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치유03) 생사 본질의 종교

소검2014.06.02
조회44

생사 본질의 종교

 

선(善)은 영혼의 빛을 살리고, 악(惡)은 영혼의 빛을 죽인다. 선의 영혼은 밝은 정신과 소리와 마음으로부터 행위가 이루어지고, 악의 영혼은 어두운 정신과 소리와 마음으로부터 행위가 이루어진다. 그리하여 선의 영혼은 다른 인간의 영혼의 빛을 살리지만, 악의 영혼은 다른 인간의 영혼의 빛을 죽인다. 이러한 이유로 인간세상에서는 선을 추구하고 악을 멀리하는 것이니, 악을 행하지 않도록 하여 자신의 영혼뿐만이 아니라 다른 인간의 영혼을 해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인간의 본성은 선인지라, 일시적으로 악에 기울었든, 악에 깊이 떨어져 있든, 어떠한 악의 인간이라도 선의 본성을 찾을 수 있다. 인간과 사회를 이롭게 하는 정당하고 도덕적 기준에 맞는 행위를 권장하고, 인간과 사회를 해롭게 하는 부당하고 도덕적 기준에 어긋나는 행위에 대하여, 응징을 하거나 뉘우치도록 제재를 하는 권선징악(勸善懲惡)은 인간세상의 진리이다. 그러나 진리에 어긋나는 것은 거짓이니, 어떠한 경우에도 진리를 흐트러트려 인간세상을 거짓된 세상으로 만들지 못하도록 하여야 하며, 그리하여 불행한 인간세상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인간세상의 가장 큰 악은 정신의 악이며, 그 다음이 소리의 악이고, 그 다음이 마음의 악이며, 그 다음이 행동의 악이다. 악의 정신이 만연된 인간세상은 그 다음의 악에 대해서는 논할 가치가 없게 되니, 근본을 악에 둠으로 해서 파생되는 악을 탓하는 것은 불행한 인간의 역사만을 반복할 뿐이다. 그러한즉, 인간세상을 불행하게 하는 악의 근원적인 원인을 찾아 세상으로부터 제거하는 것은, 악의 근원이 되는 정신의 뿌리와 정신으로부터 파생되는 소리를 제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심각한 실질적인 현실이 된다.

   특히, 인간세상으로부터 악이 근절되지 않는 것은 각각의 종교에서 선과 악에 대하여 상이하고 그릇된 편견을 갖기 때문이며, 보편적인 선과 악에 대한 인식을 왜곡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선과 악의 차원에서 종교가 갖고 있는 본질적인 면을 보게 되면, 삶을 찬양하는 생(生)의 종교와 죽음을 찬양하는 사(死)의 종교로 구분을 할 수 있다.

 

생 본질의 종교

생(生) 본질의 종교는 선을 권하고 악을 멀리하여 선과 악을 분명하게 구분하여 다루니, 진선미를 선으로 삼고 탐진치를 악으로 취급한다. 인간을 사랑하기에 선을 추구하고 악을 멀리하는 것이며, 인간답게 살기 위하여 선하게 살고 악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생의 종교에서 선으로 악을 대하는 방법은 정신과 소리와 마음에 의한 방법이 있다.

 

정신에 의한 방법의 핵심은, 악을 행한 인간을 악인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악행을 한 그 자체가 그 인간의 영혼의 질이며, 그 영혼의 질에 따라 고통의 운명을 살고 있음을 인정하고, 그러한 고통스런 삶을 살고 있음을 상기하고 또 상기하는 것이니, 그 상기하는 거기까지가 악을 악으로 되갚는 것이다. 소리에 의한 방법의 핵심은, 악을 행한 인간에게 소리를 주지 않는 것이다. 악을 행한 인간에게 악으로 같이 소리를 낸다거나, 선으로 소리를 내게 되면, 악행을 저지른 인간은 악한 소리에 더욱 악이 되고, 선한 소리는 더럽혀 결국 악한 소리든 선한 소리든 악으로 결과가 이루어지니, 소리를 낸 자신이 더욱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즉, 소리를 주지 않는 것이 악을 이기는 것이며, 최소한 행위가 일어나는 순간만이라도 소리를 주지 않도록 참는 수행적 연습을 해야 한다.

   마음에 의한 방법의 핵심은, 악을 당하여 마음에 흔들림이 없는 것이다. 악을 당하여 마음이 요동을 치고 같이 악한 마음을 품게 되면, 일차, 악을 행한 인간이 원하는 것이 그것이며 그것을 즐기는 것인즉, 그렇게 하여 악한 마음의 색채를 먹고 악의 생명을 연장하게 되는 것이다. 이차, 요동치는 악의 마음은 스스로 자신의 영혼을 해쳐 또 다른 악을 불러들이는 결과가 된다.

 

악행을 저지른 인간을 마음에 품는 것은 악행을 저지른 인간에게 보약(補藥)을 주는 것이며, 마음에 품지 않아야 악행을 저지른 인간이 그 악행에 악행을 더하여 가지게 되고, 자신은 스스로 자신의 영혼을 지킬 수 있게 된다. 악을 이기고 소멸시킬 수 있는 방법에 있어서 육체적인 대응이 가장 빠를 것 같지만 가장 늦으며, 정신으로 대응하는 것이 늦을 것 같지만 가장 빠르고 확실한 길이다. 그러한즉 정신으로 악을 대하여 악이 그 악의 고통속에서 스스로 뉘우쳐 스스로 소멸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하며, 정신을 쓰되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는 수행을 하여 자신의 영혼을 지켜야 하는 것이니, 이러한 것이 진선미로써 탐진치를 이기는 즉, 실천적 선에서 실천적 악을 이기는 방법이다.

사 본질의 종교

사(死) 본질의 종교는 선을 권장하면서도 악을 용인하여, 선과 악을 분명하게 구분하지 않음으로 해서 인간세상을 악으로 몰고 가며, 죽음을 찬양하고 악에 대하여 관대하며 묵인한다. 악에 관대한 것이 인간의 사랑이 아니며, 악을 묵인하는 것이 인간답게 사는 것이 아니다. 인간에 대한 사랑은 선에서만이 이루어지고, 인간답게 사는 것은 선을 행하는 것에서만이 이루어지며, 악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

 

인간은 결국 모두 죽음에 이른다고 하여 악이 선이 될 수 없으며, 인간은 신의 피조물로써 평등하다고 하여 악이 선이 될 수는 없으니, 만약 그렇다면 선과 악을 구분할 필요도 없게 된다. 선을 행한 인간도 신의 피조물이고, 악을 행한 인간도 신의 피조물이니, 같은 신의 피조물로써 선과 악이 공평하다고 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인간의 가치적 삶을 인정하지 않는 것인즉, 그러한 정신이 악을 묵인하고 용인하여 인간세상을 불행하게 하는 것이다. 또한, 삶의 불행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은, 거짓이 거짓을 해결하려고 또 다시 거짓을 하는 것이니, 처음도 중간도 끝도 모두 거짓이 된다.

 

선을 선으로 대하면 선이 되고, 악을 선으로 대하면 악이 되며, 선을 악으로 대하면 악이 되고, 악을 악으로 대하면 선이 된다. 그런즉, 악이 되는 것은 선을 악으로 대하고 악을 선으로 대하는 것이며, 선이 되는 것은 선을 선으로 대하고, 악을 악으로 대하는 것이다. 만약, 한 인간이 다른 상대에게 고통을 줄 경우, 피해를 당한 상대가 대항하지 않고 참는다고 하여 그것이 선이 되어 참는 것이 아니다. 대항하여 고통을 돌려주든, 참는 고통의 기운이 가해자에게 전달되어 고통을 주든, 악에 대한 악의 보상을 분명히 받게 되며, 악을 행한 인간은 자신의 악행이 운명적 악행으로 남게 되고, 피해를 입은 당사자는 그것을 용서하고 잊을 수 있어 운명으로부터 스스로 선을 이룰 수 있을 뿐이다.

 

땅의 이치에 따른 삶을 이루고 있는 인간세상은 항시 선과 악이 끊임없이 오가며, 그 자체를 멈추게 할 수는 없다. 이러한 세상에서 인간이 악을 극복하고 선을 지켜 인간의 존재론적 자아의 영혼을 밝게 이루기 위해서는 권선징악(勸善懲惡)의 절대적 진리가 자기자신으로부터 인간세상까지 실천적 삶이 되게 하여야 한다.

   그러한즉, 인간 개개인이 권선징악을 정신에 심어 스스로 밝음을 지키고 이룰 수 있는 실천하는 삶이 되도록 하여야 하며, 사(死)의 종교에서 이러한 진리를 왜곡하지 못하게 하고, 그리하여 인간세상에 악이 판을 치지 못하게 하여야 한다. 그러한 실천적인 삶은 진선미를 지키고 탐진치를 제거하는 인간세상이 되게 하며, 또한 그러한 인간세상이 되어야 인간은 스스로 권선징악의 삶에서,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존재의 목적과 행복한 현재의 삶을 이룰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