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아버지와 찾았던 기억이 어렴풋하게 남아있던 대한극장을 찾았다. 충무로역에 내리는 것 자체가 오랜만이었고, 이제는 한국인보다 외국인 관광객이 많은 게 눈에 띄었다. 몇몇 영화사가 개최하는 영화 오디션의 긴 줄을 신기하게 지켜보던 나는 대한극장 지하의 예술전용관에서 <모스트 원티드 맨> 표를 끊었다. 광화문역에서 원작소설을 사서 조금 읽다가 영화를 봐서인지는 몰라도, 마치 2년 전 관람했던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를 봤을 때 느껴졌던 옆구리가 찌릿한 감동을 다시 한 번 느끼며 영화를 본 것 같다. 이정도면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과의 헤어짐은 충분히 아람다웠다고 추억할 수 있지 않을까.
<모스트 원티드 맨>의 군터(호프먼)는 베를린에서 스파이 생활을 하다가 작전상의 실수로 독일 대테러정보부서에서 일하게 된 정보전문가다. 늘 팽팽한 긴장 속에서 작전을 수행하는 군터는 담배와 술을 달고 다닌다. 영화의 중반 작전의 수행을 위해 미CIA 요원과 카페에서 만나는 장면이 있다. 그로선 작전의 감행을 막아서는 미국요원의 불신어린 시선을 눙쳐 자신의 편으로 돌려 넣어야 하는 사뭇 긴장되는 순간이다. 주위를 살피며 대화를 나누던 군터는 자신의 의지대로 대화가 풀리지 않자 안주머니에서 늘 마시던 위스키를 커피에 타 마신다. 그에게 있어서 술은 직업적인 고통을 줄여주는 묘약이자, 후회로 미적거리던 일적인 추진력을 회복시켜주는 연료라도 되는 듯 익숙해 보인다. 이후 술의 힘을 빌려서 작전의 진행을 정상궤도로 돌려놓은 군터는 상기된 얼굴로 운전을 하며 사무실로 간다.
커피를 늘 마시는 한국에서는 익숙하지 않지만, 러시아를 비롯한 추운날씨를 달고사는 유럽의 도시에서는 술을 탄 커피(럼주?)를 즐겨 마신다고 한다. 말 그대로 카페인과 알코올의 힘을 빌려 추위를 극복하고자 함을 의도하는데, 군터에게 위스키를 탄 커피란 극복해야 할 정신적인 상흔에 대한 자기방어로 보이기도 했다. 그건 아마 필립이 전에 맡았던 상처 많은 캐릭터들의 잔상이 주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영화의 주안점은 첩보라는 방대한 범위 내에서도 한 목표를 위해 직접 뛰댕기는 스파이들의 활동 그 자체에 있지 않다.이 영화의 관심분야는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힌 사건에 스파이를 심어 흐름을 조직의 잇속으로 우겨넣는 요원들의 썰전이다. 회유해야 할 상대를 믿게 하기 위해 군터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낸다. 무슬림 테러단체 소속의 이사는 이런 그에게 굴러들어온 선물이다. 우연히 함부르크 공항에서 발견한 이사를 발견한 군터는 그가 테러리스트들의 자금줄 역할을 하는 닥터 압둘라를 찾기 위한 미끼역할을 할 적임자임을 간파한다. 순수한 이슬람 청년의 아버지(테러리스트)에 대한 분노와 정상적인 삶을 살고 싶다는 원초적 욕구(더러운 유산의 상속)는 군터가 이사를 미끼로 쓸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총격전과 화려한 카체이스 액션이 고픈 영화팬이라면 다소 답답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한 인간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기 위해 믿음을 이식하는 영화의 심리전은 관객의 숨통을 쥐었다 폈다 할 수 있는 서스펜스를 자랑한다. 또한 이들이 또 다른 목표를 향해 행동하는 과정에서 누가 팀원이고, 누가 정보원인지 모르게 되는 혼란 또한 '존 르카레‘의 이야기가 가진 묘미다. 군터에게 술과 담배가 필요한 이유는 상대에 대한 믿음이 불의불식간에 살아나 견딜 수 없는 불안으로 다가올 때 약처럼 섭취된다.
내가 유독 <모스트 원티드 맨>에서 좋아하는 맥락은 군터가 자신이 원하는 목표물을 위해 인권 변호사 애너벨(레이첼 맥아덤스)과 은행장 토마스 브루(윌렘 데포)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대화과정에 있다. 이 과정에서 군터는 테러리스트뿐만 아니라 내부의 경쟁세력, 미국 CIA 등과도 고도의 심리전을 펼치게 된다. 마치 전장을 아우르는 국지전과 대륙전에 모두 능한 장수처럼 군터는 내놓는 말과 속내의 심정 그리고 상대의 눈빛으로 이끌어내는 주도권 싸움을 거침없이 이겨나간다. 줄담배를 피워대고, 밤낮없이 밀폐된 사무실에서 도청과 몰카의 결과물들을 파악하고, 자료를 수집하고, 때에 따라서는 사람을 납치해 협박하면서 군터는 자신의 목표물에 완전히 접근하고 있음을 느낀다. 모든 믿음을 구한 후 큰 목표에 다다랐을 때 영화는 확신에 찬 군터를 다시 나락으로 몰아넣는다. 마치 그가 베를린을 떠나 함부르크로 왔을 때처럼. 상실감과 비현실적인 절망감 앞에서 우두커니 선 호프먼의 마지막 모습은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는 그의 캐릭터와 겹쳐져 기이한 슬픔이 피어난다. 이제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몰라.
스파이 영화를 볼 때마다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그들의 가정이다. 이제 나이 지긋한 군터는 이혼해 가정과 격리된 남자로 설정된다.(영화에 자세한 설명이 없지만 그의 표정과 삶의 활력에서 지레 짐작이 가능하다.) 중년의 남자에게 가정은 절대적인 행복의 척도이자, 삶의 질과도 밀접한 연관을 맺는다. 퇴근하면 양말을 벗어 던져놓고 쇼파와 한 몸이 되는 우리 아버지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매일 술과 담배에 찌들어 늘 입던 옷만 입고 다니는 배나온 중년 군터는 007이 아니다. 그는 운동을 싫어하고, 그렇다고 여자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그는 스파이답게 가정과 친구 대신 일과 그에 따른 부수적 화두에만 온 관심을 기울인다. 같은 작가의 손으로 탄생한 대표적인 중년의 정보부원 ‘스마일리’와 비교해 봐도 유독 군터는 파멸을 향해 달려가는 폭주기관차처럼 보인다. 조직을 위해 모든 것을 던지는 남자를 본다는 것은 근사한 일이지만, 그 연기를 때마침 호프먼이 했다는 사실과 내가 이 충무로에서 그의 마지막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 이렇게 애처롭게 느껴질 수가 없다.
영화 모스트 원티드 맨 : 파멸을 향해 걸어가는 남자
어릴 적 아버지와 찾았던 기억이 어렴풋하게 남아있던 대한극장을 찾았다. 충무로역에 내리는 것 자체가 오랜만이었고, 이제는 한국인보다 외국인 관광객이 많은 게 눈에 띄었다. 몇몇 영화사가 개최하는 영화 오디션의 긴 줄을 신기하게 지켜보던 나는 대한극장 지하의 예술전용관에서 <모스트 원티드 맨> 표를 끊었다. 광화문역에서 원작소설을 사서 조금 읽다가 영화를 봐서인지는 몰라도, 마치 2년 전 관람했던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를 봤을 때 느껴졌던 옆구리가 찌릿한 감동을 다시 한 번 느끼며 영화를 본 것 같다. 이정도면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과의 헤어짐은 충분히 아람다웠다고 추억할 수 있지 않을까.
<모스트 원티드 맨>의 군터(호프먼)는 베를린에서 스파이 생활을 하다가 작전상의 실수로 독일 대테러정보부서에서 일하게 된 정보전문가다. 늘 팽팽한 긴장 속에서 작전을 수행하는 군터는 담배와 술을 달고 다닌다. 영화의 중반 작전의 수행을 위해 미CIA 요원과 카페에서 만나는 장면이 있다. 그로선 작전의 감행을 막아서는 미국요원의 불신어린 시선을 눙쳐 자신의 편으로 돌려 넣어야 하는 사뭇 긴장되는 순간이다. 주위를 살피며 대화를 나누던 군터는 자신의 의지대로 대화가 풀리지 않자 안주머니에서 늘 마시던 위스키를 커피에 타 마신다. 그에게 있어서 술은 직업적인 고통을 줄여주는 묘약이자, 후회로 미적거리던 일적인 추진력을 회복시켜주는 연료라도 되는 듯 익숙해 보인다. 이후 술의 힘을 빌려서 작전의 진행을 정상궤도로 돌려놓은 군터는 상기된 얼굴로 운전을 하며 사무실로 간다.
커피를 늘 마시는 한국에서는 익숙하지 않지만, 러시아를 비롯한 추운날씨를 달고사는 유럽의 도시에서는 술을 탄 커피(럼주?)를 즐겨 마신다고 한다. 말 그대로 카페인과 알코올의 힘을 빌려 추위를 극복하고자 함을 의도하는데, 군터에게 위스키를 탄 커피란 극복해야 할 정신적인 상흔에 대한 자기방어로 보이기도 했다. 그건 아마 필립이 전에 맡았던 상처 많은 캐릭터들의 잔상이 주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영화의 주안점은 첩보라는 방대한 범위 내에서도 한 목표를 위해 직접 뛰댕기는 스파이들의 활동 그 자체에 있지 않다.이 영화의 관심분야는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힌 사건에 스파이를 심어 흐름을 조직의 잇속으로 우겨넣는 요원들의 썰전이다. 회유해야 할 상대를 믿게 하기 위해 군터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낸다. 무슬림 테러단체 소속의 이사는 이런 그에게 굴러들어온 선물이다. 우연히 함부르크 공항에서 발견한 이사를 발견한 군터는 그가 테러리스트들의 자금줄 역할을 하는 닥터 압둘라를 찾기 위한 미끼역할을 할 적임자임을 간파한다. 순수한 이슬람 청년의 아버지(테러리스트)에 대한 분노와 정상적인 삶을 살고 싶다는 원초적 욕구(더러운 유산의 상속)는 군터가 이사를 미끼로 쓸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총격전과 화려한 카체이스 액션이 고픈 영화팬이라면 다소 답답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한 인간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기 위해 믿음을 이식하는 영화의 심리전은 관객의 숨통을 쥐었다 폈다 할 수 있는 서스펜스를 자랑한다. 또한 이들이 또 다른 목표를 향해 행동하는 과정에서 누가 팀원이고, 누가 정보원인지 모르게 되는 혼란 또한 '존 르카레‘의 이야기가 가진 묘미다. 군터에게 술과 담배가 필요한 이유는 상대에 대한 믿음이 불의불식간에 살아나 견딜 수 없는 불안으로 다가올 때 약처럼 섭취된다.
내가 유독 <모스트 원티드 맨>에서 좋아하는 맥락은 군터가 자신이 원하는 목표물을 위해 인권 변호사 애너벨(레이첼 맥아덤스)과 은행장 토마스 브루(윌렘 데포)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대화과정에 있다. 이 과정에서 군터는 테러리스트뿐만 아니라 내부의 경쟁세력, 미국 CIA 등과도 고도의 심리전을 펼치게 된다. 마치 전장을 아우르는 국지전과 대륙전에 모두 능한 장수처럼 군터는 내놓는 말과 속내의 심정 그리고 상대의 눈빛으로 이끌어내는 주도권 싸움을 거침없이 이겨나간다. 줄담배를 피워대고, 밤낮없이 밀폐된 사무실에서 도청과 몰카의 결과물들을 파악하고, 자료를 수집하고, 때에 따라서는 사람을 납치해 협박하면서 군터는 자신의 목표물에 완전히 접근하고 있음을 느낀다. 모든 믿음을 구한 후 큰 목표에 다다랐을 때 영화는 확신에 찬 군터를 다시 나락으로 몰아넣는다. 마치 그가 베를린을 떠나 함부르크로 왔을 때처럼. 상실감과 비현실적인 절망감 앞에서 우두커니 선 호프먼의 마지막 모습은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는 그의 캐릭터와 겹쳐져 기이한 슬픔이 피어난다. 이제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몰라.
스파이 영화를 볼 때마다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그들의 가정이다. 이제 나이 지긋한 군터는 이혼해 가정과 격리된 남자로 설정된다.(영화에 자세한 설명이 없지만 그의 표정과 삶의 활력에서 지레 짐작이 가능하다.) 중년의 남자에게 가정은 절대적인 행복의 척도이자, 삶의 질과도 밀접한 연관을 맺는다. 퇴근하면 양말을 벗어 던져놓고 쇼파와 한 몸이 되는 우리 아버지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매일 술과 담배에 찌들어 늘 입던 옷만 입고 다니는 배나온 중년 군터는 007이 아니다. 그는 운동을 싫어하고, 그렇다고 여자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그는 스파이답게 가정과 친구 대신 일과 그에 따른 부수적 화두에만 온 관심을 기울인다. 같은 작가의 손으로 탄생한 대표적인 중년의 정보부원 ‘스마일리’와 비교해 봐도 유독 군터는 파멸을 향해 달려가는 폭주기관차처럼 보인다. 조직을 위해 모든 것을 던지는 남자를 본다는 것은 근사한 일이지만, 그 연기를 때마침 호프먼이 했다는 사실과 내가 이 충무로에서 그의 마지막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 이렇게 애처롭게 느껴질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