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와 연애를 하면서, 모든 일에 늘 신중했어요. 너와 사귈 마음을 먹었을 때도 캠퍼스 커플, 즉 CC라는 것에 대한 장점과 단점에 대해 조사를 하였고 헤어졌을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오래하고 이 위험들을 다 감수한 채 너에게 고백을 했어요. 너에게 사랑한다고 처음 말했을 때도 신중했어요. 사랑한다는 느낌이 들어 ‘과연 이 말을 해도 될까’ 라는 생각 끝에 사랑한다는 말을 네게 말했을 땐 많은 결단과 용기가 필요했거든요. 나는 영하 20도의 추운 날씨에도 너와 통화를 하기 위해 바깥으로 나갔어요. 추워도 네게 사랑을 주려 노력했죠. 우리가 하는 통화는 오늘 하루가 어땠는지의 일상적인 내용이었으나 네게 사랑한다는 것을 많이 표현하려 했어요. 그렇게 추운 날씨 속에 두 달간 살아왔죠. 너와 연애를 시작하고 전화 요금이 몹시 나왔기에 요금제를 무제한으로 바꿔버렸어요. 매달 천 분 이상의 통화를 하며 열에 아홉은 다 내가 걸었던거 기억나요? 네가 걸면 내가 끊고 다시 걸었죠. 널 존중했기에, 존대를 했어요. 여자친구라고 하여 함부로 대하지 않았죠. 연인이라 생각하고 존대를 하고 말을 높였거든요. 네가 라섹을 하여 선글라스를 쓰고 다녀야 한다기에 안경을 하나 사서 너와 있는 자리에서는 늘 쓰고 다녔던거 기억나요? 네 불편함을 직접 체험해보고, 불편함을 나누고 싶어서였어요. 나는 네 생활 패턴을 존중했어요. 밤 10시면 정글의 법칙, 별에서 온 그대같은 TV 프로그램을 보려고 하기에 늘 방송이 끝난 직후에 전화를 걸었죠. 너는 늘 10시에 일어났고 쉬는 시간의 시작이었던 10시에 네게 전화를 걸어 깨웠죠. 우리의 연애 초창기. 내가 작업장에서 2시간에 한번 씩 쉬는 시간에는 늘 네게 전화를 걸었죠. 너무 피곤해서 쪽잠이라도 자고 싶었지만 그런 마음들을 다 참고 네가 내 전화를 기다릴 것을 알기에 전화를 걸었어요. 우리가 대구에서 데이트를 하고 다음 날 10분 밖에 못 봄에도 불구하고 자고 갔었죠. 10분이 우리에겐 너무나도 달콤했기에 10분을 보고 학교에 바래다 준 것이 끝이었으나, 나는 기뻐하며 돌아갔어요. 네가 내게 담배를 끊으라고 했을 때 담배를 하루에 다섯 개만 피우겠다고 말하는 그 순간 네게 어떻게 말을 해야 네가 상처를 받지 않을지를 걱정했다. 그리고 혼자서 조심히 말했어요. 그만큼 네게 상처를 주기 싫었거든요. 헤어지기가 아쉬워 아파트 단지 앞 놀이터 심지어는 엘리베이터 앞 까지 바래다주고 네가 너의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면 그제야 돌아갔다. 돌아가면서 아쉬워함은 물론이었죠. 우리가 연애를 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너의 부모님이 내 자랑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슴이 뿌듯했어요. 그래서 너의 부모님께 선물을 보내드렸어요. 남자친구 잘 뒀다고 좋아하시기에 기뻤어요. 우리가 장거리 연애 때 너를 보기 위해 일이 없어도 대구로 올라갔어요. 심지어는 설날 당일에도 대충 친척들과 인사를 하고 세뱃돈을 받아 바로 올라가버렸죠. 보고 싶다기에 갔어요. 네가 카페에서 커피를 쏟았을 때 커피보다 네 손을 더 걱정했어요. 나도 모르게 먼저 나온 말은 “손은 괜찮아요?”였고 “괜찮아.” 라고 하기에 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려고 안아주었죠. 4,000원 짜리 커피보다 네 손이 더 귀중했거든요. 하루의 시작과 끝은 너로 시작되고 너로 끝났어요. 눈을 뜨고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네게 전화나 문자를 통해 일어났음을 알리는 것이었고. 혹여나 자는 널 깨울까봐 문자를 더 자주 썼어요. 자기 전에는 잔다고 알리고 잤죠. 자다가 네가 전화를 했을 때도 그냥 받았어요. 몹시 피곤해 잠긴 목소리 너머로 나의 피로가 다 들통났지만 그것마저 사랑스러워 하는 너의 모습에 자다 깨서 몽롱한 상태로 너와 대화를 하려했어요. 내가 화가 아주 많이 나서 카카오톡을 지웠을 때 너 역시 나와 같은 방법으로 문자로 내게 미안하다 말하고 전화를 걸고 페이스북 메시지를 보냈었죠. 그 노력이 가상했기에 나는 용서하였어요. 난 우리가 14학번 중 가장 먼저 사귀게 된 캠퍼스 커플이라는 것에 대해 자랑스러워했어요. 그리고 어떻게 사귀게 됬냐고 말하면 한치의 틀림도 없이 다 말했어요. 어떤 상황이었는지를 아예 외워버렸죠. 난 늘 너의 말을 들으려고 노력했어요. 늘상 내가 끼고 다니던 블루투스 이어폰은, 너와 만날 때는 뺐고 오직 네게만 집중했어요. 나는 늘 너를 자랑했어요. 아버지께 “네가 김연아를 닮았다.” 라는 말을 했다 숟가락으로 머리를 얻어맞기도 했었죠. 내가 일을 할 때 한 아주머니가 조카의 사진을 보여주며 “소개 받지 않을래?” 라기에 나는 당당하게 제 여자 친구가 더 예쁩니다. 라고 말하며 네 사진을 보여줬어요. 진심이었어요. 그러면서 친구들에게 소개를 시켜줬고 친구들에게는 늘 네 자랑만 했어요. 들려오는 답은 다들 욕을 해댔지만 나는 그저 웃으며 계속 했어요. 내 신변에 직접적인 위협을 받고 있던 시절. 네가 페이스북에 나와 연애중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다기에 많은 고민을 하였고, 알겠다고 했죠. 그리고 당시 맡고 있었던 집행부를 그만두었어요. 현우 형이 그만두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기에 소중한 사람마저 다치는 것은 원치 않는다고 말했고, 그 말을 끝으로 현우 형과는 서먹해졌지만 후회는 안해요. 네가 내 휴대폰에 있는 모든 여자들의 번호를 지우라기에 다 지웠어요. 중학교, 고등학교 동창의 번호도 다 지워버렸어요. 네가 나를 믿지 못할까봐 다 지워버렸어요. 나는 너의 모든 말에 귀담아 들었죠. 네가 그 장난감 정말로 줄줄은 몰랐다고 했죠. 난 농담처럼 은연중에 네가 던지는 말도 다 귀담아 듣고 진심으로 받아들였거든요. 네가 말했던 말들은 다 기억이 나고 가슴 속 깊이 새겼어요. 우리 둘이서 같이 음식을 먹다가 맛있는 부위가 있으면 스스럼 없이 네게 줬던거 기억나요? 맛없는걸 내가 먹는게 더 낫다고 생각해서였거든요. 그게 당연한거라 여겼고 맛있는 음식점을 찾으면, 너와 가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나는 늘 너의 영향권 안에 들어 있었죠. 은지 누나가 영원히 하늘로 간 날 서울에 올라가려 했을 때 너는 가지 말라고 했고 결국 가지 못했죠. 은지 누나에게는 며칠 전 서울에 올라갔다 오면서 명복을 빌었어요. 내가 학기 중 대전을 벗어나 외박을 해본 적은 단 한 번 집에 내려갔을 때 뿐이었어요. 너 역시 대구로 내려가지 않길래 주말은 늘 너와 보냈거든요. 네가 울면 나도 울어버렸죠. 네가 우는 것은 싫었거든요. 그래서 울지 말라고 달래다가 울어버렸죠. 그리고 미안하다며 너를 안아주었어요. 나는 너의 자존감을 높이고 싶었어요. 네가 늘 네 모습이 “못생겼다.” “성적으로 너의 학과에 들어왔다.”고 할 때 마다 가슴이 아파왔어요. 그래서 내가 늘 네게 “예쁘다, 사랑스럽다.”는 말을 자주 했는데. 그러면 너는 콩깍지가 꼈다고 했죠. 그것마저도 가슴이 아팠어요. 진심으로 말하는 말을 왜 그렇게 삐뚤게 듣는지 내 눈에는 정말로 예뻤는데. 그 웃는 모습, 걷는 걸음걸이 네가 말을 할 때 살짝 비치는 입가의 주름과 눈에 낀 눈꼽조차 다 예뻤죠. 너 때문에 아무리 화가 많이 나도, 속으로 삭혔어요. 힘들면 술로 풀었고, 혼자서 취해 곯아떨어져 잤죠. 그러고 나서 다음 날 화가 완전히 풀리면 네게는 웃는 모습으로 대했어요. 혼자서 내가 어디 갈 일이 있으면 어디를 간다고 다 보고해주었죠. 내 행동 경로는 다 네게 보냈고 심지어는 택시를 탔을 경우 위치정보까지 찍어 네게 카톡으로 보내줬죠. 5월 연휴때 생긴 멍들은, 사실 싸우다가 생긴 상처였어요. 술 취한 다른 과 선배가 내게 시비를 걸었는데, 계속 무시했는데 너를 욕하기에 주먹이 바로 나갔어요. 나는 욕 먹어도 좋으나, 네가 욕먹는 건 싫었거든요. 내가 전에 신문사에서 자다 깼는데 희미하게 보이는 너의 모습이 천사같다고 했죠. 너는 “유니폼 때문이야.” 라고 웃으며 말했어요. 아니에요. 네 모습이 너무 예뻤어요. 그래서 천사 같았어요. 나는 네 말을 다 이해하려 노력했어요. 네가 아무리 내게 짜증을 내고 화를 내도 다 이해하려 노력했어요. 네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도 늘 내가 먼저 사과를 했어요. 더 많이 사랑하는 쪽이 자존심을 굽히는 것이 옳은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거든요. 나는 눈치가 정말 없었기에 네가 기분나빠하면 끊임없이 물었고 그 이유에 대한 원인과 설명을 계속하려 노력했어요. 오해는 그렇게 푸는 것이라 배웠기에 너와 자주 대화하고 네게 계속 의견을 물었어요. 나는 네 집착을 이해하려 했어요. 네가 대면식 때 내 개인용 휴대폰에 전화를 60번, 카톡을 300개 가량 보내고 내 사업용 휴대폰에 전화가 40통, 여기에도 카톡을 보냈던거 기억 나요? 심지어는 동기들에게 전화를 걸어 나 어딨냐고, 여자랑 같이 있냐고 물어봤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가 찼어요. 심장이 아프고 숨쉬기가 어렵다는 카톡을 보고 이 사람이 무섭다라는 생각은 들었으나 집착도 사랑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였어요. 내가 술을 마시러 가는 날, 중간보고를 안하면 호되게 혼났기에 중간중간 시계만 쳐다보며 중간 보고를 했어요. 지나가는 동기와 잠시 마주쳐 인사를 했던 것이 그렇게 화를 낼만한 일이었는지는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지만. 네가 잘못된 것이라 말하기에 잘못했다고 느꼈어요. 나는 네가 술을 먹으러 따로 나간 날마다 기숙사 외박을 신청해둔채 S관 앞 벤치에서 너를 기다렸어요. 네가 걱정되어 언제쯤 오나 싶어 물어보려 하면, 너 재밌게 놀고 있는 것을 혹여나 방해할까봐 네가 중간 중간 보내는 카톡만 기다렸어요. 우리 서로 옷을 바꿔 입자는 너의 말에, 싫었지만 따랐어요. 네가 좋아하니까 그걸로 좋았거든요. 너는 늘 자격지심에 물들어 있었어요. 심지어는 100일 때의 편지에서도 말이에요. “나는 100일을 처음 맞아보기에 어떻게 준비해야하는 지 모른다.” 라고 하였죠. 그것에 가슴이 아팠어요. 내가 어떤 연애를 해왔고 사랑을 해왔던 것은 중요치 않았어요. 그냥 너와 연애하고 있는 것 하나가 가장 중요했거든요. 나는 늘 평정심을 잃지 않으려 했어요. 우리 둘이서 싸우고 생각할 시간을 갖자고 한 것은 내가 화가 아주 많이 나 있는 상태에서 너에게 어떤 말을 할 지 모르기에 그 말이 너에게 어떤 상처를 줄 지 모르기에 생각할 시간을 갖자고 한 것이에요. 30분에서 한 시간 동안 화를 삭히고 나서 네게 다시 미소 띈 목소리로 전화를 걸거나, 만났어요. 나 역시 권태기는 왔었죠. 네가 룸메이트와 술을 먹으러 갔을 때, 상당히 실망을 했어요. 네가 말한 그 표현대로 하자면 ‘정이 떨어졌었다.’ 그래서 너를 봐도 아무렇지 않은 척 지나갔어요. 그리고 처음으로 헤어질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했어요. 생각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다음부터 그러지 말라고 말해주고 더 안아주고 더 사랑해주는 것이라는 결론이었어요. 내가 너와 연애 중이었을 때, 추파를 많이 받았어요. 너에게 말하지 않은 것은, 네가 나를 걱정할거 같았거든요. 내가 올려놓은 너의 자존감을 어떻게든 유지 시키려고 말하지 않았어요. 나는 집착을 사랑이라 받아들였어요. “여자 있는 술자리에는 가지마라.” “술을 마실 때는 30분에 한번 씩 중간보고를 하라.” 라는 것을 다 받아들였어요. 심지어는 술을 먹다가 갑자기 네가 잔다고 하면 퇴장샷을 받고, 전화를 하고, 다시 들어와 입장샷을 받았죠. 인증샷을 보내달라고 할 때는, 군말 없이 찍어줬어요. 친구들이 내게 “너는 연애를 하는 거냐 잡혀 사는 거냐?” 라고 물었을 땐 그저 허허 웃었어요. 집착 역시 사랑의 일종이라 받아들였어요. 네가 나를 많이 걱정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네가 나를 발로 차고, 주먹으로 때려도. 나는 네게 손찌검 한 번조차 하지 않았어요. 다 맞았고, 웃었죠. 네가 날 사랑해서 격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라 생각하고 맞았어요. 나는 네가 개 짖는 소리를 내라고 하기에 인간으로써 정체성에 혼란이 왔지만 그래도 냈어요. 네가 원하니까요. 나는 밤을 꼬박 새우고도 너를 만나러 갔어요. 아무리 피곤하고 졸려도 네게 기색 한 번 보이지 않고 혼자 담배 한 대 태우며 잠을 깨웠죠. 너와 데이트를 하던 중, 네가 졸립다며 잠시 눈을 붙인다고 하면 알았다고 하고 네 자는 모습을 지긋이 지켜봤어요. 자는 모습 마저 예뻤고, 네 건강이 우선이었거든요. 늘 내 주머니에는 껌과 가글, 그리고 향수가 있었죠. 네가 담배 냄새를 싫어하기에 가지고 다녔거든요. 나는 네가 고쳐달라고 한 것은 대부분 고쳤어요. 내가 너와의 연애 초기에 다른 여자 애들의 머리를 쓰다듬고 볼을 쓰다듬는 것에 대해 화를 내고 그러지 말라고 하기에, 고쳤죠. 그리고 다른 여자애들과의 신체적 접촉은 장담컨대 단 한 번도 없었어요. 내가 피했거든요. 나는 늘 너를 걱정했어요. 혼자서 어디를 간다고 하면 경로를 다 찾아보며 안내 해주고 중간보고를 받으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죠. 그리고 다 도착했다고 하면 고마워했어요. 아무런 사고 없이 그냥 왔다는 자체 하나만으로 고마워했어요. 말레이시아에서 네가 돌아왔을 때 전 날 마신 술이 덜 깬 채 대구로 바로 찾아갔던 이유는 그거 하나뿐이에요. 우리가 연락을 하다가 배터리가 없을 땐 사업용 휴대폰을 켜서 와이파이 존을 찾아 서성이며 거기에 우두커니 서있는 채 연락을 했어요. 십 분이고 이십 분이고 연락이 서로 끊길 때 까지 그렇게 카톡을 했어요. 나는 너의 판단을 존중했어요. 투정을 부리긴 했지만, 너의 판단을 존중했어요. 정말 미치도록 보고 싶을 때나 너에게 어울리지도 않는 애교를 부리며 나오라고 했죠. 나는 네가 보고싶다 말하면 아무런 상관없이 그냥 나갔어요.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가도 나갔으며 회사일에 치여 있어도 잠시 미룬 뒤에 나갔어요. 나는 네가 도움을 청하면 그냥 도와줬어요. 어떠한 댓가도 바라지 않았죠. 네가 형태소를 묻고 맞춤법을 물을 때 잊어버린 고등학교 때의 기억을 어떻게든 더듬대며 너에게 도움을 줬어요. 내가 시험공부를 하고 있을 때도 네가 “도와줘.”라고 말을 하면 내 공부를 뒤로 미루고 너의 공부를 도와줬어요. 나는 현재의 상황에서 너에게 감동을 주려고 노력을 했어요. 100일때는 시험공부로 바빠 있었기에 데이트를 할 수도, 어디 놀러가지도 못하기에 내 공부 하는 시간을 줄이고 너와 내가 찍은 사진을 동영상으로 엮어서 강의실에서 네게 보여줬죠. 200일을 앞두었을 때는 너와 찍은 사진을 인쇄하여 앨범을 만든 뒤 우리가 찍었던 사진을 되돌아보면서 더 많은 추억을 만들려고 했죠. 나는 아무리 힘들어도 네게 내색을 하지 않았어요. 내색을 했다간 약한 모습을 보일 것 같아서였거든요. 네게 보여준 약한 모습은 기껏해야 감기가 걸렸을 때였고 그 감기가 걸렸을 때 조차 내가 너의 액받이를 하는 것이라고 내가 너의 감기 대신 걸린 것이라고 말하며 허허 웃었죠. 나는 네가 옷을 어떻게 입던 상관하지 않았어요. 츄리닝 차림이라 할지라도 예쁘다고 말했죠. 사실이었거든요. 나는 네가 구두를 신고 발에 물집이 났다고 하자, 바로 터트려주었던거 기억나요? 그리고 덧나지 않게 실을 터진 자리에 놓고 구멍을 막은 뒤, 발등에 입을 맞춰 주었죠. 너는 더럽다고 하지 말라 하여도 나는 너의 모든 것 중에 하나도 더러운 것이 없었어요. 나는 너를 보기 위해서 매주 수요일, 학생 식당에서 밥을 먹고 12시에 나오는 너를 기다렸죠. 그러고는 단 1분을 보고 헤어졌어요. 그걸 한 학기 내내 계속 반복했어요. 나는 내가 못먹는 음식이라 할지라도 네가 먹으라고 하면 먹었죠. 음식점에 가서 마늘을 먹여주는걸, 거절 하지 못해 먹고 다음날 화장실에서 고통 받아도 그냥 넘겼어요. 네겐 내색조차 하지 않았죠. 나는 네가 약속시간에 늦어도 그냥 기다렸어요. 기다리다가 네가 급하게 오려하면 천천히 오라고 했죠. 네가 급하게 오다 다치는 꼴을 보기 싫어서였거든요. 경남성 앞으로 지나갈 때 쯤이면 음식물 쓰레기 냄새가 역했죠, 지금도 역해요. 그래서 네 코를 손으로 잡아 막고 걸었어요. 네게 그런 냄새를 맡게할 수 없기 때문이었거든요. 우리가 연애중일 때, 우리 학과 선배가 말한, 항공운항과 학생과 우리 과 후배가 사귀는데 정말 못생겼더라, 라는 말을 네가 듣고 충격에 빠지자. 나는 가슴 아파했어요. 말을 한 사람을 찾았고, 따졌어요. 내가 연애를 하던 말던 당신이 무슨 상관이냐며 따지고 그 선배와는 연락을 끊었어요. 네가 늘 디자인이 촌스럽다고 하는 너의 학과 유니폼조차도 나는 옷걸이가 좋으니 옷조차 예뻐보인다고 말하였죠. 사실이었거든요. 네가 엉덩이가 간지럽다면서 트레이닝 팬츠를 입고 벅벅 긁어댈때도 사랑스러웠어요. 나는 너의 공부 시간에는 네게 연락하지 않았어요. 토익을 카페에서 나와 공부하고 싶다 말하였으나, 그러면 집중을 하지 않을 것 같아, 기숙사 안에서 공부하라고 말했죠.. 나 역시 같이 공부하고 싶었으나 서로 공부보다는 애정행각을 벌일 것 같았거든요. 나는 네 꿈을 응원했어요. 성년의 날, 향수라던가, 장미라던가 이런 선물보다는 너의 꿈에 먼저 도달한 선배들의 수기들과, 기장의 수필을 사서 선물해줬어요. 금방 시들어버릴 장미보다는 평생 간직할 지식을 주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거든요. 내가 너에게 늘 잔소리를 한 것은 고쳐주길 바라는 마음이었어요. 하지만 너는 고치지 않았죠. 허나 그래도 이해했어요. 20년 동안 살면서 하나둘 씩 생긴 습관들이 쉽게 고쳐질 리가 있나 생각하고 그냥 이해하고 받아주며 내가 맞춰갔거든요. 네가 말레이시아에 도착했을 때, 새벽 4시까지 너를 걱정하며 잠에 들지 못했어요. 그리고 네가 자라고 할 때, 그때서야 잤죠. 네가 자기 전에는 잠들지 않았어요. 너와 나의 시차는 한 시간이었고, 한국이 한시간 더 빨랐죠. 너는 늘 새벽 2시에 잤고, 한국은 새벽 3시였죠. 그래도 나는 너를 기다렸어요. 네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었던. 잘 자요. 사랑해. 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에요. 네가 말레이시아에 가있는 동안 많은 여자들이 내게 접근을 했고, 나는 다 내쳤어요. 그리고 네게는 말하지 않았죠. 네가 걱정할까봐, 걱정할까봐 말하지 않았어요. 나는 머리조차 내 스타일 대로 깎지를 못했죠. 내가 늘 머리를 짧게 자르려 하면 그러지 말라고 하기에 짧게 자르지 않았어요. 헤어지고 머리를 민 것은 그 이유에요. 처음으로 나는 머리 스타일에 대한 자유가 생겼어요. 네가 생각할 시간을 갖자고 할 때, 네가 욕 먹을까봐, 나와 가장 친한 친구에게만 알리고, 너와 관련되지 않은 녀석에게만 고민을 상담했어요. 너와 헤어지고 나서, 어줍잖게 나보고 너가 너무 아까웠다 라는 말로 위로를 하려 할때면 나도 모르게 발끈해서 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 하며 자리를 박차고 나갔어요. 헤어진 뒤 우리가 헤어진 이유에 대한 안좋은 소문이 돌길래 그것들을 수습하려 애썼어요. 수습하면 수습할 수록 돌아오는 반응은 “니가 왜 소문을 수습하냐”, “바람을 피웠든 어떻게 되었든, 이젠 너와 걔는 관계 없지 않느냐.” 라는 말을 들으며 내 자신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죠. 그래도 계속 수습을 했어요. 분명히 헤어지자고 한 쪽은 네 쪽인데, 휴학은 내가 하려 했죠. 내가 너의 꿈을 구속한다는 것 같다는 그 말 하나 때문에 휴학을 하려 했거든요. 그러나 휴학도 하지 못하게 생겼어요. 소문 때문이에요. 휴학을 한다면 그 소문들이 100% 진실로 굳어지기 때문이죠. 그래서 등록금을 다 납부하고 돌아왔어요. 아버지가 결국 휴학하라는데 너무 힘들어하니까 휴학하라는데, 휴학하지 않겠다고 말했어요. 휴학하면 소문이 사실로 굳어진다고. 그러면 애 죽을만큼 힘들거라고. 나 그 꼴 못 본다고 했어요. 아버지가 미친놈이래요. 맞아요 나 미쳤죠. 너랑 나랑은 이제 끝났는데 왜 이럴까요? 나 너랑 헤어지고 나서 상당히 힘들어 할때, 옆에서 나 고민들 다 들어주고 이야기 다 들어주던 누나가, 내가 좋대요. 성숙하다고, 20살 같지 않다고. 그거 너한테 말하니까 가라고 했죠. 근데 못가겠어요. 너 못잊겠어요. 너는 내 사랑을 시험하려 했죠. 나를 가지고 논 거죠. 네가 생각할 시간을 가지자고 할 때, 나는 자존심을 버리고 너에게 카톡을 보내고 전화를 걸었다. 단지 귀찮다는 이유로 너는 읽고 씹었고, 전화를 받지 않았어요. 친구들이 더 중요해서였을테죠. 그리고 너는 내게 나 한국 돌아와서 재결합 하려 했는데, 너가 너무 카톡을 보내서 정이 떨어졌어. 라고 말했죠. 그럼 그 상황에서 어떻게 할까요, 이역만리 떨어져있는 타지에서 네가 카톡도 안보고 전화도 안받고 그렇게 하는데. 그냥 조용히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어요. 충고조차 상당히 어이가 없었어요. 나는 내게 전부를 바치는 사람은 싫어. 다음에 연애를 할 때는 전부를 바치지 마. 그게 사랑이에요? 네가 한 짓은 생각 하나도 안해요? 한달 동안 기다렸던 사람에게 그게 사람이 할 소리에요? 너와 헤어지고 나서 일기를 매일 썼어요. 그리고 하루를 복기하면서 일기를 읽는데, 늘 후회가 점철되어 있더군요. 다 내 잘못이라 생각하고 네가 혼자가 더 편하다고 말한 것조차 내 잘못이라고 생각했어요. 네가 개강을 하고 네가 촌스럽다고 말한 그 과복을 입고 머리를 올린 채 하이힐을 신고 학교 캠퍼스를 걸어봐요. 그리고, 발등에 키스를 해주는 남자가 두 번 다시 네게 찾아올 지를 생각해봐요. 여자가-, 남자가- 하는 말을 상당히 싫어하지만, 여자는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 하더군요. 그리고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는 남자를 만나래요. 난 너를 성장시키려고 노력했고, 너의 자존감을 높이며, 너의 자격지심을 없애려고 했어요. 그러면서 당당해지는 네 모습을 보며 뿌듯해 했고, 속으로만 그냥 생각하고 살아왔어요. 너는 스스로 기회를 버렸어요. 내가 너와 헤어지고 나서 이틀 내내 울고 술을 마시고 정신 차릴려고 캠퍼스를 걷다가 너와의 추억이 생각나서 혼자 화장실로 뛰어가 문을 걸어 잠근 채 울고 밥 못먹고 잠 못드는 것은 기본이고 잠들기 위해 수면제를 먹고 수면제를 먹고 잠에 들면 너와의 추억이 꿈에서 나타나서 깨고 멍청하게 그 꿈을 이어가기 위해 다시 잠들려고 하고 실패해서 룸메이트들이 모두 잠든 그 새벽에 화장실에서 수도 꼭지를 틀어놓은 채 울고 시간을 되돌리기 위해 평생 신의 존재조차 믿지 않았던 내가 기도를 올리고 절에 가서 불상 앞에 108배를 하며 신문사 건물에 추억으로 범벅되어 있는 것이 너무나도 고통스러워 학보사를 그만 두고 남자로써 처음으로 무릎을 꿇고 제발 돌아오라고 울부짖고 눈물이 말랐는데 울음소리만 나고 속으로는 피눈물이 흐르며 정말 죽을만큼 슬픈. 눈뜨면 지옥인 그 삶을 반의 반이라도 경험 해봤으면 좋겠어요. 너무 많이 경험했다간 아플테니까 나 그 꼴 못보니까. 조금만 경험해봐요. 내 심정이 어떨지, 내가 얼마나 너와 연애를 하면서 가슴아파 했는지. 조금이라도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참 호구같죠..
나는 너와 연애를 하면서, 모든 일에 늘 신중했어요.
너와 사귈 마음을 먹었을 때도
캠퍼스 커플, 즉 CC라는 것에 대한 장점과 단점에 대해 조사를 하였고
헤어졌을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오래하고
이 위험들을 다 감수한 채 너에게 고백을 했어요.
너에게 사랑한다고 처음 말했을 때도
신중했어요.
사랑한다는 느낌이 들어
‘과연 이 말을 해도 될까’
라는 생각 끝에 사랑한다는 말을 네게 말했을 땐
많은 결단과 용기가 필요했거든요.
나는 영하 20도의 추운 날씨에도
너와 통화를 하기 위해
바깥으로 나갔어요.
추워도 네게 사랑을 주려 노력했죠.
우리가 하는 통화는 오늘 하루가 어땠는지의 일상적인 내용이었으나
네게 사랑한다는 것을 많이 표현하려 했어요.
그렇게 추운 날씨 속에 두 달간 살아왔죠.
너와 연애를 시작하고 전화 요금이 몹시 나왔기에 요금제를 무제한으로 바꿔버렸어요.
매달 천 분 이상의 통화를 하며
열에 아홉은 다 내가 걸었던거 기억나요?
네가 걸면 내가 끊고 다시 걸었죠.
널 존중했기에, 존대를 했어요.
여자친구라고 하여 함부로 대하지 않았죠.
연인이라 생각하고 존대를 하고 말을 높였거든요.
네가 라섹을 하여 선글라스를 쓰고 다녀야 한다기에
안경을 하나 사서 너와 있는 자리에서는 늘 쓰고 다녔던거 기억나요?
네 불편함을 직접 체험해보고, 불편함을 나누고 싶어서였어요.
나는 네 생활 패턴을 존중했어요.
밤 10시면 정글의 법칙, 별에서 온 그대같은 TV 프로그램을 보려고 하기에
늘 방송이 끝난 직후에 전화를 걸었죠.
너는 늘 10시에 일어났고
쉬는 시간의 시작이었던 10시에 네게 전화를 걸어 깨웠죠.
우리의 연애 초창기.
내가 작업장에서 2시간에 한번 씩 쉬는 시간에는
늘 네게 전화를 걸었죠.
너무 피곤해서 쪽잠이라도 자고 싶었지만
그런 마음들을 다 참고 네가 내 전화를 기다릴 것을 알기에
전화를 걸었어요.
우리가 대구에서 데이트를 하고
다음 날 10분 밖에 못 봄에도 불구하고 자고 갔었죠.
10분이 우리에겐 너무나도 달콤했기에
10분을 보고 학교에 바래다 준 것이 끝이었으나,
나는 기뻐하며 돌아갔어요.
네가 내게 담배를 끊으라고 했을 때
담배를 하루에 다섯 개만 피우겠다고 말하는 그 순간
네게 어떻게 말을 해야 네가 상처를 받지 않을지를 걱정했다.
그리고 혼자서 조심히 말했어요.
그만큼 네게 상처를 주기 싫었거든요.
헤어지기가 아쉬워
아파트 단지 앞
놀이터
심지어는 엘리베이터 앞 까지 바래다주고
네가 너의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면 그제야 돌아갔다.
돌아가면서 아쉬워함은 물론이었죠.
우리가 연애를 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너의 부모님이 내 자랑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슴이 뿌듯했어요.
그래서 너의 부모님께 선물을 보내드렸어요.
남자친구 잘 뒀다고 좋아하시기에 기뻤어요.
우리가 장거리 연애 때
너를 보기 위해 일이 없어도 대구로 올라갔어요.
심지어는 설날 당일에도 대충 친척들과 인사를 하고 세뱃돈을 받아 바로 올라가버렸죠.
보고 싶다기에
갔어요.
네가 카페에서 커피를 쏟았을 때
커피보다 네 손을 더 걱정했어요.
나도 모르게 먼저 나온 말은
“손은 괜찮아요?”였고
“괜찮아.”
라고 하기에 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려고 안아주었죠.
4,000원 짜리 커피보다 네 손이 더 귀중했거든요.
하루의 시작과 끝은 너로 시작되고 너로 끝났어요.
눈을 뜨고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네게 전화나 문자를 통해 일어났음을 알리는 것이었고.
혹여나 자는 널 깨울까봐
문자를 더 자주 썼어요.
자기 전에는 잔다고 알리고 잤죠.
자다가 네가 전화를 했을 때도
그냥 받았어요.
몹시 피곤해 잠긴 목소리 너머로 나의 피로가 다 들통났지만
그것마저 사랑스러워 하는 너의 모습에
자다 깨서 몽롱한 상태로 너와 대화를 하려했어요.
내가 화가 아주 많이 나서 카카오톡을 지웠을 때
너 역시 나와 같은 방법으로
문자로 내게 미안하다 말하고
전화를 걸고
페이스북 메시지를 보냈었죠.
그 노력이 가상했기에 나는 용서하였어요.
난 우리가 14학번 중 가장 먼저 사귀게 된 캠퍼스 커플이라는 것에 대해 자랑스러워했어요.
그리고 어떻게 사귀게 됬냐고 말하면
한치의 틀림도 없이 다 말했어요.
어떤 상황이었는지를 아예 외워버렸죠.
난 늘 너의 말을 들으려고 노력했어요.
늘상 내가 끼고 다니던 블루투스 이어폰은, 너와 만날 때는 뺐고
오직 네게만 집중했어요.
나는 늘 너를 자랑했어요.
아버지께
“네가 김연아를 닮았다.”
라는 말을 했다 숟가락으로 머리를 얻어맞기도 했었죠.
내가 일을 할 때
한 아주머니가 조카의 사진을 보여주며
“소개 받지 않을래?” 라기에
나는 당당하게 제 여자 친구가 더 예쁩니다.
라고 말하며 네 사진을 보여줬어요.
진심이었어요.
그러면서 친구들에게 소개를 시켜줬고
친구들에게는 늘 네 자랑만 했어요.
들려오는 답은 다들 욕을 해댔지만
나는 그저 웃으며 계속 했어요.
내 신변에 직접적인 위협을 받고 있던 시절.
네가 페이스북에 나와 연애중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다기에
많은 고민을 하였고, 알겠다고 했죠.
그리고 당시 맡고 있었던 집행부를 그만두었어요.
현우 형이 그만두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기에
소중한 사람마저 다치는 것은 원치 않는다고 말했고, 그 말을 끝으로
현우 형과는 서먹해졌지만 후회는 안해요.
네가 내 휴대폰에 있는 모든 여자들의 번호를 지우라기에
다 지웠어요.
중학교, 고등학교 동창의 번호도 다 지워버렸어요.
네가 나를 믿지 못할까봐 다 지워버렸어요.
나는 너의 모든 말에 귀담아 들었죠.
네가 그 장난감 정말로 줄줄은 몰랐다고 했죠.
난 농담처럼 은연중에 네가 던지는 말도 다 귀담아 듣고
진심으로 받아들였거든요.
네가 말했던 말들은 다 기억이 나고
가슴 속 깊이 새겼어요.
우리 둘이서 같이 음식을 먹다가
맛있는 부위가 있으면 스스럼 없이 네게 줬던거 기억나요?
맛없는걸 내가 먹는게 더 낫다고 생각해서였거든요.
그게 당연한거라 여겼고 맛있는 음식점을 찾으면, 너와 가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나는 늘 너의 영향권 안에 들어 있었죠.
은지 누나가 영원히 하늘로 간 날
서울에 올라가려 했을 때 너는 가지 말라고 했고
결국 가지 못했죠.
은지 누나에게는 며칠 전 서울에 올라갔다 오면서 명복을 빌었어요.
내가 학기 중 대전을 벗어나 외박을 해본 적은 단 한 번
집에 내려갔을 때 뿐이었어요.
너 역시 대구로 내려가지 않길래 주말은 늘 너와 보냈거든요.
네가 울면 나도 울어버렸죠.
네가 우는 것은 싫었거든요.
그래서 울지 말라고 달래다가 울어버렸죠.
그리고 미안하다며 너를 안아주었어요.
나는 너의 자존감을 높이고 싶었어요.
네가 늘 네 모습이 “못생겼다.”
“성적으로 너의 학과에 들어왔다.”고 할 때 마다 가슴이 아파왔어요.
그래서 내가 늘
네게 “예쁘다, 사랑스럽다.”는 말을 자주 했는데.
그러면 너는 콩깍지가 꼈다고 했죠.
그것마저도 가슴이 아팠어요.
진심으로 말하는 말을 왜 그렇게 삐뚤게 듣는지
내 눈에는 정말로 예뻤는데.
그 웃는 모습, 걷는 걸음걸이
네가 말을 할 때 살짝 비치는 입가의 주름과 눈에 낀 눈꼽조차 다 예뻤죠.
너 때문에 아무리 화가 많이 나도, 속으로 삭혔어요.
힘들면 술로 풀었고, 혼자서 취해 곯아떨어져 잤죠.
그러고 나서 다음 날 화가 완전히 풀리면
네게는 웃는 모습으로 대했어요.
혼자서 내가 어디 갈 일이 있으면
어디를 간다고 다 보고해주었죠.
내 행동 경로는 다 네게 보냈고
심지어는 택시를 탔을 경우 위치정보까지 찍어
네게 카톡으로 보내줬죠.
5월 연휴때 생긴 멍들은, 사실 싸우다가 생긴 상처였어요.
술 취한 다른 과 선배가 내게 시비를 걸었는데, 계속 무시했는데
너를 욕하기에 주먹이 바로 나갔어요.
나는 욕 먹어도 좋으나, 네가 욕먹는 건 싫었거든요.
내가 전에 신문사에서 자다 깼는데 희미하게 보이는 너의 모습이 천사같다고 했죠.
너는 “유니폼 때문이야.”
라고 웃으며 말했어요.
아니에요.
네 모습이 너무 예뻤어요.
그래서 천사 같았어요.
나는 네 말을 다 이해하려 노력했어요.
네가 아무리 내게 짜증을 내고 화를 내도
다 이해하려 노력했어요.
네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도
늘 내가 먼저 사과를 했어요.
더 많이 사랑하는 쪽이 자존심을 굽히는 것이 옳은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거든요.
나는 눈치가 정말 없었기에
네가 기분나빠하면 끊임없이 물었고
그 이유에 대한 원인과 설명을 계속하려 노력했어요.
오해는 그렇게 푸는 것이라 배웠기에 너와 자주 대화하고
네게 계속 의견을 물었어요.
나는 네 집착을 이해하려 했어요.
네가 대면식 때 내 개인용 휴대폰에 전화를 60번, 카톡을 300개 가량 보내고
내 사업용 휴대폰에 전화가 40통, 여기에도 카톡을 보냈던거 기억 나요?
심지어는 동기들에게 전화를 걸어 나 어딨냐고, 여자랑 같이 있냐고 물어봤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가 찼어요.
심장이 아프고 숨쉬기가 어렵다는 카톡을 보고
이 사람이 무섭다라는 생각은 들었으나
집착도 사랑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였어요.
내가 술을 마시러 가는 날, 중간보고를 안하면 호되게 혼났기에 중간중간 시계만 쳐다보며 중간 보고를 했어요.
지나가는 동기와 잠시 마주쳐 인사를 했던 것이
그렇게 화를 낼만한 일이었는지는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지만.
네가 잘못된 것이라 말하기에 잘못했다고 느꼈어요.
나는 네가 술을 먹으러 따로 나간 날마다
기숙사 외박을 신청해둔채 S관 앞 벤치에서 너를 기다렸어요.
네가 걱정되어 언제쯤 오나 싶어 물어보려 하면,
너 재밌게 놀고 있는 것을 혹여나 방해할까봐
네가 중간 중간 보내는 카톡만 기다렸어요.
우리 서로 옷을 바꿔 입자는 너의 말에, 싫었지만 따랐어요.
네가 좋아하니까 그걸로 좋았거든요.
너는 늘 자격지심에 물들어 있었어요.
심지어는 100일 때의 편지에서도 말이에요.
“나는 100일을 처음 맞아보기에 어떻게 준비해야하는 지 모른다.”
라고 하였죠.
그것에 가슴이 아팠어요.
내가 어떤 연애를 해왔고 사랑을 해왔던 것은 중요치 않았어요.
그냥 너와 연애하고 있는 것 하나가 가장 중요했거든요.
나는 늘 평정심을 잃지 않으려 했어요.
우리 둘이서 싸우고 생각할 시간을 갖자고 한 것은 내가 화가 아주 많이 나 있는 상태에서
너에게 어떤 말을 할 지 모르기에
그 말이 너에게 어떤 상처를 줄 지 모르기에
생각할 시간을 갖자고 한 것이에요.
30분에서 한 시간 동안 화를 삭히고 나서
네게 다시 미소 띈 목소리로 전화를 걸거나, 만났어요.
나 역시 권태기는 왔었죠.
네가 룸메이트와 술을 먹으러 갔을 때, 상당히 실망을 했어요.
네가 말한 그 표현대로 하자면
‘정이 떨어졌었다.’
그래서 너를 봐도 아무렇지 않은 척 지나갔어요.
그리고 처음으로 헤어질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했어요.
생각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다음부터 그러지 말라고 말해주고 더 안아주고 더 사랑해주는 것이라는 결론이었어요.
내가 너와 연애 중이었을 때, 추파를 많이 받았어요.
너에게 말하지 않은 것은, 네가 나를 걱정할거 같았거든요.
내가 올려놓은 너의 자존감을 어떻게든 유지 시키려고 말하지 않았어요.
나는 집착을 사랑이라 받아들였어요.
“여자 있는 술자리에는 가지마라.”
“술을 마실 때는 30분에 한번 씩 중간보고를 하라.” 라는 것을 다 받아들였어요.
심지어는 술을 먹다가 갑자기 네가 잔다고 하면 퇴장샷을 받고, 전화를 하고, 다시 들어와 입장샷을 받았죠.
인증샷을 보내달라고 할 때는, 군말 없이 찍어줬어요.
친구들이 내게 “너는 연애를 하는 거냐 잡혀 사는 거냐?”
라고 물었을 땐 그저 허허 웃었어요.
집착 역시 사랑의 일종이라 받아들였어요.
네가 나를 많이 걱정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네가 나를 발로 차고, 주먹으로 때려도.
나는 네게 손찌검 한 번조차 하지 않았어요.
다 맞았고, 웃었죠.
네가 날 사랑해서 격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라 생각하고 맞았어요.
나는 네가 개 짖는 소리를 내라고 하기에
인간으로써 정체성에 혼란이 왔지만 그래도 냈어요.
네가 원하니까요.
나는 밤을 꼬박 새우고도 너를 만나러 갔어요.
아무리 피곤하고 졸려도 네게 기색 한 번 보이지 않고
혼자 담배 한 대 태우며 잠을 깨웠죠.
너와 데이트를 하던 중, 네가 졸립다며 잠시 눈을 붙인다고 하면
알았다고 하고 네 자는 모습을 지긋이 지켜봤어요.
자는 모습 마저 예뻤고, 네 건강이 우선이었거든요.
늘 내 주머니에는 껌과 가글, 그리고 향수가 있었죠.
네가 담배 냄새를 싫어하기에 가지고 다녔거든요.
나는 네가 고쳐달라고 한 것은 대부분 고쳤어요.
내가 너와의 연애 초기에
다른 여자 애들의 머리를 쓰다듬고
볼을 쓰다듬는 것에 대해 화를 내고 그러지 말라고 하기에, 고쳤죠.
그리고 다른 여자애들과의 신체적 접촉은 장담컨대 단 한 번도 없었어요.
내가 피했거든요.
나는 늘 너를 걱정했어요.
혼자서 어디를 간다고 하면 경로를 다 찾아보며 안내 해주고
중간보고를 받으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죠.
그리고 다 도착했다고 하면 고마워했어요.
아무런 사고 없이 그냥 왔다는 자체 하나만으로 고마워했어요.
말레이시아에서 네가 돌아왔을 때
전 날 마신 술이 덜 깬 채 대구로 바로 찾아갔던 이유는 그거 하나뿐이에요.
우리가 연락을 하다가 배터리가 없을 땐
사업용 휴대폰을 켜서 와이파이 존을 찾아 서성이며 거기에 우두커니 서있는 채 연락을 했어요.
십 분이고 이십 분이고
연락이 서로 끊길 때 까지
그렇게 카톡을 했어요.
나는 너의 판단을 존중했어요.
투정을 부리긴 했지만, 너의 판단을 존중했어요.
정말 미치도록 보고 싶을 때나 너에게 어울리지도 않는 애교를 부리며 나오라고 했죠.
나는 네가 보고싶다 말하면 아무런 상관없이 그냥 나갔어요.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가도 나갔으며 회사일에 치여 있어도 잠시 미룬 뒤에 나갔어요.
나는 네가 도움을 청하면 그냥 도와줬어요.
어떠한 댓가도 바라지 않았죠.
네가 형태소를 묻고 맞춤법을 물을 때
잊어버린 고등학교 때의 기억을 어떻게든 더듬대며 너에게 도움을 줬어요.
내가 시험공부를 하고 있을 때도
네가 “도와줘.”라고 말을 하면 내 공부를 뒤로 미루고 너의 공부를 도와줬어요.
나는 현재의 상황에서 너에게 감동을 주려고 노력을 했어요.
100일때는 시험공부로 바빠 있었기에
데이트를 할 수도, 어디 놀러가지도 못하기에
내 공부 하는 시간을 줄이고
너와 내가 찍은 사진을 동영상으로 엮어서 강의실에서 네게 보여줬죠.
200일을 앞두었을 때는 너와 찍은 사진을 인쇄하여 앨범을 만든 뒤
우리가 찍었던 사진을 되돌아보면서
더 많은 추억을 만들려고 했죠.
나는 아무리 힘들어도 네게 내색을 하지 않았어요.
내색을 했다간 약한 모습을 보일 것 같아서였거든요.
네게 보여준 약한 모습은 기껏해야 감기가 걸렸을 때였고
그 감기가 걸렸을 때 조차 내가 너의 액받이를 하는 것이라고
내가 너의 감기 대신 걸린 것이라고 말하며 허허 웃었죠.
나는 네가 옷을 어떻게 입던 상관하지 않았어요.
츄리닝 차림이라 할지라도 예쁘다고 말했죠.
사실이었거든요.
나는 네가 구두를 신고 발에 물집이 났다고 하자, 바로 터트려주었던거 기억나요?
그리고 덧나지 않게 실을 터진 자리에 놓고 구멍을 막은 뒤, 발등에 입을 맞춰 주었죠.
너는 더럽다고 하지 말라 하여도
나는 너의 모든 것 중에 하나도 더러운 것이 없었어요.
나는 너를 보기 위해서 매주 수요일, 학생 식당에서 밥을 먹고 12시에 나오는 너를 기다렸죠. 그러고는 단 1분을 보고 헤어졌어요. 그걸 한 학기 내내 계속 반복했어요.
나는 내가 못먹는 음식이라 할지라도 네가 먹으라고 하면 먹었죠. 음식점에 가서 마늘을 먹여주는걸, 거절 하지 못해 먹고 다음날 화장실에서 고통 받아도 그냥 넘겼어요.
네겐 내색조차 하지 않았죠.
나는 네가 약속시간에 늦어도 그냥 기다렸어요.
기다리다가 네가 급하게 오려하면 천천히 오라고 했죠.
네가 급하게 오다 다치는 꼴을 보기 싫어서였거든요.
경남성 앞으로 지나갈 때 쯤이면 음식물 쓰레기 냄새가 역했죠, 지금도 역해요.
그래서 네 코를 손으로 잡아 막고 걸었어요.
네게 그런 냄새를 맡게할 수 없기 때문이었거든요.
우리가 연애중일 때, 우리 학과 선배가 말한, 항공운항과 학생과 우리 과 후배가 사귀는데 정말 못생겼더라, 라는 말을 네가 듣고 충격에 빠지자.
나는 가슴 아파했어요.
말을 한 사람을 찾았고, 따졌어요.
내가 연애를 하던 말던 당신이 무슨 상관이냐며 따지고 그 선배와는 연락을 끊었어요.
네가 늘 디자인이 촌스럽다고 하는 너의 학과 유니폼조차도 나는 옷걸이가 좋으니 옷조차 예뻐보인다고 말하였죠.
사실이었거든요.
네가 엉덩이가 간지럽다면서 트레이닝 팬츠를 입고 벅벅 긁어댈때도 사랑스러웠어요.
나는 너의 공부 시간에는 네게 연락하지 않았어요.
토익을 카페에서 나와 공부하고 싶다 말하였으나, 그러면 집중을 하지 않을 것 같아, 기숙사 안에서 공부하라고 말했죠..
나 역시 같이 공부하고 싶었으나 서로 공부보다는 애정행각을 벌일 것 같았거든요.
나는 네 꿈을 응원했어요.
성년의 날, 향수라던가, 장미라던가 이런 선물보다는 너의 꿈에 먼저 도달한 선배들의 수기들과, 기장의 수필을 사서 선물해줬어요.
금방 시들어버릴 장미보다는 평생 간직할 지식을 주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거든요.
내가 너에게 늘 잔소리를 한 것은 고쳐주길 바라는 마음이었어요.
하지만 너는 고치지 않았죠.
허나 그래도 이해했어요.
20년 동안 살면서 하나둘 씩 생긴 습관들이 쉽게 고쳐질 리가 있나 생각하고 그냥 이해하고 받아주며 내가 맞춰갔거든요.
네가 말레이시아에 도착했을 때, 새벽 4시까지 너를 걱정하며 잠에 들지 못했어요.
그리고 네가 자라고 할 때, 그때서야 잤죠.
네가 자기 전에는 잠들지 않았어요.
너와 나의 시차는 한 시간이었고, 한국이 한시간 더 빨랐죠.
너는 늘 새벽 2시에 잤고, 한국은 새벽 3시였죠.
그래도 나는 너를 기다렸어요.
네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었던. 잘 자요. 사랑해. 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에요.
네가 말레이시아에 가있는 동안 많은 여자들이 내게 접근을 했고, 나는 다 내쳤어요.
그리고 네게는 말하지 않았죠.
네가 걱정할까봐, 걱정할까봐 말하지 않았어요.
나는 머리조차 내 스타일 대로 깎지를 못했죠.
내가 늘 머리를 짧게 자르려 하면 그러지 말라고 하기에 짧게 자르지 않았어요.
헤어지고 머리를 민 것은 그 이유에요. 처음으로 나는 머리 스타일에 대한 자유가 생겼어요.
네가 생각할 시간을 갖자고 할 때, 네가 욕 먹을까봐, 나와 가장 친한 친구에게만 알리고, 너와 관련되지 않은 녀석에게만 고민을 상담했어요.
너와 헤어지고 나서, 어줍잖게 나보고 너가 너무 아까웠다 라는 말로 위로를 하려 할때면 나도 모르게 발끈해서 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 하며 자리를 박차고 나갔어요.
헤어진 뒤 우리가 헤어진 이유에 대한 안좋은 소문이 돌길래 그것들을 수습하려 애썼어요.
수습하면 수습할 수록 돌아오는 반응은 “니가 왜 소문을 수습하냐”, “바람을 피웠든 어떻게 되었든, 이젠 너와 걔는 관계 없지 않느냐.” 라는 말을 들으며 내 자신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죠.
그래도 계속 수습을 했어요.
분명히 헤어지자고 한 쪽은 네 쪽인데, 휴학은 내가 하려 했죠.
내가 너의 꿈을 구속한다는 것 같다는 그 말 하나 때문에 휴학을 하려 했거든요.
그러나 휴학도 하지 못하게 생겼어요.
소문 때문이에요.
휴학을 한다면 그 소문들이 100% 진실로 굳어지기 때문이죠.
그래서 등록금을 다 납부하고 돌아왔어요.
아버지가 결국 휴학하라는데
너무 힘들어하니까 휴학하라는데, 휴학하지 않겠다고 말했어요.
휴학하면 소문이 사실로 굳어진다고. 그러면 애 죽을만큼 힘들거라고.
나 그 꼴 못 본다고 했어요. 아버지가 미친놈이래요.
맞아요 나 미쳤죠.
너랑 나랑은 이제 끝났는데 왜 이럴까요?
나 너랑 헤어지고 나서 상당히 힘들어 할때, 옆에서 나 고민들 다 들어주고 이야기 다 들어주던 누나가, 내가 좋대요. 성숙하다고, 20살 같지 않다고. 그거 너한테 말하니까 가라고 했죠.
근데 못가겠어요. 너 못잊겠어요.
너는 내 사랑을 시험하려 했죠.
나를 가지고 논 거죠.
네가 생각할 시간을 가지자고 할 때, 나는 자존심을 버리고 너에게 카톡을 보내고 전화를 걸었다. 단지 귀찮다는 이유로 너는 읽고 씹었고, 전화를 받지 않았어요.
친구들이 더 중요해서였을테죠.
그리고 너는 내게 나 한국 돌아와서 재결합 하려 했는데, 너가 너무 카톡을 보내서 정이 떨어졌어. 라고 말했죠.
그럼 그 상황에서 어떻게 할까요, 이역만리 떨어져있는 타지에서 네가 카톡도 안보고 전화도 안받고 그렇게 하는데. 그냥 조용히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어요.
충고조차 상당히 어이가 없었어요.
나는 내게 전부를 바치는 사람은 싫어.
다음에 연애를 할 때는 전부를 바치지 마.
그게 사랑이에요? 네가 한 짓은 생각 하나도 안해요?
한달 동안 기다렸던 사람에게 그게 사람이 할 소리에요?
너와 헤어지고 나서 일기를 매일 썼어요.
그리고 하루를 복기하면서 일기를 읽는데, 늘 후회가 점철되어 있더군요.
다 내 잘못이라 생각하고 네가 혼자가 더 편하다고 말한 것조차 내 잘못이라고 생각했어요.
네가 개강을 하고 네가 촌스럽다고 말한 그 과복을 입고 머리를 올린 채 하이힐을 신고 학교 캠퍼스를 걸어봐요.
그리고, 발등에 키스를 해주는 남자가 두 번 다시 네게 찾아올 지를 생각해봐요.
여자가-, 남자가- 하는 말을 상당히 싫어하지만, 여자는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 하더군요.
그리고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는 남자를 만나래요.
난 너를 성장시키려고 노력했고, 너의 자존감을 높이며, 너의 자격지심을 없애려고 했어요. 그러면서 당당해지는 네 모습을 보며 뿌듯해 했고, 속으로만 그냥 생각하고 살아왔어요.
너는 스스로 기회를 버렸어요.
내가 너와 헤어지고 나서 이틀 내내 울고
술을 마시고
정신 차릴려고 캠퍼스를 걷다가
너와의 추억이 생각나서 혼자 화장실로 뛰어가 문을 걸어 잠근 채 울고
밥 못먹고 잠 못드는 것은 기본이고
잠들기 위해 수면제를 먹고
수면제를 먹고 잠에 들면 너와의 추억이 꿈에서 나타나서 깨고
멍청하게 그 꿈을 이어가기 위해 다시 잠들려고 하고
실패해서 룸메이트들이 모두 잠든 그 새벽에 화장실에서 수도 꼭지를 틀어놓은 채 울고
시간을 되돌리기 위해 평생 신의 존재조차 믿지 않았던 내가 기도를 올리고 절에 가서 불상 앞에 108배를 하며
신문사 건물에 추억으로 범벅되어 있는 것이 너무나도 고통스러워 학보사를 그만 두고
남자로써 처음으로 무릎을 꿇고 제발 돌아오라고 울부짖고
눈물이 말랐는데 울음소리만 나고
속으로는 피눈물이 흐르며
정말 죽을만큼 슬픈.
눈뜨면 지옥인 그 삶을 반의 반이라도 경험 해봤으면 좋겠어요. 너무 많이 경험했다간 아플테니까 나 그 꼴 못보니까. 조금만 경험해봐요.
내 심정이 어떨지, 내가 얼마나 너와 연애를 하면서 가슴아파 했는지.
조금이라도 알아줬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