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그 본능으로부터 사랑을 원하고 사랑을 찾지만, 오히려 그 사랑으로 인하여 고독과 외로운 인생이 되기도 하고, 삶을 보람된 사랑의 여정이 되도록 해야 하지만, 사랑이 오히려 고통이 되어 인생을 허망하게 만들기도 한다. 인간의 본능으로부터 순수하게 우러나오는 사랑이라면, 그러한 사랑의 삶으로부터 고통스럽고 외로운 인생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왜 인간의 고귀한 성품으로부터 나오는 사랑이, 그 사랑으로 인하여 고통의 삶을 이루어야 하는가? 만약, 고통의 삶을 이루게 하는 사랑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 인간의 순수한 본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무엇인가 왜곡되어 나온 사랑일 것이다.
➀ 주체적 사랑이 아니라 노예적 사랑을 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사랑을 찾아 이루지 못하고, 사랑을 하라고 지시하면 사랑하고 사랑을 하지 말라고 하면 사랑하지 않는 그러한 노예적 사랑을 하기 때문이며, 그러한 노예적 사랑의 기쁨은 일종의 중독성 사랑이 되어, 주면 기뻐하고 안 주면 싫어하는 그러한 사랑이기 때문이다.
➁ 상대를 사랑하는 상대적 사랑이 아니라, 자기만족적 사랑을 하기 때문이다. 상대를 진정 사랑하였을 때, 그것이 스스로 자신으로부터 사랑이 이루어져, 또한 상대로부터 사랑을 받게 되는 것을 모르고, 자기만족을 위한 사랑을 하여 자신에게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게 하면서도, 사랑하고 있다는 착각과 사랑받고 있다는 만족감에 빠지니, 그러한 사랑은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몰지각한 사랑이다.
➂ 어떠한 대상에게 스스로 사랑이 일어나 사랑하는 동기적 사랑이 아니라,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강제성에 의하여 사랑하지 않으면 자신이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생각해서 하는 사랑이다. 이러한 사랑은 기회주의적 사랑이 되어 사랑할 기회를 찾으니, 사랑을 찾기 전까지는 계속 사랑을 찾는 부족한 사랑이 되어 영혼의 빛을 잃고 인생이 고통스럽게 된다.
➃ 인간이면 누구나 갖추고 있는 보편적인 사랑인 것을, 자신만이 사랑이 있고 자신만이 사랑할 줄 안다고 하는 독재적인 사랑을 한다. 이러한 사랑은 다른 인간들은 사랑을 할 줄도 모르고 사랑 자체도 없으며, 사랑한다 하여도 진실한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자신의 독재적 사랑 이외에는 사랑을 인정하지 않는 사랑이니, 이러한 독재적 사랑이 보편적인 삶을 잃고 괴로운 인생이 되는 것이다.
➄ 사랑을 하면 아름답고 편안해야 하지만 사랑에 너무 집착하다보면 사랑이 오히려 미움이 되고 만다. 집착적 사랑은 일종의 조건적 사랑이 되어 사랑을 주었는데 받아주지 않으면 저주하는 저주적 사랑이 되고, 사랑을 주었는데 되돌려 주지 않으면 미워하는 그런 조건적 사랑이 되니, 이러한 사랑은 항시 편안할 수 없는 불행한 사랑이 된다.
➅ 정신적 사랑이 아니라 육체적 사랑에만 빠지면 인간의 본성은 아예 없고 짐승적 사랑만이 남는다. 그리하여 인간이 인간을 대하매 인간을 짐승 취급하는 사랑이 되어, 그러한 사랑에서 인간의 본질에 따른 인격은 타락하고 만다. 인격이 타락하는 사랑에서 어떠한 행복을 찾을 것이며, 어떠한 존재의 결실을 이룰 것인가? 그 인생이 허망하게 끝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인 것이다.
➆ 사랑을 준다는 것이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사랑은 순수한 사랑이 되지 않으니, 오늘의 사랑이 내일은 미움으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며, 그리하여 강요적 사랑은 상대를 괴롭히기 위한 사랑인 것으로, 그것은 사랑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서로간의 고통만을 남기는 사랑이 되게 된다.
➇ 사랑은 상대와 함께 화합을 이루어 아름다운 인생이 되게 하는 상보적 사랑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상보성이 아니라 양면성을 띠어 거기에서 타협적 화합을 찾으니, 자신의 사랑의 조건에 맞추어 맞으면 무조건 사랑하고, 자신의 사랑의 조건에 맞지 않으면 무조건 미워하는 사랑인즉, 그것은 단순무지한 사랑으로, 단순하고 외로운 인생이 되게 된다.
➈ 사랑을 한다면 안정된 삶이 이루어지는 안정된 사랑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오히려 불안정한 삶이 되는 불안정한 사랑이 되는 것은, 사랑을 물질로 취급하여 뺏고 뺏기는 사랑이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내가 사랑하지 않으면 누군가가 사랑을 뺏어갈 것이라 생각하며, 자신의 사랑을 확인하지 못하면 누군가가 뺏어 갔을 것이라 생각하여, 신경질적으로 변하게 되는 초조불안적 사랑의 인생을 이루게 된다.
➉ 주체적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의존적 사랑을 하기 때문이니, 주체적 사랑은 사랑을 주거나 받으면 그 자체에 만족하지만, 의존적 사랑은 사랑을 주고도 만족을 느끼지 못하고 사랑을 받아도 만족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한 의존적 사랑은 상대에 의하여 사랑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항시 “사랑해”라는 말을 받아야 하고 항시 주어야 한다. 그리하여 주체적 사랑은 진실된 사랑이 되어 사랑하는 만큼 쌓이는 사랑이 되지만, 의존적 사랑은 거짓된 사랑이 되어 사랑이 쌓이지 않는 허무한 사랑이 되며, 또한 그러한 허무한 사랑은 자신을 스스로 사랑을 이룰 수 없는 존재로 생각하여, 스스로 사랑을 찾아 이루려는 것을 포기하는 포기적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것들이 인간세상에서 인간과 삶을 고통스럽게 하는 사랑인즉, 사랑에 목마른 인간은 누가 사랑을 주어야만이 기뻐하고, 누가 기쁜 것이라고 해야 사랑을 하며, 사랑하라고 말해야만 사랑하고, 사랑할 것을 정해주어야 정해진 것에만 사랑을 하며, 자신이 스스로 마음에 평화를 이루는 사랑이 아니라 누구에게 꼭 의존하는 것에서만이 평화를 느끼는 사랑을 하고, 의존적 사랑에 중독되어 누구에게 사랑받지 못한다는 것은 곧 미움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그런 사랑을 하며,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사랑속에 있으니 자신은 항시 사랑하고 있다는 착각속의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랑으로부터 인간의 삶은 영혼을 잃는 인생이 되지만, 이러한 모든 왜곡된 사랑은 그 심리적 근저에 “시기질투”가 있기 때문이다.
사랑도 영혼도 없는...
사랑이 없는 종교이기에 인간세상을 지옥의 세상으로 만들고, 그리하여 있지도 않은 지옥을 사악한 인간이 사악한 구상을 하여 인간에게 지옥의 공포를 주니, 영혼을 잃고 사악한 귀신에 쇄뇌된 인간은 그 지옥의 공포로부터 스스로 벗어나기를 두려워한다. 사랑이 없는 종교이기에 인간으로부터 희망을 상실하게 하고, 귀신에게 비열한 무릎 꿇고 절망적인 기도를 하게 만드니, 귀신은 그 기도를 먹고 인간세상을 더욱 암울한 세상으로 만들며, 암울한 세상이 될수록 영혼을 상실한 인간은 더욱 처절하게 귀신에 매달린다.
사랑이 없는 종교가 사랑을 말하고, 영혼을 잃은 인간이 영혼을 찾으려고 한다. 인간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인간은 하느님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며, 인간세상으로부터 사랑받지 못하는 인간은 하느님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니, 그 돌아갈 곳이 귀신의 질곡이다. 사랑이 없는 종교이기에 인간의 본성에 내재한 보편적인 사랑을 잃게 하고, 보편적인 사랑을 잃은 인간은 특수적인 사랑으로 사랑을 각색하여 사랑을 구걸한다. 그런 종교에서 사랑을 말하지만 뒤에서는 폭력을 조장하고, 사랑을 베푼다고 하지만 야비하게 사랑을 베푸니, 그 갖고 있는 사랑이 야비한 폭력의 사랑이기 때문이며, 가식의 사랑에는 영혼이 썩는다는 것을 모르는 인간은 가식의 사랑을 오히려 자랑한다.
사랑이 없는 종교이기에 인간의 삶을 절망과 회의에 빠트리고 달콤한 사랑을 속삭인다. 그러면서 인간이 절망과 회의에 빠지는 것은, 근본적인 성품으로부터 죄인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그리하여 인간이라는 존재를 회개하는 미움의 존재로 만들어 인간과 세상을 적대적으로 만들며, 그렇게 근본적인 인간의 심성에 죄인의 미움을 심고, 심어진 미움의 성품에 따라 미움의 인생을 이루게 하니, 미움의 색채는 귀신이 가장 좋아하는 색채적 식량이다.
사랑이 없는 종교이기에 부부 간의 사랑이나,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도 시기질투하여 부부 간을 이간시키고, 부모와 자식 간은 원수지간을 만드니, 그러면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하지만, 근본적으로 잃어버린 사랑을 어떻게 이루겠는가? 자기자신에게서 사랑이 있어야 사랑을 받고 사랑을 베풀 수 있다. 자기자신에게 진정 사랑이 있는지 스스로 돌아보아야 할 것이니, 사랑이 없다면 그것은 먼저 영혼이 썩었다는 것이며, 사랑이 없다면 그것은 지금, 귀신의 노예적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다.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밝고 깨끗한 성품을 이루지 못하면, 그 마음의 색채에 드러나고, 그 소리의 파장에 드러나며, 그 정신의 빛에 드러나니, 하느님은 밝음을 취하여 밝음의 인생이 되게 하시고, 귀신은 어둠을 취하여 어둠의 인생으로 끌고 들어간다.
가정치유16) 영혼을 잃는 사랑
영혼을 잃는 사랑
인간은 그 본능으로부터 사랑을 원하고 사랑을 찾지만, 오히려 그 사랑으로 인하여 고독과 외로운 인생이 되기도 하고, 삶을 보람된 사랑의 여정이 되도록 해야 하지만, 사랑이 오히려 고통이 되어 인생을 허망하게 만들기도 한다. 인간의 본능으로부터 순수하게 우러나오는 사랑이라면, 그러한 사랑의 삶으로부터 고통스럽고 외로운 인생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왜 인간의 고귀한 성품으로부터 나오는 사랑이, 그 사랑으로 인하여 고통의 삶을 이루어야 하는가? 만약, 고통의 삶을 이루게 하는 사랑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 인간의 순수한 본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무엇인가 왜곡되어 나온 사랑일 것이다.
➀ 주체적 사랑이 아니라 노예적 사랑을 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사랑을 찾아 이루지 못하고, 사랑을 하라고 지시하면 사랑하고 사랑을 하지 말라고 하면 사랑하지 않는 그러한 노예적 사랑을 하기 때문이며, 그러한 노예적 사랑의 기쁨은 일종의 중독성 사랑이 되어, 주면 기뻐하고 안 주면 싫어하는 그러한 사랑이기 때문이다.
➁ 상대를 사랑하는 상대적 사랑이 아니라, 자기만족적 사랑을 하기 때문이다. 상대를 진정 사랑하였을 때, 그것이 스스로 자신으로부터 사랑이 이루어져, 또한 상대로부터 사랑을 받게 되는 것을 모르고, 자기만족을 위한 사랑을 하여 자신에게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게 하면서도, 사랑하고 있다는 착각과 사랑받고 있다는 만족감에 빠지니, 그러한 사랑은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몰지각한 사랑이다.
➂ 어떠한 대상에게 스스로 사랑이 일어나 사랑하는 동기적 사랑이 아니라,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강제성에 의하여 사랑하지 않으면 자신이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생각해서 하는 사랑이다. 이러한 사랑은 기회주의적 사랑이 되어 사랑할 기회를 찾으니, 사랑을 찾기 전까지는 계속 사랑을 찾는 부족한 사랑이 되어 영혼의 빛을 잃고 인생이 고통스럽게 된다.
➃ 인간이면 누구나 갖추고 있는 보편적인 사랑인 것을, 자신만이 사랑이 있고 자신만이 사랑할 줄 안다고 하는 독재적인 사랑을 한다. 이러한 사랑은 다른 인간들은 사랑을 할 줄도 모르고 사랑 자체도 없으며, 사랑한다 하여도 진실한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자신의 독재적 사랑 이외에는 사랑을 인정하지 않는 사랑이니, 이러한 독재적 사랑이 보편적인 삶을 잃고 괴로운 인생이 되는 것이다.
➄ 사랑을 하면 아름답고 편안해야 하지만 사랑에 너무 집착하다보면 사랑이 오히려 미움이 되고 만다. 집착적 사랑은 일종의 조건적 사랑이 되어 사랑을 주었는데 받아주지 않으면 저주하는 저주적 사랑이 되고, 사랑을 주었는데 되돌려 주지 않으면 미워하는 그런 조건적 사랑이 되니, 이러한 사랑은 항시 편안할 수 없는 불행한 사랑이 된다.
➅ 정신적 사랑이 아니라 육체적 사랑에만 빠지면 인간의 본성은 아예 없고 짐승적 사랑만이 남는다. 그리하여 인간이 인간을 대하매 인간을 짐승 취급하는 사랑이 되어, 그러한 사랑에서 인간의 본질에 따른 인격은 타락하고 만다. 인격이 타락하는 사랑에서 어떠한 행복을 찾을 것이며, 어떠한 존재의 결실을 이룰 것인가? 그 인생이 허망하게 끝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인 것이다.
➆ 사랑을 준다는 것이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사랑은 순수한 사랑이 되지 않으니, 오늘의 사랑이 내일은 미움으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며, 그리하여 강요적 사랑은 상대를 괴롭히기 위한 사랑인 것으로, 그것은 사랑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서로간의 고통만을 남기는 사랑이 되게 된다.
➇ 사랑은 상대와 함께 화합을 이루어 아름다운 인생이 되게 하는 상보적 사랑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상보성이 아니라 양면성을 띠어 거기에서 타협적 화합을 찾으니, 자신의 사랑의 조건에 맞추어 맞으면 무조건 사랑하고, 자신의 사랑의 조건에 맞지 않으면 무조건 미워하는 사랑인즉, 그것은 단순무지한 사랑으로, 단순하고 외로운 인생이 되게 된다.
➈ 사랑을 한다면 안정된 삶이 이루어지는 안정된 사랑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오히려 불안정한 삶이 되는 불안정한 사랑이 되는 것은, 사랑을 물질로 취급하여 뺏고 뺏기는 사랑이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내가 사랑하지 않으면 누군가가 사랑을 뺏어갈 것이라 생각하며, 자신의 사랑을 확인하지 못하면 누군가가 뺏어 갔을 것이라 생각하여, 신경질적으로 변하게 되는 초조불안적 사랑의 인생을 이루게 된다.
➉ 주체적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의존적 사랑을 하기 때문이니, 주체적 사랑은 사랑을 주거나 받으면 그 자체에 만족하지만, 의존적 사랑은 사랑을 주고도 만족을 느끼지 못하고 사랑을 받아도 만족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한 의존적 사랑은 상대에 의하여 사랑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항시 “사랑해”라는 말을 받아야 하고 항시 주어야 한다. 그리하여 주체적 사랑은 진실된 사랑이 되어 사랑하는 만큼 쌓이는 사랑이 되지만, 의존적 사랑은 거짓된 사랑이 되어 사랑이 쌓이지 않는 허무한 사랑이 되며, 또한 그러한 허무한 사랑은 자신을 스스로 사랑을 이룰 수 없는 존재로 생각하여, 스스로 사랑을 찾아 이루려는 것을 포기하는 포기적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것들이 인간세상에서 인간과 삶을 고통스럽게 하는 사랑인즉, 사랑에 목마른 인간은 누가 사랑을 주어야만이 기뻐하고, 누가 기쁜 것이라고 해야 사랑을 하며, 사랑하라고 말해야만 사랑하고, 사랑할 것을 정해주어야 정해진 것에만 사랑을 하며, 자신이 스스로 마음에 평화를 이루는 사랑이 아니라 누구에게 꼭 의존하는 것에서만이 평화를 느끼는 사랑을 하고, 의존적 사랑에 중독되어 누구에게 사랑받지 못한다는 것은 곧 미움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그런 사랑을 하며,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사랑속에 있으니 자신은 항시 사랑하고 있다는 착각속의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랑으로부터 인간의 삶은 영혼을 잃는 인생이 되지만, 이러한 모든 왜곡된 사랑은 그 심리적 근저에 “시기질투”가 있기 때문이다.
사랑도 영혼도 없는...
사랑이 없는 종교이기에 인간세상을 지옥의 세상으로 만들고, 그리하여 있지도 않은 지옥을 사악한 인간이 사악한 구상을 하여 인간에게 지옥의 공포를 주니, 영혼을 잃고 사악한 귀신에 쇄뇌된 인간은 그 지옥의 공포로부터 스스로 벗어나기를 두려워한다. 사랑이 없는 종교이기에 인간으로부터 희망을 상실하게 하고, 귀신에게 비열한 무릎 꿇고 절망적인 기도를 하게 만드니, 귀신은 그 기도를 먹고 인간세상을 더욱 암울한 세상으로 만들며, 암울한 세상이 될수록 영혼을 상실한 인간은 더욱 처절하게 귀신에 매달린다.
사랑이 없는 종교가 사랑을 말하고, 영혼을 잃은 인간이 영혼을 찾으려고 한다. 인간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인간은 하느님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며, 인간세상으로부터 사랑받지 못하는 인간은 하느님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니, 그 돌아갈 곳이 귀신의 질곡이다. 사랑이 없는 종교이기에 인간의 본성에 내재한 보편적인 사랑을 잃게 하고, 보편적인 사랑을 잃은 인간은 특수적인 사랑으로 사랑을 각색하여 사랑을 구걸한다. 그런 종교에서 사랑을 말하지만 뒤에서는 폭력을 조장하고, 사랑을 베푼다고 하지만 야비하게 사랑을 베푸니, 그 갖고 있는 사랑이 야비한 폭력의 사랑이기 때문이며, 가식의 사랑에는 영혼이 썩는다는 것을 모르는 인간은 가식의 사랑을 오히려 자랑한다.
사랑이 없는 종교이기에 인간의 삶을 절망과 회의에 빠트리고 달콤한 사랑을 속삭인다. 그러면서 인간이 절망과 회의에 빠지는 것은, 근본적인 성품으로부터 죄인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그리하여 인간이라는 존재를 회개하는 미움의 존재로 만들어 인간과 세상을 적대적으로 만들며, 그렇게 근본적인 인간의 심성에 죄인의 미움을 심고, 심어진 미움의 성품에 따라 미움의 인생을 이루게 하니, 미움의 색채는 귀신이 가장 좋아하는 색채적 식량이다.
사랑이 없는 종교이기에 부부 간의 사랑이나,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도 시기질투하여 부부 간을 이간시키고, 부모와 자식 간은 원수지간을 만드니, 그러면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하지만, 근본적으로 잃어버린 사랑을 어떻게 이루겠는가? 자기자신에게서 사랑이 있어야 사랑을 받고 사랑을 베풀 수 있다. 자기자신에게 진정 사랑이 있는지 스스로 돌아보아야 할 것이니, 사랑이 없다면 그것은 먼저 영혼이 썩었다는 것이며, 사랑이 없다면 그것은 지금, 귀신의 노예적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다.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밝고 깨끗한 성품을 이루지 못하면, 그 마음의 색채에 드러나고, 그 소리의 파장에 드러나며, 그 정신의 빛에 드러나니, 하느님은 밝음을 취하여 밝음의 인생이 되게 하시고, 귀신은 어둠을 취하여 어둠의 인생으로 끌고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