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도 생인 이영자양(당시 19세, 이하 영자)은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오지[1]에서 아버지와 단 둘이 문명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한 채 화전과 약초 캐기만으로 살아가던 산골소녀였다. 그러던 영자와 그의 아버지는 한국의 시골과 오지를 전문적으로 촬영하는 사진작가[2]에 의해서 세상에 알려졌고 2000년 7월 KBS 2TV 인간극장 '그 산 속에 영자가 산다(5부작)' 을 통해 이후 엄청난 유명인이 되었다. 이후 학교조차 나오지 못한 그녀를 위해 수많은 후원이 이루어졌으며 영자는 한 후원자의 도움으로 서울로 상경하여 초등과정 검정고시 준비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 유명세를 통해 이동통신회사인 LG텔레콤의 CF까지 찍게 되었다.
이 모든 과정은 TV프로그램 인간극장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전달되었으며 이후 인간극장의 인기는 최고점에 이르게 되었다. 그렇게 훈훈하게 이 에피소드는 끝나는 듯 했다. 하지만 화면 속 아버지 얼굴은 밝지 않았는데... 미래를 예측한 걸지도...
영자가 서울에 상경하여 검정고시 준비에 열심이던 2001년 2월 12일 영자의 아버지가 산골집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당시 시신은 왼쪽 쇄골에 깊은 상처가 나있었으며 콧등에 피가 흐르고 있었다. 이러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처음 경찰은 초동수사에서 영자의 아버지가 지병으로 죽은 것으로 결론 내렸다가 정말이지 뒤지도록 까인 후 타살로 결론 내리고 수사를 실시하였으며 결국 2001년 3월 13일 50대의 남자 양모씨를 용의자로 구속하였다. 양모씨는 영자와 그의 아버지가 살던 집이 산 속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어 범행이 용이하다는 점을 파악한 후 CF 출연료와 후원금을 노리고 2001년 2월 9일 영자의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사실을 진술하였다. 하지만 정작 아버지에겐 현금 10여만원이 전부였다고 한다(...)
이 사건에 전 국민이 경악하던 것도 잠시 2001년 2월 27일 엎친데 덮친 격으로 영자의 후원회장이 소녀의 출연료와 인세를 횡령하여 구속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 영자는 서울로 올라온 후 후견인에게 돈을 모두 뺏기며 정신적, 육체적인 학대를 당했던 것. 여담인데 이 천하의 개쌍놈인 후원회장이란 작자의 아내란 여편네는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 남편 잘했는데 왜 가두냐" 라는 개소리를 지껄였다.
이 두 사건 이후 영자는 "세상이 너무 무서워요" 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속세를 떠나 인근 모 산사로 귀의하여 비구니가 되었다. 이것도 영자가 비구니가 되겠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떠난 것이 아니라 주변 친지 몇명에게만 말하고 그냥 홀연히 사라진 것인데 각종 뉴스와 언론사들이 영자가 사라졌다며 그녀의 행방을 사방으로 취재해 다니다가 절에 들어갔음을 확인한 것이다.
훗날 절에 처음 찾아온 영자를 돌봐주었던 혜설스님은 "절에 처음 찾아왔을 때 한동안 음식을 못하고 피까지 토했으며 대인기피증이 심했다. 자구책으로 여신도들만 있는 OO사로 몰래 옮겼다. 이 때 언론에서는 '영자가 실종됐다'면서 끊임 없는 관심을 표했다"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불행한 사건은 계속해서 터졌다. 2001년 7월 영자야 산으로 돌아가자 라는 추모 시집이 발간되었다. 책을 낸 신풍출판사에서는 전부터 영자의 아버지와 알고 지냈고 같이 시집을 낼 준비를 하다가 사고가 났으며, 갑작스레 세상을 뜬 고인과 최근 불교에 귀의한 영자양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에 책을 냈다고 하였다.하지만 이 시집이 영자와는 전혀 관련 없는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 영자의 동의 없이 만들어낸 창작물이라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또다시 개싸움이 벌어졌지만 당사자인 영자가 이미 모든 것을 버리고 불교에 귀의한 상황이라 어영부영 책이 출간되어 팔리는 것으로 끝났다.
이후 한동안 한국 상업주의에 대한 엄청난 비판이 가해졌다. 산골에서 오순도순 잘 살고 있는 두 부녀를 도시로 억지로 끌어내어 결국 비극의 수렁으로 몰아넣은 건 이 부녀를 오직 돈으로 여긴 광고주와 인간극장 제작진들의 잘못이라는 주장이 널리 퍼졌다.
인터넷상에서는 그때 당시 역시 한국인들은 개종자이자 박멸대상이라는 2CH급 자학 비난이 쏟아졌다.
속세를 떠난 영자는 법명을 얻고 고향 강원도의 한 암자에서 수행하는 삶을 택했다. 이후에도 그녀를 취재하려는 기자들이 많았으나 반장 스님이 "**스님은 만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지금 너무나 밝고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서는 여전히 아파합니다. **스님의 출가 전 상황에 대해서 알고 있는 스님들도 몇 안되니 그냥 돌아가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라는 말을 하면서 내보냈다. 그럼에도 기자들은 다른 암자에 **스님이 온다는 정보를 듣곤 거기로 개돌했다가 그곳 암자 주지 노스님에게 "사람을 두 번 죽이려 드느냐!" 는 분노 어린 호통과 같이 내쫓겨버렸는데 다른 스님이 왜 그렇게 가만히 계시는 스님을 못 건드려 안달이냐면서 계속 이러면 우리도 가만히 안 있을 테니 얼씬거리지 말라는 항의를 하자 물러났다고 한다.
영자의 아버지를 죽인 범인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자 자신을 죽여달라며 항소했다(...) #
2012년 한 월간지에서 영자의 친척을 찾아갔는데 그들도 비구니가 된 영자에 대하여 소식은 모른다고 했다. 다만 이 기사에선 영자가 살던 집은 그대로 남아있는데 해마다 세금으로 1만 5천원 정도가 나온다고 그냥 이 친척들이 부담하고 있으며 집도 관리하고 있었다. 영자에게 집의 소유권이 이전되었지만 과연 돌아올 지 모르겠다며 친척들도 우리도 괴로우니 더 이상 그만 찾아와달라고 말을 마쳤다.
이와 비슷한 케이스로 영화 집으로에 출연한 김을분 할머니의 경우도 있었는데 할머니가 유명세를 타면서 심지어는 할머니가 돈을 많이 벌었다는 루머 때문에 이상한 사람들이 집 근처에 어슬렁거리게 되자 결국 할머니의 자식들이 서울로 모셔가게 되었다.
워낭소리의 할아버지, 할머니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이때 여기 나온 할아버지는 워낭소리 감독이 싫다고 하소연할 정도이다.
영화 맨발의 기봉이의 모티브가 된 엄기봉씨도 비슷한 케이스. 산골소녀 영자처럼 인간극장에서 처음 소개되어 인기인이 된 사람이지만 PD수첩에 의해 2002년부터 기봉이 아저씨가 출연한 각종 영화, 방송 그리고 각종 후원행사에서 받은 후원금이 여러 사람들에 의해 기봉씨 모르게 유용된 것이 밝혀져 큰 사회적 파장이 있었다. 이때도 인터넷상의 한국비하론자들은 일본이 그나마 사람을 만들어놔서 이정도에 그쳤다고 일본을 찬양했다.
출처:리그베다 위키
차라리 세상이 그녀를 몰랐더라면 -XX스님 아버지 피살사건...-
이 모든 과정은 TV프로그램 인간극장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전달되었으며 이후 인간극장의 인기는 최고점에 이르게 되었다. 그렇게 훈훈하게 이 에피소드는 끝나는 듯 했다. 하지만 화면 속 아버지 얼굴은 밝지 않았는데... 미래를 예측한 걸지도...
영자가 서울에 상경하여 검정고시 준비에 열심이던 2001년 2월 12일 영자의 아버지가 산골집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당시 시신은 왼쪽 쇄골에 깊은 상처가 나있었으며 콧등에 피가 흐르고 있었다. 이러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처음 경찰은 초동수사에서 영자의 아버지가 지병으로 죽은 것으로 결론 내렸다가 정말이지 뒤지도록 까인 후 타살로 결론 내리고 수사를 실시하였으며 결국 2001년 3월 13일 50대의 남자 양모씨를 용의자로 구속하였다. 양모씨는 영자와 그의 아버지가 살던 집이 산 속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어 범행이 용이하다는 점을 파악한 후 CF 출연료와 후원금을 노리고 2001년 2월 9일 영자의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사실을 진술하였다. 하지만 정작 아버지에겐 현금 10여만원이 전부였다고 한다(...)이 사건에 전 국민이 경악하던 것도 잠시 2001년 2월 27일 엎친데 덮친 격으로 영자의 후원회장이 소녀의 출연료와 인세를 횡령하여 구속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 영자는 서울로 올라온 후 후견인에게 돈을 모두 뺏기며 정신적, 육체적인 학대를 당했던 것. 여담인데 이 천하의 개쌍놈인 후원회장이란 작자의 아내란 여편네는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 남편 잘했는데 왜 가두냐" 라는 개소리를 지껄였다.
이 두 사건 이후 영자는 "세상이 너무 무서워요" 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속세를 떠나 인근 모 산사로 귀의하여 비구니가 되었다. 이것도 영자가 비구니가 되겠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떠난 것이 아니라 주변 친지 몇명에게만 말하고 그냥 홀연히 사라진 것인데 각종 뉴스와 언론사들이 영자가 사라졌다며 그녀의 행방을 사방으로 취재해 다니다가 절에 들어갔음을 확인한 것이다.
훗날 절에 처음 찾아온 영자를 돌봐주었던 혜설스님은 "절에 처음 찾아왔을 때 한동안 음식을 못하고 피까지 토했으며 대인기피증이 심했다. 자구책으로 여신도들만 있는 OO사로 몰래 옮겼다. 이 때 언론에서는 '영자가 실종됐다'면서 끊임 없는 관심을 표했다"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불행한 사건은 계속해서 터졌다. 2001년 7월 영자야 산으로 돌아가자 라는 추모 시집이 발간되었다. 책을 낸 신풍출판사에서는 전부터 영자의 아버지와 알고 지냈고 같이 시집을 낼 준비를 하다가 사고가 났으며, 갑작스레 세상을 뜬 고인과 최근 불교에 귀의한 영자양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에 책을 냈다고 하였다.하지만 이 시집이 영자와는 전혀 관련 없는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 영자의 동의 없이 만들어낸 창작물이라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또다시 개싸움이 벌어졌지만 당사자인 영자가 이미 모든 것을 버리고 불교에 귀의한 상황이라 어영부영 책이 출간되어 팔리는 것으로 끝났다.
이후 한동안 한국 상업주의에 대한 엄청난 비판이 가해졌다. 산골에서 오순도순 잘 살고 있는 두 부녀를 도시로 억지로 끌어내어 결국 비극의 수렁으로 몰아넣은 건 이 부녀를 오직 돈으로 여긴 광고주와 인간극장 제작진들의 잘못이라는 주장이 널리 퍼졌다. 인터넷상에서는 그때 당시 역시 한국인들은 개종자이자 박멸대상이라는 2CH급 자학 비난이 쏟아졌다.
속세를 떠난 영자는 법명을 얻고 고향 강원도의 한 암자에서 수행하는 삶을 택했다. 이후에도 그녀를 취재하려는 기자들이 많았으나 반장 스님이 "**스님은 만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지금 너무나 밝고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서는 여전히 아파합니다. **스님의 출가 전 상황에 대해서 알고 있는 스님들도 몇 안되니 그냥 돌아가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라는 말을 하면서 내보냈다. 그럼에도 기자들은 다른 암자에 **스님이 온다는 정보를 듣곤 거기로 개돌했다가 그곳 암자 주지 노스님에게 "사람을 두 번 죽이려 드느냐!" 는 분노 어린 호통과 같이 내쫓겨버렸는데 다른 스님이 왜 그렇게 가만히 계시는 스님을 못 건드려 안달이냐면서 계속 이러면 우리도 가만히 안 있을 테니 얼씬거리지 말라는 항의를 하자 물러났다고 한다.
영자의 아버지를 죽인 범인은
2012년 한 월간지에서 영자의 친척을 찾아갔는데 그들도 비구니가 된 영자에 대하여 소식은 모른다고 했다. 다만 이 기사에선 영자가 살던 집은 그대로 남아있는데 해마다 세금으로 1만 5천원 정도가 나온다고 그냥 이 친척들이 부담하고 있으며 집도 관리하고 있었다. 영자에게 집의 소유권이 이전되었지만 과연 돌아올 지 모르겠다며 친척들도 우리도 괴로우니 더 이상 그만 찾아와달라고 말을 마쳤다.
이와 비슷한 케이스로 영화 집으로에 출연한 김을분 할머니의 경우도 있었는데 할머니가 유명세를 타면서 심지어는 할머니가 돈을 많이 벌었다는 루머 때문에 이상한 사람들이 집 근처에 어슬렁거리게 되자 결국 할머니의 자식들이 서울로 모셔가게 되었다. 워낭소리의 할아버지, 할머니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이때 여기 나온 할아버지는 워낭소리 감독이 싫다고 하소연할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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