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질하지만 진심,

우주야2014.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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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이 터질 것 같았어


하마터면 바로 니 이름을 부를 뻔했는데 다행히 목소리보다 빠른 눈이 네 곁에있는 여자를 먼저 봤어


비가 오지않아 무용지물이되버린 레인코트를 입고있는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어


반사적으로 바로 코트에 달린 모자를 깊숙이 눌러쓰고 숨 죽인 채 그 자리에 못박혀 버렸어


방금 전 까지도 정류장의 소음으로 가득했던 공간이
더이상 시끄럽지 않았어
아니
더 정확히는 너와 그녀의 대화를 들으려 집중했어

[나 이거 인스타에 올린다 너 잘나왔어]

가까스로 들은 한문장 이지만 너무 많은 걸 알게 해주었어

이미 그녀가 너의 허리를 감싸며 몸을 반쯤 기댄 모습으로 충분했지만 ㅡ



나는 진짜 끝까지 이기적이고 나빠


진심으로 너에게 좋은 사람이 생기길 바랬는데.
막상 두 눈으로 확인하니 아니었나봐


영원히 나만 바라볼 것 만 같았던 남자에게 배신감을 느끼는 찌질한 여자가 되어서 너와 그녀가 눈치 채지 못하게 훔쳐보고 있는 내 모습이 우습다


니 얼굴이 보고 싶어 ...
바로 정면에서 니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물론 마음이 아프겠지만 ,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 너의 모습이 너무 슬펐으니까.

나는 마음놓고 울어버렸지만 너는 그러지 못했으니까..


시간이 꽤 지나서 제법 단단해 졌다고 생각했는데 너를 잠시 본 것 만으로 이렇게 가볍게 무너져버릴 줄 몰랐어

난 그동안 뭐한거니


혼자 비련의 여주인공 놀이하고있는데 버스가 왔고 나는 순간 고민했어.
그냥 조금 더 버텨볼까
둘이 함께 있는 모습이 버거웠지만
그래도 조금만 더 ..




....내가 졌어
조금만 더는 무슨
이미 나는 모자를 벗고 재빨리 너와 그녀를 지나 버스에 허겁지겁 올라있었고 비어있는 자리에 바로가 털썩하고 앉아버렸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마음을 가까스로 누르고 얼핏 창가 밖 풍경을 보는데


잠시었지만 마주했지.

정확히 버스안의 내 모습을 바라보던 너와







버스에서 내려선 결국 참지못하고 놀이터에 가서 엉엉 울어버렸어

신나게 미끄럼틀을 타던 아이들이 한동안 나를 쳐다보는것도 느껴졌지만 그 아이들보다 훨씬 어린애마냥





실컷 울고나니 눈은 많이 작아졌지만 그래도 괜찮아졌어

나는 다시 빨간벽돌을 하나하나 쌓아야할까봐

좀 더 견고하게 좀 더 크게



그래서 다음에 혹시 또 너를 마주친다면,
그때는 피식하고 웃으면서 아무렇지않게 지나치고싶어





잘지내,
여자친구 예쁘더라
진심으로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