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노무현에게 2004년은 그야말로 파란격동의 한 해였다. 도를 넘어선 수구정치세력의 공격은 급기야 현직 대통령을 끌어내리려는 포악질로 치달았다. 이번에도 그를 지켜준 건 민초들이었다.
노무현은 갑신년 새해를 맞은 신년사에서 “우리 국민과 함께라면 못 해낼 것이 없다”면서 “심기일전해서 흔들림 없이 정진해 갈 것이며, 경쟁력 있는 정부, 국민에게 신뢰 받는 정부가 될 것”을 다짐했다. 이어 1월 14일에는 연두기자회견을 갖고 새해 국정운영 방향과 비전을 밝혔는데, 특히 서민경제 회복·지식산업 육성·부동산 가격 안정·동북아 경제중심 전략과 차세대 성장산업 육성·시장개혁 프로그램 추진·사교육비 해결과 공교육 정상화·균형발전정책 추진을 통한 지역혁신체계 구축·남북관계의 내실 있는 발전을 통한 6·15평화선언 정신 구현 등을 천명했다.
2004년 2월 13일, 노무현은 제17대 4월 총선을 앞두고 청와대 참모진용을 대폭 개편하고 부분 개각을 단행했다. 참모진과 내각을 일신한 노무현이 취임 2년차의 국정을 의욕적으로 이끌고 있을 즈음 정계 일각에서 조순형 민주당 대표를 시작으로 대통령 탄핵론이 제기되었다.
조순형은 1월 15일 대통령의 선거 개입은 헌법과 법률 위반으로 탄핵 사유라고 경고했다. 1월 18일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경선 당시 노무현 측이 썬앤문 측에 자금지원을 요청했다”는 신문보도를 빌미로 탄핵을 검토하겠다고 나섰다. 조순형은 또 2월 3일 노무현 대통령이 계속 선거에 개입한다면 민주당은 탄핵을 발의할 것임을 표명했다.
노무현은 2월 18일 경인지역 언론사와 가진 회견에서 “개헌 저지선까지 무너지면 그 뒤에 어떤 일이 생길지 나도 정말 말씀드릴 수가 없다”고 발언했다. 또 2월 24일에는 방송기자클럽 초청 기자회견에서 “앞으로 4년 제대로 하게 해줄 것인지 못 견뎌서 내려오게 할 것인지 국민들이 분명하게 해줄 것”이라며 “국민들이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줄 것을 기대한다”고 언명했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이는 국민을 겁박하여 특정 정당 지지를 유도하고 공무원의 선거중립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탄핵 사유에 해당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때마침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런 일련의 발언이 ‘공무원의 선거중립의무’를 위반한 것이라며 노 대통령에게 선거중립의무를 준수할 것을 요청했다. 청와대는 이에 선관위의 의견은 “존중하나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3월 5일 조순형은 “3월 7일까지 선거중립의무 위반과 본인 및 측근 비리 등에 대해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지 않을 경우 8일 탄핵소추안을 발의하겠다”고 최후통첩을 하기에 이르렀다. 청와대는 이에 대해 “부당한 정치적·정략적 압력과 횡포에 굴복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동변상련의 처지였다. 민주당은 노무현을 당선시키고도 분당되어 제2야당으로 전락한 신세가 되고, 한나라당은 김대중 정권 5년에 이어 노무현에게 다시 정권을 빼앗기게 되어 앙앙불락하는 처지였다. 두 당의 의석수는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발의하고도 남았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오랜 ‘적(敵)’이었으나 반(反)노무현 전선에서는 죽이 잘 맞는 ‘동지’였다. 더욱이 17대 총선이 코앞이라서 ‘탄핵’은 선거 전략으로도 효용성이 높을 것으로 판단했을 터였다. 한나라당은 3월 7일 노무현에게 ‘재발 방지’ 약속을 요구했다. 그러나 그는 “탄핵 사유에 대해서는 굴복할 수 없고 원칙적으로 대응해 나가야 한다”며 일전 불사의 의지를 표명했다.
마침내 3월 9일 한나라당과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 159명은 마침내 대통령 탄핵 소추안을 국회에 발의했다.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 조순형 민주당 대표, 박관용 국회의장이 이 과정을 주도했다. 자민련은 동의하지 않았지만 재차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했다. 3월 10일 두 야당은 탄핵안을 처리하려 했지만 열린우리당 국회의원들의 저지로 1차 처리에 실패했다.
다음날 특별기자회견을 열어 사과 요구를 거부한 노 대통령은 남상국 대우건설 사장이 형인 노건평에게 3천만원을 건넸다는 의혹에 대해 “좋은 학교 나오시고 크게 성공한 분들이 시골에 있는 사람에게 가서 머리 조아리고 돈 주고 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언급했다. 이 회견 이후 남 사장이 한남대교에서 투신자살했고, 이에 탄핵에 반대하던 자민련이 자유투표로 당론을 선회하면서 탄핵소추 진행이 급진전되었다.
3월 12일 오전 11시경,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단상을 점거한 채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박관용 의장이 경호권을 발동하여 여당 의원들을 끌어내리고 본회를 개회했다. 한나라당, 민주당, 자민련 소속 의원 등 총 195명이 투표하여 193명의 찬성으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가결했다. 오후 3시, 소추결의서 정본이 헌법재판소에 송달되었다. 이날 국회 주변에서는 수많은 시민들이 탄핵 반대시위를 벌였다.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이날 11시 55분, 박관용 의장이 탄핵소추안 가결을 선포하는 순간, 투표에 참가한 의원들은 만세를 부르며 환호했다. 탄핵세력은 탄핵안 가결을 “구국의 결단으로 헌정질서를 수호하고 의회주의와 민주주의의 승리를 낳았다”고 자찬했다. 그러나 ‘보수적’이라는 대한변협조차도 가결 몇 시간 만에 성명을 통해 “탄핵사유 없는 탄핵소추를 가결함으로써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다”고 비판함으로써 저들의 자가당착과 자화자찬에 찬물을 끼얹었다.
탄핵소추를 선봉에서 주도한 국회의장 박관용도 “의회민주주의수호를 위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경호권을 발동했다”고 변명했다.
˝결단의 시기가 임박했음을 느꼈다. 국회의원 과반수의 발의로 제출된 안건을 그냥 방기할 수도 없었다. 설령 경호권을 사용하는 부끄러운 모습이 있더라도 의회민주주의를 수호했다는 당당함을 택하기로 했다. 11시경 나는 국회사무총장을 의장실로 불렀다. “내가 사회를 볼 수 있도록 만들어주시오.” 질서유지권 발동을 지시했다. 그때 야당 총무들이 와서 말했다. “단상에 있는 의원들은 우리(야당의원들)가 끌어 내릴테니 의장님은 사회만 보시면 됩니다.”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믿은 것은 아니었지만 의장석으로 가면서 나는 야당 총무들의 장담이 현실로 이루어지기를 바랐다. 그러나 내가 의장석으로 향하는 순간 단상과 단하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야당 의원들 누구도 단상의 여당 의원들을 ‘데리고’ 나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경호원들이 여당 의원들을 끌어내자 격렬하게 항거하는 모습이 전후 맥락을 생략하고 이 장면만 떼어놓고 본다면 지금까지 수없이 보아왔던 ‘날치기 통과’의 그림과 다를 것이 없었다.˝ - 박관용,「다시 탄핵이 와도 나는 의사봉을 잡겠다」, 32쪽, 아침나라, 2005년.
노무현은 아수라장 속에 자신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처리되는 시간 경남 창원의 제조업체를 방문, 사원들을 격려하고 있었다. 그때 탄핵소추안 가결 소식을 전해들은 그는 “지금 이 과정은 새로운 발전과 도약을 위한 진통이라고 생각하며 그저 괴롭기만 한 소모적 진통은 아닐 것”이라고 했다. 또 이날 열린 해군사관학교 졸업식에도 참석하여 임관생도들을 격려한 그는 그런 경황 중에도 웃음을 잃지 않으며 “마지막일지 모르겠는데 내년에 다시 왔으면 좋겠다”고 말해 좌중을 숙연하게 했다.
탄핵국면에서 대통령이 조금만 ‘비굴’해졌다면 탄핵소추를 피할 수도 있었다. 앞서 언급한 사과 요구 외에도 “남경필·원희룡·정병국 등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들과 추미애·조성준 등 민주당 의원들이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 또는 사과로 간주될 수 있는 발언을 하면 표결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하자 열린우리당의 정동영 의장, 김근태 원내대표, 김원기 고문 들을 비롯한 여러 동지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는 뜻을 전해왔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할 생각이 없었다.”
부러질지언정 부당한 요구에 굴복할 순 없다는 노무현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는 자신의 신념과 배치되거나 불의라고 인식하는 사안에 대해서는 어떤 어려움이나 불이익이 닥치더라도 결코 타협하거나 굴복하지 않았다. 대통령 자리에서 몰아내겠다는 탄핵소추위협에도 그는 굽힘이 없었다.
청와대 민정수석을 사임하고 카트만두 여행에 나섰다가 외신보도를 통해 대통령 탄핵소추 소식을 듣고 급거 귀국한 문재인은 “노 대통령다운 대응이었다”고 했다.
˝귀국한 지 얼마 안 돼, 대통령 기자회견이 있었다. 인터넷 기사를 보니 탄핵 반대여론이 압도적이었고, 대통령의 사과를 전제로 한 탄핵안 철회 해법이 주장되기도 했다. 나는 그래서 야당에게 탄핵안을 처리하지 않거나 철회할 명분을 삼도록 적어도 유감을 표명하는 등 유화적이고 타협적인 기자회견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강경하고 원칙적인 입장을 밝혀 오히려 야당이 전의를 가다듬도록 만들었다. 노 대통령다웠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 더 강인하고, 막히면 정면 돌파하는 대통령 기질이 그대로 드러난 기자회견이었다. 틀림없이 참모들은 타협적 기조로 가자고 건의했을 텐데, 듣지 않았을 대통령 모습이 머릿속에서 훤히 그려졌다. 어쨌든 타협은 물 건너갔다. 대통령은 할 말을 다한 셈이었고, 이제 결과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 문재인,《문재인의 운명》, 293쪽~294쪽, 가교, 2011년.
각급 선거를 앞두고 역대 대통령은 여당에 유리한 발언을 하거나 선거용 행사를 수없이 일삼아왔다. 그때마다 야당이 탄핵소추를 일삼았다면 제대로 임기를 마칠 대통령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유독 노무현에게만 탄핵소추라는 ‘불명예’를 덧씌운 것은 노무현에 대한 정치권 주류 세력의 폄하의식도 작용했을 것이다. 노무현으로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고 분통 터지는 일이었을 터였다.
고려대학교 헌법학 교수인 장영수는 두 여당이 대통령 탄핵이라는 극단적인 행동을 감행한 배경을 분석하면서 “탄핵제도 자체에 대한 이해부족에서 비롯되었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민주당과 한나라당에서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극약처방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초강경 수단을 끝까지 밀고 나간 데에는 이성적 판단보다 감정적 판단이 앞섰을지도 모른다. 탄핵소추안을 발의한 후에도 야당 측에서 대통령이 사과하면 탄핵소추를 철회할 수 있다고 말한 저변에는 그러한 감정적 판단이 깔려 있었을 수 있다. 하지만 탄핵제도는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헌법상의 제도이며 단순히 감정적 판단에 따라 소추여부를 좌우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어쩌면 탄핵제도 자체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에 이런 극단적 상황이 벌어졌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당시 노무현은 탄핵소추와 관련하여 “헌법이 국회에 부여한 탄핵소추권을 인정하고 법리적·정치적으로 다루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표결을 몸으로 저지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뜻을 열린우리당에 전하라고 지시했더니 참모들이 펄쩍 뛰었다. 몇몇 의원들이 그런 뜻을 전해들었지만 내말을 따르지 않았다. 박관용 국회의장이 4당대표 회담을 하라고 제안했지만 나는 그것도 거절했다. 대통령 탄핵 소추권은 헌법이 국회에 부여한 합법적 권한이다. 그 권한을 나는 인정했다. 그리고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이라는 또 다른 절차와 국민여론이란 것이 있으니 법리적 정치적으로 다루어 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열린우리당 의원 40여 명이 국회본회의장을 점거 농성하고 있던 3월 11일 오전 기자회견을 했다. 건평 형님이나 측근들과 관련된 비리 의혹에 대해서는 해명하고 사과했다. 하지만 선거법 위반이라는 비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잘못한 일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사과할 뜻이 있지만 “뭐가 잘못인지도 모르면서 그저 탄핵을 모면하기 위한 사과라면 그런 것은 할 수 없다”고 했다. 3월 12일 오전 11시 55분, 국회 경위들과 야당의원들이 농성하던 열린우리당 의원들을 모두 끌어낸 다음 탄핵안을 처리했다.˝ - 노무현,《운명이다》, 돌배개, 2010년, 236쪽~237쪽.
애초부터 무리한 탄핵을 추진한 야당은 내심 노무현이 사과하기를 기대했다. 자신들도 탄핵까지 끌고 갈 만큼 중대한 사안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고, 다분히 ‘감정적인’ 탄핵에 따른 역풍이 우려되기도 했다. 그러나 노무현은 단호했다. ‘측근비리’에 대해서는 정중하게 사과했지만 ‘선거법 위반’은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그저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없는 잘못’을 사과한다는 것은 노무현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마주보고 달리던 두 기관차는 서로 충돌했고, 노무현은 이날부터 대통령직 수행이 정지되었다. 고건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게 되어서 당장 헌정 중단사태는 아니었으나 정치는 패닉상태에 빠져들었다.
야당은 탄핵소추 이유로 선거중립의무 위반, 측근비리 등 권력형 부패, 국민경제 및 국정파탄을 들었지만 헌법학자 장영수는 다음 세가지 이유를 들어 반박했다.
˝가장 먼저 배제될 수 있는 것은 국민경제 및 국정의 파탄에 대한 대통령의 책임이다. 현재의 경제적 위기상황을 과연 대통령의 책임으로 돌릴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사실적 판단이나 경제적 위기를 맞았던 역대 대통령들과의 비교를 접어두더라도, 현재의 어려운 경제상황이 초래된 점과 관련하여 대통령의 직무상의 위법행위가 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국정의 파탄에 대한 책임은 이를 정치적으로 추궁할 수 있는지는 모르되, 위법행위를 전제하는 탄핵의 사유로서는 부적합하다고 평가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측근비리를 탄핵소추의 사유로 삼은 점도 부적절하다. 만일 대통령이 측근의 비리와 관련하여 직접 직무상의 권력을 이용하여 지시 또는 방조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그것을 헌법 제65조의 탄핵사유에 해당될 수 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측근들의 비리가 일부 밝혀진 가운데 수사가 진행되고 있을 뿐이고, 대통령의 직접적 개입이 밝혀진 바는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측근들의 비리에 대해 대통령의 도의적 또는 정치적 책임을 물을 수는 있겠지만, ‘직무상의 위법행위’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묻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탄핵소추의 직접적 기폭제가 되었던 공직선거법상의 선거중립의무와 관련해서도 과연 그것이 탄핵사유가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크다. 그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그러하다. 첫째로 공직선거법상의 선거중립 의무가 과연 대통령에 대해서 선거에 있어서 특정정당을 편드는 모든 발언을 금지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있으며, 둘째로 대통령의 발언이 설사 선거중립 의무에 반(反)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정말로 대통령의 파면을 정당화시킬 정도의 중대성을 갖는 것인지도 의문이다.˝ - 장영수,「‘정치적 책임’과 ‘법적 책임’은 별개의 것이다」,『인물과 사상』30부, 17쪽, 2004년.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노무현(盧武鉉) 평전(評傳)』8. 탄핵과 총선정국의 회오리 ⑴
● 탄핵사유 없는 탄핵소추, 다수의 횡포
대통령 노무현에게 2004년은 그야말로 파란격동의 한 해였다. 도를 넘어선 수구정치세력의 공격은 급기야 현직 대통령을 끌어내리려는 포악질로 치달았다. 이번에도 그를 지켜준 건 민초들이었다.
노무현은 갑신년 새해를 맞은 신년사에서 “우리 국민과 함께라면 못 해낼 것이 없다”면서 “심기일전해서 흔들림 없이 정진해 갈 것이며, 경쟁력 있는 정부, 국민에게 신뢰 받는 정부가 될 것”을 다짐했다. 이어 1월 14일에는 연두기자회견을 갖고 새해 국정운영 방향과 비전을 밝혔는데, 특히 서민경제 회복·지식산업 육성·부동산 가격 안정·동북아 경제중심 전략과 차세대 성장산업 육성·시장개혁 프로그램 추진·사교육비 해결과 공교육 정상화·균형발전정책 추진을 통한 지역혁신체계 구축·남북관계의 내실 있는 발전을 통한 6·15평화선언 정신 구현 등을 천명했다.
2004년 2월 13일, 노무현은 제17대 4월 총선을 앞두고 청와대 참모진용을 대폭 개편하고 부분 개각을 단행했다. 참모진과 내각을 일신한 노무현이 취임 2년차의 국정을 의욕적으로 이끌고 있을 즈음 정계 일각에서 조순형 민주당 대표를 시작으로 대통령 탄핵론이 제기되었다.
조순형은 1월 15일 대통령의 선거 개입은 헌법과 법률 위반으로 탄핵 사유라고 경고했다. 1월 18일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경선 당시 노무현 측이 썬앤문 측에 자금지원을 요청했다”는 신문보도를 빌미로 탄핵을 검토하겠다고 나섰다. 조순형은 또 2월 3일 노무현 대통령이 계속 선거에 개입한다면 민주당은 탄핵을 발의할 것임을 표명했다.
노무현은 2월 18일 경인지역 언론사와 가진 회견에서 “개헌 저지선까지 무너지면 그 뒤에 어떤 일이 생길지 나도 정말 말씀드릴 수가 없다”고 발언했다. 또 2월 24일에는 방송기자클럽 초청 기자회견에서 “앞으로 4년 제대로 하게 해줄 것인지 못 견뎌서 내려오게 할 것인지 국민들이 분명하게 해줄 것”이라며 “국민들이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줄 것을 기대한다”고 언명했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이는 국민을 겁박하여 특정 정당 지지를 유도하고 공무원의 선거중립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탄핵 사유에 해당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때마침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런 일련의 발언이 ‘공무원의 선거중립의무’를 위반한 것이라며 노 대통령에게 선거중립의무를 준수할 것을 요청했다. 청와대는 이에 선관위의 의견은 “존중하나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3월 5일 조순형은 “3월 7일까지 선거중립의무 위반과 본인 및 측근 비리 등에 대해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지 않을 경우 8일 탄핵소추안을 발의하겠다”고 최후통첩을 하기에 이르렀다. 청와대는 이에 대해 “부당한 정치적·정략적 압력과 횡포에 굴복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동변상련의 처지였다. 민주당은 노무현을 당선시키고도 분당되어 제2야당으로 전락한 신세가 되고, 한나라당은 김대중 정권 5년에 이어 노무현에게 다시 정권을 빼앗기게 되어 앙앙불락하는 처지였다. 두 당의 의석수는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발의하고도 남았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오랜 ‘적(敵)’이었으나 반(反)노무현 전선에서는 죽이 잘 맞는 ‘동지’였다. 더욱이 17대 총선이 코앞이라서 ‘탄핵’은 선거 전략으로도 효용성이 높을 것으로 판단했을 터였다. 한나라당은 3월 7일 노무현에게 ‘재발 방지’ 약속을 요구했다. 그러나 그는 “탄핵 사유에 대해서는 굴복할 수 없고 원칙적으로 대응해 나가야 한다”며 일전 불사의 의지를 표명했다.
마침내 3월 9일 한나라당과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 159명은 마침내 대통령 탄핵 소추안을 국회에 발의했다.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 조순형 민주당 대표, 박관용 국회의장이 이 과정을 주도했다. 자민련은 동의하지 않았지만 재차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했다. 3월 10일 두 야당은 탄핵안을 처리하려 했지만 열린우리당 국회의원들의 저지로 1차 처리에 실패했다.
다음날 특별기자회견을 열어 사과 요구를 거부한 노 대통령은 남상국 대우건설 사장이 형인 노건평에게 3천만원을 건넸다는 의혹에 대해 “좋은 학교 나오시고 크게 성공한 분들이 시골에 있는 사람에게 가서 머리 조아리고 돈 주고 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언급했다. 이 회견 이후 남 사장이 한남대교에서 투신자살했고, 이에 탄핵에 반대하던 자민련이 자유투표로 당론을 선회하면서 탄핵소추 진행이 급진전되었다.
3월 12일 오전 11시경,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단상을 점거한 채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박관용 의장이 경호권을 발동하여 여당 의원들을 끌어내리고 본회를 개회했다. 한나라당, 민주당, 자민련 소속 의원 등 총 195명이 투표하여 193명의 찬성으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가결했다. 오후 3시, 소추결의서 정본이 헌법재판소에 송달되었다. 이날 국회 주변에서는 수많은 시민들이 탄핵 반대시위를 벌였다.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이날 11시 55분, 박관용 의장이 탄핵소추안 가결을 선포하는 순간, 투표에 참가한 의원들은 만세를 부르며 환호했다. 탄핵세력은 탄핵안 가결을 “구국의 결단으로 헌정질서를 수호하고 의회주의와 민주주의의 승리를 낳았다”고 자찬했다. 그러나 ‘보수적’이라는 대한변협조차도 가결 몇 시간 만에 성명을 통해 “탄핵사유 없는 탄핵소추를 가결함으로써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다”고 비판함으로써 저들의 자가당착과 자화자찬에 찬물을 끼얹었다.
탄핵소추를 선봉에서 주도한 국회의장 박관용도 “의회민주주의수호를 위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경호권을 발동했다”고 변명했다.
˝결단의 시기가 임박했음을 느꼈다. 국회의원 과반수의 발의로 제출된 안건을 그냥 방기할 수도 없었다. 설령 경호권을 사용하는 부끄러운 모습이 있더라도 의회민주주의를 수호했다는 당당함을 택하기로 했다. 11시경 나는 국회사무총장을 의장실로 불렀다. “내가 사회를 볼 수 있도록 만들어주시오.” 질서유지권 발동을 지시했다. 그때 야당 총무들이 와서 말했다. “단상에 있는 의원들은 우리(야당의원들)가 끌어 내릴테니 의장님은 사회만 보시면 됩니다.”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믿은 것은 아니었지만 의장석으로 가면서 나는 야당 총무들의 장담이 현실로 이루어지기를 바랐다. 그러나 내가 의장석으로 향하는 순간 단상과 단하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야당 의원들 누구도 단상의 여당 의원들을 ‘데리고’ 나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경호원들이 여당 의원들을 끌어내자 격렬하게 항거하는 모습이 전후 맥락을 생략하고 이 장면만 떼어놓고 본다면 지금까지 수없이 보아왔던 ‘날치기 통과’의 그림과 다를 것이 없었다.˝ - 박관용,「다시 탄핵이 와도 나는 의사봉을 잡겠다」, 32쪽, 아침나라, 2005년.
노무현은 아수라장 속에 자신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처리되는 시간 경남 창원의 제조업체를 방문, 사원들을 격려하고 있었다. 그때 탄핵소추안 가결 소식을 전해들은 그는 “지금 이 과정은 새로운 발전과 도약을 위한 진통이라고 생각하며 그저 괴롭기만 한 소모적 진통은 아닐 것”이라고 했다. 또 이날 열린 해군사관학교 졸업식에도 참석하여 임관생도들을 격려한 그는 그런 경황 중에도 웃음을 잃지 않으며 “마지막일지 모르겠는데 내년에 다시 왔으면 좋겠다”고 말해 좌중을 숙연하게 했다.
탄핵국면에서 대통령이 조금만 ‘비굴’해졌다면 탄핵소추를 피할 수도 있었다. 앞서 언급한 사과 요구 외에도 “남경필·원희룡·정병국 등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들과 추미애·조성준 등 민주당 의원들이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 또는 사과로 간주될 수 있는 발언을 하면 표결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하자 열린우리당의 정동영 의장, 김근태 원내대표, 김원기 고문 들을 비롯한 여러 동지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는 뜻을 전해왔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할 생각이 없었다.”
부러질지언정 부당한 요구에 굴복할 순 없다는 노무현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는 자신의 신념과 배치되거나 불의라고 인식하는 사안에 대해서는 어떤 어려움이나 불이익이 닥치더라도 결코 타협하거나 굴복하지 않았다. 대통령 자리에서 몰아내겠다는 탄핵소추위협에도 그는 굽힘이 없었다.
청와대 민정수석을 사임하고 카트만두 여행에 나섰다가 외신보도를 통해 대통령 탄핵소추 소식을 듣고 급거 귀국한 문재인은 “노 대통령다운 대응이었다”고 했다.
˝귀국한 지 얼마 안 돼, 대통령 기자회견이 있었다. 인터넷 기사를 보니 탄핵 반대여론이 압도적이었고, 대통령의 사과를 전제로 한 탄핵안 철회 해법이 주장되기도 했다. 나는 그래서 야당에게 탄핵안을 처리하지 않거나 철회할 명분을 삼도록 적어도 유감을 표명하는 등 유화적이고 타협적인 기자회견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강경하고 원칙적인 입장을 밝혀 오히려 야당이 전의를 가다듬도록 만들었다. 노 대통령다웠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 더 강인하고, 막히면 정면 돌파하는 대통령 기질이 그대로 드러난 기자회견이었다. 틀림없이 참모들은 타협적 기조로 가자고 건의했을 텐데, 듣지 않았을 대통령 모습이 머릿속에서 훤히 그려졌다. 어쨌든 타협은 물 건너갔다. 대통령은 할 말을 다한 셈이었고, 이제 결과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 문재인,《문재인의 운명》, 293쪽~294쪽, 가교, 2011년.
각급 선거를 앞두고 역대 대통령은 여당에 유리한 발언을 하거나 선거용 행사를 수없이 일삼아왔다. 그때마다 야당이 탄핵소추를 일삼았다면 제대로 임기를 마칠 대통령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유독 노무현에게만 탄핵소추라는 ‘불명예’를 덧씌운 것은 노무현에 대한 정치권 주류 세력의 폄하의식도 작용했을 것이다. 노무현으로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고 분통 터지는 일이었을 터였다.
고려대학교 헌법학 교수인 장영수는 두 여당이 대통령 탄핵이라는 극단적인 행동을 감행한 배경을 분석하면서 “탄핵제도 자체에 대한 이해부족에서 비롯되었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민주당과 한나라당에서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극약처방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초강경 수단을 끝까지 밀고 나간 데에는 이성적 판단보다 감정적 판단이 앞섰을지도 모른다. 탄핵소추안을 발의한 후에도 야당 측에서 대통령이 사과하면 탄핵소추를 철회할 수 있다고 말한 저변에는 그러한 감정적 판단이 깔려 있었을 수 있다. 하지만 탄핵제도는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헌법상의 제도이며 단순히 감정적 판단에 따라 소추여부를 좌우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어쩌면 탄핵제도 자체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에 이런 극단적 상황이 벌어졌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당시 노무현은 탄핵소추와 관련하여 “헌법이 국회에 부여한 탄핵소추권을 인정하고 법리적·정치적으로 다루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표결을 몸으로 저지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뜻을 열린우리당에 전하라고 지시했더니 참모들이 펄쩍 뛰었다. 몇몇 의원들이 그런 뜻을 전해들었지만 내말을 따르지 않았다. 박관용 국회의장이 4당대표 회담을 하라고 제안했지만 나는 그것도 거절했다. 대통령 탄핵 소추권은 헌법이 국회에 부여한 합법적 권한이다. 그 권한을 나는 인정했다. 그리고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이라는 또 다른 절차와 국민여론이란 것이 있으니 법리적 정치적으로 다루어 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열린우리당 의원 40여 명이 국회본회의장을 점거 농성하고 있던 3월 11일 오전 기자회견을 했다. 건평 형님이나 측근들과 관련된 비리 의혹에 대해서는 해명하고 사과했다. 하지만 선거법 위반이라는 비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잘못한 일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사과할 뜻이 있지만 “뭐가 잘못인지도 모르면서 그저 탄핵을 모면하기 위한 사과라면 그런 것은 할 수 없다”고 했다. 3월 12일 오전 11시 55분, 국회 경위들과 야당의원들이 농성하던 열린우리당 의원들을 모두 끌어낸 다음 탄핵안을 처리했다.˝ - 노무현,《운명이다》, 돌배개, 2010년, 236쪽~237쪽.
애초부터 무리한 탄핵을 추진한 야당은 내심 노무현이 사과하기를 기대했다. 자신들도 탄핵까지 끌고 갈 만큼 중대한 사안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고, 다분히 ‘감정적인’ 탄핵에 따른 역풍이 우려되기도 했다. 그러나 노무현은 단호했다. ‘측근비리’에 대해서는 정중하게 사과했지만 ‘선거법 위반’은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그저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없는 잘못’을 사과한다는 것은 노무현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마주보고 달리던 두 기관차는 서로 충돌했고, 노무현은 이날부터 대통령직 수행이 정지되었다. 고건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게 되어서 당장 헌정 중단사태는 아니었으나 정치는 패닉상태에 빠져들었다.
야당은 탄핵소추 이유로 선거중립의무 위반, 측근비리 등 권력형 부패, 국민경제 및 국정파탄을 들었지만 헌법학자 장영수는 다음 세가지 이유를 들어 반박했다.
˝가장 먼저 배제될 수 있는 것은 국민경제 및 국정의 파탄에 대한 대통령의 책임이다. 현재의 경제적 위기상황을 과연 대통령의 책임으로 돌릴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사실적 판단이나 경제적 위기를 맞았던 역대 대통령들과의 비교를 접어두더라도, 현재의 어려운 경제상황이 초래된 점과 관련하여 대통령의 직무상의 위법행위가 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국정의 파탄에 대한 책임은 이를 정치적으로 추궁할 수 있는지는 모르되, 위법행위를 전제하는 탄핵의 사유로서는 부적합하다고 평가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측근비리를 탄핵소추의 사유로 삼은 점도 부적절하다. 만일 대통령이 측근의 비리와 관련하여 직접 직무상의 권력을 이용하여 지시 또는 방조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그것을 헌법 제65조의 탄핵사유에 해당될 수 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측근들의 비리가 일부 밝혀진 가운데 수사가 진행되고 있을 뿐이고, 대통령의 직접적 개입이 밝혀진 바는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측근들의 비리에 대해 대통령의 도의적 또는 정치적 책임을 물을 수는 있겠지만, ‘직무상의 위법행위’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묻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탄핵소추의 직접적 기폭제가 되었던 공직선거법상의 선거중립의무와 관련해서도 과연 그것이 탄핵사유가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크다. 그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그러하다. 첫째로 공직선거법상의 선거중립 의무가 과연 대통령에 대해서 선거에 있어서 특정정당을 편드는 모든 발언을 금지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있으며, 둘째로 대통령의 발언이 설사 선거중립 의무에 반(反)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정말로 대통령의 파면을 정당화시킬 정도의 중대성을 갖는 것인지도 의문이다.˝ - 장영수,「‘정치적 책임’과 ‘법적 책임’은 별개의 것이다」,『인물과 사상』30부, 17쪽, 2004년.
☞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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