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말은 하고싶지않지만
저희엄마..
저도 원망합니다.
정말 그립고 원망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괴물같았던 아빠를보고 때로는 엄마를 이해해버리기도했습니다..
엄마는 지금 양쪽팔에 장애를가지고있습니다.ㅎ
자궁암으로 수술도받으셨구요 ㅎ
말하고싶지않았습니다.
절버리고나간엄마는 제가욕하겠습니다...
고등학교졸업도못하고 올라왔단이야기는..
대학진학포기하고 취업반으로옮겨서 고3 2학기말에 취업을 나갔기때문입니다..그후 졸업하였습니다.
모르겠습니다..여러분의 말들이 어떤말이던
왜이렇게 감사할까요 감사합니다..
.
혹시나 흠이될까.. 무시당할까..
가까운 친구에게도 털어놓지못하고 가슴에서 곪아터진 내 이야기..
조언이던.. 철이없다고 욕을하던.. 그저 제예기를 읽어주신분들께 감사드립니다.
22살 여자.
아직 너무 예쁜나이라고, 지금시작해도 아무것도 이상할것이 없다고 너무부럽다고
모두들 예기한다.
그럴때마다 나는 벙어리가되고싶고, 귀머거리가 되고싶다.
나는 바보가되었다.. 눈을 뜰 힘조차없이 너무 지쳐있다.
4살 부모님의 이혼 으로 나는 아빠와, 오빠와 함께 시골집에서 자랐다.
일상이 되어버린, 아빠의 술주정과 폭력, 욕설
그래도 살아야했다. 나는 훌륭한 사람이 되고싶었다.
애정결핍과, 정서불안으로 이불로 얼굴을 숨이막힐정도로 꽁꽁싸지않으면 잠이들수없었다.
그렇게.. 컸다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되고..
나는..살기위해 가출했다
보증금없는 월세방을구했고.. 학교를 한번도 빼지않고 나갔다.
어떻게 쌓아논 내 등수인데.. 그거까지 잃어버리면 난 아무것도없는 빈털털이였기 때문이었다.
전기장판하나와, 꽁꽁언 수도에도 동상이 걸릴지언정 나는 더러워보이고싶지않았다
샤워를 하고 학교에갔다.
학교가끝나면, 알바를했고, 알바가끝나면 도서관에가서 날이새도록 공부를했다.
내가 집을 떠난 2년동안, 아빠는 한번도 바로옆동네인 우리학교에 찾아오지않았다.
나는 등록금이없었고, 생활고에 시달렸고, 대학을 가지못했다.
지방에서 무조건 서울로 알바자리를구해 취업을했고
외국인들이 가득한 동네 고시원에서 살게되었다.
2012년 겨울 고등학교 졸업도못하고 올라온 서울 유난히도 추웠다.
돈도없었고, 이불도없었다.. 창문하나없던 20만원짜리 고시원은..
숨이막혔고 귀신에 홀린듯 손목을 그었다.
바보같았고, 나는 죽지않았다
시간은 아무렇지않게 흘러갔고, 아무일없던것처럼 세상은 돌아갔다.
4살, 날 버리고 떠난 엄마를 만났다.
난 더이상 엄마없는 아이가 아니였고, 어른아이가되었다.
생활고에 시달리는 엄마..
또 다른 회사에 취직한 나..
개발지역에서 돈몇푼못받고 쫒겨난 우리엄마.. 오갈곳없는 엄마의 대출부탁
거절할수없었고...
3, 4번 계속되는 서류준비, 금융권의 거절.. 너무 힘들었고, 눈물이났다
은행원에게 화가 나서가아니였다..앉아서 수다떨고있던 대학생들이 부러워서도 아니였다..
그렇게 울다가 그렇게 또 나왔다
하늘은 너무 맑고 배가고팠다.
김밥한줄을먹다가 또 울었다.
울어봤자 소용없다는걸 뼈저리게 깨닫고 절떄 울지말자 다짐했는데
그래서 강해졌다고 착각했는데
나는 아직 철없는 22살인가보다
가슴속상처는 아직 4살에 머물러있다
하지만 어디에도 때쓰고 울수없다.
나는 웃는다 매일웃는다
매일 회사사람들에게 있지도않은 행복한가정이야기를 꾸며한다
설날, 추석 연휴가끝나면 가족들과 무척이나 행복한 날을 보내고 온것처럼 포장을한다
여름휴가... 죽은사람처럼 잠만자다 너무재밌게 놀고온것처럼 포장을한다.
나는 지금 너무 지쳐있다..
어떤거부터 어떻게해야할지모르겠다..
그러나 훌륭한사람이 되고싶다..
바보같다 나는
아니..바보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