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글에서 박정희 추종자들에게는 상상하기 싫고, 인정하기 싫겠지만 어떤 사람들은 박정희는 '내란 전과 3범'이라고 했습니다.
박정희가 내란 3범으로 비판 받는 이유는, '여순반란사건'과 '5.16군사반란'입니다. 그리고 이른 바 '10월유신'으로 부르는 '유신쿠데타'입니다. 박정희는 1972년 10월 '유신쿠데타'를 자행합니다. 같은 달 11일 "나는 우리 조국의 평화와 통일, 그리고 번영을 희구하는 국민 모두의 절실한 염원을 받들어 우리 민족사의 진운을 영예롭게 개척해 나가기 위한 나의 중대한 결심을 국민 여러분 앞에 밝히는 바입니다"며 '유신쿠데타'를 자행했습니다. 유신을 내란으로 규정하는 사람 중 하나가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입니다.
유신이야말로 형법전의 정의에 딱 들어맞는 내란이었다. 수많은 함량 미달의 내란사범을 양산한 박정희가 ‘내란이란 이런 것이다’를 몸소 보여주었다. 내란죄의 구성요건에서 가장 중요한 국헌문란에 대해 형법 91조는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1. 헌법 또는 법률에 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헌법 또는 법률의 기능을 소멸시키는 것, 2.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을 강압에 의하여 전복 또는 그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박정희가 자기 마음대로 국회를 해산하고 입법과 사법과 행정을 분리해놓은 헌법의 기능을 비상국무회의로 집중시킨 것이야말로 똑 떨어진 국헌문란 행위였다. - 2014.02.15 <한겨레신문> 각하들도 피하지 못한 내란의 추억
유신이야말로 형법이 말하는 '내란'이라는 정의에 우리는 귀를 기울여 합니다. 한홍구 교수가 유신을 '내란'으로 규정했는 데 유신 헌법을 보면 '대통령 혼자서 입법, 사법, 행정을 맘대로 할 수 있도록'했습니다.
대통령은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토론없이 무기명투표로 선거한다.(39조 1항) 통일주체국민회의는 국회의원 정수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수의 국회의원을 선거한다.(40조 1항) 제1항의 국회의원의 후보자는 대통령이 일괄 추천하며, 후보자 전체에 대한 찬반을 투표에 붙여 재적대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대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당선을 결정한다.(40조2항) 대법원장이 아닌 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에 의하여 대통령이 임명한다.(103조 2항)
3권분립이 아니라 '3권통합'입니다. 이용훈 전 대법원장도 유신쿠데타 헌법에 대해 직격탄을 날린 적이 없습니다. 이 전 대법원장은 지난 2012년 9월 21일 고려대 로스쿨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헌법과 민주주의' 강연에서 "5·16 쿠데타세력이 만든 제3공화국 헌법은 대통령 3선 조항만 빼면 굉장히 선진적이었는데 (유신헌법으로) 10년만에 휴지 조각이 됐다"면서 "이런 헌법에 기초해서 긴급조치가 발령됐고 10·26 때까지 긴급조치가 통치수단으로 작용했다. 폭압적인 권력 앞에서는 헌법도 법치주의도 소용없다는 걸 내 눈으로 본 바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홍구 교수는 <한겨레> 같은 글에서 "탱크와 군대를 동원하여 헌법기능을 정지시켰으니 이것이 87조 내란죄에서의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폭동한 자’에 해당하는 것이고, 그 '수괴는 사형, 무기징역 또는 무기금고에 처한다'고 되어 있다"면서 "유신은 변명의 여지 없는 내란이었다. 이 내란을 성공시키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 숱한 내란사범을 위해 울었던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문제는 아직도 유신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은 '유신헌법' 초안을 작성했다는 김기춘을 대통령비서실장에 앉혔습니다. 민주주의 의식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그를 임명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박정희는 자신의 권력을 절대화하면서, 국회권한은 무력화 시켰습니다. 그 중 하나가 국회해산입니다. 유신쿠데타 헌법 제59조 1항은 "대통령은 국회를 해산할 수 있다. 2항 국회가 해산된 경우 국회의원총선거는 해산된 날로부터 30일 이후 60일 이전에 실시한다."고 명시했습니다. 사실상 '3권분립'을 부정한 것입니다.
국회해산은 또 다른 군사반란자, 전두환이 1980년 제5공화국 헌법 제57조 '대통령은 국가의 안정 또는 국민전체의 이익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판단할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는 국회의장의 자문 및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친 후 그 사유를 명시하여 국회를 해산할 수 있다. 다만 국회가 구성된 후 1년 이내에는 해산할 수 없다. 그리고 대통령은 같은 사유로 2차에 걸쳐 국회를 해산할 수 없다'고 함으로써 국회해산을 대통령 마음대로 할 수 없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1987년 6월항쟁으로 개정한 현 헌법에서는 국회해산 조항을 완전히 삭제했습니다.
그런데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김황식 전 국무총리는 '국회해산' 운운했습니다. 김 전 총리는 지난 해 11월 28일 국회의원 회관에서 열린 국가모델연구모임(대표 새누리당 남경필 의원) 특강에서 "우리 헌법에 왜 국회해산 제도가 없는지 모르겠다"며 "국회해산 제도가 있었다면 지금 국회를 해산하고 다시 국민의 판단을 받아야 하는 심각한 상황"이라고 했습니다. 통탄 할 일입니다. 국회해산 운운하는 사람이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에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지난 8월 국정원 부정선거 관련, 민주당이 장외투쟁을 벌어지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장외투쟁 금지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같은 달 8일 "장외투쟁이란 이름으로 의원이 정치 활동을 밖에서 하는 건 조심해야 한다"면서 "국회 선진화법으로 여당이 일방 강행하는 일이 없어졌는데도 밖으로 나가는 것은 재고해야 한다"면서 "이에 대한 대책도 입법을 하더라도 마련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박정희는 긴급조치를 남발하면서 몇 사람이 모여도 잡아갔습니다. 유신이 참 그리웠던 것입니다.
김진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지난 해 11월 12일 방송된 MBC <100분토론> '통합진보당의 운명은?'에서 김종철 연세대 교수가 "유신 독재의 경험으로 얻은 것은 반체제적 요소를 체제 내에 흡수했을 때 관리하기 쉽다는 것"이라고 말하자, "유신 독재가 뭐가 잘못됐느냐?"고 말했습니다.
박정희, 그는 누구인가 ⑬ → ‘유신, 형법전 정의에 맞는 내란’
지난 번 글에서 박정희 추종자들에게는 상상하기 싫고, 인정하기 싫겠지만 어떤 사람들은 박정희는 '내란 전과 3범'이라고 했습니다.
박정희가 내란 3범으로 비판 받는 이유는, '여순반란사건'과 '5.16군사반란'입니다. 그리고 이른 바 '10월유신'으로 부르는 '유신쿠데타'입니다. 박정희는 1972년 10월 '유신쿠데타'를 자행합니다. 같은 달 11일 "나는 우리 조국의 평화와 통일, 그리고 번영을 희구하는 국민 모두의 절실한 염원을 받들어 우리 민족사의 진운을 영예롭게 개척해 나가기 위한 나의 중대한 결심을 국민 여러분 앞에 밝히는 바입니다"며 '유신쿠데타'를 자행했습니다. 유신을 내란으로 규정하는 사람 중 하나가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입니다.
유신이야말로 형법전의 정의에 딱 들어맞는 내란이었다. 수많은 함량 미달의 내란사범을 양산한 박정희가 ‘내란이란 이런 것이다’를 몸소 보여주었다. 내란죄의 구성요건에서 가장 중요한 국헌문란에 대해 형법 91조는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1. 헌법 또는 법률에 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헌법 또는 법률의 기능을 소멸시키는 것, 2.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을 강압에 의하여 전복 또는 그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박정희가 자기 마음대로 국회를 해산하고 입법과 사법과 행정을 분리해놓은 헌법의 기능을 비상국무회의로 집중시킨 것이야말로 똑 떨어진 국헌문란 행위였다. - 2014.02.15 <한겨레신문> 각하들도 피하지 못한 내란의 추억
유신이야말로 형법이 말하는 '내란'이라는 정의에 우리는 귀를 기울여 합니다. 한홍구 교수가 유신을 '내란'으로 규정했는 데 유신 헌법을 보면 '대통령 혼자서 입법, 사법, 행정을 맘대로 할 수 있도록'했습니다.
대통령은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토론없이 무기명투표로 선거한다.(39조 1항)
통일주체국민회의는 국회의원 정수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수의 국회의원을 선거한다.(40조 1항)
제1항의 국회의원의 후보자는 대통령이 일괄 추천하며, 후보자 전체에 대한 찬반을 투표에 붙여 재적대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대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당선을 결정한다.(40조2항)
대법원장이 아닌 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에 의하여 대통령이 임명한다.(103조 2항)
3권분립이 아니라 '3권통합'입니다. 이용훈 전 대법원장도 유신쿠데타 헌법에 대해 직격탄을 날린 적이 없습니다. 이 전 대법원장은 지난 2012년 9월 21일 고려대 로스쿨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헌법과 민주주의' 강연에서 "5·16 쿠데타세력이 만든 제3공화국 헌법은 대통령 3선 조항만 빼면 굉장히 선진적이었는데 (유신헌법으로) 10년만에 휴지 조각이 됐다"면서 "이런 헌법에 기초해서 긴급조치가 발령됐고 10·26 때까지 긴급조치가 통치수단으로 작용했다. 폭압적인 권력 앞에서는 헌법도 법치주의도 소용없다는 걸 내 눈으로 본 바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홍구 교수는 <한겨레> 같은 글에서 "탱크와 군대를 동원하여 헌법기능을 정지시켰으니 이것이 87조 내란죄에서의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폭동한 자’에 해당하는 것이고, 그 '수괴는 사형, 무기징역 또는 무기금고에 처한다'고 되어 있다"면서 "유신은 변명의 여지 없는 내란이었다. 이 내란을 성공시키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 숱한 내란사범을 위해 울었던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문제는 아직도 유신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은 '유신헌법' 초안을 작성했다는 김기춘을 대통령비서실장에 앉혔습니다. 민주주의 의식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그를 임명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박정희는 자신의 권력을 절대화하면서, 국회권한은 무력화 시켰습니다. 그 중 하나가 국회해산입니다. 유신쿠데타 헌법 제59조 1항은 "대통령은 국회를 해산할 수 있다. 2항 국회가 해산된 경우 국회의원총선거는 해산된 날로부터 30일 이후 60일 이전에 실시한다."고 명시했습니다. 사실상 '3권분립'을 부정한 것입니다.
국회해산은 또 다른 군사반란자, 전두환이 1980년 제5공화국 헌법 제57조 '대통령은 국가의 안정 또는 국민전체의 이익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판단할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는 국회의장의 자문 및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친 후 그 사유를 명시하여 국회를 해산할 수 있다. 다만 국회가 구성된 후 1년 이내에는 해산할 수 없다. 그리고 대통령은 같은 사유로 2차에 걸쳐 국회를 해산할 수 없다'고 함으로써 국회해산을 대통령 마음대로 할 수 없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1987년 6월항쟁으로 개정한 현 헌법에서는 국회해산 조항을 완전히 삭제했습니다.
그런데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김황식 전 국무총리는 '국회해산' 운운했습니다. 김 전 총리는 지난 해 11월 28일 국회의원 회관에서 열린 국가모델연구모임(대표 새누리당 남경필 의원) 특강에서 "우리 헌법에 왜 국회해산 제도가 없는지 모르겠다"며 "국회해산 제도가 있었다면 지금 국회를 해산하고 다시 국민의 판단을 받아야 하는 심각한 상황"이라고 했습니다. 통탄 할 일입니다. 국회해산 운운하는 사람이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에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지난 8월 국정원 부정선거 관련, 민주당이 장외투쟁을 벌어지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장외투쟁 금지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같은 달 8일 "장외투쟁이란 이름으로 의원이 정치 활동을 밖에서 하는 건 조심해야 한다"면서 "국회 선진화법으로 여당이 일방 강행하는 일이 없어졌는데도 밖으로 나가는 것은 재고해야 한다"면서 "이에 대한 대책도 입법을 하더라도 마련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박정희는 긴급조치를 남발하면서 몇 사람이 모여도 잡아갔습니다. 유신이 참 그리웠던 것입니다.
김진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지난 해 11월 12일 방송된 MBC <100분토론> '통합진보당의 운명은?'에서 김종철 연세대 교수가 "유신 독재의 경험으로 얻은 것은 반체제적 요소를 체제 내에 흡수했을 때 관리하기 쉽다는 것"이라고 말하자, "유신 독재가 뭐가 잘못됐느냐?"고 말했습니다.
유신쿠데타, 그것은 형법전의 정의에 딱 들이맞는 '내란'이라고 합니다.
☞ 인터넷 매체〈데일리서프라이즈〉익명 칼럼니스트 탐독(耽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