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에게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아라. 편협적이고 허황된 가능성에 어린이의 무한한 가능성을 묶지 말라. 가르치는 자는 자신의 믿음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가르쳐야 한다. 자신도 확신하지 않으면서 그저 막연한 믿음만으로 진실인체 가르치는 것은 어린 영혼에게 크나큰 죄악을 저지르는 짓이다. 어린이에게 나무를 가르치는 것은 나무의 성품을 가르치는 것이 되고, 동물을 가르치는 것은 동물의 성품을 가르치는 것이 된다. 그러한즉, 자연에 대하여 가르칠 때는 이러한 것을 감안하여 가르쳐야 할 것이다.
어린이에게 죄의식을 심지 말라. 어릴 때 쇄뇌된 머리는 그 인생을 불구자로 만들 수 있다. 또한, 그것은 어린 영혼을 죽이는 짓이니, 그 죄는 어디에서도 용서받을 수 없는 짓이며, 하늘이나 공기나 땅으로부터 그 죄에 대한 댓가를 분명히 받게 되리라. 어린이를 가르치는데 있어서는 어린이의 인격을 생각하고 대하라. 어린이의 인격을 무시하고 어른의 인격에 맞추어 대하는 것은 어린이로 하여금 잘못된 인격을 갖게 할 수 있다. 그것은 자신의 인격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어른의 삶의 의의가 어린이의 삶의 의의가 돼서는 안 된다. 그것이 바로 어린이의 인격을 무시하는 짓이니, 어린이가 성인이 되어 스스로 삶의 의의를 궁구하여 자신의 삶을 개척할 수 있도록 그 가능성을 죽이는 짓을 하지 말라. 또한, 자신이 스스로 깨달아서 알지 않고, 지식으로만 알게 된 것은, 아는 척만 하게 되고 남는 것은 허무에 떨어진다. 지식은 스스로 깨닫기 위하여 쌓는 것이지, 아는 체하려고 쌓는 것이 아닌즉, 이러한 것에서 어린이에게 가르쳐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가르쳐야 한다.
어린이의 불행
새싹은 열매를 영글기 위하여 그 두꺼운 대지를 뚫고 올라온다. 그런즉 영원한 새싹은 없으며, 영원한 것이 있다면, 영원히 새싹을 틔워내는 대지에 영원함이 있을 것이다. 인간 또한 마찬가지로 어린이는 영원히 어린이일 수 없고, 어른은 어린이가 아니었던 인간은 없다. 영적으로 발전이 덜된 인간이 어린 시절의 순진구함에 영혼의 순수함을 찾으려 하지만, 그것은 새싹에서 열매를 찾는 것과 같다.
어린이는 어린이일 뿐이며, 어린이는 성인이 되기 전의 인간의 삶이다. 이러한 어린이의 삶에서 인생의 환상을 찾는다면, 그것은 망상을 일으켜 그 영혼이 퇴보하게 된다. 성인이 되기 전의 삶인 어린이의 시절이 중요하다면, 성인이 되어서 그 영혼을 잃지 않고 스스로 주체적인 인생에서 존재론적 자아를 이룰 수 있도록, 배려에 의한 보호와 미래를 위한 바른 가르침이 있어야 할 것이다.
새싹과 같은 어린이에게 밝음 심성을 기르도록 하지 않고 어두운 심성이 자라게 하는 것은 새싹부터 병들게 하는 간악한 행위이며, 그 간악함은 영혼의 죄인지라 하늘의 노여움으로부터 변명할 수 없는 죄가 된다. 또한, 영적 유아에 머물러 있는 인간이 어린이의 삶으로부터 영적인 탐닉을 하는 것은, 다 큰 성인이 어머니의 젖을 그리워하는 것과 같다. 그러한 인간은 주체성이 결여되어 결국 자신의 영혼을 잃게 되고, 책임감 없는 인생에서 자신의 삶과 상대의 삶을 불행하게 만들게 된다.
어린이의 꿈
어린이의 꿈은 인간의 본질로부터 스스로 갖고 있으며, 인간의 본질에 의해 공상력과 상상력이 있다. 어린이는 이러한 공상력과 상상력의 작용으로, 인위적인 가식이나 막힘이 없는 자유로운 꿈을 꿀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자유로운 꿈은 점차 성인이 되면서 더욱 구체화 되고, 이성과 감성이 발달하면서 공상력과 상상력이 풍부하여져서, 자신의 인생을 공상력과 상상력을 동원하여 그리며 현실적 삶을 개척하는 인생의 길로 들어선다.
그러한즉 인간의 삶을 통하여 인생을 개척할 수 있는 근본인 공상력과 상상력의 기본은 어릴 적 꿈으로부터 시작 되는 것이며, 이러한 어릴 적 꿈은 누가 깨지 않아도 성인이 되면서 스스로 깨어가며, 깨어가는 과정이 이성과 감성이 발달하는 과정이 된다. 그러나 어릴 적 꿈을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깨거나, 또는, 인위적으로 변질시키게 되면, 공상력과 상상력이 편협해지고, 공상력과 상상력이 편협한 상태의 꿈이 깨어나는 과정에서, 이성과 감성의 발달에 장애를 일으켜 저하시키거나 편협적으로 형성되어, 인생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는 본능적 능력을 상실하게 만든다.
공상이란, 이치적 사실에서 현실적 실현이 불가능한 일이나 존재를 생각하는 정신작용을 말하며, 이러한 공상은 존재론적 사유를 깊게 한다. 또한, 상상이란, 이치적 사실이나 사실에서 벗어난 현상이나 형상을, 현실이나 현실에서 벗어나, 생각으로 미루어보는 정신작용을 말하며, 이러한 상상은 현재론적 사고를 넓게 한다. 그러나 공상이 현재론적 사유가 되면, 이치적 사실에서 현실적 실현이 불가능한 일이나 존재를, 현실에서 가능할 수 있다는 상상을 일으켜, 과대망상에 의한 정신적 부작용이 발생한다.
또한, 상상이 존재론적 사고가 되면, 이치적 사실이나 사실에서 벗어난 현상이나 형상을, 사실적으로 가능할 수 있다는 공상을 일으켜, 과대추측에 의한 정신적 부작용이 발생한다. 인간의 삶에서 이러한 정신적 부작용을 일으키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은 종교적 쇄뇌에서 발생하며, 특히 어릴 적 꿈을 왜곡시키거나 편협되게 만드는 종교적 쇄뇌는, 어린이의 공상력과 상상력을 변질시켜 어린 영혼을 오염시키게 되니, 인간이라는 존재에게는 가장 큰 죄악이 된다.
어린이의 쇄뇌
어린이의 이성과 감성은 인간의 본능에 따라 그 근본이 있지만, 인간적인 성품으로는 백지라 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백지에 어떠한 이성과 감성의 색칠을 하는가가, 장차 성인이 되어 인간의 존재론적 목적과 현재론적 행복을 이룰 수 있는 인생 전체의 바탕이 된다. 인생은 여러 성품적 인간과 다양한 환경 그리고 다양한 삶의 조건이 이루어진다. 그러한즉, 어린이에게는 다양한 이성적 성품의 성향과 다양한 감성적 성품을 골고루 익히는 것이 그 인생을 위하여 중요하다 할 것이다.
그러나 편협적인 이성과 편협적인 감성을 갖게 하는 것은, 인간사회에 적응력이 떨어져 삶이 순탄치 못하여 불행한 삶을 살아도 그 삶을 해쳐나갈 능력이 부족하게 된다. 특히, 어린이에게 종교적 쇄뇌를 시키는 것은 나중에 성인이 되어서 쇄뇌를 받는 것보다 비교할 수 없이 심각한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며, 성인되어서는 일시적인 쇄뇌를 당하여도 스스로 이성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도 있지만, 어릴 때 쇄뇌된 경우는 성인이 되어도 벗어나기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자기자신도 확신하지 못하는, 확신한다하여도 확인할 수 없는 맹신을, 또는 자신의 맹신을 더욱 맹신이게 하기위하여, 자녀에게 종교적 쇄뇌를 시키는 것은 현세뿐만이 아니라 내세에까지 그 우둔함을 원망치 못할 것인즉,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심으신 영혼의 씨를 어린이에게서 뽑아버리게 하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하늘의 죄임을 알라.
인위적인 꿈
어린아이에게 인위적으로 꿈을 갖게 한다는 것은 어른들의 착각이다. 인간은 선천적으로 꿈의 능력을 갖고 태어난다. 생각으로 직접적인 꿈을 꾸는 것이 그것을 확인하며, 잠에서 간접적인 꿈을 꾸는 것이 그것을 확인해준다. 이러한 선천적 꿈의 능력을 자연스럽게 펼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니, 선천적 꿈의 능력을 인위적으로 조정하려는 태도는 오히려 어린아이의 꿈을 편협하게 만들고 또한 왜곡되게 만든다.
어린아이에게 꿈을 갖게 한다는 것이 오히려 선천적 꿈의 능력을 비현실적 꿈으로 쇄뇌시키게 되며, 잘못된 인위적인 꿈의 세뇌는 그 어린아이가 장차 어른이 되었을 때, 지난 어른들에게서 배신감을 느끼고 또한 사회적 현실에 대한 불신을 갖게 된다. 그러한 악순환으로 인해서 자신의 부모와 사회에 대한 배신감과 불신의 고리가 끊어지지 않는다.
이러한 것을 성인이 되었을 때 이해하려고 하지만, 그의 깊은 내면에는 지워지지 않는 배신감과 불신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상호협력적인 성품과 사회적 믿음에 대한 성품이 저하되는 것이다. 또한 그러한 배신감과 불신을 갖게 하는 왜곡된 비현실적 꿈을 또다시 어린아이에게 지난 어른들이 했던 것과 같이 앵무새처럼 주입시킴으로 해서 자신 또한 후세의 어린아이로부터 신뢰와 믿음을 잃어버린다.
이러한 짓이 왜 반복되어야 하는가? 이것이 진정 어린아이에게 꿈을 갖게 한 것인가? 살면서 때때로 어린아이에게 자유로운 꿈을 갖게 하기위한 선의의 거짓말은 필요할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것이 사회적ㆍ제도적으로 굳어져 인간의 역사에서 반복을 한다면 그것은 선의적 거짓말이 아니라. 악의적 거짓말이 된다. 이렇게 함으로 해서 어린아이는 자유로운 희망의 꿈을 갖는 것이 아니라, 불신의 꿈을 갖게 되는 것이다.
어릴 적 어른들이나 선생님들로부터 듣고 배운 것들이 성장하여서는 그것이 얼마나 유치하고 잘못된 것인가 하는 것과 함께 부끄러움이 드는 순간, 그간의 어른이나 선생님에 대한 존경과 신뢰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그들이 너무나 가엽고 한심스럽게 느껴지게 된다. 그러면서도 그들이 자신들도 똑 같은 짓을 반복한다. 그것은 어릴 적 주입이 너무 깊게 새겨져, 성인이 되어 그것을 알아도 그것을 바꾸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지만, 또한 세뇌된 그것 외에 아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가정치유05) 가능성의 어린이
가능성의 어린이
어린이에게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아라. 편협적이고 허황된 가능성에 어린이의 무한한 가능성을 묶지 말라. 가르치는 자는 자신의 믿음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가르쳐야 한다. 자신도 확신하지 않으면서 그저 막연한 믿음만으로 진실인체 가르치는 것은 어린 영혼에게 크나큰 죄악을 저지르는 짓이다. 어린이에게 나무를 가르치는 것은 나무의 성품을 가르치는 것이 되고, 동물을 가르치는 것은 동물의 성품을 가르치는 것이 된다. 그러한즉, 자연에 대하여 가르칠 때는 이러한 것을 감안하여 가르쳐야 할 것이다.
어린이에게 죄의식을 심지 말라. 어릴 때 쇄뇌된 머리는 그 인생을 불구자로 만들 수 있다. 또한, 그것은 어린 영혼을 죽이는 짓이니, 그 죄는 어디에서도 용서받을 수 없는 짓이며, 하늘이나 공기나 땅으로부터 그 죄에 대한 댓가를 분명히 받게 되리라. 어린이를 가르치는데 있어서는 어린이의 인격을 생각하고 대하라. 어린이의 인격을 무시하고 어른의 인격에 맞추어 대하는 것은 어린이로 하여금 잘못된 인격을 갖게 할 수 있다. 그것은 자신의 인격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어른의 삶의 의의가 어린이의 삶의 의의가 돼서는 안 된다. 그것이 바로 어린이의 인격을 무시하는 짓이니, 어린이가 성인이 되어 스스로 삶의 의의를 궁구하여 자신의 삶을 개척할 수 있도록 그 가능성을 죽이는 짓을 하지 말라. 또한, 자신이 스스로 깨달아서 알지 않고, 지식으로만 알게 된 것은, 아는 척만 하게 되고 남는 것은 허무에 떨어진다. 지식은 스스로 깨닫기 위하여 쌓는 것이지, 아는 체하려고 쌓는 것이 아닌즉, 이러한 것에서 어린이에게 가르쳐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가르쳐야 한다.
어린이의 불행
새싹은 열매를 영글기 위하여 그 두꺼운 대지를 뚫고 올라온다. 그런즉 영원한 새싹은 없으며, 영원한 것이 있다면, 영원히 새싹을 틔워내는 대지에 영원함이 있을 것이다. 인간 또한 마찬가지로 어린이는 영원히 어린이일 수 없고, 어른은 어린이가 아니었던 인간은 없다. 영적으로 발전이 덜된 인간이 어린 시절의 순진구함에 영혼의 순수함을 찾으려 하지만, 그것은 새싹에서 열매를 찾는 것과 같다.
어린이는 어린이일 뿐이며, 어린이는 성인이 되기 전의 인간의 삶이다. 이러한 어린이의 삶에서 인생의 환상을 찾는다면, 그것은 망상을 일으켜 그 영혼이 퇴보하게 된다. 성인이 되기 전의 삶인 어린이의 시절이 중요하다면, 성인이 되어서 그 영혼을 잃지 않고 스스로 주체적인 인생에서 존재론적 자아를 이룰 수 있도록, 배려에 의한 보호와 미래를 위한 바른 가르침이 있어야 할 것이다.
새싹과 같은 어린이에게 밝음 심성을 기르도록 하지 않고 어두운 심성이 자라게 하는 것은 새싹부터 병들게 하는 간악한 행위이며, 그 간악함은 영혼의 죄인지라 하늘의 노여움으로부터 변명할 수 없는 죄가 된다. 또한, 영적 유아에 머물러 있는 인간이 어린이의 삶으로부터 영적인 탐닉을 하는 것은, 다 큰 성인이 어머니의 젖을 그리워하는 것과 같다. 그러한 인간은 주체성이 결여되어 결국 자신의 영혼을 잃게 되고, 책임감 없는 인생에서 자신의 삶과 상대의 삶을 불행하게 만들게 된다.
어린이의 꿈
어린이의 꿈은 인간의 본질로부터 스스로 갖고 있으며, 인간의 본질에 의해 공상력과 상상력이 있다. 어린이는 이러한 공상력과 상상력의 작용으로, 인위적인 가식이나 막힘이 없는 자유로운 꿈을 꿀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자유로운 꿈은 점차 성인이 되면서 더욱 구체화 되고, 이성과 감성이 발달하면서 공상력과 상상력이 풍부하여져서, 자신의 인생을 공상력과 상상력을 동원하여 그리며 현실적 삶을 개척하는 인생의 길로 들어선다.
그러한즉 인간의 삶을 통하여 인생을 개척할 수 있는 근본인 공상력과 상상력의 기본은 어릴 적 꿈으로부터 시작 되는 것이며, 이러한 어릴 적 꿈은 누가 깨지 않아도 성인이 되면서 스스로 깨어가며, 깨어가는 과정이 이성과 감성이 발달하는 과정이 된다. 그러나 어릴 적 꿈을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깨거나, 또는, 인위적으로 변질시키게 되면, 공상력과 상상력이 편협해지고, 공상력과 상상력이 편협한 상태의 꿈이 깨어나는 과정에서, 이성과 감성의 발달에 장애를 일으켜 저하시키거나 편협적으로 형성되어, 인생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는 본능적 능력을 상실하게 만든다.
공상이란, 이치적 사실에서 현실적 실현이 불가능한 일이나 존재를 생각하는 정신작용을 말하며, 이러한 공상은 존재론적 사유를 깊게 한다. 또한, 상상이란, 이치적 사실이나 사실에서 벗어난 현상이나 형상을, 현실이나 현실에서 벗어나, 생각으로 미루어보는 정신작용을 말하며, 이러한 상상은 현재론적 사고를 넓게 한다. 그러나 공상이 현재론적 사유가 되면, 이치적 사실에서 현실적 실현이 불가능한 일이나 존재를, 현실에서 가능할 수 있다는 상상을 일으켜, 과대망상에 의한 정신적 부작용이 발생한다.
또한, 상상이 존재론적 사고가 되면, 이치적 사실이나 사실에서 벗어난 현상이나 형상을, 사실적으로 가능할 수 있다는 공상을 일으켜, 과대추측에 의한 정신적 부작용이 발생한다. 인간의 삶에서 이러한 정신적 부작용을 일으키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은 종교적 쇄뇌에서 발생하며, 특히 어릴 적 꿈을 왜곡시키거나 편협되게 만드는 종교적 쇄뇌는, 어린이의 공상력과 상상력을 변질시켜 어린 영혼을 오염시키게 되니, 인간이라는 존재에게는 가장 큰 죄악이 된다.
어린이의 쇄뇌
어린이의 이성과 감성은 인간의 본능에 따라 그 근본이 있지만, 인간적인 성품으로는 백지라 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백지에 어떠한 이성과 감성의 색칠을 하는가가, 장차 성인이 되어 인간의 존재론적 목적과 현재론적 행복을 이룰 수 있는 인생 전체의 바탕이 된다. 인생은 여러 성품적 인간과 다양한 환경 그리고 다양한 삶의 조건이 이루어진다. 그러한즉, 어린이에게는 다양한 이성적 성품의 성향과 다양한 감성적 성품을 골고루 익히는 것이 그 인생을 위하여 중요하다 할 것이다.
그러나 편협적인 이성과 편협적인 감성을 갖게 하는 것은, 인간사회에 적응력이 떨어져 삶이 순탄치 못하여 불행한 삶을 살아도 그 삶을 해쳐나갈 능력이 부족하게 된다. 특히, 어린이에게 종교적 쇄뇌를 시키는 것은 나중에 성인이 되어서 쇄뇌를 받는 것보다 비교할 수 없이 심각한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며, 성인되어서는 일시적인 쇄뇌를 당하여도 스스로 이성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도 있지만, 어릴 때 쇄뇌된 경우는 성인이 되어도 벗어나기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자기자신도 확신하지 못하는, 확신한다하여도 확인할 수 없는 맹신을, 또는 자신의 맹신을 더욱 맹신이게 하기위하여, 자녀에게 종교적 쇄뇌를 시키는 것은 현세뿐만이 아니라 내세에까지 그 우둔함을 원망치 못할 것인즉,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심으신 영혼의 씨를 어린이에게서 뽑아버리게 하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하늘의 죄임을 알라.
인위적인 꿈
어린아이에게 인위적으로 꿈을 갖게 한다는 것은 어른들의 착각이다. 인간은 선천적으로 꿈의 능력을 갖고 태어난다. 생각으로 직접적인 꿈을 꾸는 것이 그것을 확인하며, 잠에서 간접적인 꿈을 꾸는 것이 그것을 확인해준다. 이러한 선천적 꿈의 능력을 자연스럽게 펼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니, 선천적 꿈의 능력을 인위적으로 조정하려는 태도는 오히려 어린아이의 꿈을 편협하게 만들고 또한 왜곡되게 만든다.
어린아이에게 꿈을 갖게 한다는 것이 오히려 선천적 꿈의 능력을 비현실적 꿈으로 쇄뇌시키게 되며, 잘못된 인위적인 꿈의 세뇌는 그 어린아이가 장차 어른이 되었을 때, 지난 어른들에게서 배신감을 느끼고 또한 사회적 현실에 대한 불신을 갖게 된다. 그러한 악순환으로 인해서 자신의 부모와 사회에 대한 배신감과 불신의 고리가 끊어지지 않는다.
이러한 것을 성인이 되었을 때 이해하려고 하지만, 그의 깊은 내면에는 지워지지 않는 배신감과 불신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상호협력적인 성품과 사회적 믿음에 대한 성품이 저하되는 것이다. 또한 그러한 배신감과 불신을 갖게 하는 왜곡된 비현실적 꿈을 또다시 어린아이에게 지난 어른들이 했던 것과 같이 앵무새처럼 주입시킴으로 해서 자신 또한 후세의 어린아이로부터 신뢰와 믿음을 잃어버린다.
이러한 짓이 왜 반복되어야 하는가? 이것이 진정 어린아이에게 꿈을 갖게 한 것인가? 살면서 때때로 어린아이에게 자유로운 꿈을 갖게 하기위한 선의의 거짓말은 필요할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것이 사회적ㆍ제도적으로 굳어져 인간의 역사에서 반복을 한다면 그것은 선의적 거짓말이 아니라. 악의적 거짓말이 된다. 이렇게 함으로 해서 어린아이는 자유로운 희망의 꿈을 갖는 것이 아니라, 불신의 꿈을 갖게 되는 것이다.
어릴 적 어른들이나 선생님들로부터 듣고 배운 것들이 성장하여서는 그것이 얼마나 유치하고 잘못된 것인가 하는 것과 함께 부끄러움이 드는 순간, 그간의 어른이나 선생님에 대한 존경과 신뢰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그들이 너무나 가엽고 한심스럽게 느껴지게 된다. 그러면서도 그들이 자신들도 똑 같은 짓을 반복한다. 그것은 어릴 적 주입이 너무 깊게 새겨져, 성인이 되어 그것을 알아도 그것을 바꾸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지만, 또한 세뇌된 그것 외에 아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