⑤ 하느님을 욕되게 하지 말라.

소검2014.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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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하느님을 욕되게 하지 말라.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죽음의 공포와 어떠한 불행도 주지 않으시며, 인간을 살생하라고 하지 않으신다. 하느님께서 자신의 형상과 자신의 능력대로 인간을 창조한 것은 탄생에서 탄생을 하게 하기위하여 창조하셨으니, 하느님의 창조는 죽음을 위한 탄생이 아니며, 불행을 위한 탄생이 아니다. 땅의 물질적 속성에 의한 탄생과 죽음의 이치에 인간의 육체가 탄생한 것이며, 육체적 한계의 삶을 이루고 있는 인간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영혼의 씨를, 삶을 통하여 스스로 성장시켜 탄생시켜야 하는 것이 인간이 존재하는 존재론적 목적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간은 누구나 하느님의 자손이라 하는 것이며, 인간은 누구나 하느님의 자손으로서 자신의 영혼을 갖고 탄생한 존재인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자신의 자손에게 죽음의 공포를 주지 않으시며, 인간은 누구나 육체적 한계에 의한 죽음의 공포를 갖고 있으니, 그것은 인간이 깊이 느끼지 못하고 있는 자신의 영혼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존재론적 영혼을 위해서는 죽음의 공포를 가질 필요가 없으며 가져서도 안 되는 것은, 인생을 통하여 자기완성을 이루는 위해서는 영혼을 탄생시켜야 하지만, 영혼을 탄생시키지 못한다 하더라도 영혼의 씨를 잃지 않는 이상 신의 세계에 존재할 수 있게 된다.

   그리하여 신의 세계에서도 또한 자신의 영혼을 탄생시킬 수 있는 것이며, 필요에 따라서는 다시 인간의 육신을 갖고 태어나 영혼을 탄생시키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삶에 의한 영혼의 탄생은 쉽지 않는 노력이 따라야 하지만, 그렇다고 죽음의 공포로 인하여 영혼을 훼손시키는 것은 더없이 어리석고 우둔한 존재론적 인생인 것이다.

 

또한,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불행을 내리지 않으시며 인간의 삶이 불행하게 되기도 바라지 않으신다. 그러한 이유는, 존재론적 영혼은 불행의 고통에서 빛을 잃기 때문인즉, 인간이 불행을 거부하고 행복을 추구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인간이 바라는 행복한 삶은 바로 영혼이 바라는 삶인 것이며, 행복하고 즐거운 삶에서 영혼의 빛이 밝아져 존재론적 목적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인생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다. 그러나 짧고 긴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안에 자기완성이나, 최대한 자기완성으로 다가가는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며, 인간이 인생을 통하여 존재론적 목적을 이루기 위한 삶의 시간은 적당하고 충분한 시간을 갖고 있음을 알라. 다만 우려되는 것은 이러한 삶의 순환이 깨지는 것이며, 삶의 순환이 깨지는 것이 바로 살생에 의한 죽음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운명의 시간을 갖고 태어난다. 운명의 시간이란 현생의 삶으로부터 존재론적 영혼을 이룰 수 있는 시간을 말하며, 인간마다 각기 다른 자기만의 고유한 존재론적 시간을 말한다. 살생이 가장 큰 죄가 되는 이유가 이것이니, 육체의 살생보다 영혼의 시간을 단절시키는 살생이기에 가장 큰 죄가 되는 것이며, 죄에 따른 신의 세계로부터의 반응은 인간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어떠한 이유로도 살생을 원치 않으시며, 어떠한 이유로도 삶을 훼손시키지 않으신다. 그러한즉, 사악한 귀신을 하느님으로 속여, 하느님이라는 존재를 살생을 조장하는 죽음의 공포로 만들지 말 것이며, 불행을 내려 인간의 삶을 고통스럽게 하는 존재로 취급하는 짓으로, 하느님을 욕되게 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