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이 금메달을 따냈지만 가슴에 붙은 일장기를 보며 슬픔을 곱씹었던 한국은 1948년 제14회 런던올림픽에 태극기를 달고 최초로 참가, 복싱 51㎏급에서 한수안, 역도 75㎏급에서 김성집이 각각 동메달을 따내 최초의 메달을 기록했다. 이어 참가한 1956년 멜버른 올림픽 복싱 밴텀급에서 송순천, 1964년 도쿄올림픽레슬링 52㎏이하급에서 장창선, 복싱 밴텀급에서 정신조가 각각 은메달을 따내며 첫 금메달에 대한 갈망을 이어갔다. 한국은 1976년 제21회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양정모가 레슬링 페더급에서 애타게 기다리던 첫 금메달을 따냈다.
이어진 1980년 한국은 동서냉전속에 올림픽에 불참했고, 동구권이 대거 불참한 1984년 미국 로스엔젤레스 올림픽에서 한국은 금메달6개, 은메달6개, 동메달7개를 따내며 사실상 최초로 한국체육을 세계에 알렸다.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페더급에서 김원기가 한국의 사상 두번째 금메달을 따냈고, 이어서 유도 76㎏급 안병근, 95㎏급 하형주, 양궁의 서향순, 복싱의 신준섭등이 금메달 행진을 벌였다. 1988년 24회 서울올림픽. 한국은 금메달12개, 은메달10개 동메달 11개를 각각따내 참가사상 최고의 성적을 거뒀다.
홈 무대라는 이점을 감안하더라도 이 성적은 목표치를 훨씬 뛰어넘는 것. 한국은 '신궁'김수녕이 한국인 최초로 올림픽 2관왕을 차지하며 양궁에 걸린 4개의 금메달중 3개를 휩쓸었고, 유도에서 60㎏급의 김재엽, 65㎏급의 이경근, 레슬링에서 그레코로만 74㎏급에서 김영남, 자유형 82㎏급에서 한명우가 또 복싱플라이급에서 김광선, 라이트미들급에서 박시헌이 금메달을 따내 투기종목에서의 전통적 강세를 입증했다. 이어 탁구에서 양영자-현정화가 여자복식에서 금메달, 유남규가 남자단식에서 각각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또 여자핸드볼에서 단체종목사상 최초의 금메달을 따냈다.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한국은 다시한번 금메달 12개(은10개, 동11개)를 따내며 명실상부한 체육강국임을 확인했다. 이 대회의 하일라이트는 역시 최종일 1936년 손기정의 '한'을 씻어낸 황영조의 마라톤우승. 새로 채택된 사격 여자 공기소총에서 여갑순이 첫 금메달을 따냈고, 사격 남자 소구경3자세에서 이은철, 역도 56㎏에서 전병관이 예상대로 금맥을 캤고 , 처음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여자유도에서 72㎏급 김미정이 금메달을 땄다. 양궁에서는 한국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해 국제연맹이 올림픽라운드방식을 채택했지만 김수녕, 조윤정이 이끈 한국여자팀은 금메달 2개를 어김없이 보탰다. 다른 투기종목이 약세를 보였지만 레슬링에서 만큼은 그레코로만형에서 안한봉, 자유형에서 박장순이 각각 금메달을 추가했다.
한국의 올림픽 역사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이 금메달을 따냈지만 가슴에 붙은 일장기를 보며 슬픔을 곱씹었던 한국은 1948년 제14회 런던올림픽에 태극기를 달고 최초로 참가, 복싱 51㎏급에서 한수안, 역도 75㎏급에서 김성집이 각각 동메달을 따내 최초의 메달을 기록했다.
이어 참가한 1956년 멜버른 올림픽 복싱 밴텀급에서 송순천, 1964년 도쿄올림픽 레슬링 52㎏이하급에서 장창선, 복싱 밴텀급에서 정신조가 각각 은메달을 따내며 첫 금메달에 대한 갈망을 이어갔다.
한국은 1976년 제21회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양정모가 레슬링 페더급에서 애타게 기다리던 첫 금메달을 따냈다.
이어진 1980년 한국은 동서냉전속에 올림픽에 불참했고, 동구권이 대거 불참한 1984년 미국 로스엔젤레스 올림픽에서 한국은 금메달6개, 은메달6개, 동메달7개를 따내며 사실상 최초로 한국체육을 세계에 알렸다.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페더급에서 김원기가 한국의 사상 두번째 금메달을 따냈고, 이어서 유도 76㎏급 안병근, 95㎏급 하형주, 양궁의 서향순, 복싱의 신준섭등이 금메달 행진을 벌였다.
1988년 24회 서울올림픽. 한국은 금메달12개, 은메달10개 동메달 11개를 각각따내 참가사상 최고의 성적을 거뒀다.
홈 무대라는 이점을 감안하더라도 이 성적은 목표치를 훨씬 뛰어넘는 것.
한국은 '신궁'김수녕이 한국인 최초로 올림픽 2관왕을 차지하며 양궁에 걸린 4개의 금메달중 3개를 휩쓸었고, 유도에서 60㎏급의 김재엽, 65㎏급의 이경근, 레슬링에서 그레코로만 74㎏급에서 김영남, 자유형 82㎏급에서 한명우가 또 복싱플라이급에서 김광선, 라이트미들급에서 박시헌이 금메달을 따내 투기종목에서의 전통적 강세를 입증했다.
이어 탁구에서 양영자-현정화가 여자복식에서 금메달, 유남규가 남자단식에서 각각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또 여자핸드볼에서 단체종목사상 최초의 금메달을 따냈다.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한국은 다시한번 금메달 12개(은10개, 동11개)를 따내며 명실상부한 체육강국임을 확인했다.
이 대회의 하일라이트는 역시 최종일 1936년 손기정의 '한'을 씻어낸 황영조의 마라톤우승. 새로 채택된 사격 여자 공기소총에서 여갑순이 첫 금메달을 따냈고, 사격 남자 소구경3자세에서 이은철, 역도 56㎏에서 전병관이 예상대로 금맥을 캤고 , 처음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여자유도에서 72㎏급 김미정이 금메달을 땄다.
양궁에서는 한국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해 국제연맹이 올림픽라운드방식을 채택했지만 김수녕, 조윤정이 이끈 한국여자팀은 금메달 2개를 어김없이 보탰다.
다른 투기종목이 약세를 보였지만 레슬링에서 만큼은 그레코로만형에서 안한봉, 자유형에서 박장순이 각각 금메달을 추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