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억울하고 복받쳐서 집 들어서자마자 가방 집어던지고 앉아서 글 씁니다.
퇴근하고 종로 3가에서 대화행 3호선에 올라 집에 가는 길이었습니다.
6번칸? 5번칸쯤? 경황이 없어서 몇 - 몇 번 칸이었는지는 정확히 생각이 안 납니다.
7시 30~40분쯤? 이었고 퇴근길인지라 사람이 굉장히 많았어요.
노래 들으면서 문쪽에 바짝 기대서 가고 있는데
경복궁? 독립문쯤에서 사람이 많이 빠져서 공간이 좀 여유로워졌습니다.
저는 계속 문쪽에 서 있었구요.
근데 갑자기 엉덩이에 뭔가 닿는 느낌이 들었어요.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봤습니다.
어떤 아저씨가 서계셨습니다.
손 위치를 보니 왼쪽 손이 제 엉덩이에 닿은 거 같았어요.
사람이 많아서 실수로 그러셨나보다 하고 다시 앞을 봤습니다.
근데 얼마 안 돼서
이번에는 그 아저씨 몸이 앞으로 나오면서 더 정확하게 제 엉덩이에 손을 대는 겁니다.
본능적으로 의도성이 느껴졌습니다 ...
뒤를 휙 돌아봤습니다.
차가 급정거 중인 것도 아니었고 그 분 뒤에 사람이 많아서 앞으로 밀린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 아저씨는 오른손으로 쇠봉(앉는 좌석에 붙어 있는)을 단단히 잡고 있기도 했고요.
의.도.적으로 손을 엉덩이에 갖다 댄 게 100% 맞았습니다.
완전 불쾌해서 그 아저씨 얼굴을 1초간 강하게 쏘아보고 인상을 확 쓰면서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려고 하는데
이 아저씨.. 진짜 갑자기 지하철 안이 떠나가도록
아니 내가 뭘 어쨌다고 이러는 거냐며 사람이 많으면 닿을 수도 있지!!!!!!!!! 하면서 성질을 버럭 냅니다.
저도 열이 확 치밀어 아니 두 번이나 그러셨잖아요! 그러면서 따지고 들었습니다.
그 아저씨 한 대 칠 기세로 삿대질 하면서 막말합니다.
주변에 계시던 분들이 저를 뒤로 숨기시며 아저씨에게 큰소리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저씨가 잘못한 게 없으면 이렇게 소리지르실 거 없지 않느냐며 주변에서 저를 도와주셨어요.
그런데도 이 분 막말을 계속합니다. 주변에서 안 말리면 진짜 칠 기세입니다.
지하철에 사람이 많으면 그럴 수도 있지 너 같은 사람은 지하철 타고 다니면 안 된다고, 택시 타고 다니라고. 사람을 제대로 보고 그런 말을 해야지, 자기가 그럴 사람으로 보이냐며.
본인 나이가 73살이라며. 평생 지하철 타고 다니면서 이런 일은 처음이라며.
넌 부모도 없냐, 부모한테 교육을 어떻게 받았냐고, ㅆㅂ 요즘 젊은 것들은 정신상태가 썩어빠져서 촛불시위나 하고 앉아있다고.
진짜 완전 격분 상태로 공격적으로 삿대질을 하면서 막말을 계속합니다.
저도 처음엔 화가 나서 대항하다가 이런 일이 처음이고 너무 무서운 데다가
상대가 그런 식으로 나오니까 머릿속이 하얘져서 아무 말 못하고 그냥 가만히 듣고만 있었습니다.
그런데 참 웃기네요.
그 아저씬 계속 큰소리치고 저는 가만히 있으니까
제가 오해하고 잘못한 것처럼 분위기가 흘러가더라고요.
주변에서 그 아저씨한테 참으시라고, 요새 이런 일이 많아서 오해할 수도 있다고 되레 그 아저씨를 타이르네요.
여자의 적은 여자라더니...
어떤 여자분은 저보고 “오해했으니 아저씨한테 잘못했다고 하세요.” 이럽니다.
또 어떤 여자분은 “아가씨, 그냥 여기서 내리세요. 너무 시끄럽잖아.” 이럽니다. 하 .....
주변에서 이러니까 그 아저씬 득의양양해져서 계속 자기가 그럴 사람으로 보이냐며 큰소리칩니다. 주변에선 참으시라고 타이르고. 분위기가 제가 잘못한 것처럼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진짜 분하고 어이없어서,
그렇다고 또 다른 곳으로 옮겨 갈 용기는 없어서 그냥 그 자리에서 뒤돌아서서 반대편을 보고 섰습니다.
등 뒤로 어떤 어르신이 젊은 사람이 사람이 사과를 하면 받아줄 줄을 알아야지 저렇게 자기 생각만 해서 어쩌냐고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립니다. (저는 사과 받은 기억이 없는데요 어르신 ...)
그리고 계속되는 그 변태 아저씨 막말...
내가 언제 자기 ‘힙’에 손을 댔다고 저러느냐고..
하.. 저 제 입으로 엉덩이 얘기 꺼낸 적도 없습니다. 근데 본인이 먼저 힙이라는 단어를 언급하네요.
본인이 스스로 실토한 건데, 결정적 증거를 잡은 건데,
저는 이제 더 이상 대항할 용기도 없었고, 대항했다간 저만 사람들한테 욕 먹을 분위기여서
그렇게 반대편을 본 채 묵묵히, 등 뒤로는 계속해서 그 아저씨의 막말을 들으며 가고 있었습니다. 정말 스스로가 비참하고 무기력하고 쓸모없게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멘붕 상태였어서 정확히 확인은 못 했는데 그 아저씨는 홍제? 녹번 쯤에서 내리고 저는 그냥 그렇게 반대편을 보면서, 마음속에는 폭풍우가 몰아치는 채로 가고 있었습니다.
내릴 역이 돼서 내릴 준비를 하는데 아까 그 문쪽에 서 계시던 어떤 남자분이 저한테 슬쩍 말씀하시더군요.
“아가씨, 아가씨가 맞아요.”
그래서 “네?” 그랬더니
“그 아저씨가 손 댄 거 맞다구요.”
휴 .....
아무 대꾸도 안 하고 그냥 내렸습니다. 대꾸할 만한 정신도 아니었구요.
제가 안 돼 보여서 빈말을 하신 걸까요?
그 분은 저랑 같이 계속 문쪽에 계셨었고 아저씨 말리던 분이니
처음부터 봤을 수도 있겠지요.
그럼 왜 그때 말씀을 안 해주셨는지 ..
다리가 후들거리는 채로 역에서 빠져나왔습니다. 엄마한테 전화를 걸어서 있었던 얘길 하니까 그때서야 참았던 울음이 터지더라구요. 집까지 엉엉 울면서 왔습니다.
나참 .....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그 변태의 태도도 태도지만 오히려 피해자를 몰이하는 주변 사람들 태도에 상처를 받았습니다.
많이 배웠네요. 큰소리 치는 사람이 이기는 거네요.
여성분들, 대중교통 이용하실 때 물증 심증 100%인 성추행 당하시면
맞서서 절대 지지 마시고 쫄지 마세요. 저자세로 나가면 오히려 내가 잘못한 사람 됩니다.
여론이 그렇게 형성되더라구요. 민망하고 수치스러워도 정확히 그 상황을 설명해야 돼요.
성추행 당했을 때는 다른 것보다 그 공간에 함께 있는 주변사람들에게 인지시키고 확신시키는 게 중요하다 걸 비싼 값 치르고 배웠습니다.
그게 힘들면 차라리 경찰에 신고하세요.
반대편 보고 가면서 경찰서에 전화할까 백 번 고민했는데 진짜 차라리 무서워도
같이 경찰서 갈 걸 그랬네요. 이미 지나고 이런 생각해봤자 소용없지만요.
그리고 오늘 7시 40분쯤 대화행 3호선 타고 계셨던, 키 167쯤에 흰색 폴로 티셔츠 입고 있던 73세 변태 할아버지, 말씀대로 73살이나 잡수시고 그딴 식으로 살지 마세요.
저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딸이 있으시다면서, 정말 부끄럽지도 않으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