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씨는 이광수의 소설 <사랑>을 읽고 서울로 올라왔다고 한다. 박정희는 이광수의 <성웅이순신>을 읽고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이광수는 1949년 반민족특별재판에서, “나는 다시태어나도 친일파가 되겠다.”고
소리 내어 외쳤다. 그리고, “내는 똑똑해서 친일파가 된 것이며 너희들은(재판관들)
못나서 친일파가 될 수 없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1892년 식민지 조선에서 태어난 그는 그는 미국을 동경하여 미국에서 태어 낳으면 카우보이가 됬을 테인데 하필 많고 많은국가중에 조선 식민지 아들로 태어 났단말인가? 이건 내가 원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다. 좋다! 인정하자! 그리고 부모를 조선을 원망하지 않겠다.
그렇다면 내가 친일파가 되는 것도 원망하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식민지라는 늪에 던져놓고 친일파가 되지 말라는 건 언어도단이지 않는가?
그는 조선의 풍습 봉건적 잔재, 그리고 문명과 거리가 먼 조선을 극도로 싫어했다.
최초의 간호사인 그의 애인과 미국으로 도망간 것은 일제시대 최대의 스켄달이었으며
온 신문의 뉴스거리였다.
문명개화로서 일제시대를 받아들여 봉건잔재를 탈피하고자 그는 유명한 독립 만년 연기론을 주장하였다.
항의하러 이광수의 집을 찾아온 세력들을 그는 단숨에 제압하였다.
당대 최고의 문필가를 말로서는 당해낼 수 없었던 것이다.
1941년 태평양전쟁이 터지자 그는 칼럼니스트로 웅변가로 전국을 순회 강연하였다.
“진정한 우정은 참호 속에서 싹튼다. 전쟁은 일본인이 되기 위한 하늘이주신 절호의 기회다. 살아서 돌아오지 말고 죽어서 우리들 가슴속에 전설이 되자. 부모가 걱정이 되느냐? 농토가 걱정이 되느냐? 천황이 없는 부모가 농토가 어디 있으랴? 가라 !그리고 우리자식들이 물으면 최전선에 서 있었노라고 말할 수 있는 영웅이 되자!”
친일파 이광수에 관해
정주영씨는 이광수의 소설 <사랑>을 읽고 서울로 올라왔다고 한다. 박정희는 이광수의 <성웅이순신>을 읽고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이광수는 1949년 반민족특별재판에서, “나는 다시태어나도 친일파가 되겠다.”고
소리 내어 외쳤다. 그리고, “내는 똑똑해서 친일파가 된 것이며 너희들은(재판관들)
못나서 친일파가 될 수 없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1892년 식민지 조선에서 태어난 그는 그는 미국을 동경하여 미국에서 태어 낳으면 카우보이가 됬을 테인데 하필 많고 많은국가중에 조선 식민지 아들로 태어 났단말인가? 이건 내가 원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다. 좋다! 인정하자! 그리고 부모를 조선을 원망하지 않겠다.
그렇다면 내가 친일파가 되는 것도 원망하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식민지라는 늪에 던져놓고 친일파가 되지 말라는 건 언어도단이지 않는가?
그는 조선의 풍습 봉건적 잔재, 그리고 문명과 거리가 먼 조선을 극도로 싫어했다.
최초의 간호사인 그의 애인과 미국으로 도망간 것은 일제시대 최대의 스켄달이었으며
온 신문의 뉴스거리였다.
문명개화로서 일제시대를 받아들여 봉건잔재를 탈피하고자 그는 유명한 독립 만년 연기론을 주장하였다.
항의하러 이광수의 집을 찾아온 세력들을 그는 단숨에 제압하였다.
당대 최고의 문필가를 말로서는 당해낼 수 없었던 것이다.
1941년 태평양전쟁이 터지자 그는 칼럼니스트로 웅변가로 전국을 순회 강연하였다.
“진정한 우정은 참호 속에서 싹튼다. 전쟁은 일본인이 되기 위한 하늘이주신 절호의 기회다. 살아서 돌아오지 말고 죽어서 우리들 가슴속에 전설이 되자. 부모가 걱정이 되느냐? 농토가 걱정이 되느냐? 천황이 없는 부모가 농토가 어디 있으랴? 가라 !그리고 우리자식들이 물으면 최전선에 서 있었노라고 말할 수 있는 영웅이 되자!”
나 영웅입네, 나 독립운동합네 하면서, 만주벌판을 아직도 헤매고 있는 젊은이들이 있다.
그렇게도 할일이 없는가? 방직공장에서 일하는 우리 여공을 생각하라!
수풍발전소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생각하라!
너희가 삼별초냐? 지금이 몽고 시대냐?
비행기가 날고 탱크가 지나다니고 100만 일본육군이 존재하는 이 찬란한 문명의
20세기에 부끄럽지 않는가?
머슴이 열심히 일하면 언젠가 주인이 한 살림 내줄 터인데 열심히 배우고
문명을 갖춰 능력을 인정받을 생각은 못하고 불평불만만 할 것인가?
저항하면 할수록 독립은 멀어질 터인데 지금이라도 늦지 않나니 젊은이여 자수하라! 투항하라!“
1945년 해방이 되었다. 그가 좋아하는 미국으로 서둘러 망명가라는 지인(知人)들의 충고를 그는 완강히 거부하였다.
"나에게 돌을 던질 자는 누구인가? 그렇게 자신 있는가?
내가 협조하였기에 2500만 조선인은 고통을 덜 받았으며, 희생을 줄일 수 있었으니 나는 조선을 구하였으며 조선의 십자가를 졌을 뿐이다. 예수가 이스라엘을 구하려 왔으나 비난받고 죽어서 부활하였듯이 너희들은 모른다. 하지만 언젠가는 나를 이해할 것이다."
그는 1950년 6.25의 와중 속에 납치되어 북한에서 병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