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인생 시나리오는 누가쓰는건지.. 왜이러죠

지옥같은24년2014.07.07
조회269
부모님은 중매로결혼 했다
엄마는 어릴때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외할머니는 여기저기 떠돌며 가정부일을 하셨단다.. 하고싶은 공부는 당연히 할수없었고 이모할머니댁에서 눈치밥을먹으며 두 삼촌, 이모와 커왔다고 했다. 성인이 되어서 버는돈은 모두 이모할머니 손으로 들어갔고 엄마에겐 딱 차비만이 들어왔다고한다. 이런 생활이 지긋지긋하여 도피하듯 아빠를 만나 결혼했다. 제대로된 연애 없이.

결혼하면 시골 부잣집에서 자라고 법대를 졸업한 아빠와 그림만 그리면서(엄마는 미술공부를 하고싶어했지만 하지못하셨다.) 행복할줄알았지만 현실은 정반대. 시댁의 시집살이에 전공을 살리지못하고 실직자생활이 길었던 아빠의 수입은 변변찮았고 나와 동생은 점점 커가고 늦둥이까지 생기며 점점 늘어가는 카드빚, 맞벌이를 해도 역부족에 엄마는 40도 채 되기전에 당뇨병 진단을 받았다. 사랑없이 한 결혼은 생활고까지 겹치며 위기를 맞이했고 내가 17살이 되던해 부모님은 이혼절차를 밟으셨다. 법원에 점심때쯤 간다고 하던날 점심시간에 시계를 봤다가 교실에서 하염없이 울었다. 5교시가 시작되어도 그칠수가 없었다.

그러고 아빠와 두동생과 살았다. 살림에 서툰 아빠와 참많이 싸우고 부모님 원망도 많이하고 눈물로 지새운밤을 셀수가 없었다. 삐뚤어질수가없었다. 두동생에 대한 책임감과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럭저럭 지내다 고3 입시를 망치고 재수를 결심했다. 재수를 하던중 엄마와 살게되었다. 그렇게 밉던 아빠였는데 방3칸짜리 집이 텅텅비어잇고 아빠혼자 외로이 티비보며 누워있는 뒷모습을 보면서도 참 많이 울었고 그모습은 지금도 생각나면 가슴이 미어진다. 스무살에 처량한 모습의 아빠를보며 처음으로 가슴이 미어짐을 느꼈다.

엄마와 살게되면서 새아빠라는 사람이 생겼다. 맘에들진 않았지만 엄마가 좋다니까. 친아빠의 뒷모습이 생각나서 아빠라고 부를수없는 동거인이 생긴것뿐이었다. 그동안 나름 이를 악물고 공부를 했지만 실전에서 무너지는바람에 재수도 실패하고 원하는 전공으로 전문대를 들어가 잘 다녔다. 새아빠와의 관계는 여전히 데면데면 아무리잘해주셔도 어쩔수가없었다. 생부를 없는셈 치겠다는 생각이 추호도 없으니까.

가끔 새아빠와 엄마가 다투긴했지만 두분이서 잘 화해하곤 하셨다. 사소한 다툼이야 당연히 있을수 있으니까. 개의치않았다. 나와 동생들은 친아빠와 종종 만나며 부녀관계를 유지했고 자주못만나니 서로 잘해줄수 있구나.. 좋게좋게 생각하려했다.


난 2년동안 장학금도 받아가며 열심히 학교생활을 마쳤고 큰동생도 대학입학을 하게되었는데 타지로 가게되어 기숙사를 들어가고 막내는 중학생이 되었다. 난 편입을 결심하고 2년후에 4년제 대학에 갈 목표로 알바와 공부를 병행했다. 여전히 엄마와 새아빠는 가끔씩 싸웠지만 말려야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다가 두분이 술장사를 시작하면서 위기가 시작됐다.

술장사를 하려니 낮밤이 바뀌면서 나와 막내를 거의 챙겨주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새아빠한테는 항상 따뜻한 밥을 내어줬고 나와 동생은 끼니는 어쩌다 새아빠와 함께 먹을때만 갓 지은밥을먹고 그외에는 찬밥에 남은 국이나 남은 반찬 대충.. 그래도 두분이 바쁘니까 이해했다. 술장사를 시작하면서 퇴근하고 새벽이나 아침에들어와서 엄마와 새아빠가 다투는일이 잦아졌다. 물론 음주상태거나 만취상태로 들어오는 일도 잦았다. 엄마가 우울증에 당뇨합병증으로 10년넘게 고생하면서 못볼 꼴을 많이봤는데 이런 생활도 못볼꼴이 되었다.

장사시작한시 1년쯤 되니 더 자주 싸우고 만취상태가 더 잦아지고 싸울땐 언성이 높아지는것도 모자라 새아빠의 기물파손이 시작되었고 어느새 엄마를 손찌검하기에 이르러 작년 겨울에 새아빠가 던진 선풍기에 엄마가 맞아 이마가 찢어져 5바늘정도 꿰맸다. 이정도되니 새벽에 툭하면 큰소리에깨서 잠도못자고 싸움말리고 말리다가 나도맞고 온동네 사람들 깨우기가 일쑤..

이런 환경속에서 사니 난 오기가 생겨서 편입준비를 더 이악물고했다. 이혼가정에서 자라서 저모양이라는 소리 듣기싫어 밖에선 아닌척 아무렇지않은척 열심히 공부했다. 결국 올해 원하는 대학에 들어갔고 이번학기도 그 오기로 열심히 다녀서 한과목 제외하고 올A+를 받았다. 그래도 항상 집에오면 허탈했다. 고등학교때부터 항상 그랬다. 밖에서 뭔가를 이루고 보람을 느껴봤자 집에만오면 모두 무너져 내렸다.

새해가 밝아오는 1월1일새벽에도 남들은 꿀같은 주말 새벽에도 밤새공부하고 푹 자볼까 하는 새벽에도 툭하면 싸우는 엄마와 새아빠때문에 난 집에 들어가는게 이젠 늪으로 들어가는것같다.

방학을하니 집에있기 싫어서 학교에 나가 공부하고 친구들만나고 남자친구만나고 알바하고 엄마와 새아빠가 출근하고나서 동생만 있는 집에 들어가는게 그나마 편안했다. 찬밥을 혼자 먹게되더라도 그게 그나마 편했다.

하루하루 최악의 날들이라 생각했지만 가장 최악인하루는 2014년 7월 6일 이다. 바로 어제..
아침에 알바가야하는데 새벽에 또 싸움이 일어났다. 이제 개ㅈ같은년, ㅆ년,ㄱ같은년 이정도의 욕은 술술 나오는 새아빠란 사람 입에선 수건 물은 소리가 줄줄 나오고 어김없이 손은올라가고 막내는 또 그걸 말리겠다고 울며불며 나와서 온몸으로 막아보려하고 그러길 5~6시간. (전에 내가 몇번말렸는데 엄마란사람이 참견하지말라고 저리가라고 몇번 밀쳤는데 그때 기분이 너무 더러웠다. 맞는걸 보고만있으라는거다. 그래서 큰소리나도 손찌검나지않는이상 침대에서 그냥 악몽같은 시간을 뜬눈으로 보낸다.) 알바 출근시간맞춰 준비하고 집을나서기 5분전 막내가 엄마를 때리려는 새아빠를 온몸으로 막고있는데 내가 알바간 사이에 행여 막내도 손찌검당할까싶어 막내 손대면 가만안두겠다고 말했더니 그말에 혼자 열받아서 선풍기 집어던지려는거 엄마 나 막내 셋이서 매달려서 떼내니 청소기를 잡고 던지려하는거 간신히 떼어냈더니 엄마를 가만안두려는걸 또 매달려 말리는중에 여닫이 유리문으로 된 내방문 유리를 맨손으로 내리쳐서 팔이 찢어져 온 방바닥이 피범벅에 119부르고 지혈해야해서 새아빠 팔을 심장보다 높게 받치고있으니 내손으로 시뻘건 피가 흘러서 바닥으로떨어지는데 그순간 미치는것같았다. 살해현장을 방불케했다.

소방대원이 어쩌다 이랫냐는말에 새아빠란사람 입에서 나온다는 소리는 '큰딸이 날건드려갖고.." 딸이라는 단어가 나오는것부터 소름끼친다. 그렇게 새아빠란사람은 실려갔고 알바는 갑자기 못나가게되었고 깨진유리조각이며 굳어가는 핏덩어리며 혼자 다 치우면서 이 유리조각으로 내 몸 그으면 아프겟지 죽긴하려나.. 사람 찔러죽이면 피가 더 많이나겠구나..싶었다. 그냥 미쳐버리고싶었다.

상처를 꿰매고 병원에서 돌아온 두사람과 한집에있기싫어 막내를 데리고 잠깐 외출하고 들어오면서도 여기서 떨어지면 죽진않겠네.. 차에 치이면 죽으려나.. 이대로는 살기싫다

나와서 살 생활비를 받을수도없고 학교다니면서 생활비를 벌수는없고 휴학을하자니 나이가 어린편이아니라 빨리 졸업해서 취직해서 출가하는게 답인데.. 친아빠도 머지않아 고향으로 내려가실 계획이라 갑자기 아빠와 살겠다고 나올수가없다.

지긋지긋하다. 차라리 타지에서 생활하는 큰동생이 더 나은거같아서 편입할때 인서울말고 지방대가 되었으면 좋겠다 싶기도 했다. 나혼자 나오고싶어도 고작 중3밖에안된 막내가 어른거려 ㄴㅏ혼자 살겠다고 나올수도없다.

큰동생과 내가 학교졸업하고 취직하고 같이 집구해서 막내랑 셋이서 살 날만 기다리며 살아야하는데 자꾸 부정적인생각이들어 잠이 안온다..

경찰에 왜 신고안하냐 하겠지.. 엄마가 뜯어말리는것도 있고 경찰부르려고 마음먹으면 경찰이아니라 119불러야 하는 상황이 온다. 119대원이 집에오는순간 상황종료.


이젠 엄마가 불쌍하지도않다. 그래도 친아빠랑 싸우고 병원간적은 없었는데 어디서 저런 쓰레기같은 남자를 아빠라고 데려왔는지도 모르겠고 그저 나와 내동생들만 가엾다. 전생에 무슨죄를 졌길래..

난 이제 고작 24살이다.
25살, 26살... 그 이후의 시간들속에서 행복하게 살수있을까... 이때 내가 살아있긴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