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나를 믿고 따르라 하지 않으시며, 자신을 성대하게 모시거나 어두운 골방에서 자신을 찾으라 하지 않으신다. 하느님께서 자신의 형상과 능력대로 인간을 창조하셨으니, 그리하여 창조된 인간은 스스로 존재를 이루게 하셨다. 그런데 하느님에게 인간의 믿음이 왜 필요할 것인가? 인간이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여 하느님에게 어떠한 이로움이 있으며, 인간에게 어떠한 이로움이 있겠는가?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음을 믿으라는 말인가? 아니면 하느님께서 내가 너를 창조하였으니 나를 믿어라 하신다는 말인가? 만약, 하느님이라는 존재를 부정하고, 그리하여 하느님의 창조역사를 부정한다면, 그러한 인간에게 하느님을 믿으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한 말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하느님이라는 존재를 부정하는 인간이 하느님이라는 존재를 인정한다고 하여 그 인간에게서 달라지는 것은 무엇인가? 그러한 믿음에는 아무 것도 없다. 그런데 왜 믿으라고 하는 것인가? 믿으라고 하는 이유는, 오직 한 가지 하느님을 왜곡하기 위함이다. 하느님이라는 존재는 믿어서 될 문제가 아니고, 인간이 스스로 자기자신을 믿고 존재를 이루는 삶에 있다. 그런데 하느님을 믿으라고 하는 이유는, 하느님이 아닌 존재를 가설적 허상으로 만들기 위하여, 또한, 그렇게 만들어진 허상이기에 믿으라고 하는 것일 뿐이다. 만약 믿지 않으면 그러한 허상은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이니, 허상을 허상으로 인간세상에 유지시키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인간의 믿음이 필요하기 때문에 인간에게 믿음을 강요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 하느님을 알 수 있는 것은 자기자신을 믿는 것에 있음을 알라. 인간의 본성으로부터 나오는 믿음은 스스로 인간이라는 존재인 자신을 믿으라고 하는 것이지 하느님을 믿으라고 하는 것이 아니며, 자기자신을 믿고 존재를 이루려는 이성적인 노력과 현재론적 행복한 삶을 이루기 위한 노력으로부터 하느님을 알 수 있게 된다. 하느님의 빛은 인간의 삶을 밝힐 수는 있지만, 인간의 삶이 하느님의 빛을 밝힐 수는 없다. 하느님께서 창조의 역사를 이루시고 인간세상을 이루어 인간으로 하여금 스스로 존재를 이루게 하셨으니, 믿음이 있다면, 하느님께서 창조한 인간이 스스로 노력하여 존재를 이룰 것을 믿으시니, 믿음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바라시는 믿음인 것이다.
그런데 인간이 하느님에게 무엇을 믿는다는 말인가? 믿건 믿지 않건 지금 이 자리에 인간이 있다. 하느님의 믿음의 결실이 지금 이 땅에 인간으로 있다. 왜 인간이 자신을 버리고 하느님을 믿는다는 말인가? 그러한 행위가 하느님에게 역적질을 하는 행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하느님의 창조역사를 거슬리는 행위가 하느님에게 반역하는 행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인간이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러한 행위가 됨을 알아야 할 것인즉,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자신을 믿으라는 말이나 자신을 믿고 따르라는 말을 하지 않으신다.
하느님은 인간 안에 존재하시지 인간 밖에 존재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며, 인간 안에 존재하신다는 말은 인간의 존재론적 내면의 길에 존재하신다는 말이다. 존재론적 내면의 길은 밝음의 길이며, 밝음의 길이 하느님에게로 다가가는 길이다. 어두운 골방의 암울한 정신과 비굴한 정신은 하느님에게로 향하는 길이 아니라 귀신에게로 향하는 길이 되니, 어두운 골방에서 하느님을 찾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한즉 하느님을, 나를 믿고 따르라하는 모리배적인 선동가로 취급하고, 어두운 귀신의 길을 하느님의 길로 왜곡하는 짓으로, 하느님을 욕되게 하지 말라.
⑧ 하느님을 욕되게 하지 말라.
⑧ 하느님을 욕되게 하지 말라.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나를 믿고 따르라 하지 않으시며, 자신을 성대하게 모시거나 어두운 골방에서 자신을 찾으라 하지 않으신다. 하느님께서 자신의 형상과 능력대로 인간을 창조하셨으니, 그리하여 창조된 인간은 스스로 존재를 이루게 하셨다. 그런데 하느님에게 인간의 믿음이 왜 필요할 것인가? 인간이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여 하느님에게 어떠한 이로움이 있으며, 인간에게 어떠한 이로움이 있겠는가?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음을 믿으라는 말인가? 아니면 하느님께서 내가 너를 창조하였으니 나를 믿어라 하신다는 말인가? 만약, 하느님이라는 존재를 부정하고, 그리하여 하느님의 창조역사를 부정한다면, 그러한 인간에게 하느님을 믿으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한 말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하느님이라는 존재를 부정하는 인간이 하느님이라는 존재를 인정한다고 하여 그 인간에게서 달라지는 것은 무엇인가? 그러한 믿음에는 아무 것도 없다. 그런데 왜 믿으라고 하는 것인가? 믿으라고 하는 이유는, 오직 한 가지 하느님을 왜곡하기 위함이다. 하느님이라는 존재는 믿어서 될 문제가 아니고, 인간이 스스로 자기자신을 믿고 존재를 이루는 삶에 있다. 그런데 하느님을 믿으라고 하는 이유는, 하느님이 아닌 존재를 가설적 허상으로 만들기 위하여, 또한, 그렇게 만들어진 허상이기에 믿으라고 하는 것일 뿐이다. 만약 믿지 않으면 그러한 허상은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이니, 허상을 허상으로 인간세상에 유지시키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인간의 믿음이 필요하기 때문에 인간에게 믿음을 강요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 하느님을 알 수 있는 것은 자기자신을 믿는 것에 있음을 알라. 인간의 본성으로부터 나오는 믿음은 스스로 인간이라는 존재인 자신을 믿으라고 하는 것이지 하느님을 믿으라고 하는 것이 아니며, 자기자신을 믿고 존재를 이루려는 이성적인 노력과 현재론적 행복한 삶을 이루기 위한 노력으로부터 하느님을 알 수 있게 된다. 하느님의 빛은 인간의 삶을 밝힐 수는 있지만, 인간의 삶이 하느님의 빛을 밝힐 수는 없다. 하느님께서 창조의 역사를 이루시고 인간세상을 이루어 인간으로 하여금 스스로 존재를 이루게 하셨으니, 믿음이 있다면, 하느님께서 창조한 인간이 스스로 노력하여 존재를 이룰 것을 믿으시니, 믿음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바라시는 믿음인 것이다.
그런데 인간이 하느님에게 무엇을 믿는다는 말인가? 믿건 믿지 않건 지금 이 자리에 인간이 있다. 하느님의 믿음의 결실이 지금 이 땅에 인간으로 있다. 왜 인간이 자신을 버리고 하느님을 믿는다는 말인가? 그러한 행위가 하느님에게 역적질을 하는 행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하느님의 창조역사를 거슬리는 행위가 하느님에게 반역하는 행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인간이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러한 행위가 됨을 알아야 할 것인즉,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자신을 믿으라는 말이나 자신을 믿고 따르라는 말을 하지 않으신다.
하느님은 인간 안에 존재하시지 인간 밖에 존재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며, 인간 안에 존재하신다는 말은 인간의 존재론적 내면의 길에 존재하신다는 말이다. 존재론적 내면의 길은 밝음의 길이며, 밝음의 길이 하느님에게로 다가가는 길이다. 어두운 골방의 암울한 정신과 비굴한 정신은 하느님에게로 향하는 길이 아니라 귀신에게로 향하는 길이 되니, 어두운 골방에서 하느님을 찾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한즉 하느님을, 나를 믿고 따르라하는 모리배적인 선동가로 취급하고, 어두운 귀신의 길을 하느님의 길로 왜곡하는 짓으로, 하느님을 욕되게 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