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벽녘, 순백색 가로등 아래로 흩뿌려지듯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 남자가 다급하게 나에게 다가온 건 한 상가 점포에 신문을 밀어 넣고 막 돌아선 때였다.
“신문 한 부만 주세요!” 남자는 내가 건네는 신문을 받아 옆구리에 끼고는 지갑에서 지폐 한 장을 꺼내 나에게 내밀었다. 그리곤 “수고하세요!” 하며 바쁘게 뛰어갔다.
상가 건물 그림자에 가려 어둑한 주변 탓에 처음엔 의례 천 원권 지폐라고 짐작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만 원이었다. 남자가 착각한 모양이었다. 나는 곧 그 남자의 모습을 찾았으나 이미 어디론가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잠시 당황스러웠지만 한편으론 내심 ‘이게 웬 횡재냐’ 하는 기분이었다. 거기다 혹시라도 남자가 뒤늦게 이를 깨닫고 나를 찾지는 않을까, 하는 조바심에 배달 내내 주위를 흘끔거리기까지 했다.
두 번째 배달 구역에서 심한 갈증을 느껴 근처 편의점을 찾았다. 도로 옆에 오토바이를 세우고 편의점에 들어가 냉장고에서 차가운 생수병을 꺼내어 계산을 하려는데, 편의점 직원과 유쾌한 담소를 나누고 있던 옆에 있는 남자의 인상이 낯익었다. 아까 그 남자였다.
내가 놀라 주춤하는 사이 남자는 나를 쳐다보며 빙그레 웃었다. 그리곤 뭔가가 생각났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당황한 나는 순간 어떻게해야하나 망설였다. 그런데 남자는 성큼 냉장고에서 캔커피 한 개를 꺼내 들고와 선뜻 나에게 내미는 것이 아닌가.
“이거 하나 드세요. 많이 힘드시죠? 비도 오는데.” 남자의 그 한마디에 나는 그만 울컥하고 말았다. 잠시나마 고민했던 내가 한심했다. 나는 재빨리 주머니에서 조금 전에 남자에게서 받은 만 원을 꺼내 조심스레 건네주었다.
“아까 신문값을 잘못 주셨는데요. 제가 뒤늦게 확인해서 돌려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태연스러운 듯 얘기했지만 행여나 속마음을 들킬까봐 가슴이 두근거렸다. 남자는 내 말을 듣고는 옆에 있던 편의점 직원을 바라보며 이내 피식 웃었다.
“이 친구 만나려고 정신없이 너무 서둘렀나 보네요. 대학교 졸업하고 삼 년만이거든요. 어쨌든 정말 고맙습니다.” 정직한 사람에게 사뭇 감동한 듯한 남자의 눈빛을 견디기 어려워 서둘러 계산을 마치고 나는 곧 편의점 문을 나섰다.
끈기있게 흩뿌리던 가랑비는 어느새 말끔히 그쳐있었고 흥건히 젖어있는 도로 위로 가로등 불빛이 보석처럼 반짝거렸다. 순수한 선의를 가진 사람에게 잠시나마 정직하지 못한 마음을 품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리곤 어쩐지 가슴 한구석에서 따스한 기운이 차올랐다.
오랜만의 친구와의 해후에 반가운 그 남자에게 좋은 기억 하나를 보태고, 흐뭇한 후련함을 말 없이 나에게 깨닫게 해준 캔커피의 온기가 새삼 고맙게 느껴졌다.
상큼한 새벽 공기 속을 오토바이로 달리며 나는 생각했다. 그래도 세상이 아름다운 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푸근한 인정 때문일거라는 사실을.
배달 중에 뵙게 된 풍경할머니께서 나에게 또 주셨다. 버릇 나빠진다고 그만 주시라고 해도 여전하시다. “앞으로 살면 얼마나 더 산다고 그깟 버릇 좀 나빠지면 어떠냐고” 하시면서. 근래 들어 풍경할머니의 모습이 참 고우시다. 푸근한 심성이 인상에 그대로 배어있으신 듯 하다. 곱게 나이 든다는 것은 자신의 덕과 복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관상이 곧 심상’ 이란 말을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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