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식의 식성은 존재론적 영혼을 밝고 안정되게 하며, 육식의 식성은 현재론적 삶을 밝고 강하게 한다. 곡식은 뼈를 튼튼하게 하고, 육식은 힘줄을 튼튼하게 하니, 뼈가 튼튼해야 힘줄의 강함을 유지할 수 있고, 힘줄이 튼튼해야 뼈가 튼튼함을 유지할 수 있다. 곡식은 어떠한 곡식도 인간의 음식으로 가능하지만, 특히 쌀, 보리, 콩, 수수, 팥 등의 오곡은 곡식 중에서 가장 밝고 강한 기운을 갖고 있으며, 육식은 어떠한 육식도 인간의 음식으로 가능하지만, 그러나 개나 고양이 등과 같은 인간의 삶의 환경에 밀접한 동물일수록, 그리고 야생에서 자유롭게 생활하던 동물로 육식을 하게 되면, 그러한 동물들이 잔인하게 죽을 때의 사기가 육식을 통하여 들어가게 되고, 그러한 음식을 섭취하게 되면 사기(邪氣)로 인하여 그 운명에 불행한 일을 당하게 된다.
그 외의 육식에도 사기가 들어가 있지만, 인간이 소화하듯 다 소화하여 기운을 상하게 하지 않고 육체적인 삶을 건강하게 이룰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기운이 약하여 사기를 소화하지 못하면 피해를 입게 되며, 특히 익히지 않은 생식에 의한 육식은 그 사기가 더욱 강하니 조심해야 한다.
비난의 식성
인간의 삶을 죄책감에 의한 삶이 되도록 하는 방법 중에 하나는, 육식의 식성에 대하여 연약한 동물을 살생하는 짓이라는 것을 강제적이고 계속적으로 인식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육식을 하는 것이 동물을 잔인하게 살생하는 비이성적인 짓이라는 것과, 인간 또한 동물의 한 종이라는 주장과 함께 동종에 대한 비열한 살생행위라고 말하여, 음식을 먹으면서 죄책감을 함께 먹도록 하는 것이다.
육식을 비방하는 인간은 진실로 동물을 사랑하기 때문에 비방하는 것인가? 아니면 동물 중에 특별히 하나의 동물을 애완용으로 키우다보니 동물에 대한 애착이 강해져서 그런 것인가? 그렇게 하여 동물을 살생하는 것은 인간을 살생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 말하면서, 동물을 살생하는 인간을 살상해도 된다는 인간은 진실로 동물을 사랑하기 때문인가? 동물은 동물이기 때문에 육식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인간이 육식을 하는 것은 인간이기 때문에, 육식을 하는 인간은 살인자와 같은 인간이라 살생을 해도 된다는 말인가?
인간을 동물이라고 생각하는 인간이, 음식으로서 먹는 육식을 가지고, 인간을 육식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육식을 죄라고 하는 인간은, 모든 인간으로 하여금 죄인으로 만들어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기위함이다. 인간이 육식을 하는 것은 자연의 이치에 따른 것이다. 육식을 비방하고 공격하는 것은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는 것이며, 그렇게 하여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는 말로서 인간이 갖지 않아도 될 죄책감을 스스로 짊어져 불행한 삶을 살게 만든다.
자기 앞에 있는 음식이나 감사하게 생각하고 먹을 것이지, 남이 먹는 것을 가지고 왈가불가하는 인간은 가장 치졸한 인간인즉, 그렇게 하여 음식을 가지고 죄책감이 들게 하려는 인간은, 그 영혼이 죄책감에 빠진 인간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러한 인간은 그 영혼이 곧 타락하기 직전의 인간으로서, 존재론적 목적이 실패하게 될 것이며, 먹을 음식이 지나치게 풍부하여 불평을 늘어놓는 것이니, 그 불평에 의하여 음식이 빈약하도록 삶이 이루어지며, 또한 먹은 음식이 변질되어 질병을 일으키게 된다.
인간이 육식을 하는 것은 시대마다, 또는 환경적 지역마다 다르니, 그에 따라 가릴 것은 가려야 하겠지만, 육식을 섭취하는 그 자체를 놓고 비난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필요없는 죄책감을 갖게 하는 것은, 인간세상이 불행한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려는 사악한 인간의 말인즉, 다른 외부적인 것의 이유로 인간을 해치는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며, 어떠한 인간도 외부적인 것의 이유로 인간을 공격하고 비난할 자격이 없다.
죄책감의 육식
인간세상을 죄인의 세상으로 만들려는 사악한 인간들이,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인 음식을 가지고 죄책감을 갖게 한다. 특히, 육식을 통하여, 먹는 음식에 죄책감을 집어넣고, 죄인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한 인간은, 인간을 악의 근원에 두어 모든 인간을 죄인으로 만들고, 또한 인간 삶 모든 것에서 인간이 피할 수 없는 것을 찾아 그것에 죄책감을 느끼게 한다.
그렇게 하여 때로는 인간을 살해하는 것이 짐승을 살생하는 정도로 죄를 낮추게 되고, 짐승을 살생하는 것이 인간을 살해하는 것 이상으로 높이게 된다. 그러한 인간이 원하는 인간세상은 짐승의 세상으로 퇴보하기를 원하는 인간이며, 인간이라는 존재를 짐승의 차원으로 낮추어 묶어 두려는 인간이다. 그렇게 인류 자체를 죄악의 역사로 만들기 위하여, 온갖 것에서 인간을 죄인으로 만드는 그러한 인간은, 인류 자체를 부정하는 인간이며, 인간의 삶 자체를 부정하는 인간이니,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짓인 것이다.
짐승을 살생했다고 인간을 죄인 취급하여 저주하면서 짐승을 사랑하라고 말한다면, 그런 인간의 사랑은 짐승만을 위한 사랑이니 인간이 아닌 것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인간과 짐승을 같은 차원에서 다루어서는 안 되며, 육식을 가지고 죄책감을 느끼게 하여 인간의 심성에서 죄의식을 벗지 못하게 하는 짓을 멈추어야 한다. 인간의 위치는 신과 짐승의 중간이 아니라. 신과 하느님의 중간에 위치한 존재임을 알고, 짐승 같은 짓으로 인간이라는 존재를 부정하게 만들지 말라.
가정치유14) 식성에 의한 인간의 삶
식성에 의한 인간의 삶
곡식의 식성은 존재론적 영혼을 밝고 안정되게 하며, 육식의 식성은 현재론적 삶을 밝고 강하게 한다. 곡식은 뼈를 튼튼하게 하고, 육식은 힘줄을 튼튼하게 하니, 뼈가 튼튼해야 힘줄의 강함을 유지할 수 있고, 힘줄이 튼튼해야 뼈가 튼튼함을 유지할 수 있다. 곡식은 어떠한 곡식도 인간의 음식으로 가능하지만, 특히 쌀, 보리, 콩, 수수, 팥 등의 오곡은 곡식 중에서 가장 밝고 강한 기운을 갖고 있으며, 육식은 어떠한 육식도 인간의 음식으로 가능하지만, 그러나 개나 고양이 등과 같은 인간의 삶의 환경에 밀접한 동물일수록, 그리고 야생에서 자유롭게 생활하던 동물로 육식을 하게 되면, 그러한 동물들이 잔인하게 죽을 때의 사기가 육식을 통하여 들어가게 되고, 그러한 음식을 섭취하게 되면 사기(邪氣)로 인하여 그 운명에 불행한 일을 당하게 된다.
그 외의 육식에도 사기가 들어가 있지만, 인간이 소화하듯 다 소화하여 기운을 상하게 하지 않고 육체적인 삶을 건강하게 이룰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기운이 약하여 사기를 소화하지 못하면 피해를 입게 되며, 특히 익히지 않은 생식에 의한 육식은 그 사기가 더욱 강하니 조심해야 한다.
비난의 식성
인간의 삶을 죄책감에 의한 삶이 되도록 하는 방법 중에 하나는, 육식의 식성에 대하여 연약한 동물을 살생하는 짓이라는 것을 강제적이고 계속적으로 인식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육식을 하는 것이 동물을 잔인하게 살생하는 비이성적인 짓이라는 것과, 인간 또한 동물의 한 종이라는 주장과 함께 동종에 대한 비열한 살생행위라고 말하여, 음식을 먹으면서 죄책감을 함께 먹도록 하는 것이다.
육식을 비방하는 인간은 진실로 동물을 사랑하기 때문에 비방하는 것인가? 아니면 동물 중에 특별히 하나의 동물을 애완용으로 키우다보니 동물에 대한 애착이 강해져서 그런 것인가? 그렇게 하여 동물을 살생하는 것은 인간을 살생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 말하면서, 동물을 살생하는 인간을 살상해도 된다는 인간은 진실로 동물을 사랑하기 때문인가? 동물은 동물이기 때문에 육식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인간이 육식을 하는 것은 인간이기 때문에, 육식을 하는 인간은 살인자와 같은 인간이라 살생을 해도 된다는 말인가?
인간을 동물이라고 생각하는 인간이, 음식으로서 먹는 육식을 가지고, 인간을 육식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육식을 죄라고 하는 인간은, 모든 인간으로 하여금 죄인으로 만들어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기위함이다. 인간이 육식을 하는 것은 자연의 이치에 따른 것이다. 육식을 비방하고 공격하는 것은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는 것이며, 그렇게 하여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는 말로서 인간이 갖지 않아도 될 죄책감을 스스로 짊어져 불행한 삶을 살게 만든다.
자기 앞에 있는 음식이나 감사하게 생각하고 먹을 것이지, 남이 먹는 것을 가지고 왈가불가하는 인간은 가장 치졸한 인간인즉, 그렇게 하여 음식을 가지고 죄책감이 들게 하려는 인간은, 그 영혼이 죄책감에 빠진 인간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러한 인간은 그 영혼이 곧 타락하기 직전의 인간으로서, 존재론적 목적이 실패하게 될 것이며, 먹을 음식이 지나치게 풍부하여 불평을 늘어놓는 것이니, 그 불평에 의하여 음식이 빈약하도록 삶이 이루어지며, 또한 먹은 음식이 변질되어 질병을 일으키게 된다.
인간이 육식을 하는 것은 시대마다, 또는 환경적 지역마다 다르니, 그에 따라 가릴 것은 가려야 하겠지만, 육식을 섭취하는 그 자체를 놓고 비난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필요없는 죄책감을 갖게 하는 것은, 인간세상이 불행한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려는 사악한 인간의 말인즉, 다른 외부적인 것의 이유로 인간을 해치는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며, 어떠한 인간도 외부적인 것의 이유로 인간을 공격하고 비난할 자격이 없다.
죄책감의 육식
인간세상을 죄인의 세상으로 만들려는 사악한 인간들이,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인 음식을 가지고 죄책감을 갖게 한다. 특히, 육식을 통하여, 먹는 음식에 죄책감을 집어넣고, 죄인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한 인간은, 인간을 악의 근원에 두어 모든 인간을 죄인으로 만들고, 또한 인간 삶 모든 것에서 인간이 피할 수 없는 것을 찾아 그것에 죄책감을 느끼게 한다.
그렇게 하여 때로는 인간을 살해하는 것이 짐승을 살생하는 정도로 죄를 낮추게 되고, 짐승을 살생하는 것이 인간을 살해하는 것 이상으로 높이게 된다. 그러한 인간이 원하는 인간세상은 짐승의 세상으로 퇴보하기를 원하는 인간이며, 인간이라는 존재를 짐승의 차원으로 낮추어 묶어 두려는 인간이다. 그렇게 인류 자체를 죄악의 역사로 만들기 위하여, 온갖 것에서 인간을 죄인으로 만드는 그러한 인간은, 인류 자체를 부정하는 인간이며, 인간의 삶 자체를 부정하는 인간이니,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짓인 것이다.
짐승을 살생했다고 인간을 죄인 취급하여 저주하면서 짐승을 사랑하라고 말한다면, 그런 인간의 사랑은 짐승만을 위한 사랑이니 인간이 아닌 것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인간과 짐승을 같은 차원에서 다루어서는 안 되며, 육식을 가지고 죄책감을 느끼게 하여 인간의 심성에서 죄의식을 벗지 못하게 하는 짓을 멈추어야 한다. 인간의 위치는 신과 짐승의 중간이 아니라. 신과 하느님의 중간에 위치한 존재임을 알고, 짐승 같은 짓으로 인간이라는 존재를 부정하게 만들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