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6년 전 내 나이 23살 때 군 전역 후 대학을 다니며 생활비를 벌기 위해 학원 수학강사 알바를 열심히 뛰던 시절이 있었지.
군대 가서 헬스에 맛들려 하루 2시간씩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쩍쩍 갈라진 근육에 넓은 가슴 태평양같은 어깨를 소유하니 그 모습이 사춘기 여학생들 맘에 들었는지 그리 잘생긴 얼굴이 아님에도 여고생들이 오빠 오빠하면서 졸졸 따라다니더라.
그 중 한 명.. 정말 날 특별하게 생각하는 아이가 한 명 있었으니 눈빛에서부터 날 좋아하는 감정이 묻어나는 순수한 아이였다.
착실하게 열심히 공부하고 명랑한 아이였지만 성적은 그만큼 따라가지 못해 아쉬운 아이였지. 밤늦게 카톡 오고, 밥멉자고 해도 칼같이 쳐냈다. 육군 헌병을 전역하여 준법정신이 아직 몸에서 빠지지 않았던 시절이라 그런지 미성년자 아이와 가까이 하게 되면 전자발찌 차게 될 것 같아, 스스로 조심했다.
사적으로 만났던 적은 단 한 번. 시기는 기억이 안나는데 시험이 끝나고 조금 한가한 시기였던 것 같다. 애슐리에서 밥을 사주면서 이야기했지.. 네가 나를 특별하게 느끼는 감정은 알겠는데 성인인 내가 미성년자인 너를 제자 이상으로 생각하면 나도 문제고 너도 해가 될 거라고. 지금은 공부를 열심히 할 시기가 아니냐고. 잘 타일렀다.
예쁜 눈망울이 그렁그렁하면서 치즈케익을 눈물로 삼키던 그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렇게 선을 확실히 긋고 평소처럼 지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그 촉촉한 눈이 얼마나 맘에 걸리던지.. 자꾸 내 마음을 후벼파는게 자기 전에도 그 애 생각 밥 먹을 때도 그 애 생각 공부하면서도 그 애 생각.. 하지만 감정에 휩쓸릴 수는 없다고 다짐하며 이성으로 본능을 눌렀다.
그 애가 고3이 되던 시절, 나는 공대 3학년으로 올라가게 되면서 할 일이 많아져 학원을 그만두게 되었고, 그 아이에게 3학년 시절을 함께 있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사과의 말을 전하며 학원을 떠났다. 열심히 공부하라는 말과 함께.
혹시 알아? 공부 열심히 하면 선생님 학교에 진학하게 될지. 이런 희망적인 말을 하며 나도 성적관리를 하며 취업준비를 시작했다.
사망년이라는 공대 3학년을 공부와 씨름하며 지내던 사이, 수능일이 지나 그 아이에게 카톡이 왔다. 이제 슬슬 논술이고 면접이고 준비해야하는데, 그러기 전에 선생님 기운 한 번 받으며 밥 한 번 먹고싶다고. 수능도 잘 본 것 같다는데 흔쾌히 응했다.
오랜만에 만나 반가운 마음에 주머니사정도 생각치 않고 초밥을 사주며 이런저런 이야기꽃을 피웠다. 논술 준비 잘 하라고, 힘내라고 격려하며 또 그 날이 지났다.
간간히 카톡으로 연락만 하면서 지내며.. 해가 바뀌어 4학년이 되었다. 평소 공연동아리에 몸 담고 있던 나는 이제 학창시절 마지막 공연이라 생각하며 우리학교 공대 오티 신입생 환영 공연에 참여했다. 우리 동아리에 할당된 시간은 20분. 내가 부를 곡은 2곡. 동아리 선배가 작곡한 곡과 브라운아이드소울의 노래 떼창이었다.
한달간을 준비한 공연 끝에 모든 것을 성공리에 마치고, 오티 숙소로 돌아와 동아리원들과 술을 마시면서 회포를 풀었다.
그러던 중 폰에 울리는 한 통의 카톡.
'쌤 노래 잘하시네요^^'
그 아이였다. 우리학교 공대 신입생으로 입학하여 오티에 참여한 그 애는 나의 공연을 볼 때까지 일부러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던 것이다.
당장 전화해서 어디냐고 물어, 방에서 나와 홀에서 만나자고 했다. 과 단체복을 입은 채 홀에 나타난 그 애를 보니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참았다. 서로 살짝 취기가 올라 더 감성적이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 날은 새벽 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눈 날이었고, 서로의 마음에 솔직해진 날이었으며, 우리 둘이 서로 입 맞춘 날이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옆에 찰싹 붙어 떨어지지를 않는다. 난 학부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지만, 우리 애기는 대학원에 재학중이다. 석사 따는데로 빨리 결혼할 계획이다. 이 야밤에 남 일 같지가 않아 몇 자적어봤다. 아이고.. 출근 어떻게 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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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가서 헬스에 맛들려 하루 2시간씩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쩍쩍 갈라진 근육에 넓은 가슴 태평양같은 어깨를 소유하니 그 모습이 사춘기 여학생들 맘에 들었는지 그리 잘생긴 얼굴이 아님에도 여고생들이 오빠 오빠하면서 졸졸 따라다니더라.
그 중 한 명.. 정말 날 특별하게 생각하는 아이가 한 명 있었으니 눈빛에서부터 날 좋아하는 감정이 묻어나는 순수한 아이였다.
착실하게 열심히 공부하고 명랑한 아이였지만 성적은 그만큼 따라가지 못해 아쉬운 아이였지. 밤늦게 카톡 오고, 밥멉자고 해도 칼같이 쳐냈다. 육군 헌병을 전역하여 준법정신이 아직 몸에서 빠지지 않았던 시절이라 그런지 미성년자 아이와 가까이 하게 되면 전자발찌 차게 될 것 같아, 스스로 조심했다.
사적으로 만났던 적은 단 한 번. 시기는 기억이 안나는데 시험이 끝나고 조금 한가한 시기였던 것 같다. 애슐리에서 밥을 사주면서 이야기했지.. 네가 나를 특별하게 느끼는 감정은 알겠는데 성인인 내가 미성년자인 너를 제자 이상으로 생각하면 나도 문제고 너도 해가 될 거라고. 지금은 공부를 열심히 할 시기가 아니냐고. 잘 타일렀다.
예쁜 눈망울이 그렁그렁하면서 치즈케익을 눈물로 삼키던 그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렇게 선을 확실히 긋고 평소처럼 지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그 촉촉한 눈이 얼마나 맘에 걸리던지.. 자꾸 내 마음을 후벼파는게 자기 전에도 그 애 생각 밥 먹을 때도 그 애 생각 공부하면서도 그 애 생각.. 하지만 감정에 휩쓸릴 수는 없다고 다짐하며 이성으로 본능을 눌렀다.
그 애가 고3이 되던 시절, 나는 공대 3학년으로 올라가게 되면서 할 일이 많아져 학원을 그만두게 되었고, 그 아이에게 3학년 시절을 함께 있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사과의 말을 전하며 학원을 떠났다. 열심히 공부하라는 말과 함께.
혹시 알아? 공부 열심히 하면 선생님 학교에 진학하게 될지. 이런 희망적인 말을 하며 나도 성적관리를 하며 취업준비를 시작했다.
사망년이라는 공대 3학년을 공부와 씨름하며 지내던 사이, 수능일이 지나 그 아이에게 카톡이 왔다. 이제 슬슬 논술이고 면접이고 준비해야하는데, 그러기 전에 선생님 기운 한 번 받으며 밥 한 번 먹고싶다고. 수능도 잘 본 것 같다는데 흔쾌히 응했다.
오랜만에 만나 반가운 마음에 주머니사정도 생각치 않고 초밥을 사주며 이런저런 이야기꽃을 피웠다. 논술 준비 잘 하라고, 힘내라고 격려하며 또 그 날이 지났다.
간간히 카톡으로 연락만 하면서 지내며.. 해가 바뀌어 4학년이 되었다. 평소 공연동아리에 몸 담고 있던 나는 이제 학창시절 마지막 공연이라 생각하며 우리학교 공대 오티 신입생 환영 공연에 참여했다. 우리 동아리에 할당된 시간은 20분. 내가 부를 곡은 2곡. 동아리 선배가 작곡한 곡과 브라운아이드소울의 노래 떼창이었다.
한달간을 준비한 공연 끝에 모든 것을 성공리에 마치고, 오티 숙소로 돌아와 동아리원들과 술을 마시면서 회포를 풀었다.
그러던 중 폰에 울리는 한 통의 카톡.
'쌤 노래 잘하시네요^^'
그 아이였다. 우리학교 공대 신입생으로 입학하여 오티에 참여한 그 애는 나의 공연을 볼 때까지 일부러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던 것이다.
당장 전화해서 어디냐고 물어, 방에서 나와 홀에서 만나자고 했다. 과 단체복을 입은 채 홀에 나타난 그 애를 보니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참았다. 서로 살짝 취기가 올라 더 감성적이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 날은 새벽 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눈 날이었고, 서로의 마음에 솔직해진 날이었으며, 우리 둘이 서로 입 맞춘 날이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옆에 찰싹 붙어 떨어지지를 않는다. 난 학부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지만, 우리 애기는 대학원에 재학중이다. 석사 따는데로 빨리 결혼할 계획이다. 이 야밤에 남 일 같지가 않아 몇 자적어봤다. 아이고.. 출근 어떻게 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