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도> 3세 미만의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어린아이들의 죽은 귀신이라고 하는데, 보통 영매들이 이 귀신을 접하면 말은 하지않고 휘파람이나 여러 손짓 말짓을 한다고 합니다
<동자 동녀> 대략 5세에서 15세 사이의 귀신들로 주로 무당의 몸을 빌려서 나타나는데 이 귀신을 받은 무당들은 어린아이의 말로 자신의 의사를 전 한다고 합니다 신통력은 강하지만 자신의 기분따라 행동 하고 인간에 대한 정이 성립되지 않았으므로 변덕이 심하다고 합니다..
<태자귀> 세상에서 말하는 '태자귀'는 '어린아이 귀신'으로 주로 낙태나 아사로 한을 지고 죽은 아이의 원귀를 가르 킵니다.. 이것이 '태자'라는 이름을 붙이게 된 것은, 옛날 중국 진의 태자 신생(太子申生: 춘추시대 진 헌공이 려희를 사랑해 그 아들 계제를 세우고 태자 신생을 내쳤는데, 려희가 신생을 모함해 죽게 했고 신생은 원귀가 되서 려희를 미치게 했다고 합니다) 에게서 나왔다고 합니다.
이 태자귀는 어린아이의 유혼체백(遊魂滯魄)-'혼(魂)은 날아가고 백(魄)만 엉긴 상태)으로 사람에게 붙어서, 사람의 길흉과 먼 곳의 일을 무당의 질문에 따라 응해 알려준다고 합니다.
이 어린아이의 유혼체백이 돌아다니면서 집집마다 방문해, "제자가 되어 드릴까요?"하고 가느다란 목소리로 말하는데, 이때 그 집 부인이 "그렇게 하라."하고 응답하면 이 아이귀신은 곧 붙어서 떠나지 않게 되고, 그리고 그 부인은 태자귀가 붙은 무당이 됩니다.
이 경우, 다른 아이귀신이 집을 방문해 몇 번을 불러 물어도, 집안 부인이 응답하여 허락하지 않으면 결코 붙는 일이 없습니다.
이익[李翊, 1629~1690-현종때의 문신] 의 친척 부인 한 사람이 이 아이귀신의 물음에 장난 삼아 대답했다가, 태자귀신이 붙어서 여러 가지 방법을 써서 쫓으려 해도 되지 않고 기어이 병이 심해져 죽었고 합니다. 이럴 경우 굿을 하고 태자귀신을 모신 다음 무당이 되면 부인이 죽지 않지만 양반 가문에서는 무당이 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 습니다..
우리나라 무당 중에서 태자귀 무당이 단연 많고, 또 태자귀 무당의 점이 잘 맞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선지 태자귀를 인의적으로 만드는 경우도 있는데 다소 끔찍한 방법입니다..
무당이 아이를 데려와 좁고 햇빛이 닫지 않는 곳에 가둬서 몇일을 굶깁니다.. 그럼 아이가 배고품에 울다가 거의 실신지경에 이르면 먹을것을 아이앞에 갖다 놓는데 아이가 힘이 없음에도 음식을 먹기위해 손을 내밀면 그 손을 잘라 아이의 넋을 손에 봉인한후 시체는 48조각으로 잘라 태운후 손을 작은 괘짝에 놓아 99일이 있으면 아이의 영혼을 조종할수 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의 기록서나 1976년경 신문에 실제 아이를 납치해서 태자귀를 만들려고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손말명-처녀귀신> 아시다 시피 조선조 여인들의 삶은 정말 비참했습니다.. 특히 성적으로 많이 억압되어 연애도 제대할수 없었죠.. 그래서 처녀로 죽으면 너무나 억울해서 도저히 그냥 떠나지를 못하고 원한이 남은 귀로 한이 귀기로 응집되어서 자신의 집 식구들을 저주하거나 자기 또래 혼기가 차있는 처녀에게 해를 끼친다고 합니다.
일단 손말명이 처녀 몸에 붙으면 처녀는 이를 떼기 위해 기도를 하고 여러가지 공물을 바친다고 하는데. 무녀는 처녀의 의복을 빈방에 쌓아두게 하고 주야로 치성을 들입니다.
손말명이 처녀의 몸을 떠나 처녀의 옷에 옮아붙도록 하기 위해서이죠.
더구나 처녀의 영혼들이 실은 가장 말썽을 부린다고 하는데, 영적 힘도 강하고 여간해서는 말도 잘 듣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처녀가 죽으면 손말명이 되지 않도록 남자 옷을 입혀 거꾸로 묻거나, 가시가 돋친 나무를 관 주위에 넣고 매장하기도 하였습니다.
이 밖에도 사거리의 교차점이 되는 곳에 시체를 은밀히 매장하여 많은 남자가 밟고 지나가게 함으로써 처녀귀신의 못다 푼 정을 달래 는 풍습도 있었죠..
또한 유교의 음양이기론과 가부장적 사회에서의 여성을 천대하는 남존여비 사상은 처녀 귀신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확대 시켰습니다..
<두옥이 귀신> 조선 시대의 악귀로 어우야담에 소개 됩니다..
{평양기생중에 두옥(斗玉)이라는 뛰어난 기생이 있었다. 평생 몸을 기탁할 남자를 찾기위해 절대로 몸을 허하지 않던 그 기생은 평양감사에게 몸을 풀었다.
하지만 그 감사는 두옥을 배신했고, 두옥은 한강에 몸을 던져 죽었다.
두옥의 귀신은 그 감사의 아들을 괴롭혔고, 그 것을 우연히 지나가던 승려가 도와준다. 그 감사는 승려의 도움을 얻어 두옥 귀신을 모시는 사당을 지어 그 원혼을 잠재웠다. 두억시니는 이 두옥이 귀신이 와전된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나오는 두옥이 귀신은 삼국 시대와고려시대의 수두신인 두억시니가 악령화되 전해진 겁니다.. 조선시대는 유교를 숭상 했는데 세상을 이기와 음양으로 양분되게 보는 유교의 사상관은 조상신과 유교의 신을 제외한 귀신에 대한 신앙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이때문에 신령적 존재인 도깨비들도 부정하게 전해 졌는데 남존 여비의 사상으로 도깨비들중 강한 힘을 가진 두억시니가 여성화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외에 대부분의 귀신도 여성화 되죠,,
두옥이 귀신은 두억시니가 여성화된 존재로 검은 복장에 하얀 머리 카락을 한 여인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성질이 사나워 사람들을 헤친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에선 손말명 보다더 사악한 처녀 귀신을 흔히 두옥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조선이 고려의 정신을 없애기 위해 두억시니에 대한 기존의 수호신적 이미지에 대해 탄압을 한걸로 볼수 있습니다..
<몽달귀신-도령신> 이름은 좀 얄궂어도 총각귀신에게 붙여진 이름입니다.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제사를 얻어먹지 못해서 한이 남은 고혼으로 손말명에 비하면 인지도가 약하지만 원귀(寃鬼)가 되어 사람에게 해를 끼칠 가능성이 있습니다..
특히 상사병에 걸려서 죽은 총각귀신은 사랑을 이루지 못한 한 때문에 처녀에게 해코지를 할 수 있습니다.
보통 무당이 다른 처녀귀신과 사혼식(死婚式)을 열어줘 죽은 총각의 한을 달래주는데. 비록 귀신들끼리 하는 결혼식이지만 궁합을 봐서 혼례날도 정하고 한지로 만든
허수아비 인형을 만들어 합방까지 시켜줍니다.
조선시대 황진이(黃眞伊)와 관련된 몽달귀신 사례가 유명한데. 평소 황진이를 흠모하다가 자살한 총각의 상여가 황진이 집 앞에서 멈춰 꼼짝하지 않았습니다. 이소릴 들은 황진이가 자기 속적삼을 주고 위로하자 상여가 다시 움직였다고 전해집니다..
<선관도사> 대체로 결혼을 하고 자녀을 두고 살다가 떠나게 되면 이승에 대해그렇게 집착을 하지는 않는 모양입니다만, 그래도 뭔가 한이 남은 영혼은 이렇게 선관도사라고 하는 이름으로 이승에 남아 무녀의 몸에 실려서 남의 길흉사를 예언 해주고 호구지책을 삼는 다고 합니다.. 원한이 약해서 위험한 귀는 아닙니다..
<선녀부인> 일단 자녀를 두고 죽은 여성 귀신을 얘기 합니다.. 대체로 선관도사랑 비슷 합니다..
<나무귀신> 한국의 대부분의 마을에서는 큰 고목을 당목(당산 나무) 또는 도당목이라 하여 마을 전체가 그 나무를 위하 고, 명절·산신제·기우제 등을 지냈습니다..
평소에도 그 나뭇가지를 꺾는 일은 없고 제사를 지낼 때는 금줄을 치고 주변에 황토를 뿌리는 등 정결하게 합니다..
평소 귀신에 대해 관심이 많고 여러 영적인 사건을 접했던 정약용은《산림경제》에서 오래된 나무에는 귀신이 모여든다 하였고, 중국의 고대전설에는 동해 가운데는 도삭산이 있고 그곳에는 도대 목이 있는데 그늘 넓이가 3,000리에 걸쳤다고 하며 여기에 귀신 의 무리가 모여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옵니다.
<무자귀> 무주귀라고도 하는데, 자손이 없는 사람이 죽으면 제사를 지내 줄 사람이 없어, 망령이 위안을 받지 못하고 고독과 불만 속에서 지내게 되므로, 이러한 영혼은 원귀가 되어 온갖 심술궂은 가해행위를 자행한다고 여겼습니다..
처녀 귀신과 몽달귀신도 무자귀에 속한다고 합니다..
<수사원귀-물귀신> 대개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이 귀신이 되어 물 속에 있다가 다른 사람을 잡아당겨 익사시킨다고 합니다. 예로부터사람이 물에 빠져 죽으면 그 곳에 고사굿을 지내고 물귀신을 위안하여 발동을 막으려는 풍습이 있었죠,,
물과 귀신은 상극이라 물에 빠진 사람의 유혼체백은 얼마 못가 소멸 됩니다..
이렇기 때문에 물귀신이 되는 경우는 대체로 여러 사람들이 사고나 적들에게 떼죽음 당하여 단체로 수장 당한 경우로 그 한맺힌 유혼채백들이 합쳐저 생긴 다고 합니다..
다수의 원이 맺힌 만큼 물귀신들의 위험도는 엄청 큽니다..
한국에서는 사해신이라 하여 동해신은 강원 양양에서, 서해신은 황해도 풍천에서, 남해신은 전남 나주에서, 북해신은 함경 경성에서 음력 2월과 8월에 제사지냈으며
칠독신이라 하여 전국의 이름난 7곳의 나루터, 즉 서울의 한강, 평양의 대동강, 의주 의 압록강, 공주의 웅진, 장단의 덕진, 양산의 가야진, 경원의 두만강 등에서 춘추로 오색축폐를 물 속에 던지고 제사를 지냈습니다.
목적은 수재를 없애고 강물에서 사고가 나지 않도록 용신에게 비는 데 있었습니다. 용신도 크게 보면 물귀신의 일종이죠.
<미명귀> 전처가 죽은후 남편이 후처를 두자 전처의 영이 질투 때문에 후처에게 붙어서 괴롭히는 귀를 가르킵니다. 후처가 병이 들게 되었을 때에 미명귀의 짓이라 하여 무당을 불러 귀신을 달래는 굿을 하였습니다
또는 근본적으로 퇴치한다 하여 무덤을 파서 시체를 화장하고 큰굿을 하기도 하였죠..
원래 미명귀는 남의 아내로 젊어서 죽은 여자의 귀신을 가리켰으나 점차 그 뜻이 확대되어 억울하게 죽 은 사람의 귀신 ·처녀귀신 ·총각귀신 ·청춘 과부귀신을 통틀어 이르게 되었습니다..
<새타니> 새타니는 부모에게 버림받아 굶어죽은 아이의 영혼을 가리키는 말로 제주도 설화에 새타니에 대한 얘기가 있습니다.. 옛날에 전역을 돌며 소금을 팔던 소금장수가 집에 오니 아내는 옆집 남자랑 눈이 맞아집안의 폐물을 갖고 도망가고 그의 젖먹이 아이는 굶어서 죽어 있었습니다..
이에 충격을 받은 소금장수는 반쯤 실성한체 아이의 시체를 소금자루에 절인체 자루를 메고 전국을 떠돕니다..
그후 3년뒤 한 부자의 소실이 되서 잘살고 있는 아내를 발견한 그는 집안으로 뛰어 들어가 아내앞에 소금자루를 집어던지자 아이의 시신이 썩지도 않은체 어미를 향해 조금씩 기어왔고 그 모습을 본 아내는 심장병으로 죽었다는 내용으로 썩지 않은 아이의 시신은 소금에 절여졌기 때문에 미이라화가 된거라고봅니다..
이렇듯 세타니는 어미한테 버림 받아 굶어 죽은 아이의 원귀를 가리키는데 태자귀보다 능력이 더 강하다고 합니다..
<새우니> 새우니는 원래 무당이 사역한 귀신이 영적 능력을 쌓아 진화된 악귀로 작게나마 날씨도 변화시킬 정도로 능력이 쎄고 통제불능이라 자신을 부린 무당을 죽이고 사람들을 괴롭힌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외에도 원한이 너무 강한 경우에도 새우니가 될수 있습니다..
청구야담(靑丘野談)에 기록된 새우니의 내용을 보면 정조 8년에 평산 지방의 한마을이 원귀에 의해 질병이 퍼져 가축들과 사람들이 떼 죽음 당했다고 합니다..
새우니는 자아도 분명한데다 원하는 곳은 어디로든 갈수 있었기에 그냥 두면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건 불보듯 뻔한 일이였습니다..
결국 여러 고승들과 무속인들이 나서서 마을에 진을 치고 몇일간 악전고투 한 끝에 새우니를 봉인 했다고 합니다..
봉인 하는 과정에 새우니의 살아 생정 모습이 투영 되는데 그녀의 생전 이름은 박소사 였고 18살에 시집와 몇개월후 살해 됬다고 합니다..
그녀를 죽인 사람은 그녀의 남편인 조광선과 박소사와 10살 차이 밖에 안나는 시어머니 최아지 였는데
최아지는 남편이 죽은후 양아들인 조광선과 간통을 했다가 임신을 하게 되어 아이를 죽였는데 그 광경을 박소사가 보게 되자 박소사 역시 죽이고 자살로 위장한 거였습니다..
박소사는 공식적으로 우리 나라 최초로 부검을 당한 시신이기도 한데 무려 두번이나 부검을 당했지만 결국 자살로 판명 됬고 이에 그녀의 원한이 쌓여 갔습니다..
결국 이 사실을 들은 정조가 직접 조사를 명하고 그녀는 10년 후에야 자신의 억울한 죽음을 알릴수 있었다고 합니다..
<손돌이 귀신> 드물게 바람을 조종 하는 풍신으로 전해지는 귀신으로 경기도 김포군과 강화군 사이에 있는 손돌목이라는 여울의 지명의 유래 이기도 합니다.. 손돌설화의 기본형은 손돌목·손돌무덤이 있는 강화·인천 지방을 중심으로 전승되어왔다고 하죠..
고려때 원라의 침입으로 고종이 강화로 피난을 할 때, 손돌이란 뱃사공이 왕과 그 일행을 배에 태워서 건너게 되었습니다.. 손돌은 안전한 물길을 택하여 초지의 여울로 배를 몰았지만 마음이 급한 고종은 손돌이 자신을 해치려고 배를 다른 곳으로 몰아가는 것으로 의심하고, 신하를 시켜 손돌의 목을 베도록 명하였습니다..
이때 손돌은 고종에게, 자신이 죽은 뒤 배에 있는 박을 물에 띄우고 그것을 따라가면 몽고군을 피하며 험한 물길을 벗어날 수 있다는 말을 남기고 죽었다고 합니다.
손돌을 죽이자 적이 뒤따라오므로 왕과 그 일행은 손돌의 말대로 박을 띄워 무사히 강화로 피할 수 있었고 고종은 손돌의 충성에 감복하여 그의 무덤을 만들고 제사를 지내 그 영혼을 위로하였습니다.
손돌이 억울하게 죽은 날이 10월 20일이었는데 그 뒤 이날이 되면 여울목에 매년 추운 바람이 불어오므로, 사람들은 손돌의 원혼에 의하여 부른 바람이라 생각하여 손돌바람이라고 부르고, 이 여울목을 손돌목이라 칭하게 되었답니다.
충청북도 영동지방에서는 10월 20일을 '손사공 죽은 날' 또는 '모진 놈 죽은 날'로 표현하여, 손돌귀신을 아주 무섭고 흉악한 모습으로 생각했습니다..
요즘 최종 평결이 나서 한참 미국에서 화제인 사건이야. 제 2의 OJ 심슨 사건이라고 불리기도 하지.
*
3살짜리 여자아이 케일리는 미 플로리다의 집에서 미혼모인 엄마 케이시 앤서니와 외조부모와 살고 있었어. 2008년 6월 16일이 이 아이가 목격된 마지막 날이야. 이날 아이 친엄마가 데리고 나간 이후 31일 동안 집에 돌아오지 않았지. 아이의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는 아이의 행방을 계속 물어봤지만, 엄마인 케이시는 일로 너무 바쁘다며 대답을 회피하고 아이는 보모가 데리고 있거나 놀이공원이라거나 해변에 갔다거나 하고 이야기를 했지.
한달 후, 할아버지 할머니는 딸(아기엄마) 의 차가 견인되어 있다는 소식을 보고 보관하는 곳으로 가. 그렇게 해서 케이시 앤서니의 차를 찾는데, 이 때 견인 장소에서 안내하던 사람과 할아버지는 둘다 불쾌한 냄새를 맡아. 트렁크에서 나는 불길한 냄새... 그건 생물이 죽어 썩어가는 냄새가 바로 연상되는 것이었어. 아이 할머니인 신디는 뭔가 잘못됐다고. 차 안에 뭔가 죽은 시체가 있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어. 시체는 없었지만 굉장히 특이한 냄새는 남아 있었고 파리와 구더기, 그리고 쓰레기가 차에 가득했다고 해. 그리고 마침내 무슨 불길한 예감이 들었는지 그날 손녀의 실종 신고를 해. (7월 15일)
제 1차 조사 대상은 당연히 아이를 데리고 나간 아이의 친모가 되었지.
케이시 앤서니는 그동안 아이를 보살펴 주었던 "Zanny" 라는 보모가 자신의 아이를 납치해서 자신과 같이 있지 않다고 주장했어. 그러나 그런 보모와 케이시가 말한 전화번호는 존재하지 않음이 밝혀졌지. 케이시 앤서니는 "유니버설 스튜디오" 에서 일한다고 부모와 가족에게 말하고 다녔지만 조사관들이 그녀가 일하는 곳으로 데리고 가기를 요구하자, 몇년 전에 해고된 직장으로 데리고 갔지. 그녀가 말한 것은 전부 거짓말이었어.
7월 16일, 케이시는 아이 방치와 거짓 증언 등의 혐의로 처음 체포되었어.
케일리는 12월 15일 집에서 400m 여 떨어진 풀숲 안에서 코와 입이 공업용 덕테이프로 칭칭 감긴 채 심하게 부패된 상태로 발견되었어.
아이의 몸은 실종 후 6개월이 넘어 심하게 부패되어 지문이나 사인 흔적을 추론하기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어. 검은색 쓰레기 봉투에 들어 있었던 아이의 입과 코를 막은 것은 배관공사 용 공업용 테이프인 덕테이프로, 아이의 입에 붙은 하트무늬 스티커는 케이시의 집에 있는 것과 동일했지. 아이는 코와 입을 꽁꽁 동여맨 테이프로 인해 질식사했어.
이 사건의 특징은 아이가 살해된 날짜로부터 보고된, 발견된 순간 사이 시간이 많다보니 물증이 거의 없다는 점이야. 시신 훼손도 심해서 알아낼 수 있는 정보가 많지 않았지. 그러나 정황 증거의 문제로 따지면 전혀 다른 이야기야.
아이 엄마인 케이시가 자신의 집 컴퓨터를 통해 구글로 찾은 기록을 살펴보면 "목 부러뜨리기" "클로로포름" "죽음" 등등의 단어가 발견되지. 특히 마취제의 일종인 클로로포름에 한해서는, 제조법에서 사용법에 이르기까지 84차례 검색한 기록이 나와. 실제로 이 약품은 케이시의 자동차 안에서 발견되기도 했지.
"6월 21" 일자로 날짜가 쓰여진 케이시의 일기에서는 (아이의 실종은 16일이었음을 다시 상기시킬게)
"나는 후회가 없다, 다만 조금 걱정될 뿐이다. 모든 것이 잘 되기를 바란다. 나는 내 판단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내가 옳은 판단을 내렸다고 생각한다. 나는 다만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미래가 내 편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나는 곧, 이것은 내가 매우 오래 전부터 해왔던 일 중에 가장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나는 내 행복이 점점 자라나기를 바란다. 나는 새로운 친구들을 만들었고, 좋은 사람들에게 둘러 쌓여 있고.... 나는 마침내 행복해 졌다. 앞으로 변하지 않기를."
이 일기의 중요한 점은, 공교롭게도 연도가 적혀 있지 않기에 이게 2008년 6월 21일에 쓰여진 것인지 확신할 수 없다는 점이지. 케이시의 변호인단측은 이 일기가 03년도에 쓰여진 것이라 주장하고 있어. 이는 이 일기의 다른 장에서 03년도에 사귀었던 남자의 이름과 노트에 쓰여진 '03' 이라는 숫자를 볼 수 있기 때문이지. 그러나 이 '03' 이라는 숫자가 확실히 연도를 나타낸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을 뿐더러 이 노트 자체가 04년 이후에 시장에 나온 제품이야.
케이시의 트렁크에서는 시체가 썩는 듯한 고약한 냄새가 나고 있었어. 그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케이시는 이 모든 일이 일어나는 동안 진술을 수없이 번복하고 위증을 하면서 지냈어. 처음에는 보모가 납치해갔다고 하였고, 3년의 복역 후 그녀는 증언을 다시 번복하여 집 풀장에서 빠져 죽은 아이를 자신의 부모가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몰래 유기하였다. 그동안 거짓말을 했던 이유는 아버지의 유년기부터의 성추행으로 정신이 불안정했기 때문이다 라는 진술로 혐의를 아버지에게 떠넘기는 태도를 보였어. 수많은 진술 번복에 이어 또 하나가 추가된 셈이지.
그녀의 주장에 따르자면 어린 나이에 아이를 잃은 비극의 주인공으로 생각될 수도 있었지만 조사가 진행됨에 따라서, 걱정하는 모습과 전혀 상반되는 모습이 발견되었지. 아이가 실종된 것으로 알려진 6월 16일 직후, "아름다운 인생" (Bella Vita) 이라는 문신을 어깨에 새겼고. 그 후 체포되기 전 31일동안 케일리를 찾는 부모의 전화를 거짓말로 둘러대면서 선글라스, 맥주, 나이트가운, 브라 등을 쇼핑하거나 남자친구와 영화를 빌려보고 파티에 가서 밤새도록 광란의 밤을 보내거나 술집에서 "Hot Body Contest" 나 "Shot Girl" 등에 참여하고 남자친구와 찍은 열렬하게 키스하고 있는 사진이나 행복한 표정으로 찍은 사진들이 차례차례 유포되면서.... 미 전역은 홍수처럼 들끓었어.
케이시 앤서니는 1986년생으로 아이를 낳을 때는 만 19살이었다고 알려져 있어. 일찍 아이를 낳은 것 뿐 아니라, 문서 위조나 친구의 신용카드를 맘대로 쓰거나 개인정보를 맘대로 유용하고 한도를 넘어서서 카드를 쓰고 사고를 치는, 다소 구제 불가능한 "파티 맘" 이었지.
(케이시의 변호인단측은 그녀 아버지와 오빠의 성추행이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다고 주장하고 있어. 물론 반대측은 여기에 대해서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확실하게 판명난 바는 없지. 케이시의 변호인측은 케일리 또한 두 남자 중의 하나의 아이라 주장하지만 일단 DNA 검사에서는 아닌 것으로 판명이 났어)
검사를 비롯하여 티비를 통해 정황을 본 수많은 미국인들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다음의 시나리오였어.
아이를 낳음과 함께 이십대의 화려한 생활을 빼앗겨 불만에 가득한 이십대 초반의 케이시가 걸림돌이 된 아이를 죽였다. 아이를 데리고 나와서 클로로포름으로 아이를 마취한 후 덕테이프로 입과 코를 막아 질식사 시켰고, 일단 집의 뜰에 묻은 후 다시 파내어 시체를 자동차로 날라서 숲 속에 유기, 그 후 차를 놓고 도망친 것이라고. 그리고 걸림돌이 된 아이를 죽인 후 죄책감 없이 거짓말로 일관하면서 화려한 생활을 맘대로 영위하고 있다고.
그러나....
이 판단에는 결정적으로 물증이 부족했어. 모든 정황 증거가 케이시 앤서니가 범인임을 가리키고 있지만 경찰은 그녀를 범인으로 확정지을 물증을 찾는 데는 실패했어.
이 아이엄마는 며칠 전 1급 살인 혐의에 대해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어. 이미 경범죄에 관하여서는 3년 복역을 마쳤기 때문에 그녀는 이제 곧 출소해서 평범한 삶을 살아가겠지. 그리고 법원에서 결정짓지 못한 범죄로 그녀를 단죄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
그러나 실형 여부와 관계 없이 이 판결을 처음부터 지켜본 사람들의 마음에 던진 돌덩이는 엄청났어. 수많은 정황 증거에도 불구하고 물증의 부재로 가장 유력한 용의자가 무죄로 판결이 났을 때... 우리는 어떤 판단을 믿어야 하는 걸까?
[실화괴담] 단편 모음 112
자주 올릴려구요 12시지나서 다음편 바로 올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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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을 치른 후에 귀신이 보여
할아버지 장례식을 갔다온 뒤로 귀신이 보인다.... 아무래도 날 따라온거 같은 느낌인데
상 치를 때 온 가족이 다 장례식장에서 잤어. 근데 다들 뭐 이상한 일 있다던가 그런얘기들이 없더
라. 나만 그런거 같아.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거는 5월 17일이었구 새벽 1시 반이라고 하는데 사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시간에 나만 혼자 집에 깨어있었는데 이상하게도 우리집이 정전이 되었어. 그러다가 거실등은 계
속 깜빡거리고 전자레인지 불이 꺼졌다 커졌다했구.
왠지 뭔가 안좋은 느낌은 들었는데 실제로 그런일이 있으니까 되게 의미있게 다가오더라.
내가 장례식에 도착한건 저녁 6시정도였어. 손님도 많이 오시고 그래서 첫날에 약 230명의 손님이
오셨어. 그날 처음에는 되게 허둥지둥 음식 나르는데.. 한 11시였을까 사람들이 이제 발걸음도 많
이 줄고 해서 다들 쉬고 있었지.
그런데 남자손님 혼자서 오셔서 내가 자리 안내해드리고 "뭐 필요한거 없으세요?" 했는데
목소리 자체가 매우 소름끼치긴했어. "...ㅅ...주세요." 하는데 날이 되게 선 느낌이었지. 난 못알아
듣고 "소주 드릴까요?" 했는데 "...." 말이 없으시더라. 그래서 소주를 갖다드리고 상을 차려드렸어.
한 15분 뒤에 가시는데 내가화장실이 급해서 화장실로 가고있었어. 저 멀리 복도에서 아까 그남자
분이 가고있는걸 봤는데. 다리가 없는건 아니고 블러처리된 느낌이었고나랑 눈이 마주쳤는데 음영
져서 그럴다고 하기엔 입이 굉장히 길었던거 같아. 미묘하게 웃은거 같기도 하고...
둘째날은 사람이 더 많았어 이때는 350명정도 왔을거야. 정말 정신이 없었지. 가족따라 꼬마애들
도 많이와서 음식나르는데도 힘들었고 말이야. 근데 정말 이상한건 내가 사람얼굴을 잘기억하는데
어제 왔던 말이 별로 없으시던 손님이 오늘 또 오신거야. 내가 분명 기억하는데... 옷도 똑같고. 음
식나르는 것도 내가 했구.
셋째날에도 오셨어. 셋째날은 할아버지 마지막으로 만나고 이제 화장할 준비를 하는 단계였어. 그
래서 일손이 되게 모자랐는데 그손님이 또 오셨더라고 그래서 나는 "저번처럼 소주드릴까요?" 했
는데 목소리가 작고 발음이 뭉기져서 그런지 "싸를 주세요..." 하는데 다시 여쭤봐도 "싸..를 주세
요." 하는거야. 쌀? 식사만 달라는건가? 해서 그냥 식사를 갖다 드렸지.
근데 내가 다른사람 음식 나르는 동안에 나를 계속 무섭게 눈도 안깜빡이고 쳐다보는거야. 정작 밥
은 안먹고... 안그래도 그 큰눈이... 처음봤을 때부터 눈이 충혈되었었는데 그래서 더 소름끼치고..
이상한 사람이려니 했는데 어느 순간 없어졌더라. 내가 친척오빠한테 "3일 내내오는 손님이 있었
는데 진짜 소름끼치게 쳐다보는 사람이 있었어." 라고 했는데. 친척오빠가 "어떻게 생겼는데?" 하
길래. 밤톨같은 두상에 눈이 굉장히 컸고 충혈되어있었고 키는 173정도에 검은색양복에 카라가짧
은 셔츠를 입고있었고 입술위에 왕점이있었다고 하니까..... "이상하네? 너가 말한대로라면
할아버지 동생의 2째아들같은데. 근데 내가 어제꺼까지 명단정리 했는데 그분 명단에 없어. 그리
고 못 본지 15년은 다 되어가고."
근데 나는 그냥 넘겼어 그러려니하고.. 이상하게 생각할 수록 괜히 더 상황이 이상해질거같아서.
셋째날 1시에 화장터로 가족들이 버스를타고 갔어. 그리고 화장하는 마지막 순간을 유족들이 볼
수 있게 장소를 마련한 곳이 있는데 가족들이 다 거기 있었어. 모르는 사람도 있넜지만. 근데 그 내
가 본 이상한 손님이 계신거야. 다들 울고계셨고 해서 그냥 눈감고 할아버지께 잘 가시라고 
기도하면서. 근데 누가 내 귓가에 "원래 나랑.." 하는데 정말 깜짝놀라서 주위를 둘러봤는데 그럴
장난할 사람들이 아니었어. 애들 목소리도 아니었구.. 화장이 끝나고 유골함이 나왔어.
그리고 할아버지 유골이 뿌려질 장소로 갔지.
다들 국화꽃잎을 같이 뿌리고 마음속으로 기도를 했어. (종교식이 아니라 이렇게 했음)
이제 갈 사람들은 가고 다들 수고했다고 손 한번씩 잡으면서 헤어졌어.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고
밤 11시쯤에 도착했어.
씻고 피곤해서 자려고 하는데 화장실불은 아직까지도 안 들어오더라고. 그래서 촛불을 켜고 샤워
하는데 머리를 감고있었는데 촛불이 꺼져서 문을 열고 샤워하는데 샴푸가 눈이매워서 실눈밖에 뜨
지 못했지만 분명 누기 보고있었구. 후라이팬 들고 알몸으로 온 방을 다 뒤졌는데 없더라. 결국 화
장실 다시 들어가기 무서워서 싱크대에서 머리를 마저 다 감았어.
할게 많아서 이것저것 다 끝내고 3시 40분에 잠자려고 양치질하러 화장실 가는데 내가 화장실 불
나간거 깜빡하고 스위치 켜려는데 스위치 옆에 검은 손이 있더라. 너무 놀라서 거실로 뛰쳐나갔고
다시 후라이팬을 들고 가는데... 그런건 없었어. 거실불도 켜져서 화장실입구까지는 환한편이라 어
두워서착각할 일도 없었고. 결국 양치질은 못하고 가글만하고 침대 옆에 무드등켜고 무서워서 엠
피로 음악듣고 있었는데 내가 잠들었긴 잠들었나봐. 좀 깼는데 음악이 계속 나오고있더라고. 근데
음이 좀 이상하고 내가 듣던 노래가 아니라 꺼버렸어. 엠피끄고나니까 잠도 안오고 해서 컴퓨터를
켰는데 키고서 모니터가 깜빡하고 내얼굴이 모니터에 비쳐서 잠깐 보였는데 무드등 위에 사람 옆
모습이 보였었어.
내가 헛것을 본건 아니니까 집에 있는 소금 5kg을 온 집에 다 뿌리기 시작했어. 그리고 3박 4일을
친구네 집에서 보냈고. 혹시 몰라서 슈퍼에서 소금을 사가지고 갔고 현관문 키를 누르려는데 뭔가
두런두런 모여서 이야기하는데 들리더라. 그래서 현관문에 귀를 대는데 진짜 무슨 소리가 들리더
라고 근데 어느 순간 멈추더니 끽낃낃? 소리가 비슷하게 나더라구...
가구 질질 끌리는 소리도 나구. 근데 아랫집아줌마가 엄청 화난 채로 우리집에 달려오셨는데 왜이
렇게 요즘따라 시끄러? 하시는거야. 난집을 비웠는데.... 난 아줌마한테 "전 3박 4일동안 집을 비웠
어요". 했더니. 신문도 쌓여있고 그런거 보아하니 어디 갔다왔었어? 하는데 그래서 할아버 상 치뤘
다고 말했더니 원래 장례식장 갔을 때는 뭐 안 믿어도 절이나 교회같은데 다녀오는게 좋아. 지금이
라도 가. 하는데 그래서 아줌마 말씀대로 동네 근처에 좀 큰 교회에 갔어. 교회로비에서 뭔가 정리
를 하시고 계시는 분한테 예배언제 시작하나요? 하고 묻는데 날 물끄럼히 쳐다보면서 " 6시 30에
하는데...." 하면서 하는거야. 좀 이상했지만 시간이 1시간 반정도 기다려야 해서 카페라도 갔다기
와야겠다 싶었는데. "혹시 그런일 때문이라면 개인적으로 예배를 드려야 할 것 같네요." 하더라고
그리고 "여기서 잠시 기다리세요."하는데 중년여자분을 데리고 오셨는데 장로라고 하더라고.."근데
어쩌다가 이렇게..."라고 하길래 "네?"하고 물어봤는데. "원래 종교가 없는 분 같은데...지금은 믿음
을 가져야 할것 같습니다. " 라고 해서 여기 좀 이상한데 아닌가해서. 가방 챙기려는데 갑자기 내
머리를 세게 잡고 흔들면서 뭐라고 이상한 말을 계속 했어. 너무 아파서 소리지르고 뭐라 한거 같
은데. 내가 어느순간 울고있더라고 너무 아퍼서인지까진 모르겠지만.. 정신이없어서 못 떠나고 있
는데 그장로라고 하시는 분이. "내가 뭔가를 봤는데 사람은 분명아닌데 아가씨를 자꾸 따라다니는
데다 목에다 여러마리를 달고다니는데 그냥 볼 수 없어서. 이렇게 한거구요. 이상한 것은 아닙니
다.귀신을 쫒아내기 위한 것이였고요. 나중에도 다시 오세요." 하는데 정신이랑 머리가 얼얼해져
서 집에 돌아왔는데 이상하게 그 두런두런 소리가 안들리더라.
근데 밤 12시 반쯤 되었을 때 외커를 하고 있었는데 야식이 당겨서 라면읕 끓이려고 윗 싱크대장을
여는데 처음에는 바퀴벌레떼인줄 알았는데 사람머리카락이 보이는거야. 다시 장을 닫았다가 열었
더니 없고...
냉장고 위에 미묘한 시선이 느껴져서 봤더니 이상한 까드득 까드득 소리가 어디서 들렸어. 그리고
화장실 불이 탁 켜지다가 전구가 나가는 소가 들렸고. 컴퓨터는 멀쩡했는데....
옷방에서 서랍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이게 계속 들리니까 공황상태가 오더라고. 핸드폰이랑 지갑
만 들고 나와서 엄마한테 전화했어. 엄마가 날 태우러 오셨고 부모님 집에서 잤지..
저녁에 엄마가 날 깨우더니 아침에 스님이라도 불러야 겠다 싶어서 스님을 불렀대.
그리고 내집에 들어가는데 온갖 이상한 것들이 가득 차있더래. 그래서 스님이 목탁을 두드리면서
법전?같은걸 읊었다고 하셨어..
스님도 지쳐서 나오셨대.
밤에 엄마차타고 집에갔는데 나혼자 있을 때는 그래도 나오더라고... 덜하지만
이렇게 산지 2주됬는데... 신기한건 뭔가 그냥 세상만 보던게 다른것까지 가끔 보인다는거.
근데 못 본척 해야할때가 있는데 뭔가 검은것들은... 안보는게 좋은거 같고 나랑 눈마주치고 싶어
하는 건 안보려고.
그거 이외에는 사는데 지장없는거 같아. 보이는게 자주 보이는 것도 아니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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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신앙으로 전해지는 귀신의 종류
<명도>
3세 미만의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어린아이들의 죽은 귀신이라고 하는데,
보통 영매들이 이 귀신을 접하면 말은 하지않고 휘파람이나
여러 손짓 말짓을 한다고 합니다
<동자 동녀>
대략 5세에서 15세 사이의 귀신들로
주로 무당의 몸을 빌려서 나타나는데 이
귀신을 받은 무당들은 어린아이의 말로 자신의 의사를 전 한다고 합니다
신통력은 강하지만 자신의 기분따라 행동 하고 인간에 대한 정이 성립되지 않았으므로
변덕이 심하다고 합니다..
<태자귀>
세상에서 말하는 '태자귀'는 '어린아이 귀신'으로 주로
낙태나 아사로 한을 지고 죽은 아이의 원귀를 가르 킵니다..
이것이 '태자'라는 이름을 붙이게 된 것은,
옛날 중국 진의 태자 신생(太子申生: 춘추시대 진 헌공이 려희를 사랑해
그 아들 계제를 세우고 태자 신생을 내쳤는데,
려희가 신생을 모함해 죽게 했고 신생은 원귀가 되서 려희를 미치게 했다고 합니다)
에게서 나왔다고 합니다.
이 태자귀는 어린아이의 유혼체백(遊魂滯魄)-'혼(魂)은 날아가고 백(魄)만 엉긴 상태)으로
사람에게 붙어서, 사람의 길흉과 먼 곳의 일을 무당의
질문에 따라 응해 알려준다고 합니다.
이 어린아이의 유혼체백이 돌아다니면서 집집마다 방문해,
"제자가 되어 드릴까요?"하고 가느다란 목소리로 말하는데,
이때 그 집 부인이 "그렇게 하라."하고 응답하면
이 아이귀신은 곧 붙어서 떠나지 않게 되고,
그리고 그 부인은 태자귀가 붙은 무당이 됩니다.
이 경우, 다른 아이귀신이 집을 방문해 몇 번을 불러 물어도,
집안 부인이 응답하여 허락하지 않으면 결코 붙는 일이 없습니다.
이익[李翊, 1629~1690-현종때의 문신] 의 친척 부인 한 사람이
이 아이귀신의 물음에 장난 삼아 대답했다가,
태자귀신이 붙어서 여러 가지 방법을 써서 쫓으려 해도 되지 않고
기어이 병이 심해져 죽었고 합니다.
이럴 경우 굿을 하고 태자귀신을 모신 다음 무당이 되면 부인이 죽지 않지만
양반 가문에서는 무당이 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 습니다..
우리나라 무당 중에서 태자귀 무당이 단연 많고,
또 태자귀 무당의 점이 잘 맞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선지 태자귀를 인의적으로 만드는 경우도 있는데 다소 끔찍한 방법입니다..
무당이 아이를 데려와 좁고 햇빛이 닫지 않는 곳에 가둬서 몇일을 굶깁니다..
그럼 아이가 배고품에 울다가
거의 실신지경에 이르면 먹을것을 아이앞에 갖다 놓는데
아이가 힘이 없음에도 음식을 먹기위해 손을 내밀면
그 손을 잘라 아이의 넋을 손에 봉인한후
시체는 48조각으로 잘라 태운후 손을 작은 괘짝에 놓아 99일이 있으면
아이의 영혼을 조종할수 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의 기록서나 1976년경 신문에 실제 아이를 납치해서
태자귀를 만들려고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손말명-처녀귀신>
아시다 시피 조선조 여인들의 삶은 정말 비참했습니다..
특히 성적으로 많이 억압되어 연애도 제대할수 없었죠..
그래서 처녀로 죽으면 너무나 억울해서
도저히 그냥 떠나지를 못하고 원한이 남은 귀로
한이 귀기로 응집되어서 자신의 집 식구들을 저주하거나
자기 또래 혼기가 차있는 처녀에게 해를 끼친다고 합니다.
일단 손말명이 처녀 몸에 붙으면 처녀는 이를 떼기 위해
기도를 하고 여러가지 공물을 바친다고 하는데.
무녀는 처녀의 의복을 빈방에 쌓아두게 하고 주야로 치성을 들입니다.
손말명이 처녀의 몸을 떠나 처녀의 옷에 옮아붙도록 하기 위해서이죠.
더구나 처녀의 영혼들이 실은 가장 말썽을 부린다고 하는데,
영적 힘도 강하고 여간해서는 말도 잘 듣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처녀가 죽으면 손말명이 되지 않도록 남자 옷을 입혀 거꾸로 묻거나,
가시가 돋친 나무를 관 주위에 넣고 매장하기도 하였습니다.
이 밖에도 사거리의 교차점이 되는 곳에 시체를 은밀히 매장하여
많은 남자가 밟고 지나가게 함으로써 처녀귀신의 못다 푼 정을 달래
는 풍습도 있었죠..
또한 유교의 음양이기론과 가부장적 사회에서의 여성을 천대하는
남존여비 사상은
처녀 귀신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확대 시켰습니다..
<두옥이 귀신>
조선 시대의 악귀로 어우야담에 소개 됩니다..
{평양기생중에 두옥(斗玉)이라는 뛰어난 기생이 있었다.
평생 몸을 기탁할 남자를 찾기위해 절대로 몸을 허하지 않던
그 기생은 평양감사에게 몸을 풀었다.
하지만 그 감사는 두옥을 배신했고, 두옥은 한강에 몸을 던져 죽었다.
두옥의 귀신은 그 감사의 아들을 괴롭혔고, 그 것을 우연히 지나가던 승려가 도와준다.
그 감사는 승려의 도움을 얻어 두옥 귀신을 모시는 사당을 지어 그 원혼을 잠재웠다.
두억시니는 이 두옥이 귀신이 와전된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나오는 두옥이 귀신은 삼국 시대와고려시대의 수두신인
두억시니가 악령화되 전해진 겁니다..
조선시대는 유교를 숭상 했는데
세상을 이기와 음양으로 양분되게 보는 유교의 사상관은
조상신과 유교의 신을 제외한 귀신에 대한 신앙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이때문에 신령적 존재인 도깨비들도 부정하게 전해 졌는데
남존 여비의 사상으로 도깨비들중 강한 힘을 가진
두억시니가 여성화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외에 대부분의 귀신도 여성화 되죠,,
두옥이 귀신은 두억시니가 여성화된 존재로 검은 복장에 하얀 머리 카락을
한 여인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성질이 사나워 사람들을 헤친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에선 손말명 보다더
사악한 처녀 귀신을 흔히 두옥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조선이 고려의 정신을 없애기 위해
두억시니에 대한 기존의 수호신적 이미지에 대해 탄압을
한걸로 볼수 있습니다..
<몽달귀신-도령신>
이름은 좀 얄궂어도 총각귀신에게 붙여진 이름입니다.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제사를 얻어먹지 못해서 한이 남은 고혼으로
손말명에 비하면 인지도가 약하지만
원귀(寃鬼)가 되어 사람에게 해를 끼칠 가능성이 있습니다..
특히 상사병에 걸려서 죽은 총각귀신은 사랑을 이루지 못한 한 때문에
처녀에게 해코지를 할 수 있습니다.
보통 무당이 다른 처녀귀신과 사혼식(死婚式)을 열어줘 죽은 총각의 한을 달래주는데.
비록 귀신들끼리 하는 결혼식이지만 궁합을 봐서 혼례날도 정하고 한지로 만든
허수아비 인형을 만들어 합방까지 시켜줍니다.
조선시대 황진이(黃眞伊)와 관련된 몽달귀신 사례가 유명한데.
평소 황진이를 흠모하다가 자살한 총각의 상여가
황진이 집 앞에서 멈춰 꼼짝하지 않았습니다.
이소릴 들은 황진이가 자기 속적삼을 주고 위로하자
상여가 다시 움직였다고 전해집니다..
<선관도사>
대체로 결혼을 하고 자녀을 두고 살다가 떠나게 되면
이승에 대해그렇게 집착을 하지는 않는 모양입니다만,
그래도 뭔가 한이 남은 영혼은 이렇게 선관도사라고 하는
이름으로 이승에 남아
무녀의 몸에 실려서 남의 길흉사를 예언 해주고 호구지책을 삼는 다고 합니다..
원한이 약해서 위험한 귀는 아닙니다..
<선녀부인>
일단 자녀를 두고 죽은 여성 귀신을 얘기 합니다..
대체로 선관도사랑 비슷 합니다..
<나무귀신>
한국의 대부분의 마을에서는 큰 고목을 당목(당산 나무) 또는
도당목이라 하여 마을 전체가 그 나무를 위하
고, 명절·산신제·기우제 등을 지냈습니다..
평소에도 그 나뭇가지를 꺾는 일은 없고
제사를 지낼 때는 금줄을 치고 주변에 황토를 뿌리는 등 정결하게 합니다..
평소 귀신에 대해 관심이 많고
여러 영적인 사건을 접했던
정약용은《산림경제》에서 오래된 나무에는 귀신이 모여든다 하였고,
중국의 고대전설에는 동해 가운데는 도삭산이 있고
그곳에는 도대 목이 있는데 그늘 넓이가 3,000리에 걸쳤다고 하며 여기에 귀신
의 무리가 모여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옵니다.
<무자귀>
무주귀라고도 하는데,
자손이 없는 사람이 죽으면 제사를 지내 줄 사람이 없어,
망령이 위안을 받지 못하고 고독과 불만 속에서 지내게 되므로,
이러한 영혼은 원귀가 되어 온갖 심술궂은 가해행위를 자행한다고 여겼습니다..
처녀 귀신과 몽달귀신도 무자귀에 속한다고 합니다..
<수사원귀-물귀신>
대개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이 귀신이 되어 물 속에 있다가
다른 사람을 잡아당겨 익사시킨다고 합니다.
예로부터사람이 물에 빠져 죽으면 그 곳에 고사굿을 지내고
물귀신을 위안하여 발동을 막으려는 풍습이 있었죠,,
물과 귀신은 상극이라 물에 빠진 사람의
유혼체백은
얼마 못가 소멸 됩니다..
이렇기 때문에 물귀신이 되는 경우는
대체로 여러 사람들이 사고나
적들에게 떼죽음 당하여 단체로 수장 당한 경우로
그 한맺힌 유혼채백들이 합쳐저 생긴 다고 합니다..
다수의 원이 맺힌 만큼 물귀신들의 위험도는
엄청 큽니다..
한국에서는 사해신이라 하여 동해신은 강원 양양에서,
서해신은 황해도 풍천에서,
남해신은 전남 나주에서,
북해신은 함경 경성에서 음력 2월과 8월에 제사지냈으며
칠독신이라 하여 전국의 이름난 7곳의 나루터, 즉 서울의 한강, 평양의 대동강, 의주
의 압록강, 공주의 웅진, 장단의 덕진, 양산의 가야진, 경원의 두만강 등에서
춘추로 오색축폐를 물 속에 던지고 제사를 지냈습니다.
목적은 수재를 없애고 강물에서 사고가 나지 않도록 용신에게 비는 데 있었습니다.
용신도 크게 보면 물귀신의 일종이죠.
<미명귀>
전처가 죽은후 남편이 후처를 두자 전처의 영이 질투 때문에
후처에게 붙어서 괴롭히는 귀를 가르킵니다.
후처가 병이 들게 되었을 때에 미명귀의 짓이라 하여
무당을 불러 귀신을 달래는 굿을 하였습니다
또는 근본적으로 퇴치한다 하여 무덤을 파서
시체를 화장하고 큰굿을 하기도 하였죠..
원래 미명귀는 남의 아내로 젊어서 죽은 여자의 귀신을 가리켰으나
점차 그 뜻이 확대되어 억울하게 죽
은 사람의 귀신 ·처녀귀신 ·총각귀신 ·청춘 과부귀신을 통틀어 이르게 되었습니다..
<새타니>
새타니는 부모에게 버림받아 굶어죽은 아이의 영혼을 가리키는 말로
제주도 설화에 새타니에 대한 얘기가 있습니다..
옛날에 전역을 돌며 소금을 팔던 소금장수가 집에 오니
아내는 옆집 남자랑 눈이 맞아집안의 폐물을 갖고 도망가고
그의 젖먹이 아이는 굶어서 죽어 있었습니다..
이에 충격을 받은 소금장수는 반쯤 실성한체 아이의 시체를 소금자루에
절인체 자루를 메고 전국을 떠돕니다..
그후 3년뒤 한 부자의 소실이 되서 잘살고 있는 아내를 발견한
그는 집안으로 뛰어 들어가
아내앞에 소금자루를 집어던지자
아이의 시신이 썩지도 않은체 어미를 향해 조금씩 기어왔고
그 모습을 본 아내는 심장병으로 죽었다는 내용으로 썩지 않은
아이의 시신은 소금에 절여졌기 때문에 미이라화가 된거라고봅니다..
이렇듯 세타니는 어미한테 버림 받아 굶어 죽은 아이의 원귀를 가리키는데
태자귀보다 능력이 더 강하다고 합니다..
<새우니>
새우니는 원래 무당이 사역한 귀신이 영적 능력을 쌓아 진화된 악귀로 작게나마
날씨도 변화시킬 정도로 능력이 쎄고
통제불능이라 자신을 부린 무당을 죽이고 사람들을 괴롭힌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외에도 원한이 너무 강한 경우에도 새우니가 될수 있습니다..
청구야담(靑丘野談)에 기록된 새우니의 내용을 보면 정조 8년에 평산 지방의 한마을이 원귀에 의해
질병이 퍼져 가축들과 사람들이 떼 죽음 당했다고 합니다..
새우니는 자아도 분명한데다 원하는 곳은 어디로든 갈수 있었기에
그냥 두면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건 불보듯 뻔한 일이였습니다..
결국 여러 고승들과 무속인들이 나서서 마을에 진을 치고
몇일간 악전고투 한 끝에 새우니를 봉인 했다고 합니다..
봉인 하는 과정에 새우니의 살아 생정 모습이 투영 되는데
그녀의 생전 이름은 박소사 였고 18살에 시집와 몇개월후 살해 됬다고 합니다..
그녀를 죽인 사람은 그녀의 남편인 조광선과 박소사와 10살 차이 밖에 안나는
시어머니 최아지 였는데
최아지는 남편이 죽은후 양아들인 조광선과 간통을 했다가 임신을 하게 되어
아이를 죽였는데 그 광경을 박소사가 보게 되자 박소사 역시 죽이고 자살로 위장한
거였습니다..
박소사는 공식적으로 우리 나라 최초로 부검을 당한 시신이기도 한데
무려 두번이나 부검을 당했지만
결국 자살로 판명 됬고 이에 그녀의 원한이 쌓여 갔습니다..
결국 이 사실을 들은 정조가 직접 조사를 명하고
그녀는 10년 후에야 자신의 억울한 죽음을
알릴수 있었다고 합니다..
<손돌이 귀신>
드물게 바람을 조종 하는 풍신으로 전해지는 귀신으로
경기도 김포군과 강화군 사이에 있는
손돌목이라는 여울의 지명의 유래 이기도 합니다..
손돌설화의 기본형은 손돌목·손돌무덤이 있는 강화·인천 지방을
중심으로 전승되어왔다고 하죠..
고려때 원라의 침입으로 고종이 강화로 피난을 할 때,
손돌이란 뱃사공이 왕과 그 일행을 배에 태워서 건너게 되었습니다..
손돌은 안전한 물길을 택하여 초지의 여울로 배를 몰았지만 마음이 급한 고종은
손돌이 자신을 해치려고 배를 다른 곳으로 몰아가는 것으로 의심하고,
신하를 시켜 손돌의 목을 베도록 명하였습니다..
이때 손돌은 고종에게, 자신이 죽은 뒤 배에 있는 박을 물에 띄우고
그것을 따라가면 몽고군을 피하며 험한 물길을 벗어날 수 있다는
말을 남기고 죽었다고 합니다.
손돌을 죽이자 적이 뒤따라오므로 왕과 그 일행은
손돌의 말대로 박을 띄워 무사히 강화로 피할 수 있었고
고종은 손돌의 충성에 감복하여 그의 무덤을 만들고
제사를 지내 그 영혼을 위로하였습니다.
손돌이 억울하게 죽은 날이 10월 20일이었는데
그 뒤 이날이 되면 여울목에 매년 추운 바람이 불어오므로,
사람들은 손돌의 원혼에 의하여 부른 바람이라 생각하여 손돌바람이라고 부르고,
이 여울목을 손돌목이라 칭하게 되었답니다.
충청북도 영동지방에서는 10월 20일을 '손사공 죽은 날' 또는 '모진 놈 죽은 날'로 표현하여,
손돌귀신을 아주 무섭고 흉악한 모습으로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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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국도에서 있었던 일.
우리 부모님은 충북 보은에 사시고, 외갓집이 경남에 있어서
외할아버지 제사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어.
냔들도 알다시피 저번에 비가 아주 무섭게 오지 않았냐능?
10시 반쯤 출발해서 사고날까봐 되게 조심조심 가고있었어.
엄마가 대전에 있는 다른 친척분 간호도 해주셔야해서 엄마를 대전에서 내려주고,
아버지랑 나랑 보은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어.
대전에서 보은으로 가려면 옥천 좀 안돼서 샛길로 빠져야 하는데
비가 너무 많이 오고 비가 안올땐 안개가 심하게 끼어서 시야확보가 전방 100m 될까말까하는상황
에
아버지가 그만 길을 지나쳐 버리셨어.
그래서 옥천 지나서 36번인지 39번국도를 지나가는데,
길이 공사중인데다가 구불구불해서 비오는 와중에 상당히 위험했어.
시간은 2시 20분 정도였고, 하필이면 아버지 차에서 되게 무서운 노래가 나오는바람에 나는 벌벌
떨고있었지.
그렇게 한참을 달리는데 주위엔 차도 없고, 우리 헤드라이트 외엔 불빛도 없었는데
갑자기 오른쪽 산 속에서 웬 사람이 튀어나와서 급정거를 했어. 다행스럽게 치지는 않았는데
경황이 없어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이상하게 말랐다는 느낌이 드는거야
인터넷에서 거식증 환자 보면 진짜 우와 뼈모양이 저렇게 생겼구나 할정도로 말랐잖아? 그정도로
마르고 길쭉한 나뭇가지같은 사람이
툭 튀어나왔다가,
우리가 급정거를 하니까
중앙선 가드레일을 넘어서 지나가는거야...
진짜 그자리에서 한 1분정도 차세우고
아버지랑 나랑 벙쪄있었거든
나는
저거 뭐야? 사람이야? 아빠 봤어? 이러고 있고
아버지는 표정 굳어서 욕하면서 세상에 별 미친새끼 다있다고...
아니 주변에 인가도 없고 불빛도 없는데 웬 사람이 국도 한복판을 가로질러서, 그것도 중앙선 가드
레일을 넘어서 지나가지?
지나가봤자 똑같은 산이고 똑같은 숲인데......
이상한생각을 뒤로한채 시동을 걸고 다시 출발했어.
그 국도가 공사중인구간은 좀 직선이다가 갈수록 구불구불해지거든,
거기 제한속도가 30km였나 그럴거야
근데 그 구불구불한 길을 가는데 아버지 운전하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거야
속도계는 못보고 내비에 표시되는 속도만 봤는데 78km였나 거의 80km가까이되는 속도로 진짜 질
주를 하는거야
몇번이나 가드레일에 들이받는 줄 알았는데 아버지가 속도를 안 줄이는거야
나는 막 소리지르면서 아빠 미쳤냐고 아빠 왜그래 속도좀 줄여 사고나겠어
거의 울면서 말했는데
보은 가까워져서 드문드문 민가 있고 불빛 나올때에서야 겨우 속도를 줄이셨어
나는 평소 아빠 표정같지 않기도 했고
뭐에 홀리신것같고 너무 무서워서 울면서 집에 도착할때까지 가만있었는데
집에 도착해서 차에서 내리고, 아무일 없었던듯이 짐 내리고 그냥 잠자리에 드시더라구.
나도 영문은 모르지만 그냥 잤지.
그러고 나서 그다음날 오전에 나 자취하는데로 돌아가는데 아빠가 태워다주겠다 하더라구
차타고 가는 길에 새벽에 있었던 일이 생각나서 뭐라 말좀 건네보려했는데
아버지가 말씀을 먼저 꺼내시더라
어제 그 국도에서 앞만 보고 가시다가 사이드미러로 눈을 돌렸는데
운전석쪽 차체에 그 성냥개비같은 남자(남자였다고 그랬음)가 붙어서 눈알을 희번덕거리고 있더
래
그래서 아버지도 모르게 속도가 붙었던 것 같대. 떼어놓을 생각에.. 아버지도 무서웠다고 말씀하시
더라고.
우리 아버지 평소에 농담도 안 하시고 말씀도 없으신 분이야.
거짓말같은거 하시는 분도 아니고 그래서 반문할 생각도 못하고 가만히 듣고있었지.
그리고 또 말씀해주셨는데
그 구불구불한 구간 벗어나서 5분쯤 달리니까
운전석 창문쪽으로 입을 벌리는데 입속이 아주 시뻘갰대, 이도 시뻘겋고.
그러더니 맥없이 툭 떨어져서
룸미러로 보니까 몇바퀴 구르더니 다시 그 국도쪽으로 뛰어가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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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핫 이슈였던 케이시 앤서니 사건을 알고 있니??
요즘 최종 평결이 나서 한참 미국에서 화제인 사건이야.
제 2의 OJ 심슨 사건이라고 불리기도 하지.
*
3살짜리 여자아이 케일리는 미 플로리다의 집에서 미혼모인 엄마 케이시 앤서니와 외조부모와 살고 있었어.
2008년 6월 16일이 이 아이가 목격된 마지막 날이야.
이날 아이 친엄마가 데리고 나간 이후 31일 동안 집에 돌아오지 않았지.
아이의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는 아이의 행방을 계속 물어봤지만, 엄마인 케이시는 일로 너무 바쁘다며 대답을 회피하고
아이는 보모가 데리고 있거나 놀이공원이라거나 해변에 갔다거나 하고 이야기를 했지.
한달 후, 할아버지 할머니는 딸(아기엄마) 의 차가 견인되어 있다는 소식을 보고 보관하는 곳으로 가.
그렇게 해서 케이시 앤서니의 차를 찾는데, 이 때 견인 장소에서 안내하던 사람과 할아버지는 둘다 불쾌한 냄새를 맡아.
트렁크에서 나는 불길한 냄새... 그건 생물이 죽어 썩어가는 냄새가 바로 연상되는 것이었어.
아이 할머니인 신디는 뭔가 잘못됐다고. 차 안에 뭔가 죽은 시체가 있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어.
시체는 없었지만 굉장히 특이한 냄새는 남아 있었고 파리와 구더기, 그리고 쓰레기가 차에 가득했다고 해.
그리고 마침내 무슨 불길한 예감이 들었는지 그날 손녀의 실종 신고를 해. (7월 15일)
제 1차 조사 대상은 당연히 아이를 데리고 나간 아이의 친모가 되었지.
케이시 앤서니는 그동안 아이를 보살펴 주었던 "Zanny" 라는 보모가 자신의 아이를 납치해서 자신과 같이 있지 않다고 주장했어.
그러나 그런 보모와 케이시가 말한 전화번호는 존재하지 않음이 밝혀졌지.
케이시 앤서니는 "유니버설 스튜디오" 에서 일한다고 부모와 가족에게 말하고 다녔지만
조사관들이 그녀가 일하는 곳으로 데리고 가기를 요구하자, 몇년 전에 해고된 직장으로 데리고 갔지.
그녀가 말한 것은 전부 거짓말이었어.
7월 16일, 케이시는 아이 방치와 거짓 증언 등의 혐의로 처음 체포되었어.
케일리는 12월 15일 집에서 400m 여 떨어진 풀숲 안에서 코와 입이 공업용 덕테이프로 칭칭 감긴 채 심하게 부패된 상태로 발견되었어.
아이의 몸은 실종 후 6개월이 넘어 심하게 부패되어 지문이나 사인 흔적을 추론하기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어.
검은색 쓰레기 봉투에 들어 있었던 아이의 입과 코를 막은 것은 배관공사 용 공업용 테이프인 덕테이프로,
아이의 입에 붙은 하트무늬 스티커는 케이시의 집에 있는 것과 동일했지.
아이는 코와 입을 꽁꽁 동여맨 테이프로 인해 질식사했어.
이 사건의 특징은 아이가 살해된 날짜로부터 보고된, 발견된 순간 사이 시간이 많다보니 물증이 거의 없다는 점이야.
시신 훼손도 심해서 알아낼 수 있는 정보가 많지 않았지.
그러나 정황 증거의 문제로 따지면 전혀 다른 이야기야.
아이 엄마인 케이시가 자신의 집 컴퓨터를 통해 구글로 찾은 기록을 살펴보면
"목 부러뜨리기" "클로로포름" "죽음" 등등의 단어가 발견되지.
특히 마취제의 일종인 클로로포름에 한해서는, 제조법에서 사용법에 이르기까지 84차례 검색한 기록이 나와.
실제로 이 약품은 케이시의 자동차 안에서 발견되기도 했지.
"6월 21" 일자로 날짜가 쓰여진 케이시의 일기에서는 (아이의 실종은 16일이었음을 다시 상기시킬게)
"나는 후회가 없다, 다만 조금 걱정될 뿐이다. 모든 것이 잘 되기를 바란다. 나는 내 판단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내가 옳은 판단을 내렸다고 생각한다. 나는 다만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미래가 내 편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나는 곧, 이것은 내가 매우 오래 전부터 해왔던 일 중에 가장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나는 내 행복이 점점 자라나기를 바란다. 나는 새로운 친구들을 만들었고, 좋은 사람들에게 둘러 쌓여 있고.... 나는 마침내 행복해 졌다. 앞으로 변하지 않기를."
이 일기의 중요한 점은, 공교롭게도 연도가 적혀 있지 않기에 이게 2008년 6월 21일에 쓰여진 것인지 확신할 수 없다는 점이지.
케이시의 변호인단측은 이 일기가 03년도에 쓰여진 것이라 주장하고 있어.
이는 이 일기의 다른 장에서 03년도에 사귀었던 남자의 이름과 노트에 쓰여진 '03' 이라는 숫자를 볼 수 있기 때문이지.
그러나 이 '03' 이라는 숫자가 확실히 연도를 나타낸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을 뿐더러 이 노트 자체가 04년 이후에 시장에 나온 제품이야.
케이시의 트렁크에서는 시체가 썩는 듯한 고약한 냄새가 나고 있었어. 그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케이시는 이 모든 일이 일어나는 동안 진술을 수없이 번복하고 위증을 하면서 지냈어.
처음에는 보모가 납치해갔다고 하였고, 3년의 복역 후 그녀는 증언을 다시 번복하여 집 풀장에서 빠져 죽은 아이를 자신의 부모가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몰래 유기하였다. 그동안 거짓말을 했던 이유는 아버지의 유년기부터의 성추행으로 정신이 불안정했기 때문이다 라는 진술로 혐의를 아버지에게 떠넘기는 태도를 보였어. 수많은 진술 번복에 이어 또 하나가 추가된 셈이지.
그녀의 주장에 따르자면 어린 나이에 아이를 잃은 비극의 주인공으로 생각될 수도 있었지만
조사가 진행됨에 따라서, 걱정하는 모습과 전혀 상반되는 모습이 발견되었지.
아이가 실종된 것으로 알려진 6월 16일 직후, "아름다운 인생" (Bella Vita) 이라는 문신을 어깨에 새겼고.
그 후 체포되기 전 31일동안 케일리를 찾는 부모의 전화를 거짓말로 둘러대면서
선글라스, 맥주, 나이트가운, 브라 등을 쇼핑하거나 남자친구와 영화를 빌려보고
파티에 가서 밤새도록 광란의 밤을 보내거나 술집에서 "Hot Body Contest" 나 "Shot Girl" 등에 참여하고
남자친구와 찍은 열렬하게 키스하고 있는 사진이나 행복한 표정으로 찍은 사진들이 차례차례 유포되면서....
미 전역은 홍수처럼 들끓었어.
케이시 앤서니는 1986년생으로 아이를 낳을 때는 만 19살이었다고 알려져 있어.
일찍 아이를 낳은 것 뿐 아니라, 문서 위조나 친구의 신용카드를 맘대로 쓰거나 개인정보를 맘대로 유용하고
한도를 넘어서서 카드를 쓰고 사고를 치는, 다소 구제 불가능한 "파티 맘" 이었지.
(케이시의 변호인단측은 그녀 아버지와 오빠의 성추행이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다고 주장하고 있어.
물론 반대측은 여기에 대해서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확실하게 판명난 바는 없지.
케이시의 변호인측은 케일리 또한 두 남자 중의 하나의 아이라 주장하지만 일단 DNA 검사에서는 아닌 것으로 판명이 났어)
검사를 비롯하여 티비를 통해 정황을 본 수많은 미국인들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다음의 시나리오였어.
아이를 낳음과 함께 이십대의 화려한 생활을 빼앗겨 불만에 가득한 이십대 초반의 케이시가 걸림돌이 된 아이를 죽였다.
아이를 데리고 나와서 클로로포름으로 아이를 마취한 후 덕테이프로 입과 코를 막아 질식사 시켰고,
일단 집의 뜰에 묻은 후 다시 파내어 시체를 자동차로 날라서 숲 속에 유기, 그 후 차를 놓고 도망친 것이라고.
그리고 걸림돌이 된 아이를 죽인 후 죄책감 없이 거짓말로 일관하면서 화려한 생활을 맘대로 영위하고 있다고.
그러나....
이 판단에는 결정적으로 물증이 부족했어.
모든 정황 증거가 케이시 앤서니가 범인임을 가리키고 있지만 경찰은 그녀를 범인으로 확정지을 물증을 찾는 데는 실패했어.
이 아이엄마는 며칠 전 1급 살인 혐의에 대해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어.
이미 경범죄에 관하여서는 3년 복역을 마쳤기 때문에 그녀는 이제 곧 출소해서 평범한 삶을 살아가겠지.
그리고 법원에서 결정짓지 못한 범죄로 그녀를 단죄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
그러나 실형 여부와 관계 없이 이 판결을 처음부터 지켜본 사람들의 마음에 던진 돌덩이는 엄청났어.
수많은 정황 증거에도 불구하고 물증의 부재로 가장 유력한 용의자가 무죄로 판결이 났을 때... 우리는 어떤 판단을 믿어야 하는 걸까?
가끔은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는 말이 실감날 때가 있지. 이 사건이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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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귀신은 아니지만...우리나라 고등학생 중 극히 일부
내가 들은 거라서 경험으로 해야할지 괴담으로 해야할지 모르겠다 ...
나는 나름 소름끼치고 무서운 일이라고 생각해서 올려봐.
귀신 같은 건 아니고;
이번 일을 통해서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이 너무 무서워져서 ...
올려도 되는지 안되는지는 모르겠는데 ... ;
오늘 집으로 오면서 탄 버스에, 내 앞자리에 고딩 둘이 앉더라고.
남자애랑 여자애였는데 둘이 행동거지로 봐서는 사귀는 사이 같아.
둘이서 아주 그냥 실실거리면서 음담패설을 나누는게 참 보기 뭐하더라.
근데 내가 들은 소름끼치는 얘기는 이 애들의 친구관계로 넘어가면서부터였어.
맨처음에 남자애가 너 왜 A랑 쌩깠냐 ? 식으로 말을 해서 여자애가 거기에 대답해주고 있었는데,
여자애가 갑자기 하는 말이
"아 그러고 보니까 이전에 A 엄마한테 걸렸었잖아."
"뭘 걸려 ?"
"애기 쓰레기통에 쳐박아둔거. 완전 멍청이 아니야 ?"
순간 귀를 의심해야만 했어.
애기를 쓰레기통에 쳐박아둔다니 ?
그러니까 남자애가 말을 받아서 이어나갔지.
"걔 B랑 사귀던거 아니었어 ? B랑은 어쩌고 ?"
"B가 A한테 애기 생기고 나니까 곧바로 깨지자고 했다더라고. 그래서 A가 집에서 애를 낳았나봐."
"헐 ㅋㅋㅋㅋㅋ"
"완전 멍청하지 않냐 ? ㅋㅋㅋ 그것도 애를 잘 처리하지도 않고 그냥 던져 넣었다는거야"
"미친년 ㅋㅋㅋㅋㅋ"
이런 얘기를 하면서 계속 웃더라.
A가 처리를 잘 못해서 병신이라느니 A랑 B 둘다 ㅅㅅ 할 때 관리를 잘 못해서 병신이라느니 ...
와 진짜 고등학생들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다니 ...
소름끼쳤어 솔직히 말해서 ...
그러면서 한 술 더 떠서 남자애가 한 마디 하는데
"처리를 할 거면 제대로 해야지. 애기 머리꼭지 눌러버리면 곧바로 죽잖아."
"아 그러다가 뇌 터지면 어떡해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ㅋㅋㅋ 조카 징그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면 미리 애 죽도록 하던가(유산을 말하는듯)해서 버리던가."
"그러니까 ㅋㅋㅋㅋㅋㅋ 조카 멍청해 ㅋㅋㅋㅋㅋ"
...여기까지 듣고 너무 혐오스럽고 징그러워서 이어폰으로 귀를 막아버렸어.
생긴 건 멀쩡한 애들이었는데 ...
어떻게 저런 잔인한 말을 할 수가 있는거지 ?
물론 우리 나라 고등학생들이 다 그렇다는 건 아냐.
저런 애들이 일부에 불과하겠지만, 나는 쟤네가 저렇게까지 말을 한다는 게 놀랍고 무서울 뿐이
야 ...
저런 애들이 사회에 나가면 범죄를 저지르고 그러는거잖아 ...
어떻게 생명을 두고 저런 말을 할 수 있는거냐고 ...
애초에 아직 고딩들이면서 ㅅㅅ하고 담배 핀다고 자랑스럽게 떠벌리는 것도 참 뭐하고 ...
(게다가 얘네는 교복까지 입고 있었음)
저런 애들도 인간일까 ... 라는 생각이 든다 ;
저 문제의 근원을 뿌리뽑는 방법은 나도 모르지만서도 ...
진심 ; 소름돋았어.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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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친구에게 집착해 빙의한 귀신(스압)-1
이 얘기를 들려준 사람은 전에 같이 알바했던 매니저 언니다요 ㅎ
언니에게는 12살 위의 오빠가 있는데, 오빠가 대학시절 귀신이 들렸던 적이 있었대.
그래서 절에도 엄마가 데리고 다니고 지방의 유명한 절에 가서 며칠씩 자고 들어오고.....
그렇게 한 철을 보내고서야 오빠가 빙의에서 벗어났다고 해.
초등학생이었던 언니는 영문도 모르고 집에 남아서 대책없이 엄마를 기다리곤 했었다지.
오빠가 그렇게 된 내막을 언니는 모르고 지내다가, 시간이 흘러 언니가 대학생이 되었을 때 알았다
고 해.
그 언니가 대학을 지방 캠퍼스로 가서 자취를 하게 됐는데, 자취방 치우고 꾸미는 걸 도와주시느라
고 내려온 엄마랑 단둘이 한 방에서 자면서 밤새 이야기를 하다 들었다고....그리고 엄마가 서울 올
라간 다음 날 언니는 무서워서 혼자 잘 수가 없어서 친구를 데려와서 잤다지 ㄷㄷㄷ
오빠가 꽤 훈남이었다고 해.
언니 말로는 오빠가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닮아서 어릴 때부터 인기쟁이 훈남이었다고....
(부모님이나 할머니는 다 평범하고, 자기도 평범한데 다들 오빠만 보면 '오오~'하는 게 샘도 마니
났다고 ㅎ)
아주 어릴 때부터 오빠는 여자친구가 많은 편으로 기억이 난대.
사귀는 게 아니라도, 같이 다니는 친구들 중에 여자가 많았던 그런....
암튼, 오빠가 대학에 들어가고 얼마 안 돼서 여자친구가 생겼대.
언니는 얼굴을 기억 못하지만 엄마는 기억이 나신다는데, 얌전하고 청순하게 생겼었대.
목소리도 좀 소근대는 톤의 작은 목소리에, 굉장히 조용해보이는 애였는데 둘이 같이 놀러다니고
집 근처에서 만나는 모습을 자주 보신 엄마는 당연히 그 여자애가 어떤 앤지 궁금해졌지.
나중에 동네 아줌마들 중에 어느 분이 그 여자애를 알아보시기에 들어보니, 그 여자애는 무당 딸이
더래.
어느 동네에서 유명한 무당 아줌마 딸인데, 무당 아줌마는 일찍 이혼하고 딸 둘을 혼자 키웠다
고....
엄마는 내심 좀 찝찝한 마음에 오빠한테 '하고많은 여자애들 놔두고 무당 딸이냐' 이런 말을 했대;
엄마는 옛날 사람이라서......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 만나는 여자친구가 이혼녀+역술인의 딸과 만나
는 게 꺼림칙했던 거야.
근데 이게 결정적인 엄마의 실수가 되었지.
오빠는 여자친구의 집에 대해서 완전히 다르게 알고 있었던 거야.
결론부터 말해서 저 여자친구는 오빠에게 완전히 거짓말을 한 거였다. 아버지는 해외에 나가서 일
하고 있고 엄마는 남대문에서 옷가게를 하시고 사는 동네도 다르게 말하는 등.....
아마도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기 싫었을 거야. 그래서 한 거짓말이라고 생각되지만, 오빠는 하나
부터 열까지 온통 거짓말을 한 여자친구와 싸우지 않을 수 없었지.
그래도 둘은 더 만났대. 그래도 그런 사정으로 헤어지고 싶지 않다고 엄마한테 대놓고 오빠가 말도
했고.
그치만 그 때부터 여자친구의 태도나 생각에 변화가 오기 시작했대.
피해망상이랄까, 오빠의 말이나 행동이 서운하게 여겨질 적마다 자기가 무당 딸이라서 무시하냐,
더럽냐 이런 식으로 화를 마구 내더라는 거야.
그리고 집착도 심해져서....오빠의 하루 일과나 스케줄을 체크하고 감시하기 시작했대.
핸드폰이나 메일이 없던 시절이라.....오빠의 노트나 수첩, 학교 시간표 등을 늘 들여다보고 일정을
외우면서 조금이라도 오빠가 자기 시선 내에서 벗어나면 안절부절 못했대.
같은 학교지만 과가 다르니까, 과 모임같이 자기가 낄 수 없는 자리에조차 따라다니고, 조교나 여
자 교수님과의 대화까지 귀를 기울이고 마음에 안 든다고 트집을 잡아서 맨날 싸웠음.
옆에서 가족들이 다 들을 수 있는 집 전화로까지 큰 소리로 싸우던 오빠는 결국 그 여자애와 헤어
졌지.
1년 정도 사귄 거였지만....엄마는 오빠가 무당 딸이라는 사실을 몰랐으면 더 오래 사귀지 않았을까
잠시 생각했지만 그래도 헤어지길 잘했다고 생각했대; (아무리 엄마지만 좀 이기적인 거 같다;)
그 여자애는 헤어진 후에도 한동안 오빠 주변을 멤돌았다고 해.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편지도 집으로 몇 통 받아봤대. 그치만 정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오빠는 상
대도 안했지.
그대로 오빠는 새해가 되자 군대에 갔고, 그렇게 다들 잊고 있었는데 그 사이에 오빠네 학교에서는
난리가 났음......그 여자애가 죽었다는 거야......
집에서 가족들과 싸우고 뛰쳐 나왔는데, 차도에 뛰어들었다고;;;
정말 죽으려고 했는지 아니면 사고였는지 명확치 않았는데 아무튼 오빠 본인은 첫 휴가를 나올 때
까지 전혀 모르고 있었지.
휴가를 나와서야 소식을 듣고 오빠는 충격을 받았지만, 군인 신분이었으니 다시 부대로 돌아가 3
년(이 때는 군대 3년이었지;)의 복무를 마치고 돌아왔대.
근데 복학 준비를 하던 오빠가 점점 이상해지기 시작했대.
어릴 때부터 가위에 눌린 적이 없었는데 새벽마다 가위에 눌려서 잠 설쳤다고 하더니, 밥도 잘 먹
는데 살이 점점 빠지고, 피곤하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살고 어딜 돌아다니지도 않고 늘 드러누워
있기만 하고....
부모님들은 그저 생활 패턴이 바껴서 그런가, 보약이라도 지어먹일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새벽에 엄마가 화장실에 다녀오다가, 아들 방 안에서 끙끙거리는 소리가 들려서 문을 살짝
열어봤대.
열어보니 오빠가 이불도 다 걷어차고 어디 아픈 사람처럼 끙끙거리면서 자고 있길래 엄마는 안쓰
러운 마음에 '아들, 왜 그래' 하면서 바닥에 차낸 이불을 도로 덮어줬대.
그랬더니 갑자기 끙끙거리는 게 뚝 멈추더라는 거야. 숨도 새근새근 고르게 쉬고....
엄마는 그걸 잠시 내려다보다가 방을 나와서 문을 닫는데 깜짝 놀랐대. 오빠가 눈을 땡그랗게 뜨고
엄마를 빤히 쳐다보더라는 거야.
어둠에 눈이 익숙해지면 사람 표정이 대충은 보이잖아? 아깐 자던 얼굴이 갑자기 눈을 번쩍 뜨고
무표정하게 엄마를 쳐다보니 당근 엄마는 아이고야! 하고 움찔 놀랐지.
'자라' 하고 방문을 닫고 나오신 엄마는 놀란 가슴을 추스리면서 다시 잤는데, 문제는 다음 날 아
침.
아침밥을 다 차려놨는데도 오빠가 방에서 안 나오길래, 엄마는 못 일어났나 싶어서 깨우러 들어갔
지.
들어가니 오빠가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 쓰고 꼼지락거리고 있길래 엄마는 '아들, 밥먹어야
지'하고 이불을 들췄대.
이불을 들추니 오빠가 옆으로 누워있다가 엄마를 보면서 씨익 웃더니 완전 여자 목소리로 '어머니,
안녕하세요' 그러더래.
엄마는 어제 밤의 몇 배로 놀랐음. 어릴 때부터 목소리가 낮은 편이었는데, 톤 높고 다소곳한 여자
목소리 그 자체였고, 표정도 엄마가 알던 오빠 얼굴이 절대 아니었다고 한다.
'XX야, 너 왜 그래?!'하고 묻는 엄마한테 오빠가 벌떡 일어나더니 '어머니 저 X희(죽은 여자애 이
름)예요' 하고 생글생글 웃으면서 말하더라는 거야.
엄마는 벌벌 떨렸대. 도저히 아들이 장난을 치는 거라고는 볼 수가 없었대. 그런 장난을 칠 오빠도
아니지만, 표정이며 기색이며 목소리며 행동거지가 20년 넘게 키운 아들이 절대 아니라는 거야.
그 때 엄마는 사람에게 혼이 정말 있구나 이런 걸 느끼셨대. 몸뚱이는 자기 아들이지만, 눈빛이며
전신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기운이 정말 영판 모르는 사람이라는 거야.
엄마는 떨면서도 '당신 뭐야????'하고 소리를 버럭 치셨대. 그 소리를 듣고 아빠랑 다른 가족들이
다 달려왔는데, 다른 가족들도 오빠를 보고 기겁을 했다고 함. 정말 여성스럽게 생글생글 웃으면서
다른 가족들을 빤히 쳐다보는데, 이건 어디가 아프다거나 쇼를 한다거나 그런 거완 차원이 달랐다
고 해.
엄마는 겨우 정신을 차려서 오빠를 붙잡고 '내 아들한테 왜 이래, 당장 나가'하고 어깨를 막 흔들었
대. 그치만 오빠는 여전히 실실 웃으면서 '싫어! 안 나가', '왜 나가?' 이 소리만 반복하면서 히히히
히 소리내서 웃기 시작하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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