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9월 19일 경기도 화성시 태안읍 안녕리(安寧里, 현 안녕동)에서 71세 노인의 하의가 벗겨지고, 목이 졸려 살해된 채 발견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1986년 2차례, 1987년 3차례, 1988년 2차례, 1990년과 1991년에 각각 1차례씩 총 10회에 걸쳐 불특정 다수의 여성 10명이 차례로 강간 살해되었는데, 사건 모두 태안읍 반경 2㎞ 이내에서 일어났다.
사건의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다. ① 피해자가 모두 여성이다. ② 피해자가 젊은 층에 한정되지 않고 52세(7차)·69세(10차)·71세(1차) 등 다양하다. ③ 피해자의 음부가 크게 훼손되었다(4·6·7·9차). ④ 사건현장이나 피해자의 음부 안에서 정액 또는 머리카락·담배꽁초 등이 발견되었다. ⑤ 피해자의 대부분이 목이 조여 살해되었다. ⑥ 피해자의 국부에서 9개의 복숭아 조각이 나오고, 가슴이 19차례나 칼로 도려질 정도로 범행 수법이 잔인하고 대범하다.
한국에서 발생한 최초의 연쇄살인사건으로, 처음에는 일반적인 개별 살인사건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사건의 실마리가 풀리지 않고, 수사가 계속되는 동안에도 잇따라 사건이 일어났다. 이로 인해 연쇄살인사건은 전 국민적인 관심사가 되었고, 경찰도 이 사건을 해결하는 데 경찰력을 집중하였다.
그러나 총 180만 명의 경찰이 동원되고, 3,000여 명의 용의자가 조사를 받았음에도 8차 사건을 제외하고는 어떤 사건의 범인도 잡히지 않았다. 이 때문에 단독범의 소행인지, 다수의 범인에 의한 개별사건인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또 7·9·10차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되었던 3명의 용의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불상사가 거듭되면서 '화성괴담'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였다.
유일하게 해결된 8차 사건의 경우,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음모와 범인의 음모가 일치한다는 것이 증거로 채택되어 무기징역이 선고되었으나, 다른 사건과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8차 사건을 제외한 모든 사건들은 여전히 미해결 사건으로 남은 채 2006년 모든 사건은 살인 공소시효 15년이 끝났다. 2003년에는 봉준호 감독이 《살인의 추억》이라는 타이틀로 영화화하여 흥행에 성공하였다.
이것이 화성연쇄 살인사건에대한 간략한 요약임.
가장중요한것들만 말해주겠음.
범인이 한차례 실수로 여성을 살해하지못하고 놓치게됬는데 그때 여성의목격진술로 만들어진 몽타주임
잘봐두시길.
당시 키도 작았으며 호리호리한체형이였음.
내가 말하고자 하는건 범인이 누구냔데
범인이 또 한차례 실수한것이 수원과 화성을 왔다갔다 하는 버스를타고 왕복했음.
버스기사증언과 몽타주와 일치함.
고로 범인은 20대 전후반의 남성이였으며 키는 170내외 호리호리한체형의 수원에 거주하는 남자였음.
하지만 이 악마는 잡히질않음. 당시 정액채취도 했지만 DNA분석이 불가능함.
그렇게 세월은 흐르게됨.
그런데
수원에서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사건수법과 유사한 연쇄살인사건들이 발생하게됨.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잔인한수법과 동일하며 약한 부녀자만 상대로 잔인하고 무참히 살해했다는것임.
#화성연쇄 살인사건 그 범인의 실체를 밝히다
[ 華城連鎖殺人事件 ]
1986년 9월 19일 경기도 화성시 태안읍 안녕리(安寧里, 현 안녕동)에서 71세 노인의 하의가 벗겨지고, 목이 졸려 살해된 채 발견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1986년 2차례, 1987년 3차례, 1988년 2차례, 1990년과 1991년에 각각 1차례씩 총 10회에 걸쳐 불특정 다수의 여성 10명이 차례로 강간 살해되었는데, 사건 모두 태안읍 반경 2㎞ 이내에서 일어났다.
사건의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다. ① 피해자가 모두 여성이다. ② 피해자가 젊은 층에 한정되지 않고 52세(7차)·69세(10차)·71세(1차) 등 다양하다. ③ 피해자의 음부가 크게 훼손되었다(4·6·7·9차). ④ 사건현장이나 피해자의 음부 안에서 정액 또는 머리카락·담배꽁초 등이 발견되었다. ⑤ 피해자의 대부분이 목이 조여 살해되었다. ⑥ 피해자의 국부에서 9개의 복숭아 조각이 나오고, 가슴이 19차례나 칼로 도려질 정도로 범행 수법이 잔인하고 대범하다.
한국에서 발생한 최초의 연쇄살인사건으로, 처음에는 일반적인 개별 살인사건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사건의 실마리가 풀리지 않고, 수사가 계속되는 동안에도 잇따라 사건이 일어났다. 이로 인해 연쇄살인사건은 전 국민적인 관심사가 되었고, 경찰도 이 사건을 해결하는 데 경찰력을 집중하였다.
그러나 총 180만 명의 경찰이 동원되고, 3,000여 명의 용의자가 조사를 받았음에도 8차 사건을 제외하고는 어떤 사건의 범인도 잡히지 않았다. 이 때문에 단독범의 소행인지, 다수의 범인에 의한 개별사건인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또 7·9·10차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되었던 3명의 용의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불상사가 거듭되면서 '화성괴담'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였다.
유일하게 해결된 8차 사건의 경우,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음모와 범인의 음모가 일치한다는 것이 증거로 채택되어 무기징역이 선고되었으나, 다른 사건과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8차 사건을 제외한 모든 사건들은 여전히 미해결 사건으로 남은 채 2006년 모든 사건은 살인 공소시효 15년이 끝났다. 2003년에는 봉준호 감독이 《살인의 추억》이라는 타이틀로 영화화하여 흥행에 성공하였다.
이것이 화성연쇄 살인사건에대한 간략한 요약임.
가장중요한것들만 말해주겠음.
범인이 한차례 실수로 여성을 살해하지못하고 놓치게됬는데 그때 여성의목격진술로 만들어진 몽타주임
잘봐두시길.
당시 키도 작았으며 호리호리한체형이였음.
내가 말하고자 하는건 범인이 누구냔데
범인이 또 한차례 실수한것이 수원과 화성을 왔다갔다 하는 버스를타고 왕복했음.
버스기사증언과 몽타주와 일치함.
고로 범인은 20대 전후반의 남성이였으며 키는 170내외 호리호리한체형의 수원에 거주하는 남자였음.
하지만 이 악마는 잡히질않음. 당시 정액채취도 했지만 DNA분석이 불가능함.
그렇게 세월은 흐르게됨.
그런데
수원에서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사건수법과 유사한 연쇄살인사건들이 발생하게됨.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잔인한수법과 동일하며 약한 부녀자만 상대로 잔인하고 무참히 살해했다는것임.
10수년이 지난후 화성의악마와 나이도 딱맞아떠러짐
키또한 170내외 호리호리한체형 심지어 세월이 흘렀음에도 몽타주도 비슷함.
.
.
.
더 놀라운점은
화성연쇄살인사건이 6,7,8,9차 사건은 매우 뜸한간격으로 이러나게되는데
그중 7차인가 8차는 동일범이아니라 일반소매치기의 소행으로 밝혀지긴했으나
나머지 사건들이 1년 , 7개월 이런식으로 굉징히 긴텀을 두고 사건들이 발생함.
이게 왜 중요한지 암?
10수년이 흐른후 수원을 뒤집어놓은 저 살인마가 군대가서 휴가나온 날짜에 맞춰서만 화성연쇄살인사건과 일치한다는거임.
이미 형사들 사이에서도 물증이없을뿐 심증으론 화성연쇄살인사건 범인을 잡았음
그게 누구냐고?
.
.
.
.
.
.
.
.
.
.
이미 세상엔 없지
연쇄살인마 정남규.
형사들사이에선 이미 잡힌범인으로 취급함.
그리고 그놈목소리에 범인또한 누군지 알고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