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가식

소검2014.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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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가식


사랑은 영혼을 밝게 하기위한 인간의 고귀한 성품이다. 인간의 현재의 삶에서 심리적 고통이 이루어지는 것은, 이러한 고귀한 성품의 사랑을 잃었거나 변질이 되어 그러한 사랑의 부족함을 영혼이 호소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러한 사랑을 오히려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한다면, 영혼의 호소는 절규가 된다. 고통을 사랑이라는 도구를 내세워 피하려는 것은 그 영혼의 소리를 무시하는 것이며, 그렇게 하여 더욱 고통에 떨어지게 된다. 그런즉, 고통을 피하려고만 하지 말고 근원을 찾아 제거해야 하며, 고통의 원인을 찾는 것은 자신의 심리적 내면으로부터 그 원인을 찾아 극복하여야 한다.


물리적 두통의 원인은 보통 신경을 잘못 써서 위장에 이상이 생겨 발생하는 것으로, 그러한 두통은 진통제를 써서 일시적으로 면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위장을 더욱 혹사하게 되어 두통은 더 자주 더 심하게 발생하게 된다. 먼저 위장을 다스리고 근본적으로 신경을 편안하게 갖는 것이 두통의 근원을 제거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삶의 고통을 사랑이라는 진통제로 피하려는 것은 영혼의 빛을 더욱 잃게 되어 더욱 심한 고통을 당하게 된다. 먼저 자신의 마음의 상태를 확인하여야 하며, 그 마음에 근원을 찾아 제거해야 하고, 그 정신이 어디에 있는지, 즉, 자신의 내면에서 벗어나 외부적 삶에 나가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영혼은 자기를 사랑해주기를 원하기 때문이며, 영혼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존재론적 자아를 잃는 것이니, 그러할 때 영혼은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키기 위하여 삶에 고통을 주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도구를 내세워 피하려 한다는 것은 가식적 사랑을 말하며, 가식적 사랑의 본질은 자기만족적 사랑으로 상대를 속이려는 심리에서 발생한다. 이러한 가식적 사랑은 미움보다 오히려 더한 악행이 되니, 그것은 먼저 자신의 영혼을 더럽히기 때문이며, 근본적인 마음으로부터 순수한 사랑을 잃고 사랑이 변질된 시기질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진실로 자신의 영혼을 사랑한다면, 그러한 변질된 사랑인 시기질투와 같은 짓은 하지 못할 것이다. 자신에게 있는 시기질투가 자신의 영혼을 얼마나 혹사시키고 고통에 시달리게 하는 줄을 모르고 하는 짓이지만, 시기질투할 때 자신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그 감정을 보라.그것이 인간이 할 짓인가? 그러한 마음으로 자신의 영혼을 스스로 고통에 빠트리면서 자신은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가? 상대가 잘되는 것에 괴로워하고 상대가 잘못되는 것에 즐거워하는 그러한 시기질투는, 자신에게 잘못됨과 괴로움만 쌓이니 그것이 영혼의 고통인 것이며, 그것이 현재의 삶을 불행하게 하는 근원인 것이다.


자신의 영혼을 사랑하는 것에서 모든 사랑이 이루어지고 베풀어지게 되며, 자기자신이 행복하면 모든 상대를 행복하게 대할 것이니, 자기자신으로부터 사랑을 이루고,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상대를 사랑하는 것이 되고 상대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자기자신에게 사랑이 없으면 시기질투의 죄악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며, 자기자신이 불행하면 상대하는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게 된다. 그리하여 또한, 자신의 정신은 더욱 어두워지고, 마음은 갈등과 고통이 더욱 심해지게 되니, 그것은 상대의 불행한 기운을 모두 자신의 운명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한즉, 어두운 정신을 버리고 밝게 하여 자신의 영혼을 밝게 갖추고, 어두운 마음의 시기질투를 버리고 밝은 심리상태를 이루어 자신의 삶과, 그리고 자신과 가까이 있는 상대를 밝게 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 사랑을 낭비하는 인간보다 어리석은 인간은 없으며, 베풀 사랑도 없으면서 사랑을 베푼다고 하는 가식적 사랑보다 간악한 짓은 없으며, 사랑이 변질된 시기질투의 마음보다 영혼을 썩게 하는 짓은 없음을 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