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댈 마주하는건 너무 힘들어

고잉2014.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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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이후 벌써 한달 반 정도가 지난 것 같다.
헤어진 그 날 이후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나는 살을 9kg를 뺐고 사귀기 전처럼 친구들을 자주 만나게 되었으며,
대기업은 아니지만 우리가 사귈 때 내가, 아니 우리가 그렇게나 원했었던 취직도 하게 되었다.


직장생활도 어려운게 없다. 대기업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꿀직장을 고른 것 같다.
기술영업으로 들어갔는데 어느새 해외영업을 배우고 있지만
그런것 쯤이야 아무래도 상관없다.
해외출장은 외국에 가보고 싶어했던 나에게는 정말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하기보다는 쉬고싶어하는 게 사람이고 나 또한 그러하지만,

사실 그녀를 잊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좋았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어쨋든 일은 재미있다. 야근 그런것도 없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너무너무 좋다.
옆 회사 사람들하고도 잘 지내는 것 같다. 며칠 전에는 다함께 야구도 보러 갔고

복날이라고 단체로 삼계탕도 같이 먹으러 간단다.
회사 사람들이 술을 안 마신다는 것과 무엇보다 회사에 여직원이 없다는 점은

지금은 내 곁에 없는 그녀의 마음에 아마 쏙 들었을 것이다.

 

근데 웃긴다.
사귀면서 하지 못했어서 하길 바랬던 모든 것들을 그녀가 없는 지금에서야 다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하나도 행복하지가 않다.
취업이 안 되어도, 살이 쪘어도, 돈이 많이 없어서 단조로운 데이트밖에 할 수 없었어도,

내가 술마시는걸 싫어해서 친구들을 자주 못 만났어도
그 때가 더 행복했다고 생각한다.

매일 똑같은 하루를 살고 사람들을 대하며 웃어도
하나도 행복하지가 않다.
매일매일 생각이 나서 늦게 잠들고

함께 찍은 몇천여장의 사진과 몇 개의 동영상을 새벽에 보고 있노라면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들고
그러다 밤이 훅 지나가고 만다.


문제는 사진 뿐만이 아니다.
함께 가서 산 옷, 가방, 신발이 집 구석구석에 함께하고

같은 종류의 핸드폰을 쓴다고 좋아했던 내 핸드폰의 뒷뚜껑은 아직도 그녀의 것과 바뀌어진 채로 있다.
집에 가는 길에 밧데리가 없을 거라며 남는 걸 줬던 그녀의 밧데리도 아직 나와 함께 있고
머리 묶는데 사용하는 팔찌 모양의 머리끈도 왜인지 내 방에 아직도 있다.
함께 주고받은 수많은, 사랑스러운 편지들, 한번도 나가지 않아서

끝없이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우리의 카톡 대화창
카페에서 함께 규칙을 정해가며 쓰기로 했지만 어느샌가 쓰지 않게 된 커플 일기장

(아마 온종일 대화하면서 서로 뭘 하는지 안봐도 알게 될때쯤 해서 뜸해지다가 안 쓰게 됐던 것 같다)
지갑에 넣고 다니다가 지갑이 너무 뚱뚱해져 책상 한켠을 가득 차지한 우리의 수많은 스티커사진
며칠 전 뒤늦게 겨울옷을 드라이 하려 꺼내다 본 내 코트에서 발견한 그녀의 머리카락
한숨을 쉬며 코트를 꺼내다 같이 발견한 그녀의 깜짝 선물 털실 목도리
당장이라도 끼고 외출할 수 있는, 그녀가 손수 만들어 준 커플 이니셜 팔찌

책상에 가지런히 놓인 우리의 커플링과 내 왼손에 아직도 남아있는

동그랗고 하얀 우리의 반지 자국도

 

방안이 온통 그녀의 흔적들 투성이라 밖으로 나와 켠 TV에도

그녀가 좋아하는 예능 프로그램, 그녀가 좋아하는 프로야구 팀, 그녀가 좋아하던 아이돌 가수

그래서 뛰쳐나간 집 밖 현관문부터 집앞 공원과 산책로 버스정류장 번화가 지하철역
어느 곳을 가봐도, 사는 곳을 벗어나봐도 다 그녀와 갔던 곳들 뿐
이렇게 될 줄은 모르고 마냥 행복했었던 그때의 우리를 보며

혼자 걷는 발걸음이 무거워 더 내딛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선다.

어쨌든 내일은 올 것이고 나는 출근해야지.


집에 있든 밖에 있든 똑같다는 건 진작 알고 있었다.

어디로 떠나서 잊을 수 있었다면 진작 그랬을 것이다.
취업을 핑계로 혼자 떠났던 여행도 진짜 목적은 그랬으니까.
내가 사는곳, 자는곳, 먹는곳, 걷는곳, 뛰는곳, 나의 모든 곳에 그녀가 있다,

그래 맞아.

나는 아직도 못 잊고 이러고 있다. 앞으로도 그러지 싶다.


나만 이러는 건 아니지 않을까?
네 방안에는 아직도 내 수저와, 옷들과, 칫솔과, 함께 누워 잠들던 기억들이 있지 않니.
지금도 내 핸드폰에 남아있는..사진 속에서 날 바라보며 사랑스러운 그런 얼굴을 하던 네가
그렇게 한순간에 나를 떠나갈 수 있는걸까
싫어서 헤어지는게 아니라는 말을 나는 언제쯤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렇게 예쁜 얼굴을 하고서..나같은 놈을 세상에서 제일 사랑스럽게 바라봐주는 사람을

내가 살면서 다시 또 만날 수 있을까

내 군생활과 취업 준비 시절..가장 힘들었던 시절 나와 함께 했던 고마운 너는 지금 뭘 하고 있니
그렇게 다시 혼자가 된 너는 지금 행복하니
내가 싫어진거니 나를 안사랑하는거니 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하지 못했던 너는 지금 잘 있니


너라고 부르는 것도 싫어했잖아.
나는 지금 이렇게 글 쓰면서도 아직도 흠칫 한다.

나도 누가 나보고 야 너 하면 싫더라.

근데 여기다가 이름을 쓸 수도 없잖아. 너라고 해도 괜찮지?
사랑하면 닮아간다고 하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사진을 보고 닮았다고 했다.
나는 못났고 너는 정말 예쁜데 닮았다는 것이 처음에는 이해가 되진 않았는데
자꾸 보다보니 그런것 같기도 했다. 좀 미안하네 나 만나서 못생겨진건가.

못생겨졌는데도 왜이렇게 말도안되게 이뻐?
닮은건 겉모습 뿐만이 아니라 말투와 버릇도 그렇다.


그냥...우리는 서로에게 우리 자체였다고 생각한다.
그랬기에 아버님 어머님도 나를 아들처럼 잘 대해 주신 거겠지.

생신과 결혼기념일날 별다른걸 해드릴 수 없어서 어찌나 죄송하던지..
이젠 다 해드릴 수 있는데....내가 조금 늦은 것 같다.

 

장마가 오지만 마른 장마라고 해서 맑고 더운 날이 더 많다.
이 글을 쓰는 오늘은 비가 오지만

어쨌든 그런 날이면 같이 집 앞 중학교에서 캐치볼 했던 기억이 생각난다.
고작해야 한번이고 평소에 덥다고 그런 몸 움직이는 걸 잘 하지도 않던 우리였지만
그날 네가 입었던 옷, 묶어 올린 머리, 별거 아닌..

그냥 공을 던지고 받는것일 뿐인데도 너무나 해맑게 좋아하고 웃던..

너의 너무 예쁘고 너무 귀여웠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우리가 만나는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이상하게도 그 기억이 손에 꼽을 만큼 기억에 남는 장면이다.
우리가 헤어지던 날도 나는 혼자 너의 집 주변을 서성이다가

아무도 없는 중학교 운동장 한 켠 계단에 앉았다.
별 생각 없이 걸어와 앉았는데 앉고나니 도무지 눈물이 멈추지가 않아서
아무도 오진 않았지만 창피한 줄도 모르고 한참을 펑펑 울었다.

 

우리가 그렇게 멀리 사는것도 아니더라.

처음에 비하면 많이 가까워졌지만 그래도 아직 다른 시에 살잖아.

운전연수 하면서 가보고 싶은 곳이 있냐고 하길래

나는 별 생각 없이 늘 버스타고 가던 너희 집 근처로 갔었다.

되게 금방 가더라 생각보다..기분이 이상하더라.

이렇게나 가까운데 얼굴 한번 다시 보는게 왜 이렇게 힘들게 된 걸까

원룸 나가서 부모님하고 다시 같이 산다고 했는데 거기가 어딘지 정확히 나는 몰라.

그곳에서 추억이 산더미인데...지금쯤이면 이사했겠구나

보고싶다

전화는 할 수가 없고..카톡은 1이 사라지질 않고

문자도 마찬가지고

그래도 이곳을 종종 들르던 너라면

우리의 처음과 함께했던 이 노래제목을 보고 한번쯤은 눌러보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다시 마주칠 수 있을까.

언제 다시 보더라도 멀리서부터 제일 먼저 알아볼 수 있는데...

마주하기가 너무 힘들구나.

속에 있는 말들이 아직 참 많은데. 그래도 그만 쓸게

끝이 없을것같아 쓰려면 계속 쓸수는 있는데..

이렇게라도 어딘가에 조금이나마 풀어놓으니까 조금 낫다.

그래도 키보드 타닥거리는 이런거 말고

진짜로 만나서 그냥 얘기가 하고 싶다.

이 이야기를 네가 들을진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