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치유19) 조화로운 실상의 삶

소검2014.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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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화로운 실상의 삶

 

인간이라는 생명체로서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짧은 생애에서 우리는 그것을 이루어야 한다. 우리는 과연 하느님의 열매인 “사람”이 되기 위한 삶을 살고 있는가? 인간은 종종 무거운 삶의 짐에서 신에게 도움을 청한다. 하지만 신은 나의 외부에 있지 않고 나의 내부에 있다. 외부적 신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내부적 신을 섬겨야 하고, 외부의 신에게 도움을 청할 것이 아니라. 내부의 신에게 도움을 청해야 한다. 그것을 깨닫는다면 삶은 한결 가벼워질 것이다.

 

실상에 따른 욕망적 삶은 진실한 삶이 되니, 인간의 삶이 실상에 따른 진실한 삶이며, 인간의 실상은 정신과 육체이다. 또한 정신과 육체는 정신이 실상이 되며, 육체가 허상이 된다. 그러나 허상에 따른 욕망적 삶은 허망한 삶이 되니, 인간의 삶으로부터 진실함을 벗어나 신에 의지하는 삶이 허상에 따른 허망한 삶이며, 신에게 의지하는 허상의 삶은 정신이 허상이 되고, 육체가 실상이 된다.

   정신은 내면으로 향할 때 실상을 이루게 되고, 외면으로 향할 때 허상을 이루게 되며, 육체는 외면으로 향할 때 실상을 이루게 되고, 내면으로 향할 때 허상을 이루게 된다. 영혼은 인간의 정신에서도 가장 순수한 정신세계이니, 영혼을 내면에서 찾아 이루는 것이 실상의 영혼을 이루게 되고, 외면에서 찾아 이루려는 것은 영혼의 죽음이 된다.

 

인간이 인간의 삶을 부정하고 신의 삶을 원하는 것은 신이 신의 삶을 부정하고 인간의 삶을 원하는 것과 같은 것인즉, 신의 삶에서는 인간의 삶을 원하고, 인간의 삶에서는 신의 삶을 원한다면, 어느 삶에서도 실상을 이루지 못하고 허상으로 끝나게 되니, 이것은 순리에 어긋나는 삶이다. 인간의 삶에서 진실한 인간의 삶을 이루고, 신의 삶에서 진실한 신의 삶을 이루는 것이 순리인즉, 인간의 현재론적 행복한 삶과 존재론적 목적에 따른 보람된 삶이 순리적인 삶이다. 이러한 인간의 순리적인 삶은 자연적인 순리이니, 그러한 삶은 정신이나 물질의 풍요로움에 행복한 삶을 이루게 되며, 신에게 의지하는 삶은 인간의 순리에서 벗어나는 삶으로, 그러한 삶은 자연의 순리를 거역하는 순리인지라, 정신이나 물질의 결핍에 따라 불행한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행복하게 살려면, 인간적인 욕망에 따른 정당한 삶에서 자신과 상대에게 풍요로운 삶이 되도록 노력하면 될 것이고, 불행하게 살려면, 인간적인 욕망을 버리고 신에게만 매달리면 될 것이다. 인간의 삶은 정신과 육체가 조화를 이루는 삶이 진리적 삶이며, 정신과 육체가 부조화를 이루는 삶이 거짓된 삶이다. 그리하여 인간의 삶의 행복은 정신과 육체의 조화에서 이루어지며, 인간의 삶이 불행하게 되는 것은 정신과 육체가 부조화를 이루게 하는 신에게 의지하는 삶에서 이루어진다.

 

실상원인의 실상

실상이 있었기에 실상을 이루었고, 실상을 이루어야 실상이 된다. 보이는 원인이 있는데, 보이는 원인을 무시하고, 보이는 원인을 허상이라고 한다면 그 결과 또한 허상이 된다. 원인은 유한하고 결과는 무한하다. 무한의 결과에서 유한을 이루는 것은 원인에서 유한을 이루어야 무한에서 유한이 되는 것이다. 보이는 원인이 있기에 믿는 것이며, 보이는 원인이 있기에 그 근원을 믿는 것이며, 보이는 원인이 있기에 보이지 않는 결과를 믿는 것이다. 보이는 원인을 믿지 않는다면, 그 근원을 믿지 않는 것이고, 보이는 원인을 믿지 않는다면 보이지 않는 결과를 믿지 않는 것이 된다.

 

인간이 사물에 대하여 인식하는 것은 이성적인 방식과 감성적인 방식이 있다. 이성적인 방식은 시간과 공간의 영역에 존재하는 사물을, 철학적 이치에 따른 존재의 근원과 과학적 사고에 따른 합리적 근거로 인식하는 것이며, 감성적인 방식은 시간과 공간의 영역을 배재하고, 현재적 상태를 인식하지 않으며, 사물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그려 그것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전자는 정신에 의한 것이며, 후자는 마음에 의한 것이다. 그리하여 신의 세계에 대한 인식을 정신에 의하지 않고 마음으로 인식하게 되면 허상을 그리게 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창조의 역사와 진화의 역사를 통하여 이 땅에 만물을 창조하시고, 수많은 생명체의 생성과 소멸을 거쳐 인간이라는 존재를 창조하시었다. 또한 이 땅의 풍요로움에서 인간을 영적진보와 생물학적 진화를 거쳐 현재의 인간이 존재하게 하셨다. 이러한 인간이기에, 이 땅의 풍요로움에서 행복한 삶을 이루는 것은 하느님의 창조역사에 보답하는 것이며, 이 땅의 삶에서 존재를 이루어 하느님의 세계로 가는 것이 하느님께 효도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땅의 만물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고, 이 땅의 삶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무엇이 소중하다는 말인가? 하느님께서 창조의 역사를 통하여 생명체의 꽃인 인간을 이루셨고, 이 땅의 풍요로움에서 행복한 삶과 함께 존재론적 자아를 이룰 수 있도록 펼쳐 놓으신 세계를, 그저 한갓 물질에 지나지 않는 세계이며, 한갓 일개의 생명체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여 만물과 인간의 현재적 삶을 무시한다면, 하느님께선 왜 이러한 쓸모없는 세상을 창조하셨느냐는 말로 우스갯거리로 만드는 것과 같으니, 도대체 이러한 머리는 어디에서 나온 돌 같은 머린가? 인간이 인간인 것은 정신이다. 그런데 인간의 정신으로 이러한 발상적 생각을 한다는 것은 하느님의 치욕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