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위인의 흑역사 -마하트마 간디-편

콜로라도2014.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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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위대한 영혼(마하트마)이라고 자화자찬한 평화주의자 간디가 내게는 인정머리 없는 위선자 늙은이로 보인다. 

그 자신은 런던에 유학을 가서 법률을 배우고 변호사가 되었지만 간디는 서구의학을 혐오했다. 
현대의학을 너무나 싫어한 나머지 아내가 폐렴에 걸렸을때 그녀를 살리기위해 페니실린 주사를 놓는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그때 부인을 살릴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원칙을 고수할것인가 하는 어려운 선택에 직면해 있었는데 간디는 강경해야할때 강경할줄 아는 사람이었다. 

아내는 죽었지만 그는 원칙을 지킬수 있었다. (사실 그리 어려운 결정은 아니었을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 게임에서 걸어야 했던것은 그의 목숨이 아니라 아내의 목숨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때로는 간디도 현대 의학의 유용성을 인정했다.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은 경우에 그랬다. 

아내가 죽고난 뒤에 바로 간디도 말라리아로 발작을 일으켰다. 
그때 그는 의사들에게 말라리아 특효약인 키니네를 투약하도록 허락했던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맹장염에 걸렸을때는 외과의사에게 맹장수술을 하도록 허락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순결함과 성욕에 흔들리지 않음을 보이기위해 홀딱 벗은 젊은 아가씨들과 같이 옷을 벗은채 자곤 했다. 
간디의 주위에는 늘 그를 추앙하고 숭배하는 여성들이 있었고, 간디가 스스로를 시험하기 위해 옷을 벗고 같이 잔 여자 중에는 자신의 조카도 끼여있었다. 

사실 그러한 수도 방법은 간디가 처음 생각해낸것은 아니고 다른 
수행자 역시 그와 같은 방법을 전부터 써온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간디는 자신이 같이 잠을 자는 아가씨들이 다른 남자의 수행을 도와주기 위해 같이 잠을 잔것을 알았을때 노발대발 화를 냈다고 한다. 

자신의 성욕에 대해 솔직하지 못하고 여자를 고작 남자를 자극하고 유혹하는 존재로만 생각하며 자신의 도구로 이용하는 그의 모습은 사실 수행을 한다는 수많은 남자들의 모습이다. 

"청사"라는 영화에서 스스로를 대단한 수양의 경지에 다다랐다고
생각하는 중이 여인의 모습을 한 청사에게 자신을 유혹해보라고 했던것처럼 말이다. 

그 중은 자신의 몸이 여자에게 반응하자 여자를 요물이라고 욕하며 약속을 어기고 죽이려고 한다.

부인과 벌거벗고 시험을 할수도 있었을텐데 간디는 그렇게 하지않았다. 
이제는 늙어버린 아내와 자는것은 시험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간디의 젊은시절, 그의 아내는 좋은 가문의 여인으로 도도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도도한 아내도 침대에서만은 간디에게 고분고분했고, 간디는 아내와 너무나 섹스하고 싶어했다. 

병상에 누운 아버지(어쩌면 어머니였는지도... 기억이 잘^^;;)의 침상 곁을 지키던 그는 오로지 아내에게 갈 생각밖에 없었고 위독한 아버지를 두고 아내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그새 아버지는 돌아가신 것이다. 

이런 경험이 간디의 섹스에 대한 죄책감에 영향을 미쳤을수도 있다. 
사실 대부분의 힌두교도 인도인들은 누구나 다 나이가 들어서는 섹스를 완전히 삼가고 경건하게 신을 생각하며 수행 생활하는 것을 올바른 것이라고 여긴다. 

간디 역시 자신은 즐길만큼 섹스를 즐긴후에 더이상 섹스하지 않을 것임을 맹세했다. 
그는 그러한 결정을 내리는데 부인과 상의했을까?  

그는 결혼한 부부는 세번 내지 네번 섹스를 해야한다고 믿었다. 일생동안 말이다.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이 섹스를 하는 부부를 처벌하는 법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섹스를 하더라도 사정은 피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생명에 없어서는 안될 액체인 정자를 사출하지 않고 간직하면서 흡수할수 있게 되려면 장기간의 훈련이 필요하지만 
그렇게 보존된 정액은 무적의 에너지와 힘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어느날 아침, 자리에서 일어나 간밤에 자기도 모르게 사정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된 그는 거의 신경 쇠약에 걸릴 정도였다고 한다. 

이러한 사상은 중국에서도 찾아볼수 있고 현대에 까지 뿌리깊게 남아 있다. 
한심스러운 남자들에게... 
그렇게 믿는다니 열심히 비축하라고 밖에 해줄말이 없다.

간디는 평화주의자로 유명하지만 그것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꽤 나이가 든 이후의 일이다. 

중년기 내내 간디는 오히려 전쟁을 좋아했다. 
그는 보어 전쟁, 줄루족과의 전쟁, 그리고 1차 세계대전까지 모두 세 차례의 제국주의 전쟁에 참전하려고 자원했다. 
그러나 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할 기회는 갖지못했다. 

참전하려던 시기에 심한 늑막염에 걸려 입대할수 없었던것이다.
여하튼 간디는 평화주의자인체 했지만 결코 순수한 평화주의자는 아니었다

그는 언제나 최후 수단으로 폭력을 사용하는 것을 지지했다.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가 필사적인 싸움을 벌였을때만 해도 그랬다. 

나왑이 살해된 힌두교도 한명당 10명의 이슬람 교도를 총살하라는 명령을 내렸을때 간디는 그를 축복했다. 

(이 밖에도 간디는 독립에 대해 이런말도 했다. "인도의 자유를 위해서라면 백만명의 생명이 희생된다 해도 나는 결코 움츠러들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일반적으로 간디는 비폭력을 권장했다. 

히틀러가 체코를 침략했을 때, 간디는 체코인에게 싸우기 보다는 집단적으로 자살하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중에 그는 유대인에게도 똑같이 사려깊은 충고를 했다. 

사람들은 간디에게 나치는 영국인과 달라서 비폭력이 효력을 발휘하지 못할것이라는 점을 납득시키려 했지만 간디는 항상 사진의 비폭력이 효력을 발휘할것이라 생각했다. 

똥인지 된장인지 구별도 못하고 자신만 옳은줄아는 늙은이 같으니라고...

사실 내게는 간디가 평화주의자인지 아닌지 그런건 관심도 없다. 
평화주의자만이 올바른 사람이고 좋은 사람이라고 주장하고 싶지도 않다. 
그러므로 간디가 예상외로 평화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 
스스로가 대단한 사상가인듯 행동하는 사람, 
자신은 소중히 하면서 다른 사람에게는 함부로 하는 사람, 
그런 모습이 보이기 때문에 그를 좋게 볼수가 없는 것이다.


참고, 발췌 도서 

세계사의 전설, 거짓말, 날조된 신화들 / 리처드 솅크먼 / 미래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