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우울한 유럽 배낭여행 이야기.

제발2014.07.05
조회128
23살 남자 휴학생입니다.
저는 지금 터키 이스탄불에 있습니다.
고등학생때 부터 여행을 동경하긴 했지만 사실 저번달에 충동적으로 떠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사실 새로운걸 보고싶어서 떠난다는 것보다 마음이 너덜너덜해져서 현실로부터 도피하고 싶어서 떠난게 더 크네요.
중고등학교때 부터 시달려온 1등 강박증과 주위의 시선 덕분인지 남들이 말하는 명문대는 갔지만 막상 성인이 되고 상경해서 자취를 하게되니 10대에 겪었어야 할 온갖 문제점들을 스무살에 겪었습니다. 거기에다가 더해진 외모 컴플렉스로 대인관계도 좁게 지냈고 학사경고도 받았습니다. 결국 내가 그나마 초라하지 않을 수 있는건 공부 뿐이라고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공익근무를 하면서 회계사 시험준비를 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잘 되지 않았고, 그나마 유일한 장점이던 공부마저 엉망이 되니 스스로가 밑바닥으로 느껴졌습니다. 소집해제후 차마 학교를 다시 갈 용기가 나지않았고 흥미도 없는 회계사 공부를 한다는 핑계로 다시 상경했습니다. 사람을 만나는게 무섭고 열등감이 들어서 지인들의 연락도 모조리 피하고 연초부터 반년 가까이 누구와도 말도 하지않고 지냈습니다. 서서히 말도 어눌해지고 건강도 안 좋아지더군요. 예전에는 생각만 하던 자살도 몇번 시도해 봤죠. 이때까지도 주변사람들에게는 괜찮은척했죠. 이틀전에 손목 그은 상처에 지혈제 뿌리고 서울 오신 부모님과 웃으며 식사한적도 있었네요.
공부하는것도, 노는 것도, 쉬는 것도, 먹는 것도 즐겁지도 싫지도 않았습니다. 새로운걸 봐도 호기심도 생기지 않았구요. 의료기록 남을까봐 보험적용하지 않고 생활비 쪼개가면서 항우울제 처방받아서 자살생각 날때마다 비타민제처럼 먹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부모님이 약봉투를 보시고 모든걸 알게 되셨죠.
어쩌다보니 찌질하게 부모님 손 벌려서 두달 여행을 다녀오게 됐네요. 못난 외모에 머리에는 똥만 차서 심지어 돈 한푼 못벌고 부모 손만 벌렸네요. ㅎ

지금도 설렌다거나 기쁘지는 않습니다. 다만 현실과 괴리되어 있다는 안도감은 있네요. 특정한 계획도 없습니다. 귀국날까지 정처없이 유럽대륙을 떠돌아 다니겠죠.
그나마 이 여행이 나를 변화시켜줄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이네요.
그때까지 뭔가 변화가 있다면 좋겠지만 지금과 똑같다면 그냥 죽을 생각입니다. 저번처럼 어설프게 칼장난 하지않고 투신으로요.
두달동안 최소한 도미토리 숙소를 갈 용기나, 열등감이 조금이나마 사라지거나. 아니면 기쁘거나, 설레거나, 슬프거나, 화가 나봤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