와 연동하여 정부의 통화정책의 문제점은 무엇이며 다른 나라의 정책은 어떤 것이 있는지 비교 분석 및 향후 경제 전망까지 조목조목 설명하고 있었다. 그녀의 일목요연한 설명을 듣고 있자니 이건 무슨 경제전문가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등허리에 식은땀이 쭉 하고 흘렀다. 배신자들.. 피래미들로만 보이던 모두가 실상 나보다 한 수위였다는 것을 느꼈던 그 반전의 순간.. 나는 온몸을 떨었다. 내가 노는 동안 다른 이들은 모두들 자기계발에 열중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바심이 나서 견딜 수 없었다. 나는 낙오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언제나 퀸이고 싶었다. 나는 절대 지고는 못산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졸업은 다가오는데 취직을 못해 빌빌대는 선배들의 모습이 나의 미래를 비추는 듯 해서 두려워졌다. 정신을 차려야겠구나.. 나는 무턱대고 갖가지 시덥잖은 자격증을 따댔다. 매일매일 경제신문과 잡지를 읽어댔다. 몇몇 사람들과 토익시험을 위한 그룹스터디를 하기도 하고 빵구난 학점을 매우기 위해 방학은 계절학기를 듣느라 바빴다. 하지만 삼수의 그림자는 늘 나를 괴롭혔다. 나의 나이가 상대적으로 많은 것을 간과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남보다 나이가 두 살이나 많았고 그 흔한 해외연수경험도 없었다. 나는 잠을 줄여가며 영어공부와 수많은 기업의 정보를 취합하여 이력서를 작성하기에 바빴다. 수십 장의 면접족보를 외우고 인상적인 자기소개서를 위해 수백명의 성공한 자기소개서를 참고했다. 조바심으로 하루하루 잠을 이루는 것도 고통이었다. 하지만 노력에는 언제나 대가가 따르는 법. 그렇게 바쁘게 보낸 마지막 일년 끝에 나는 한 대기업의 재무팀에 취직할 수 있었다. 대학입학 이후 내가 이루어낸 쾌거였다. 기뻤다. 나의 마지막 문턱인 취업문턱을 넘었으니 나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친구들과 선후배들을 불러 부어라 마셔라 성공의 축배를 들었다.
그 때 내 나이 26.. 인생의 가장 큰 고비를 넘겼구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