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일인지라 혹 아실만한분이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저희 아버지에게 생긴일이며, 아시는분이있으시다면 꼭 도와주시기바랍니다.
1990년 11월 또는 1991년 11월 사건입니다. 제가 태어나고 4개월 뒤에 벌어진 사건이라하시니 1990년 11월이 맞을 것 같습니다.
우리 아버지의 동생, 즉 저는 본적도 없는 우리 삼촌의 자살사건과 관련있는 인물로 구본규씨가 있습니다.
11월 새벽 1시 30분경 삼촌은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하던 중 유성에서 공주로 이동중 유성컨트리크럽(골프장) 우측 간이정유소 4차선 도로에서
지나가던 그랜저차량에 끼어들어 자살하는 사고(그렇게 판정되었습니다)가 발생했습니다.
그랜저 차량의 주인은 구본규씨였고, 아버지는 경찰서에서 처음 구본규씨를 만났습니다.
다급히 경찰서로 들어온 아버지는 "내 동생 죽인놈이 누구요?"하고 경찰에게 물었습니다.
근데 경찰은 쭈삣거리며 제대로 말을 못했고, 그때 한 남자가 통화를 하고 있던 중 고개를 들고 아버지를 바라봤습니다.
(당시에 전화는 국가전화기를 이용해야해서 아무나 쓸 수 있는게 아니라 합니다)
그게 구본규씨였습니다. 그러나 구본규씨는 유치장에 있는게 아니라 일반인들이 앉는 장의자에 앉아있었고,
그 모습에 아버지는 화가 나서 구본규씨에게 주먹을 날렸습니다.
경찰은 급히 아버지를 붙잡았고, 구본규씨에게 어서 가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구본규씨는 전화상으로 업무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합니다.
경찰은 이 사건을 삼촌이 구본규씨 차량에 끼어든 자살사고로 급히 마무리했고, 특히 삼촌이 술에 취한 상태로 오토바이를 탔기 때문에
이 사건은 일사천리로 자살처리됐습니다. 아버지는 말도 안된다고 항의하며 사건 재수사를 요청했습니다.
어느날 구본규씨의 아내가 찾아와 300만원이 든 봉투를 주며 "원래는 차 수리비를 내가 받아야하는데 사람이 죽었으니까 위로금으로 받으라"며 아버지에게 건냈고, 아버지는 자살이 절대 아니라며 "이 돈 없으면 못살거같냐"하며 돈을 던졌고, 그 아내는 아버지 모친 (돌아가신 할머니)을 찾아와 "내가 7번을 (사고)처리했어도 진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합니다.
아버지는 당시 민간조사원에게 300만원으로 사건 전모를 밝혀달라고 의뢰했고, 민간조사원이 이 사건을 조사하게 되었습니다.
조사 결과 구본규씨가 타고 있던 그랜저차량은 "가"로 시작하는 번호판을 달고 있었고, 당시 구본규씨 명의로 압류된 차량의 번호판을 옮겨 단 차로 밝혀졌습니다. 또한 삼촌이 끼어들어 자살한 사건으로 마무리 됐지만, 사고는 삼촌이 진행하던 방향에서 났고, (그랜저 차량이 끼어들었음) 삼촌과 오토바이는 진행방향 우편, 즉 도로가 옆으로 내팽겨쳐졌음을 알아냈습니다.
또한 구본규씨가 타고있던 그랜저차량은 오대양사건의 박순자씨에게서 받은 차량임을 밝혀냈고, 당시 구본규씨는 구원파의 총무를 맡고 있었다 합니다. 그랜저는 박순자씨에게서 2억 5천만원을 대신 해 받았다는 것이 의문이고, 박순자씨가 구본규씨에게 돈을 줘야 하는 입장에 있던 걸로 보아 총무보다는 채무관계였던거 같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오대양사건에 관련있던 박순자(당시 경찰보고서에 교주박순자라 적혀있었음)도 죽었는데 왜 구본규씨만 살았는지 의문입니다.
민간조사원은 "절대 자살일 수 없다"고 사건에 대한 조사결과를 보여줬고, 경찰은 "이런게 있었어요?"라며
압류차량 번호판을 이용한 사실만 처벌하여 구본규씨는 3개월형을 받았다 합니다.
아버지는 이에 분노해서 각종 언론을 통해 사건을 드러내려했지만, 취재하러온 모든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너무 큰 상대다"라며 혀를 끌끌 찼고, 언론에 나오지 않았다합니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에게도 (92년도에 당선된분이시니 90년도에 발생한 사건을 질질끈거같습니다), 검찰에게도, 변호사에게도 모두에게 알렸지만 역시나 모두 묵묵부답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얼마전 세월호 사건이 구원파와 연결고리가 이어지고, 오대양 사건이 재주목받자 다시 크게 분노하며 매일 술만 드십니다.
극도로 분노해서 언론사나 경찰 해경 등등 여러곳에 이 사실을 알렸지만, 극도로 분노하고 술에 취한 상태에서 누구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저라도 술취한 사람이 한 말은 개소리라고 생각할겁니다)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며 제발 이 사건을 인터넷에 올려달라고 부탁하셨고
저는 그 부탁에 이 사건을 적어봅니다. 저는 부천에 살고, 아버지는 수원에 계셔서 가끔 연락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휴일 아침부터 글을 쓰는것은 5시부터 아버지가 계속 만취상태로 전화하셔서 글을 적습니다.
사실 아버지 말씀이 저는 100% 신뢰되진 않습니다. 20년 전 사고이고 구본규씨에 대한 기록이 인터넷에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민간조사원이 구본규씨가 오대양 사건의 박순자씨와 연관이 있다고 했지만 이것 역시 기록이 없어서 사실을 확인하고 글을 올리려 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너무 간절히 원하셔서 확인하지 못하고 미리 올립니다.
정말로 구본규씨가 오대양사건과 연관이 있는지, 구본규씨는 뭐하는 사람이길래 너무 큰 상대라고 했던 것인지, 저는 아는게 없습니다.
아버지는 언론을 원하십니다. 원하시면 아버지 번호 알려드리겠습니다. 구본규씨 정체를 밝혀주세요.
추가
-구본규의 아버지는 어디학교의 교장이었다는 사실이고, 아내는 사장, 유성에 늘봄식당은 구본규의 형이 운영했습니다.
-사건을 담당한 경찰은 대전북부경찰서 신동직, 무혐의결론 내린 검사는 이준명또는 이춘명 대전지검입니다.
당시에 목격자가 50명이 붙어도 검사가 아니라면 아닌거라는 의식이 강했다합니다.
-기자는 대부분 기사를 올리려면 돈을 요구했고, 당시 동아일보에서 700만원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삼촌 이름은 김동수, 아버지 이름은 김명수입니다.
-민간조사원이 제출한 사고원인보고서는 법정근거로 쓰려면 검사가 채택해야한다고 했는데, 검사는 거절했다합니다.
-목격자 김만홍또는 이만홍씨가 있었고(오토바이 사고로 다리를 절었다합니다) 삼촌이 입원한 병원에 같이 있었습니다.
목격자가 "어떻게 됐습니까?"라고 물어봤고, 자살판정된 결과 말하니 "왜 그렇게됐지? 뭔가 잘못됐네"라며 자신이 목격자라 했습니다.
목격 내용은 사고당시에 반대편을 보고 있었고, 사고나는 순간 충돌소리에 사고난 곳을 봤다합니다. 그랜저가 중앙선을 넘어 오토바이를 쳤다고 말하니 검사는 "니가 반대편을 보고 있었으면 무슨 목격자냐, 눈 한번 껌뻑이는 사이에 발생했냐, 몇번봤냐" 등 머리를 쥐머박으며 "확실하게 말 안하면 니가 영창간다"고 했다합니다.
-삼촌은 즉사하셨고 6개월정도 병원에 있었다합니다.
-목격자는 당시 자신이 봤다고 했는데 대전에서 유성 지나 정명마을(지금은 국립묘지)에 술마시러 갔다가 목격했습니다.
-목격자가 갑자기 "이거 증언하면 저 칼맞아요"라며 증언하고 싶지 않다고 해서 그동안 아버지가 몰래 녹취한 사실을 말했고, 아버지가 법정에 서달라 요청해서 어쩔 수 없이 목격자로 검찰에 갔는데 검사가 구본규와 대면시키며 "니가 본 사람이 이사람 맞냐"고 했다합니다. 당연히 목격자는 고개를 저으며 못봤다하며 돌아갔다합니다.
오대양 총무부장 구본규 혹시아십니까?
1990년 11월 또는 1991년 11월 사건입니다. 제가 태어나고 4개월 뒤에 벌어진 사건이라하시니 1990년 11월이 맞을 것 같습니다.
우리 아버지의 동생, 즉 저는 본적도 없는 우리 삼촌의 자살사건과 관련있는 인물로 구본규씨가 있습니다.
11월 새벽 1시 30분경 삼촌은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하던 중 유성에서 공주로 이동중 유성컨트리크럽(골프장) 우측 간이정유소 4차선 도로에서
지나가던 그랜저차량에 끼어들어 자살하는 사고(그렇게 판정되었습니다)가 발생했습니다.
그랜저 차량의 주인은 구본규씨였고, 아버지는 경찰서에서 처음 구본규씨를 만났습니다.
다급히 경찰서로 들어온 아버지는 "내 동생 죽인놈이 누구요?"하고 경찰에게 물었습니다.
근데 경찰은 쭈삣거리며 제대로 말을 못했고, 그때 한 남자가 통화를 하고 있던 중 고개를 들고 아버지를 바라봤습니다.
(당시에 전화는 국가전화기를 이용해야해서 아무나 쓸 수 있는게 아니라 합니다)
그게 구본규씨였습니다. 그러나 구본규씨는 유치장에 있는게 아니라 일반인들이 앉는 장의자에 앉아있었고,
그 모습에 아버지는 화가 나서 구본규씨에게 주먹을 날렸습니다.
경찰은 급히 아버지를 붙잡았고, 구본규씨에게 어서 가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구본규씨는 전화상으로 업무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합니다.
경찰은 이 사건을 삼촌이 구본규씨 차량에 끼어든 자살사고로 급히 마무리했고, 특히 삼촌이 술에 취한 상태로 오토바이를 탔기 때문에
이 사건은 일사천리로 자살처리됐습니다. 아버지는 말도 안된다고 항의하며 사건 재수사를 요청했습니다.
어느날 구본규씨의 아내가 찾아와 300만원이 든 봉투를 주며 "원래는 차 수리비를 내가 받아야하는데 사람이 죽었으니까 위로금으로 받으라"며 아버지에게 건냈고, 아버지는 자살이 절대 아니라며 "이 돈 없으면 못살거같냐"하며 돈을 던졌고, 그 아내는 아버지 모친 (돌아가신 할머니)을 찾아와 "내가 7번을 (사고)처리했어도 진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합니다.
아버지는 당시 민간조사원에게 300만원으로 사건 전모를 밝혀달라고 의뢰했고, 민간조사원이 이 사건을 조사하게 되었습니다.
조사 결과 구본규씨가 타고 있던 그랜저차량은 "가"로 시작하는 번호판을 달고 있었고, 당시 구본규씨 명의로 압류된 차량의 번호판을 옮겨 단 차로 밝혀졌습니다. 또한 삼촌이 끼어들어 자살한 사건으로 마무리 됐지만, 사고는 삼촌이 진행하던 방향에서 났고, (그랜저 차량이 끼어들었음) 삼촌과 오토바이는 진행방향 우편, 즉 도로가 옆으로 내팽겨쳐졌음을 알아냈습니다.
또한 구본규씨가 타고있던 그랜저차량은 오대양사건의 박순자씨에게서 받은 차량임을 밝혀냈고, 당시 구본규씨는 구원파의 총무를 맡고 있었다 합니다. 그랜저는 박순자씨에게서 2억 5천만원을 대신 해 받았다는 것이 의문이고, 박순자씨가 구본규씨에게 돈을 줘야 하는 입장에 있던 걸로 보아 총무보다는 채무관계였던거 같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오대양사건에 관련있던 박순자(당시 경찰보고서에 교주박순자라 적혀있었음)도 죽었는데 왜 구본규씨만 살았는지 의문입니다.
민간조사원은 "절대 자살일 수 없다"고 사건에 대한 조사결과를 보여줬고, 경찰은 "이런게 있었어요?"라며
압류차량 번호판을 이용한 사실만 처벌하여 구본규씨는 3개월형을 받았다 합니다.
아버지는 이에 분노해서 각종 언론을 통해 사건을 드러내려했지만, 취재하러온 모든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너무 큰 상대다"라며 혀를 끌끌 찼고, 언론에 나오지 않았다합니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에게도 (92년도에 당선된분이시니 90년도에 발생한 사건을 질질끈거같습니다), 검찰에게도, 변호사에게도 모두에게 알렸지만 역시나 모두 묵묵부답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얼마전 세월호 사건이 구원파와 연결고리가 이어지고, 오대양 사건이 재주목받자 다시 크게 분노하며 매일 술만 드십니다.
극도로 분노해서 언론사나 경찰 해경 등등 여러곳에 이 사실을 알렸지만, 극도로 분노하고 술에 취한 상태에서 누구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저라도 술취한 사람이 한 말은 개소리라고 생각할겁니다)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며 제발 이 사건을 인터넷에 올려달라고 부탁하셨고
저는 그 부탁에 이 사건을 적어봅니다. 저는 부천에 살고, 아버지는 수원에 계셔서 가끔 연락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휴일 아침부터 글을 쓰는것은 5시부터 아버지가 계속 만취상태로 전화하셔서 글을 적습니다.
사실 아버지 말씀이 저는 100% 신뢰되진 않습니다. 20년 전 사고이고 구본규씨에 대한 기록이 인터넷에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민간조사원이 구본규씨가 오대양 사건의 박순자씨와 연관이 있다고 했지만 이것 역시 기록이 없어서 사실을 확인하고 글을 올리려 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너무 간절히 원하셔서 확인하지 못하고 미리 올립니다.
정말로 구본규씨가 오대양사건과 연관이 있는지, 구본규씨는 뭐하는 사람이길래 너무 큰 상대라고 했던 것인지, 저는 아는게 없습니다.
아버지는 언론을 원하십니다. 원하시면 아버지 번호 알려드리겠습니다. 구본규씨 정체를 밝혀주세요.
추가
-구본규의 아버지는 어디학교의 교장이었다는 사실이고, 아내는 사장, 유성에 늘봄식당은 구본규의 형이 운영했습니다.
-사건을 담당한 경찰은 대전북부경찰서 신동직, 무혐의결론 내린 검사는 이준명또는 이춘명 대전지검입니다.
당시에 목격자가 50명이 붙어도 검사가 아니라면 아닌거라는 의식이 강했다합니다.
-기자는 대부분 기사를 올리려면 돈을 요구했고, 당시 동아일보에서 700만원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삼촌 이름은 김동수, 아버지 이름은 김명수입니다.
-민간조사원이 제출한 사고원인보고서는 법정근거로 쓰려면 검사가 채택해야한다고 했는데, 검사는 거절했다합니다.
-목격자 김만홍또는 이만홍씨가 있었고(오토바이 사고로 다리를 절었다합니다) 삼촌이 입원한 병원에 같이 있었습니다.
목격자가 "어떻게 됐습니까?"라고 물어봤고, 자살판정된 결과 말하니 "왜 그렇게됐지? 뭔가 잘못됐네"라며 자신이 목격자라 했습니다.
목격 내용은 사고당시에 반대편을 보고 있었고, 사고나는 순간 충돌소리에 사고난 곳을 봤다합니다. 그랜저가 중앙선을 넘어 오토바이를 쳤다고 말하니 검사는 "니가 반대편을 보고 있었으면 무슨 목격자냐, 눈 한번 껌뻑이는 사이에 발생했냐, 몇번봤냐" 등 머리를 쥐머박으며 "확실하게 말 안하면 니가 영창간다"고 했다합니다.
-삼촌은 즉사하셨고 6개월정도 병원에 있었다합니다.
-목격자는 당시 자신이 봤다고 했는데 대전에서 유성 지나 정명마을(지금은 국립묘지)에 술마시러 갔다가 목격했습니다.
-목격자가 갑자기 "이거 증언하면 저 칼맞아요"라며 증언하고 싶지 않다고 해서 그동안 아버지가 몰래 녹취한 사실을 말했고, 아버지가 법정에 서달라 요청해서 어쩔 수 없이 목격자로 검찰에 갔는데 검사가 구본규와 대면시키며 "니가 본 사람이 이사람 맞냐"고 했다합니다. 당연히 목격자는 고개를 저으며 못봤다하며 돌아갔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