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치유13) 보편적 진리의 행복

소검2014.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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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 진리의 행복

 

모든 것에 보편적인 진리가 있는 것으로, 보편적인 진리에 맞는 삶을 이루어야 한다. 모든 것에는 씨가 있으니, 행복에는 행복의 씨가 있고, 불행에는 불행의 씨가 있는 것인즉, 행복과 불행의 결과를 논하지 말고, 그 씨를 찾아 바르게 심어야 한다. 모든 것은 행복에 있으니, 행복한 삶에서 영혼을 밝게 이룰 수 있으며, 영혼을 밝게 이루는 것에서 존재론적 자아가 이루어지는 것인즉, 행복한 삶을 가까이 하고 불행한 삶을 멀리해야 한다.

   모든 것에는 탄생에서 존재하는 것이니, 영혼이 탄생하여야 존재하게 되고, 영혼이 죽음에서 존재가 사라지는 것인즉, 머리 중심에 있는 영혼을 잘 다스려 탄생을 이루는 인생이 되어야 한다. 모든 것에는 뿌리가 있으니, 영혼의 뿌리가 있는 인생에서 존재론적 자아를 이루고, 영혼의 뿌리가 없는 인생에서 존재론적 자아를 잃게 되다. 모든 것은 생각에 있으니, 긍정적인 생각은 긍정적인 현실을 만들고, 부정적인 생각은 부정적인 현실을 만들게 되는 것인즉, 긍정적인 생각이 나와 상대를 이롭게 하고 부정적인 생각이 나와 상대를 해롭게 한다는 것을 알고 긍정을 실천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

 

모든 것은 정상적인 것에 있으니, 정상적인 삶에서 행복한 삶과 존재론적 자아를 이루게 되고, 비정상적인 삶에서 불행한 삶과 존재론적 자아를 잃게 된다. 모든 것은 간단한 것에 있으니, 간단한 것에서 진리를 찾고 간단한 것에서 삶을 찾아야 한다. 복잡한 것에 진리를 찾는 것은 요행을 바라기 때문이며, 복잡한 것에서 삶을 찾는 것은 혹시나 하는 불안감 때문이니, 간단한 것을 가까이 하고 복잡한 것을 멀리 해야 한다. 모든 것은 편안한 것에서 이루어지니, 편안한 가정에서 행복이 이루어지고, 불편한 가정에서 불행이 이루어진다.

   모든 것은 가까운 곳에 있으니, 가장 가까운 것일수록 소중하게 생각하고, 멀리 있는 것은 그 다음임을 알아야 한다. 가까운 것의 소중함을 모르면 어디에서도 소중함을 찾지 못한다. 모든 것은 선택에서 이루어지니, 밝은 것을 선택하면 인생이 밝아지고, 어두운 것을 선택하면 인생이 어두워진다. 모든 것은 넘치는 것에 있으니, 물질이 넘치는 것에서 현재론적 행복이 이루어지고, 정신이 넘치는 것에서 존재론적 자아가 이루어진다.

 

모든 것은 안에 있으니, 내 안에서 찾아야 하며, 내 안에서 이루어야 하는 것인즉, 내 밖에서 찾는 것은 실상이 아닌 거짓임을 알아야 하고, 그 끝이 허망함을 알아야 한다. 모든 것은 원하는 것에 있으니, 선을 원하면 선이 오고, 악을 원하면 악이 오게 된다, 그런즉 그 온 것을 보고 그 원인을 알아야 한다. 모든 것은 진실한 것에 있으니, 진실한 것에서 진실한 삶이 이루어지고, 거짓된 삶에서 거짓된 삶이 이루어지는 것인즉, 거짓이 침범하기 쉬운 세상에서 진실함을 지켜 인생의 승리자가 되어야 한다.

   모든 것에는 시작이 있으니, 시작을 하여야 결실을 바랄 수 있고, 시작을 하지 않고 결실을 바라는 것은 헛된 욕심에서 나온 것이다. 모든 것은 쉬운 것에 있으니, 쉬운 것부터 실천하고 나서 어려운 것을 찾아야 하는 것인즉, 인간의 삶은 쉬운 것에서 모든 것을 이루게 되며, 인간이 공연히 어렵게 만들고 나서 어렵다고 말하는 것이다. 모든 것은 삶에 있으니, 삶에서 모든 것을 찾아서 이루는 것이 실상이며, 죽음에서 찾는 것은 허상일 뿐임을 알고, 인생을 죽음에 두지 말고, 삶에 두어 행복한 삶과 함께 존재론적 자아를 이루어야 한다. 이러한 것이 보편적인 진리이며, 보편적인 진리는 하느님의 진리이니. 보편적인 삶의 길에 인간이 원하는 모든 것이 있음을 알라.

 

본능적인 기쁨의 영혼

인생이 기쁨이 되기 위해서는 기쁨이 될 수 있는 정신이 있어야 하고, 소리가 있어야 하고, 마음이 있어야 하고, 그에 따른 실천이 있어야 한다. 자신이 스스로 이러한 사상과 실천이 있고 나서, 기쁨과 슬픔을 구별하여 기쁨에 따라가야 인생이 기쁨이 되는 것이다. 인간의 삶이 그저 시련과 고통의 장이라 생각하고, 슬픔에 빠져 비애를 갖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당연히 인생은 시련과 고통의 장이 되리라.

 

인간의 기쁨에는, 주인정신에 의한 기쁨이 있고, 노예정신에 의한 기쁨이 있다. 주인정신에 의한 기쁨은 자신의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절대적인 기쁨이며, 노예정신에 의한 기쁨은 외부적인 요인에 지배를 받는 상대적인 기쁨이다. 그리하여 절대적인 기쁨은 자신으로부터 외부로 발산되는 기쁨이 되어, 자신에 의해서 자신과 주변의 삶이 모두 기쁨을 형성하는 삶이 되며, 외부적인 기쁨이나 슬픔에 의해서 자신에 기쁨이 흔들리지 않는다. 기쁨은 골짜기의 샘물과 같아서 언제나 부족함이 없는 영원한 기쁨이 된다. 그러나 상대적인 기쁨은 외부로부터 들어와야 형성되는 기쁨이 되어, 상대에 의해서 자신의 삶이 기쁨이 되거나 슬픔이 되며, 상대의 기쁨에서 자신의 기쁨을 찾고, 상대의 슬픔에서 슬픔에 떨어진다.

 

이러한 기쁨은 밑 빠진 독과 같아서 항시 목마른 갈증의 기쁨이 되니, 그 삶은 슬픔의 근본에서 갈증적인 기쁨을 요구하는 절망적인 삶이 되고, 주면 꼬리치고 주지 않으면 짖는 짐승과 같은 기쁨의 삶이 된다. 그러나 사탕은 달콤하지만 피를 탁하게 하는 것과 같이, 사탕 같은 기쁨은 달콤하지만 그 영혼을 탁하게 한다. 또한 사탕과 같은 달콤한 기쁨은 습관적인 중독이 되어, 그 영혼이 돌이킬 수 없는 슬픔의 나락으로 삶을 헤매게 되는 것이다. 인간에게 기쁨은 본능이다. 기쁨이 본능이 아니란다면 외부적인 요인에서 인위적으로 기쁨을 이루어야 하겠지만, 그것이 본능이기에 스스로 기쁨을 느끼게 되고, 끊임없이 기쁨을 원하는 인간의 삶이 되는 것인즉, 본능에 의한 만족은 자신의 중심에서 기쁨이 시작되어야 이룰 수 있게 된다.

 

바른 영혼의 삶

오늘하루 나의 정신에서 자아를 생각하였던가? 내 정신은 어디에 가 있었던가? 너무 현실의 삶에만 매달리다보니 자아에 대하여 너무 멀리한 것은 아닌가? 오늘하루 나의 소리는 어떠했는가? 소리를 더럽히지는 않았는가? 부정적인 소리는 내지는 않았는가? 남들을 화합시키는 상보적인 소리를 내었든가? 오늘하루 나의 마음은 어떠했는가? 무엇 때문에 즐거웠던가? 무엇 때문에 마음이 갈등을 느꼈던가? 아직 마음에 끌려다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오늘하루 나는 가정을 위해서 얼마나 충실했으며, 어떠한 선행을 실천하였든가? 집을 나서서 돌아오기까지 말 한마디라도 선행적인 일을 하였든가? 밝은 모습으로 집으로 돌아와 가족들과 함께 하루 일을 포함한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든가? 내 가정의 분위기는 밝은가 어두운가?

 

하루하루 자신의 정신과 소리와 마음을 잃지 않고 확인하며, 진보와 퇴보를 이룬 것에 대하여 스스로 점검을 하는 생활습관을 갖는다면, 그 영혼이 밝음을 이룰지언정 절대로 빛을 잃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하여 밝은 영혼의 뿌리를 갖추고, 사회의 한 인간으로써, 국가의 한 인간으로써, 인류의 한 인간으로써 자신이 할 일을 찾는 다면, 시간과 인연법이 맞는 때를 맞아 좀 더 넓은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인즉, 그렇게 자신의 존재를 잃지 않으며, 가정에 충실한 하루하루를 노력하는 삶이 진정한 바른 인간의 삶이다.

   그러나 밖의 일을 핑계로 또는, 사회의 어떤 일을 핑계로, 자아를 망각하고 가정을 등한시 하는 것은, 행복한 삶도 존재론적 자아도 모두 잃게 된다. 자아와 가정에 뿌리를 두는 삶에서 하느님의 길이 열리며, 자아를 망각하고 가정에 뿌리를 두지 못하는 삶은 귀신의 길로 떨어지게 된다. 허망한 것에 매달려 자신과 가정을 불행에 빠트리지 말고, 삶의 그 자리에서 행복을 이루고 존재를 이루는 것이 바른 인간의 삶이며, 그러한 삶에서 진정 영혼의 실체가 이루어지게 됨을 알라.

 

행복한 삶의 영혼

모든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버림을 받았을 때, 모든 희망이 사라지고 절망만이 존재할 때, 하고자했던 모든 욕망이 실패를 했을 때, 인생의 실망으로 인하여 모든 것에 회의감에 빠졌을 때, 병이 뼈속까지 스며들어 참기 힘든 고통과 함께할 때,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러한 죽음의 기운을 느끼게 하는 질문을 누가 자신에게 한다면 기분이 침울해 질 것이다. 이러한 일들을 인생에서 한두 번 정도 겪는 인간도 있을 것이며, 또한 심하게 겪지 않는 인간도 있을 것이다. 또한 이러한 일이 있더라도 스스로 털고 일어나 자신의 삶을 밝게 꾸려가는 인간도 있을 것이다.

   인간의 본질은 설사 이러한 일이 생긴다 하더라도 모든 것을 극복하고 밝음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그렇게 나약하게만은 창조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어떤 무엇이 인간을 그렇게 나약하게 만드는가? 만약 인간을 그렇게 나약하게 만든다면 왜 그래야 하며, 또한 그러한 존재는 무엇인가? 그러한 존재는 다름 아닌 귀신이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이러한 “죽음” 자체에 어떠한 정당성도 부당성도 논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정당하다고 해서 죽음이고, 부당하다고 해서 죽음이 안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며, 또한 인간은 인생을 통하여 크고 작은 삶의 고통을 겪는다. 이러한 고통 또한 “고통” 자체에 어떠한 정당성도 부당성도 논할 필요가 없다. 마찬가지로 고통이 정당하다고 해서 고통이 존재하고 고통이 부당하다고 해서 고통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통을 논한다는 것은 결국 그것을 회피하려는 것이겠지만, 그것이 회피한다고 회피되는 것이겠는가? 이러한 것에 정당성이나 부당성의 의미를 부여하여 현실탈피적 사고를 하게하고, 그 현실탈피를 다른 외부에 의존하려고하는 것은, 결국 인생이 죽음과 고통에 끌려가는 삶이 되고 만다. 이것은 귀신이 인간의 영혼을 타락시키기 위한 방법 중 하나이다.

 

정해진 사실을 정해지지 않은 사실인 것처럼 하고, 기정사실이 아닌 것을 기정사실인 것처럼 정하여 놓고, 그에 따른 현실탈피적 허상을 그리게 한다. 그렇게 하여 먼저, 기정사실이 아닌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인 인간은 고통의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고, 정해진 사실을 정해지지 않은 사실로 받아들인 인간은 허상의 인생을 살게 된다. 인간이라는 존재를 이렇게 만들어 놓고, 인간의 영혼의 고통을 귀신이 빛을 빨아먹으며 즐기는 것이다.

   거짓종교 안에서 귀신은 이렇게 실제적인 것을 가설처럼 만들고, 가설적인 것을 실제적인 것처럼 만들어 인간세상을 어둡게 하고 유유자적 존재를 이어간다. 인간의 삶에 삶과 죽음이 있지, 죽음에 삶과 죽음이 있지 않으며, 인간의 행복에 행복과 불행이 있지, 불행에 행복과 불행이 있는 것이 아니다. 죽음에서 인생의 삶과 죽음을 찾게 하고, 불행에서 인생의 행복과 불행을 찾게 하는 것이 거짓종교에서 하는 짓이다. 하지만, 삶과 죽음 사이에서 삶을 이루고, 행복과 불행 사이에서 행복을 이루어야 밝은 영혼을 이루어 하느님의 세계에 존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