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의 인물 소현세자

공미니2014.08.08
조회40,485

삼전도에서의 치욕을 겪은 뒤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갔던 소현세자는

9년만에 꿈에도 그리던 조국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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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의 침입으로 인조와 소현세자가 피신했던 남한산성-

그러나 꿈에도 그리던 조국에 돌아온 소현세자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아버지인 인조의 철저한 불신과 의심과 인조를 부추겨 소현세자를 밀

어내려고 한 후궁들의 궁중잔혹사였다.

인조는 쿠테타로 집권한 왕답게 소현세자가 청의 지원을 받아 쿠테타

를 일으켜 자신을 왕에서 몰아낼지 모른다는 의심을 하고 있었고,인조

의 후궁이었던 소용조씨는 인조의 이런 의심을 이용해 소현세자를 밀

어내려고 인조를 뒤에서 지속적으로 부추기고 있었다.

하지만 소현세자는 인조와 그 주변세력의 의심과 모함에 대응할 시간

도 갖지 못한채 벌어진 궁중잔혹사로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소현세자가 귀국한지 두 달만에 몸에 열이 나서 자리에 누웠다가 침을

맞고 3일만에 죽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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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현세자의 아들들이 묻혀진 쓸쓸한 묘지-

소현세자가 독살된 정황은 여러가지 근거가 있지만 가장 움직일 수 없

는 증거는 소현세자의 시신의 상태였다.

'인조실록'은 소현세자의 시신상태를 이렇게 적었다.

"병이 난 지 수일 만에 죽었는데 온몸이 전부 검은빛이었고 얼굴의 일곱

구멍에서 모두 피가 나오고 있어서 마치 약물에 중독돼 죽은 것 같았다"
소현세자가 의문의 죽음을 당한 뒤,소현세자의 부인인 강빈도 인조를 독

살하려 했다는 누명을 쓰고 사약을 받아 죽게되며,소현세자의 세 아들도

제주도로 유배되어 그 곳에서 죽음을 맞게 되었다.

자신의 친아들과 손자, 며느리, 그리고 사돈까지 죄없이 죽여버린 인조가

그의 시호에 '어질 인'자를 써서 인조(仁祖)라고 불리게 된 것은 당시 조선

을 지배한 권력층이 '서인정권'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소현세자 죽음의 미스터리

 

1. 소현세자의 담당 의원은 '이형익'라는 자였다. 그는 소현세자 내외와 사이가 좋지 않은 후궁, '조소용'의 친정을 출입하던 자였다. 소현세자 죽음 후, 대신들이 이형익을 국문해 처벌해야 한다고 간청했음에도 불구하고 '인조'는 처벌하지 않고 넘어갔다.

 

 

2. 소현세자의 장례는 서둘러서 이뤄졌다. 장례마저 간소했으며 예법 역시, 세자의 지위에 걸맞지 않는 것이었다.

 

 

3. 소현세자가 죽은 후, 보통 후계는 왕손으로 이어지는 법이지만 '인조'는 특이하게 둘째, '봉림대군'에게 왕의 자리를 물려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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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9

정말오래 전

Best진짜소현세자는너무아까운인재다 인조는진짜왕이되면안되는사람이였는데 그냥 말그대로자기아들한테열폭한인간

마루오래 전

Best봉림대군이 권좌를 이어받게된 이유는 인조가 세자빈을 경계하고 미워했기때문입니다 든든한 친정과 세아들을 둔 강직한 며느리가 버거웠던 거지요 귀가 얇고 반정으로 왕이된 인조는 할말은 하는 며느리가 상전같았겠죠 결국엔 인조손에 목숨을 잃고 가문이 쑥대밭이되었습니다

wea1오래 전

소현세자가 안죽어서 왕이되었다면 정조때보다 문물을 거의 150년정도 우리나라는 빠르게 문물을 받아들여졌을꺼임. 일제강점기도 없었을수도 있음.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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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ㅎ오래 전

소현세자가 왕이었다면 세상을 바꿀 인물이었지...

ㅇㅇ오래 전

원나라에 볼모로 소현세자 봉림대군이 끌려갔죠.. 당시 소현세자의 부인 강빈은 여장부로 유명하죠 혼자 말도타며 활도 쏘고 직접 원나라에서 왕족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그곳의 선진문물을 받아들이며 조선에 이바지하려했죠 여담으로 덧붙이자면 기간이지나고 원의황제가 조선으로돌아갈때 소원을 하나씩 들어준다하였고 봉림대군은 조선에 볼모로 붙잡혀온 여자들을 데리고거겠다하였고 이미 원의 장수들에 부인이나 첩등으로 들어가 원나라의 아이까지 갖고있던 가정을이룬 부녀자들이었기에 황제는 곤란해했지만 봉림대군은 뜻을 굽히지않아 황제는 결국 그의청을 들어주었습니다 하지만 배에 아기도 베어있던 그녀들을 고향에서는 반기지않았고 그해에 조선역사상 살인사건이 가장많았던시기로 기록될정도로 아녀자들이 죽어나갔습니다 그래서 그녀들만의 마을을 이루고 살게되는데 이것이 화냥년이라는 어원의 시초입니다 봉림대군의 대책없는 모습 ..

햐휴오래 전

겨우 9년만에 조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는데,자신의 친 아버지의 불신과 의심을 사고 그 뿐만이 아니라 자신을 무참히 죽일려하는 사람들이 여러명이나 있었으니,얼마나 분통하고 비참하였을까.그 두달이 얼마나 비통하였고 그 삼일이 얼마나 괴로웠을까.

솔직한세상오래 전

캐이블 드라마 홍보팀에서 나오셨어요? ----------- http://pann.nate.com/talk/323795601

마루오래 전

봉림대군이 권좌를 이어받게된 이유는 인조가 세자빈을 경계하고 미워했기때문입니다 든든한 친정과 세아들을 둔 강직한 며느리가 버거웠던 거지요 귀가 얇고 반정으로 왕이된 인조는 할말은 하는 며느리가 상전같았겠죠 결국엔 인조손에 목숨을 잃고 가문이 쑥대밭이되었습니다

정말오래 전

진짜소현세자는너무아까운인재다 인조는진짜왕이되면안되는사람이였는데 그냥 말그대로자기아들한테열폭한인간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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