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치유08) 창조적 후회의 회초리

소검2014.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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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후회의 회초리

 

하늘에는 하늘의 천왕이 계시고, 땅에는 땅의 지왕이 계시고, 인간에게는 인간의 인왕이 있다. 하늘의 일을 맡아 행을 하는 존재를 천왕이라 하며, 땅의 일을 맡아 행을 하는 존재를 지왕이라 하며, 인간의 일을 맡아 행을 하는 존재를 인왕이라 한다. 천왕의 근본은 순리며, 지왕의 근본은 인애며, 인왕의 근본은 대화다. 그러한즉, 하늘의 천왕은 순리적이며, 땅의 지왕은 순리적이며 인애적이고, 인간의 인왕은 순리적이며 인애적이고 대화적이여야 한다. 이러한 근본에 따라 왕권에는 순리를 행할 권한과 인애를 행할 권한과 대화를 행할 권한이다.

   그러므로 왕권은 순리를 행하기 위한 것이지, 인위를 행하기 위한 것이 아니며, 인애를 펼치기 위한 것이지, 배타를 펼치기 위한 것이 아니며, 대화를 위한 것이지, 강제를 위한 것이 아니다. 왕권은 백성을 억압하기 위한 지배권이나 통솔권이 아니라, 백성을 위한 안내권이며 보호권 즉, 백성을 바르게 이끌 권리와 백성을 보호할 권한을 쥐어준 것이 왕권이다.

 

왕은 임금이다. 하늘과 땅과 인간을 하나의 중심에서 일치시키기 위한 존재가 임금이니, 그래서 왕(王) 자가 의미하는 왕인 것이다. 이러한 왕이기에 하늘의 이치와 땅의 이치와 인간의 이치에 어긋나지 않는 실천이 왕도(王道)이다. 그러한즉, 그 나라 백성이 힘든 것은 왕의 책임이며, 그러한 책임을 백성에게 돌린다면 그는 왕이 아니니, 왕이 그러한 책임을 지지 않는 다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 왕에게 권한을 쥐어준 것은 그 책임과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왕의 권한은 책임에 따른 권한이지, 권한에 따른 책임이 아니니, 권한에 의한 책임은 바로 폭력적 정치로 이어지게 하는 요인이 된다.

 

진리의 왕국은 왕이 그 백성의 일꾼이 되는 것이며, 거짓의 왕국은 왕이 그 백성의 주인이 되어 백성을 노예 취급하게 되니, 인간세상은 분명히 알아야 한다. 하늘과 땅과 인간이 삼위일체를 이루어 존재한 것이 인간이다. 그러한즉, 인간은 누구나 왕이며, 왕(王)이 주체성을 갖춘 것이 주인 즉 주(主)자가 의미하는 주가 되니 인간이 주인이 된다. 그러나 왕(王)은 주(主)가 아니며, 왕이 주가 되는 것은 독재가 되는 것이니, 왕(王)은 주(主)를 위한 왕(王)으로 곧 백성을 위한 일꾼이 된다.

   인간은 주인(主人)이다. 그러나 이 주인의식은 자기자신에 대한 주체적 주인의식이지, 상대에 대한 상대적 주인의식이 아닌 것은, 인간은 누구나 다 주인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역사에서 왕이 왕(王)이 아니라 주(主)가 되려는 것에서 실질적 주인인 인간의 가치가 무너지는 비극적인 역사를 이루어 왔다.

 

왕이라는 인간이 왕의 본질적 근본에 따른 책임과 의무를 망각하고, 권한을 내세워 자신이 져야할 책임과 의무를 오히려 백성에게 돌리니, 그로서 억압적 정치에 의한 폭력과 백성을 노예 취급하는 착취적 정치를 행하였다. 이것은 잘못된 왕이라는 개념에 따른 잘못된 인간사회였으며, 이러한 잘못된 인간세상에서 인간의 존재적 가치는 훼손되어 왔다. 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신 존재는 하느님이시며, 왕은 이러한 창조되어진 것을 다스리는 즉, 인간세상을 위한 일꾼이 왕이다. 또한 그러므로 하느님은 왕이 아니시니, 하느님을 왕이라고 칭하는 것은 하느님을 일꾼으로 취급하는 것으로, 자기를 낳아 주신 부모님을 죽을 때까지 부려먹으려는 인간과 같다.

   또한, 이러한 하느님을 잘못되어진 인간세상의 왕과 같은 존재로 취급하는 것은, 참으로 저속한 인간의 발상이다. 잘못된 인간세상의 사회구조로부터 발생한 거짓 왕의 개념적 말을, 오히려 하느님께 적용하여 하느님을 폭군으로 취급하는 것은, 참으로 노예적 발상인 것이다. 그렇게 잘못된 개념에 따라 하느님을 폭군으로 설정하여 놓고, 하느님께서 인간세상을 그렇게 폭력적으로 다스린다고 하여, 또한 하느님에게 아부를 한다면 그것 또한 인간세상의 비열한 행위를 하느님에게 적용시킨 것이다.

 

권력에 아부하기를 좋아하는 인간들이 하느님으로부터 허상의 권력을 그려놓고 거기에 충성을 한다는 것이 바로, 인간세상에서 하는 비열한 짓을 하느님에게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조잡한 생각으로 하느님의 권능을 말하거나, 또한 잘못된 사회구조로부터 발생한 폭군이 폭압적 정치를 내세워 백성을 희생시키는 것과 같이, 하느님을 내세워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희생을 강요한다고 한다면, 이 또한 하느님을 폭력적인 왕으로 치부하는 것이다. 그러한 인간들은 온갖 종교적 아부를 다 하며, 오히려 남에게 공을 뺏길세라 이구동성으로 아첨을 하게 되니 인간세상은 그 비참함을 더해 왔다.

   하느님의 폭압적 정치에 따라 정책을 말하고 그 정책에 따라 인간은 복종해야 한다는 것은 인간의 사악함에서 나온 발상이다. 또한 그러한 하느님이기에 자연의 이치를 철저히 거부하고 인위적인 노력을 하여야 한다는 것은 허상에 따른 거짓된 짓이다.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온다. 그런데 여름이 가면 봄이 온다고 말하고, 봄이 가면 겨울이 온다는 억측과 거짓을 하느님의 말인 양 내세우며, 또한 그것이 하느님의 능력이라고 말하고, 하느님이기에 가능하다고 말한다면, 하느님을 자연의 이치도 모르고 무시하는 몰지각한 존재로 취급하는 짓이다.

 

이치적으로 불가능한 것을 가능한 것처럼 꾸미고, 그것을 기적이라고 하여 인간의 인식의 세계를 우둔하게 만드는 것이 종교의 사명이 아니다. 도대체 인간은 무엇이며, 하느님은 무엇이란 말인가? 인간의 본질이 그렇다면 역겨울 뿐이며, 정말 하느님이란 존재가 그렇다면 역겨울 뿐이리라.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심에, 자신의 형상과 자신의 능력을 모두 주어, 존재적 삶을 이루어 존재를 이루게 하신 것은 도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인간이 그러한 능력에 따라 행복한 삶을 이루며, 상보적 인간세상에서 성공의 인생을 살고, 존재를 이루어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하느님을 왜 폭군으로 만들어야 하고, 왜 자연의 이치도 무시하는 야비한 존재로 만들어야 하는 것인가? 인간의 우둔함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땅에서 삶은 이루는 인간은 삼가 명심하여야 한다. 하느님의 창조적 후회는 인간세상의 멸족이리니, 하느님의 회초리는 인류를 거두어버리고, 조상님의 회초리는 자손을 거두어버린다. 그 전까지는 인간 일에 직접 관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