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세월호 사건에 있어서 한 가지 공통점을 찾는다면, 그것은 각자가 자신의 조직이기주의에 충실했다는 점입니다. 선장은 승무원을 제외한 선박직 15명이 전원 구조되도록 역할을 다했고, 해경은 자신들에게 쏠리게 될 민심의 분노를 피하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고, 안행부는 자신들의 조직을 최대한 키우기 위해 방재 전문가들을 요직에서 쫓아냈고, 해수부는 낙하산과 전관예우가 선순환 함으로써 전·현직 관료들의 호구지책이 확보되도록 최선을 다했습니다.
아마도 이들 입장에서는 억울하고 분통 터질 일일 겁니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의 입장에서 보자면 어깨를 으스댈 만하고 칭찬받아 마땅한데 도리어 여론의 몰매를 맞고 있으니 도저히 이해가 안 될 겁니다. 그런데 이들이 망각하고 있는 중대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들이 몸담고 있는 조직의 권력이 어디로부터 오느냐는 겁니다. 선장에게 절대적 권한을 부여한 사람들은 바로 운임을 지불하면서 안위에 대한 처결을 맡긴 승객들입니다. 그리고 안행부와 해수부 관리들에게 권한을 부여한 사람들은 바로 열심히 일해 번 돈을 세금으로 납부한 절대다수 국민입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와 같은 권력의 위임에 관한 사람들의 의식이 희박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권력을 위임받은 쪽이나, 권력을 위임한 쪽이나 그 권력이 누구를 위해 존재하고 무엇을 위해 행사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마치 집단 기억상실증에 걸린 듯이 손을 놓아버린 것이죠. 그러면서 마치 위임 받았던 권력이 승자가 독식하는 전리품처럼 여겨지는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다시 말해 권력을 받은 자들은 거리낌 없이 자신들만의 탐욕과 이기주의를 위해 그것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권력을 위임한 자들은 그러한 탐욕과 이기주의에 조용히 눈을 감아줬지요.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서 장관을 포함한 고위공직 후보자들에 대해 강도 높은 인사청문회를 실시하는 가장 큰 이유는, 권력을 위임받은 자로서 얼마만큼의 도덕성과 소명의식을 갖고 있는지를 검증하기 위해서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위임받은 권력이라 할지라도 도덕성과 소명의식이 없는 고위공직자들에 의해 사적으로 남용되고 끝없는 탐욕의 도구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능력과 스펙이 뛰어나다 할지라도 그 능력을 국가와 사회가 아닌 자신과 소아적 집단을 위해 사용할 때 그것은 국가적 재앙을 초래하게 되죠.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여야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관계로 인해 공직후보자 검증을 소홀히 하고 인사청문회를 파행으로 이끌어가더라도 크게 신경 쓰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대통령도 인사청문회를 하나의 겉치레로만 생각하여 부적격 판정이 내려지거나 청문회 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은 후보자에 대해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장관으로 임명해왔습니다. 그러한 과정을 거치다보니 새롭게 임명된 장관들은 자신에게 권력을 위임한 국민은 신경 쓰지 않고 임명권자인 대통령과 해당부처 공무원들만을 의식하며 집단이기주의 유혹에 푹 빠지죠.
바로 그 장관과 그 공직자들이 집단이기주의에 집착하고 책임 회피에만 몰두하다가 발생한 대참사가 바로 세월호 사건입니다. 각자의 행위만 놓고 보면 쳐 죽일 정도의 사안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것이 합쳐지다 보니 천인공노할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죠. 바로 여기에 국가와 사회의 존재 이유가 있습니다. 각자가 자신의 이익과 탐욕만을 위해 움직이다 보면 모두가 공멸하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압도적 권력을 부여하여 사회의 합리성과 안전성을 높이자는 거죠. 그 원칙이 처절하게 무너진 것이 이번 사건이고, 어른들 모두가 이를 방조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도덕성에 다소의 흠이 있더라도 경제만 좋아진다면 문제없어!”
“살림살이가 나아질 수만 있다면 어느 정도의 독재는 불가피해!”
“내 지역만 살릴 수 있다면 다른 지역에 피해가 가도 괜찮아!”
“내가 편할 수만 있다면 우리 자식 세대는 어찌되든 상관없어!”
“내 자식만 잘 되면 되지 다른 집 자식들은 죽든 살든 신경 안 써!”
“나만 아니라면 장애인 문제건 비정규직 문제건 전혀 관심없어!”
이러한 것들이 바로 그동안 우리들이 조장해왔던 이기주의와 탐욕입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저조차도 통렬히 반성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죠. 우리의 이기주의와 탐욕 때문에 우리의 죄 없는 아이들이 죽음으로 내몰렸고, 차가운 바다 속에서 홀로 처절하게 싸우다가 우리 곁을 떠나갔습니다. 무책임한 선장을 묵인한 것도 바로 우리들이고, 보신주의와 조직이기주의로 무능의 극치를 보여준 공직자들을 묵인한 것도 바로 우리들입니다. 우리의 탐욕이 부메랑이 되어 우리에게 돌아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똑같은 오류를 범하시겠습니까? 지역감정과 지역이기주의를 조장하는 정치인을 또 뽑으실 겁니까? 도덕성과 역사의식에 흠결이 있더라도 나에게 작은 이익을 줄 수만 있다면 눈감고 또 뽑으실 겁니까? 후손들에게 막대한 부채와 파국적 시스템을 물려주는 한이 있더라도 내가 조금 더 챙기기 위해 무책임한 공약을 남발하는 정치인에게 또다시 표를 주실 겁니까?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위해 선량한 시민은 물론, 심지어는 희생자 유족까지도 간첩으로 낙인찍는 파렴치한 집단에게 또다시 표를 주실 겁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그동안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이야기해왔던 모든 공적인 집단의 실체가 이번 세월호 사건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국민을 간첩으로 몰고 탄압하는 정부, 권력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증거를 조작하는 정부, 국민의 안전을 볼모로 조직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각종 마피아에 의해 움직이는 정부, 최고 권력자에게 잘 보일 수만 있다면 국민의 아픔과 고통은 안중에도 없는 집권여당, 권력에 아부하기 위해 여론과 민심을 아무렇지 않게 왜곡하는 언론, 권력 및 언론과 유착하여 무책임한 조사결과를 남발하는 여론조사기관... 정말 끝이 없습니다.
이제라도 우리 모두가 두 눈을 똑바로 뜨고 감시하고, 견제하고, 심판해야 합니다. 권력의 근원인 국민이 눈감고 있는 동안 위임의 대상이었던 권력은 주인을 떠나 탐욕에 가득 찬 소인배들 차지가 되었습니다. 이제 그 권력을 다시 거둬들여야 하며, 그 권력이 얼마나 무서운 부메랑이 되어 그들을 덮치게 될지 똑똑히 보여줘야 합니다.
우리들이 조장해왔던 이기주의와 탐욕
이번 세월호 사건에 있어서 한 가지 공통점을 찾는다면, 그것은 각자가 자신의 조직이기주의에 충실했다는 점입니다. 선장은 승무원을 제외한 선박직 15명이 전원 구조되도록 역할을 다했고, 해경은 자신들에게 쏠리게 될 민심의 분노를 피하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고, 안행부는 자신들의 조직을 최대한 키우기 위해 방재 전문가들을 요직에서 쫓아냈고, 해수부는 낙하산과 전관예우가 선순환 함으로써 전·현직 관료들의 호구지책이 확보되도록 최선을 다했습니다.
아마도 이들 입장에서는 억울하고 분통 터질 일일 겁니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의 입장에서 보자면 어깨를 으스댈 만하고 칭찬받아 마땅한데 도리어 여론의 몰매를 맞고 있으니 도저히 이해가 안 될 겁니다. 그런데 이들이 망각하고 있는 중대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들이 몸담고 있는 조직의 권력이 어디로부터 오느냐는 겁니다. 선장에게 절대적 권한을 부여한 사람들은 바로 운임을 지불하면서 안위에 대한 처결을 맡긴 승객들입니다. 그리고 안행부와 해수부 관리들에게 권한을 부여한 사람들은 바로 열심히 일해 번 돈을 세금으로 납부한 절대다수 국민입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와 같은 권력의 위임에 관한 사람들의 의식이 희박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권력을 위임받은 쪽이나, 권력을 위임한 쪽이나 그 권력이 누구를 위해 존재하고 무엇을 위해 행사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마치 집단 기억상실증에 걸린 듯이 손을 놓아버린 것이죠. 그러면서 마치 위임 받았던 권력이 승자가 독식하는 전리품처럼 여겨지는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다시 말해 권력을 받은 자들은 거리낌 없이 자신들만의 탐욕과 이기주의를 위해 그것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권력을 위임한 자들은 그러한 탐욕과 이기주의에 조용히 눈을 감아줬지요.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서 장관을 포함한 고위공직 후보자들에 대해 강도 높은 인사청문회를 실시하는 가장 큰 이유는, 권력을 위임받은 자로서 얼마만큼의 도덕성과 소명의식을 갖고 있는지를 검증하기 위해서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위임받은 권력이라 할지라도 도덕성과 소명의식이 없는 고위공직자들에 의해 사적으로 남용되고 끝없는 탐욕의 도구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능력과 스펙이 뛰어나다 할지라도 그 능력을 국가와 사회가 아닌 자신과 소아적 집단을 위해 사용할 때 그것은 국가적 재앙을 초래하게 되죠.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여야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관계로 인해 공직후보자 검증을 소홀히 하고 인사청문회를 파행으로 이끌어가더라도 크게 신경 쓰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대통령도 인사청문회를 하나의 겉치레로만 생각하여 부적격 판정이 내려지거나 청문회 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은 후보자에 대해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장관으로 임명해왔습니다. 그러한 과정을 거치다보니 새롭게 임명된 장관들은 자신에게 권력을 위임한 국민은 신경 쓰지 않고 임명권자인 대통령과 해당부처 공무원들만을 의식하며 집단이기주의 유혹에 푹 빠지죠.
바로 그 장관과 그 공직자들이 집단이기주의에 집착하고 책임 회피에만 몰두하다가 발생한 대참사가 바로 세월호 사건입니다. 각자의 행위만 놓고 보면 쳐 죽일 정도의 사안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것이 합쳐지다 보니 천인공노할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죠. 바로 여기에 국가와 사회의 존재 이유가 있습니다. 각자가 자신의 이익과 탐욕만을 위해 움직이다 보면 모두가 공멸하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압도적 권력을 부여하여 사회의 합리성과 안전성을 높이자는 거죠. 그 원칙이 처절하게 무너진 것이 이번 사건이고, 어른들 모두가 이를 방조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도덕성에 다소의 흠이 있더라도 경제만 좋아진다면 문제없어!”
“살림살이가 나아질 수만 있다면 어느 정도의 독재는 불가피해!”
“내 지역만 살릴 수 있다면 다른 지역에 피해가 가도 괜찮아!”
“내가 편할 수만 있다면 우리 자식 세대는 어찌되든 상관없어!”
“내 자식만 잘 되면 되지 다른 집 자식들은 죽든 살든 신경 안 써!”
“나만 아니라면 장애인 문제건 비정규직 문제건 전혀 관심없어!”
이러한 것들이 바로 그동안 우리들이 조장해왔던 이기주의와 탐욕입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저조차도 통렬히 반성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죠. 우리의 이기주의와 탐욕 때문에 우리의 죄 없는 아이들이 죽음으로 내몰렸고, 차가운 바다 속에서 홀로 처절하게 싸우다가 우리 곁을 떠나갔습니다. 무책임한 선장을 묵인한 것도 바로 우리들이고, 보신주의와 조직이기주의로 무능의 극치를 보여준 공직자들을 묵인한 것도 바로 우리들입니다. 우리의 탐욕이 부메랑이 되어 우리에게 돌아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똑같은 오류를 범하시겠습니까? 지역감정과 지역이기주의를 조장하는 정치인을 또 뽑으실 겁니까? 도덕성과 역사의식에 흠결이 있더라도 나에게 작은 이익을 줄 수만 있다면 눈감고 또 뽑으실 겁니까? 후손들에게 막대한 부채와 파국적 시스템을 물려주는 한이 있더라도 내가 조금 더 챙기기 위해 무책임한 공약을 남발하는 정치인에게 또다시 표를 주실 겁니까?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위해 선량한 시민은 물론, 심지어는 희생자 유족까지도 간첩으로 낙인찍는 파렴치한 집단에게 또다시 표를 주실 겁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그동안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이야기해왔던 모든 공적인 집단의 실체가 이번 세월호 사건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국민을 간첩으로 몰고 탄압하는 정부, 권력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증거를 조작하는 정부, 국민의 안전을 볼모로 조직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각종 마피아에 의해 움직이는 정부, 최고 권력자에게 잘 보일 수만 있다면 국민의 아픔과 고통은 안중에도 없는 집권여당, 권력에 아부하기 위해 여론과 민심을 아무렇지 않게 왜곡하는 언론, 권력 및 언론과 유착하여 무책임한 조사결과를 남발하는 여론조사기관... 정말 끝이 없습니다.
이제라도 우리 모두가 두 눈을 똑바로 뜨고 감시하고, 견제하고, 심판해야 합니다. 권력의 근원인 국민이 눈감고 있는 동안 위임의 대상이었던 권력은 주인을 떠나 탐욕에 가득 찬 소인배들 차지가 되었습니다. 이제 그 권력을 다시 거둬들여야 하며, 그 권력이 얼마나 무서운 부메랑이 되어 그들을 덮치게 될지 똑똑히 보여줘야 합니다.
▷ 이진우 창조경제연구원 부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