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5월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장이 투병중인 어느 노인에게 병문안을 왔는데 노인은 박정희가 선 반대쪽으로 몸을 돌아누우며 그를 외면하는 사진이다. 필자가 인터넷으로 처음 이 사진을 접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리고 박정희가 병문안을 온 이 노인이 심산 김창숙 지사였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필자는 오욕과 패륜으로 얼룩진 우리 나라의 현대사를 실감하며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
심산(心山) 김창숙(金昌淑;1879~1962) 지사(志士)! 양반지주 출신의 성리학자로서 명문가의 안락한 삶을 스스로 저버리고 항일독립운동 전선에 뛰어들어 일생을 기구하게 살다 간 ‘지조파 선비’…. 그는 1905년 을사늑약(乙巳勒約) 당시에는 황실에 청참오적소(請斬五賊疏)를 올린 바 있고, 1919·1925년 제1·2차 유림단사건(儒林團事件)을 주도했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 의정원에 참여하면서 중국 국민당의 여러 인사들과 접촉하여 중한호조회(中韓互助會) 결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21년에는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를 도와《천고(天鼓)》를 발행하고, 백암(白巖) 박은식(朴殷植)과 함께『사민일보(四民日報)』를 발간하여 민족의식 고취에 노력했으며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 군사부의 선전위원장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1926년에는 석오(石吾) 이동녕(李東寧)·백범(白凡) 김구(金九)·우당(友堂) 이회영(李會榮) 등과 논의하여 청년 결사대원들을 국내로 파견, 일제(日帝)의 고관들을 암살하거나 식민통치기관을 파괴하는 작전을 감행하기로 결정했다. 그리하여 의열단(義烈團) 소속 나석주(羅錫疇) 의사(義士)의 조선식산은행(朝鮮殖産銀行)·동양척식주식회사(東洋拓殖株式會社) 건물 폭탄 투척과 총격전 의거(義擧)가 결행되었다.
1927년 일경(日警)에 체포되어 고문과 심문의 후유증으로 두 다리가 마비되어 형집행정지로 풀려났다가, 일제의 패망 직전 다시 체포되어 고향인 성주에서 서울로 압송되던 중에 8·15 해방을 맞이하게 되었다. 해방 후에는 이승만 일파에 맞서 남한 단독선거 반대운동을 벌였지만, 지조와 절개를 중시하는 선비 출신인지라 정계에 적응하지 못하고 곧 은퇴하고 말았다. 정치에서 손을 뗀 후로는 전국 유림(儒林)을 재조직하고 성균관 및 성균관대학교를 중흥하는 등 교육 사업에 매진했다. 한때 성균관대학교 총장도 지냈지만, 학교에서 물러난 후에는 집 한 칸 없는 궁핍한 생활 속에 여관과 병원을 전전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렇게 진정한 민족주의자로서 곧은 길을 걸었던 심산이 병원 침상에 누워 있던 어느 날, ‘아주 특별한 손님’ 하나가 병문안을 왔다. 그 얼마 전에 쿠데타에 성공해 국가 권력을 거머쥔 박정희가 사회 지도층의 지지를 얻기 위하여 직접 병문안을 온 것이다. 최고권력자가 찾아왔으니 아무리 몸이 아프더라도 일어나는 흉내라도 내야 할 텐데, 심산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박정희가 병실 문을 열고 들어오자, 심산은 벽을 향해 몸을 홱 돌리며 박정희를 외면했다. 그가 박정희를 냉대한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일본 제국주의 군대의 장교 출신과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옳지 않은 것 앞에서는 한 치의 타협도 할 수 없다는 꼿꼿한 선비 정신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그에게는 박정희의 허리춤에 있던 권총보다도 민족정통성의 퇴보와 양심의 사망이 더 두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21세기 대한민국의 오늘은 어떠한가? 일제의 침략전쟁에 적극적으로 참전하고 남로당에서 이적활동을 했으며 쿠데타라는 불법행위로 집권해 민주주의를 유린하고 인권을 탄압한 독재자 박정희를 ‘근대적 경제 개발의 아버지’라고 칭송하는 자들이 사회 기득권을 장악하고 있다. ‘매국노’ 박정희를 존경하는 60·70대 노년층 유권자들의 ‘패륜적인’ 성향으로 박정희의 딸이라는 ‘단순한 이유’에 의해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국정원·국방부·선관위·보훈처·행정안전부 등 관헌의 ‘보이지 않는 도움’으로 제18대 대통령에 당선되더니 일제강점기와 유신독재를 미화·찬양하는 뉴라이트 계열 어용학자들이 교육·학계의 주도권을 장악했다. 민족해방운동과 민주화운동은 ‘근대적 경제 성장을 방해한 공산주의자들의 망동’ 따위로 폄하되는 역사 왜곡이 서슴없이 자행되고 있다. 방송언론에서는 수구정치세력이 진행하고 있는 ‘경제민주화’를 좌절시키고 ‘규제완화’라는 명목으로 사회·경제적 양극화를 고착시키는 ‘부자 감세’ 및 ‘공공사업 민영화’ 정책에 대해 “서민들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착한 정책’이라고 거짓된 보도를 한다. 철저한 자본주의적 사고와 판단으로 인해 세월호 침몰 참사가 일어나고 구조 활동을 전혀 하지 않았던 해경과 사실상 직무유기를 자행한 정부 관리들이 버젓이 버티고 있는데도 대다수의 유권자들은 이에 대해 분노하기는커녕 “박근혜 대통령의 눈물을 닦아주세요”라는 새누리당 선거대책위원회의 일명 ‘박근혜 마케팅’에 감동해 지방선거 투표에서 기호 1번을 열심히 찍어준다. ‘편법과 비리가 정의로 추앙받고 패륜이 도덕으로 둔갑되는’ 금수사회(禽獸社會)가 도래했으니 저 문창극이란 저질스런 인간이 국무총리가 된다한들 이상할 게 무엇이겠는가?
“일제의 식민지배로부터 해방된 지가 수십년도 더 흘렀는데 아직도 좌파 놈들은 ‘친일’ 타령인가? 차라리 ‘친일’이 ‘종북’보다 낫다.” 이런 한심한 소리를 하는 자들이 저 뉴라이트 계열 한국현대사학회에 소속된 어용학자들의 발언도 아니고 김진태 같은 새누리당 소속 국회의원들의 발언도 아니며 우리 이웃에 살고 있는 흔한 중년의 평범한 유권자들, 또 지방에서 농사짓는 한글조차 제대로 쓸줄 모르는 노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니 친박계 정치인 아무개가 가당치도 않은 논리로 허튼 소리를 지껄여도 그걸 진실이라 믿는 우민(愚民)들은 바로 이 사람들인 것이다. 그러면서 일본의 정부 관료나 우익 인사가 “위안부는 강제동원이 아닌 필요에 의해 돈을 벌려고 스스로 들어온 창녀” “한국은 불법점거한 다케시마를 돌려줘”라는 망언을 할 때마다 ‘어울리지 않는’ 민족 감정을 드러내며 분노하는 것을 보면 정말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천황 폐하께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해 충성하겠다”는 혈서를 쓰고 만주국 군관학교에 입교했던 ‘다카키 마사오의 딸’이, 침몰하는 여객선 안에서 해경의 구조를 기다리다가 익사한 어린 학생들보다 ‘더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유권자들이 ‘훨씬’ 많은 이 나라의 현실에서, 일제의 식민지배가 ‘하나님의 뜻’이고 한국의 경제 개발이 일본의 덕분이라며 일본과 한반도가 인접해 있는 것은 ‘지정학적인 축복’이라고 주장하는 문창극이 국무총리가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다. 나라의 망조는 새누리당과 뉴라이트 계열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직도 박근혜 부정당선자에게 40%대의 지지율을 보내는 어리석은 유권자들이 만드는 것이다. 공중파 TV방송의 ‘막장 드라마’는 그걸 즐겨보는 ‘막장 시청자’들이 있기에 방영되듯이 반민족적이고 비민주적인 ‘막장 정치인’, ‘막장 관료’는 그들을 지지하는 ‘막장 유권자’가 있기에 존재하는 것이다. 아직도 박근혜만 보면 가슴이 뛰는 60·70대 노인층 유권자들에게 부디 스스로 자신의 ‘무식함’과 ‘어리석음’을 깨닫고 깊이 반성하기를 바랄 뿐이다.
박정희의 병문안을 냉대한 심산…… 그리고 문창극 국무총리 내정
1962년 5월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장이 투병중인 어느 노인에게 병문안을 왔는데 노인은 박정희가 선 반대쪽으로 몸을 돌아누우며 그를 외면하는 사진이다. 필자가 인터넷으로 처음 이 사진을 접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리고 박정희가 병문안을 온 이 노인이 심산 김창숙 지사였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필자는 오욕과 패륜으로 얼룩진 우리 나라의 현대사를 실감하며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
심산(心山) 김창숙(金昌淑;1879~1962) 지사(志士)! 양반지주 출신의 성리학자로서 명문가의 안락한 삶을 스스로 저버리고 항일독립운동 전선에 뛰어들어 일생을 기구하게 살다 간 ‘지조파 선비’…. 그는 1905년 을사늑약(乙巳勒約) 당시에는 황실에 청참오적소(請斬五賊疏)를 올린 바 있고, 1919·1925년 제1·2차 유림단사건(儒林團事件)을 주도했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 의정원에 참여하면서 중국 국민당의 여러 인사들과 접촉하여 중한호조회(中韓互助會) 결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21년에는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를 도와《천고(天鼓)》를 발행하고, 백암(白巖) 박은식(朴殷植)과 함께『사민일보(四民日報)』를 발간하여 민족의식 고취에 노력했으며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 군사부의 선전위원장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1926년에는 석오(石吾) 이동녕(李東寧)·백범(白凡) 김구(金九)·우당(友堂) 이회영(李會榮) 등과 논의하여 청년 결사대원들을 국내로 파견, 일제(日帝)의 고관들을 암살하거나 식민통치기관을 파괴하는 작전을 감행하기로 결정했다. 그리하여 의열단(義烈團) 소속 나석주(羅錫疇) 의사(義士)의 조선식산은행(朝鮮殖産銀行)·동양척식주식회사(東洋拓殖株式會社) 건물 폭탄 투척과 총격전 의거(義擧)가 결행되었다.
1927년 일경(日警)에 체포되어 고문과 심문의 후유증으로 두 다리가 마비되어 형집행정지로 풀려났다가, 일제의 패망 직전 다시 체포되어 고향인 성주에서 서울로 압송되던 중에 8·15 해방을 맞이하게 되었다. 해방 후에는 이승만 일파에 맞서 남한 단독선거 반대운동을 벌였지만, 지조와 절개를 중시하는 선비 출신인지라 정계에 적응하지 못하고 곧 은퇴하고 말았다. 정치에서 손을 뗀 후로는 전국 유림(儒林)을 재조직하고 성균관 및 성균관대학교를 중흥하는 등 교육 사업에 매진했다. 한때 성균관대학교 총장도 지냈지만, 학교에서 물러난 후에는 집 한 칸 없는 궁핍한 생활 속에 여관과 병원을 전전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렇게 진정한 민족주의자로서 곧은 길을 걸었던 심산이 병원 침상에 누워 있던 어느 날, ‘아주 특별한 손님’ 하나가 병문안을 왔다. 그 얼마 전에 쿠데타에 성공해 국가 권력을 거머쥔 박정희가 사회 지도층의 지지를 얻기 위하여 직접 병문안을 온 것이다. 최고권력자가 찾아왔으니 아무리 몸이 아프더라도 일어나는 흉내라도 내야 할 텐데, 심산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박정희가 병실 문을 열고 들어오자, 심산은 벽을 향해 몸을 홱 돌리며 박정희를 외면했다. 그가 박정희를 냉대한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일본 제국주의 군대의 장교 출신과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옳지 않은 것 앞에서는 한 치의 타협도 할 수 없다는 꼿꼿한 선비 정신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그에게는 박정희의 허리춤에 있던 권총보다도 민족정통성의 퇴보와 양심의 사망이 더 두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21세기 대한민국의 오늘은 어떠한가? 일제의 침략전쟁에 적극적으로 참전하고 남로당에서 이적활동을 했으며 쿠데타라는 불법행위로 집권해 민주주의를 유린하고 인권을 탄압한 독재자 박정희를 ‘근대적 경제 개발의 아버지’라고 칭송하는 자들이 사회 기득권을 장악하고 있다. ‘매국노’ 박정희를 존경하는 60·70대 노년층 유권자들의 ‘패륜적인’ 성향으로 박정희의 딸이라는 ‘단순한 이유’에 의해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국정원·국방부·선관위·보훈처·행정안전부 등 관헌의 ‘보이지 않는 도움’으로 제18대 대통령에 당선되더니 일제강점기와 유신독재를 미화·찬양하는 뉴라이트 계열 어용학자들이 교육·학계의 주도권을 장악했다. 민족해방운동과 민주화운동은 ‘근대적 경제 성장을 방해한 공산주의자들의 망동’ 따위로 폄하되는 역사 왜곡이 서슴없이 자행되고 있다. 방송언론에서는 수구정치세력이 진행하고 있는 ‘경제민주화’를 좌절시키고 ‘규제완화’라는 명목으로 사회·경제적 양극화를 고착시키는 ‘부자 감세’ 및 ‘공공사업 민영화’ 정책에 대해 “서민들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착한 정책’이라고 거짓된 보도를 한다. 철저한 자본주의적 사고와 판단으로 인해 세월호 침몰 참사가 일어나고 구조 활동을 전혀 하지 않았던 해경과 사실상 직무유기를 자행한 정부 관리들이 버젓이 버티고 있는데도 대다수의 유권자들은 이에 대해 분노하기는커녕 “박근혜 대통령의 눈물을 닦아주세요”라는 새누리당 선거대책위원회의 일명 ‘박근혜 마케팅’에 감동해 지방선거 투표에서 기호 1번을 열심히 찍어준다. ‘편법과 비리가 정의로 추앙받고 패륜이 도덕으로 둔갑되는’ 금수사회(禽獸社會)가 도래했으니 저 문창극이란 저질스런 인간이 국무총리가 된다한들 이상할 게 무엇이겠는가?
“일제의 식민지배로부터 해방된 지가 수십년도 더 흘렀는데 아직도 좌파 놈들은 ‘친일’ 타령인가? 차라리 ‘친일’이 ‘종북’보다 낫다.” 이런 한심한 소리를 하는 자들이 저 뉴라이트 계열 한국현대사학회에 소속된 어용학자들의 발언도 아니고 김진태 같은 새누리당 소속 국회의원들의 발언도 아니며 우리 이웃에 살고 있는 흔한 중년의 평범한 유권자들, 또 지방에서 농사짓는 한글조차 제대로 쓸줄 모르는 노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니 친박계 정치인 아무개가 가당치도 않은 논리로 허튼 소리를 지껄여도 그걸 진실이라 믿는 우민(愚民)들은 바로 이 사람들인 것이다. 그러면서 일본의 정부 관료나 우익 인사가 “위안부는 강제동원이 아닌 필요에 의해 돈을 벌려고 스스로 들어온 창녀” “한국은 불법점거한 다케시마를 돌려줘”라는 망언을 할 때마다 ‘어울리지 않는’ 민족 감정을 드러내며 분노하는 것을 보면 정말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천황 폐하께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해 충성하겠다”는 혈서를 쓰고 만주국 군관학교에 입교했던 ‘다카키 마사오의 딸’이, 침몰하는 여객선 안에서 해경의 구조를 기다리다가 익사한 어린 학생들보다 ‘더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유권자들이 ‘훨씬’ 많은 이 나라의 현실에서, 일제의 식민지배가 ‘하나님의 뜻’이고 한국의 경제 개발이 일본의 덕분이라며 일본과 한반도가 인접해 있는 것은 ‘지정학적인 축복’이라고 주장하는 문창극이 국무총리가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다. 나라의 망조는 새누리당과 뉴라이트 계열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직도 박근혜 부정당선자에게 40%대의 지지율을 보내는 어리석은 유권자들이 만드는 것이다. 공중파 TV방송의 ‘막장 드라마’는 그걸 즐겨보는 ‘막장 시청자’들이 있기에 방영되듯이 반민족적이고 비민주적인 ‘막장 정치인’, ‘막장 관료’는 그들을 지지하는 ‘막장 유권자’가 있기에 존재하는 것이다. 아직도 박근혜만 보면 가슴이 뛰는 60·70대 노인층 유권자들에게 부디 스스로 자신의 ‘무식함’과 ‘어리석음’을 깨닫고 깊이 반성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