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순교하였는가?

마수드308201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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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내친김에 초기 기독교사 이야기를 좀 더 해 볼까 하는데...

 

기독교인들, 특히나 개신교인들이 미화하는 것과 같이 초기 기독교인들이 그냥 "신앙"을 위해서 마구 디진 이유는 사실 낭만하고는 좀 거리가 멉니다. 달리 말하면 이미 사회적으로 죽은 이들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1. 박해의 원인: 반란도당을 잡아라.

 

사실 네로의 박해에 대해서 말들이 많든데.. 네로에 대해서는 뭐 별로 로마사 내에도 긍정적인 기록이 없기도 하지만, 후대 상징적으로 기독교를 박해한 인물로 승격(?) 시키기 위해 조작된 것이 꽤 많습니다.

 

그러나 이 당시 기독교 박해가 있기는 있었던 것은 어찌 보면 사실인데, 이건 유대속주의 일종의 정치적 문제와 연관이 있습니다.

 

경전에 어느정도 사실적으로 반영된 사실이지만, 유대속주는 로마의 여러 속주 중에서도 제일 관리하기 힘든 영역중 하나였습니다만, 다른 의미로 보면 로마인들에게는 매력적인 동네이기도 했지요. 이유? 로마의 정치체제 때문입니다.

 

로마의 경우는 노블리스 오블리주 정도가 아니고.. 귀족이 사병을 거느리고 있으며 또한 시민병을 위주로 하여 구성된 군대를 유지하는 정책으로 갔기 때문에 전쟁을 통해서 입지를 올리는 것과 정복사업이 상당히 유리한 입지를 제공하게 되는 단서가 되었습니다.

 

이런 경우이기 때문에 반란등이 있을 경우 그걸 진압하면 공과가 되므로 어찌 보면 강압 통치를 시키고 반란을 할라믄 하라는 식의 막장 통치 형태로 가던 전례가 있었고, 1세기의 로마의 경우는 더더욱 그런 기조가 강했지요.

 

무엇보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키워 놓은 영토의 안정권은 사실 로마의 복잡한 정치체제와 맞물려서 통치권의 안정을 불러오지 못한 것이 사실이고, 이런 불안정성은 간헐적인 지역 반란과 문제가 속출하는 형국을 불러 왔지만, 아우구스투스는 별로 터치하지 않았습니다. 그럴수록 통제가 어려워진 원로원이 자기에게 굽실댈 테고 이집트를 통째로 쳐먹은 황제는 그것만으로도 먹고 살만한 정도가 아니고 로마를 거의 금권통치하던 수준이라...

 

여튼 이런 기조의 문제 때문에 유대 지역은 1세기 초부터 유대로마 전쟁 전까지 크고작은 반역과 게릴라들이 속출하는 일종의 마의 지역이었다는 것이 사실이고.. 이런 환경에서 기독교가 많이 개입되어 있었다는 정황은 사실 어렵지 않게 찾을수 있습니다.

 

현대에 와서 종교사가들이 주목하는 것이 이런 동향인데, 달리 말하면 기독교의 초기의 모습은 그 사랑과 평화 운운하는 종교가 아니고, 혁명당, 탈속주의 분파, 랍비유대교에 골고루 퍼져 있었다는 것이고, 메시아 신앙을 기반으로해서 반란을 해 놓으면 메시아가 와서 구해줄 것이다.. 혹은 내가 메시아이다! 를 주장하는 종교지도자들이 속출해 있는 상황이었으므로...-_-;; 당연히 로마에 있어서는 꽤나 골치아픈 종교였고...

 

44년경부터 시작된 간헐적 반란들은 당연히 로마의 심기를 건드려서 박해의 수순으로 가게 되지만, 이때는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진짜 심해진 것은 그 이후의 문제이지요.

 

 

2. 전쟁이후의 손털기: 유대인들의 세수(손씻기)

 

그러다가 유대 로마 전쟁(67년경 시작)이 시작되자, 기독교인들은 거의 몰살의 수순을 밟게 되는데, 상당수가 유대교 혁명당 등과 관련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즉, 소위 개신교인들이 열심당이라고 아는 조직은 기독교와 상당한 연관성이 있었으며, 비세속주의 종파 역시 이 반란에 가담한 관계로..(그들은 종말이 올때 악의 군대와 맞서 싸워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군대가 로마군...-_-;;) 이후 역시나 예외없이 몰살 당합니다. 이때 보존을 위해 짬된게 바로 쿰란문서이죠.

 

이후 유대교는 이 기독교를 분단하기 위해서 수를 씁니다. 즉, 기독교와 같은 배를 탔다가는 자기들도 반역도당 취급을 당해 씨몰살될 판이니 그것을 피하고자 수를 쓴 것으로 보시면 됩니다만... 먼저 얌니아 종교회의를 통해서 "헬레니즘을 척결한다"는 주장을 채택하여 제2경전을 덜어 내게 됩니다. 사실 이에 대해 이미 문서가 많이 훼손되어 있다는 점을 이용하여 "히브리어 사본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서 경전을 짤라 내는데... 후일담이나, 이 부분들 대부분이 쿰란사본이 발견되었을때 히브리어 기록물이 발견되어서...ㅋㅋㅋ 

 

고로 랍비그룹 내에서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은 이들이 된 것이 바로 기독교입니다. -_-;; 즉, 그들은 기독교로 분리되었고 기독교 종파로서 유대교와 분리된 형태를 가지게 된 것이지요. 달리 말하면 얌니아 종교회의 시절부터는 반란도당 종교단체가 도망쳐서 외지에서 기사회생을 꿈꾸며 포교질을 해서 세력을 키우던 마이너 종교 형태에서 유대교의 종교그룹 일부를 잘라낸 형태로 그 형질이 변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기독교와 유대교는 사실상 다른 길을 가게 된 건데...

 

이후 트라이아누스 황제는 이에 대해 나름 관용적인 조치를 펴서 일부러 검문하지는 말고 기독교인이 발각되거나 밀고되면 잡고 여기서 개심하면 방면하라는 칙령을 내립니다. 이때가 얌니아 종교회의 거의 바로 후이고요. 즉 유대교는 합법 종교로 남았고, 기독교는 반란도당의 종교가 된 겁니다.

 

 

3. 그들에겐 꿈도 희망도 없었다: 이왕 죽는건데... 

 

뭐 이 상황에서 하나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면 고대사회의 정치사회적 체계인데... 사실 이 고대사회는 연좌제와 신분제가 일상화 되어 있었습니다.

 

달리 말해서 천출은 죽어도 천출이고 신분상승 따위는 대단히 어려웠고 그것도 속주 출신 노예에게는 매우 힘든 일이었던 관계로... 각종 차별과 제한에 의해 유지되는 사회 시스템에서 희망을 버린 사람들이 속출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고요.

 

결론적으로 이런 유형의 사회제도에서 이미 반란도당으로 몰려 있는 이들은 씨족이 몰살당해도 할말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사실상 이미 사회적으로는 매장당한 경우가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당연히 순교하는데 별로 거리낌이 없었는데.. 달리 말하면 극단적인 현실도피가 이뤄진 셈입니다. 즉, 내세에서는 이런 시궁창 같은 삶이 아닌 낙원의 삶이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다고 자위하면서 그냥 죽어간 겁니다. -_-;;;

 

당시 이런 종교형태는 로마인들에게 나름 충격을 주었습니다. 즉, 대부분의 로마의 종교는 현세의 복락을 위주로 하였던 관계로... 이런 내세지향적 시스템의 주장에 대해서는 두렵다고 생각했던 것인즉.. 그들이 생각하기에 이런 비정상적인 종교 시스템에 대해서는 관용을 베풀 필요가 없다고 본 것이지요. -_-;; 달리 말해서 고대인들의 경우 신분제가 일반화되어 있어서 그 하층민들의 생활에서 기인하는 절망에 대한 것을 이해하고 있지 않았던 것이고.. 위정자인 로마 귀족들의 경우는 더더욱 그러한 관계로 이 저속한 종교의 내세주의에 대해 박해로 대응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어짜피 살아도 낙이 없는 인간들이라면 결국 죽음 다음의 내세를 갈구하는 것이 유일한 희망이었을 것이므로...ㅉㅉㅉ 이왕 죽는거지만 천국 간다는 맹신을 보증수표처럼 쥐고 행복하게 죽어간 셈이지요.

 

 

정리하면 기독교의 원래 형태에서 나오는 그 순교질에 대한 주장은 어찌 보면 탈속주의와도 연관되어 있는 면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즉, 살아봐야 희망없는 인생을 살 군상들이 죽은뒤의 복을 누리고 싶어하는 마음, 그러나 자살을 금기시하는 종교의 교리 때문에 자살을 못하니.. 그냥 타살을 빙자한 자살을 숙명으로 받아 들인 것이나 매한가지이지요. ㅉㅉㅉ

 

사실 이는 사람들이 개신교 신앙에 빠지는 가장 주된 요인이기도 합니다만, 삶의 가치를 찾지 못한 자들이 구원과 천국 장사에 대한 섵부른 세일즈에 팔려서 그 영혼을 저당잡히는 격이 됩니다만..ㅉㅉ 현실은? 결국 여기 등장하는 개신교인들을 보면 대부분 상종못할 꼴통새끼들이 되는 것이지요.

 

뭐 예나 지금이나 살아도 별 의미없는 자들이 의미를 만들기 위해 종교에 맹신하는 것은 변함이 없는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