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연애를 끝내며

ㄹㄹ2014.09.06
조회719

분명 전 날 까지 데이트 잘 했는데 바로 다음날 전화로 헤어짐을 '통보'한 그사람,
오랜 시간 만난건 아니었지만, 그 시간들 사이에서도 나는 전세가 역전되는걸 느낄 수 있었다.
'전세'라는 단어가 올바른 선택일지는 모르겠지만,

처음에는 그사람이 나를 더 많이 좋아하고 나를 알아가고 싶어하는게 느껴졌다.
그런데 그게 뒤바뀌어서 그가 나를 좋아하는 것 보다 내가 그를 더 많이 좋아하는구나라는걸 깨달았을 때
그 미묘한 슬픔, 그리고 그 때부터 더 그에게 더 많이 맞추려고 노력한 것 같다.

 

 

누가 나에게 연애가 뭐라고 생각해요? 사랑이 뭐라고 생각해요?

(물론 연애와 사랑에는 차이점이 존재하지만) 라고 묻는다면, 나는 '이해'요, 라고 답할 것이다.
자란 환경도 다르고, 하는 일도 다르고,

그냥 완전히 다른 두 사람이 만나서 함께하려 할 때는 철저하게 두 사람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갑자기 내 생각과 행동에 확신이 없어졌다.
나는 상대를 '이해'하고 '배려'하나는 마음 아래에 한 행동이 실제로 그를 '이해'한 거였는지에 대한 불확실함에 두려워졌다.
나는 상대를 배려하는 동시에 나 자신을 작게 만들었던 것 같다.

나 자신을 더 그가 좋아하는 '나'로 만들 수 있게
나를 숨기고 실제의 '나'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지 않나 생각된다.

 

 

사실 서로 완전히 다른'남'이었던 상대에게 나를 어디까지 보여줘야하고, 어느 부분은 숨겨야하는지는 아직도 정답을 모르겠다.
예전에는 나의 모든 모습을 다 받아들이고 좋아해주는 사람을 만나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날 수록 그건 완전히 불가능한 당찬 포부였다는 걸 느낀다.
아무리 가까운 가족이라도, 친구라도, 그들에게 말 할 수 없는 '나' 혼자 가져가야 할 생각들과 모습들이 있다.
'나'의 모든 걸 '좋아함', '사랑'이라는 감정 아래에 상대에게 다 보여주는건 그에 대한 배려가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상대에게 어디까지 나를 펼쳐 보이고, 어느 부분은 나 자신 아래에 감춰 놓을지 그 적정 선에 대한 답은 아직 모르겠다.
아마 여러 사람을 만나보면 좀 더 답 근처에 가까이 가게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고,

(물론 그 답도 상대적일테지만)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는 것만으로도 이번 연애에서 내가 배운 점이 있지 않나 싶다.

 

 

 

그 사람이 전화로 헤어지자고 했을 때 나는 이유를 물었다.
그도 이유를 모른다고 했다.

어제 만났을 때 헤어짐을 알리기 위해 만난거였냐고 물었더니 그 것도 아니라고 했다.
자기 자신도 이유를 모르는데, 그냥 처음에 만났을 때보다 잘 안맞는 것 같고 앞으로 더 바빠질텐데 그만큼 나에게 신경을 못 쓸 것 같다고 했다.
사실 다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라는 걸 들으면서도 알았다.
아무리 더 바빠져도, 자기가 좋아하는 운동은 꼬박꼬박 챙겨서 일 주일에 몇번 씩 할거고,

할 거 다하면 밤에 영화도 받아보고 할 것도 안다.
자기가 원하는 생활은 철저히 지켜나갈거고, 그 사이에 나를 만나고 챙길 만큼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

"나도 정말 왜그런지 모르겠어, 미안해."라고 말 하는 그의 목소리가 잊혀지질 않는다.
왜일까? 어제까지만해도 너무 좋았고, 다음에 이거 하자, 저거 하자 얘기했었는데,

그의 목소리에는 정말로 모르겠다는 말투가 묻어있었다.

 

너무 슬퍼서 친한 친구를 불러 술을 마시며 엉엉 울었다.

그 친구도 놀랐을 거다. 그렇게 크게 울어보인 적도 없고,
특히 나에게 냉정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상당히 있다고 생각하는 친구기에, 남자 때문에 우는 건 처음 봤을거다.
더 오래 만났던 예전의 남자친구와 헤어졌을 때도 이러지 않았는데, 너무 갑작스러운 통보였던 탓일까?
그 와중에 가장 슬픈건, 이미 마음을 접어버린 그에게 과거를 회상할 '추억'들이 별로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 오래 만나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에게 나는
'정말 힘들었을 때 같이 있어줬던 사람', '너무나 오랜 시간을 만나 나의 삶에 그 사람의 흔적이 남아있는 사람', 혹은 그 진부한 '첫사랑'도 아닌,
그냥 스쳐갔던 사람 중 한 사람이 될 거라는게 가장 슬펐다.
난 아직도 그를 좋아하기에 모든 기억이 남아있고 생각만해도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그는 이미 나에게 마음이 없고,

헤어짐을 고하는 전화통화에서 나보다도 더 한 그사람의 '냉정함'을 알아버렸기에
나에게 미안한 마음만 순간 조금 들 뿐 다시 바로 나 없는 그의 생활로 돌아갈 걸 안다.

 

 

헤어진 다음날엔 잠수를 탔다. 카톡을 지우고, 전화를 받지 않았다.
'웬일이야, 얘 미쳤나봐'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주변 사람들은 내가 그 사람에게 그렇게 짧은 시간에 빠져들었다는 것에 놀랐다.
냉정하고 정 없을 것 같았는데 너가 이렇게 사랑에 빠지다니, 그 사람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런 그들에게, 내가 그와 헤어졌다는 걸 알리는 게 너무 두렵고 싫었다.
분명 누구는 이렇게 물을 것이었다.
"왜헤어졌어?"
이 질문을 들을 생각을 하니 너무 싫었다. 연인과 헤어진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최악의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번엔 특히 더 그랬다. 왜냐면, 나도 답을 몰랐기 때문이다.
물론 가장 극명한 답은 안다. 그가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
하지만 이 답변 말고, 좀 더 구체적인 답변에 대한 답을 나도 몰랐기 때문에 저 질문이 더 두려웠다.
싸운 적도 한번도 없다.
그 전날 생각보다 짧은 데이트에 약간 뾰룽퉁 했고, 그에 대해 서운한 점들이 생겨서 이건 맞춰서 조율해나가야겠다, 라고 혼자 생각하던 찰나에
그가 헤어짐을 고했다.
그 쌔-한 느낌. 그에게 서운한 점이 있어서 우리 얘기좀 하자,라고 말을 했는데 그가 그러자.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왠지 얘기를 하면 안될 것 같은 느낌. 내가 말할 것보다 그가 더 큰 말을 던질 것이 직감적으로 느껴졌다.

 

 

마지막 전화에서 한동안 긴 침묵이 흘렀고, 할 말 더 없으면 먼저 끊을게 라고 말했던 그사람.
이사람 정말 소름끼치게 이성적이고 냉정한 사람이구나. 나도 한 냉정 하는데 이사람은 나보다 더 한 사람이구나.
그 와중에 내가 예전에 너무나 냉소적으로 거절했던 사람들이 갑자기 떠올라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 사람들도 지금의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까?

 

 

잠수를 타고 원래 가고싶었던 전시를 보고 왔다. 비긴 어게인도 다시 한 번 보고 왔다. 처음 그와 봤을 때는 보면서 그 전에 만났던 사람을 떠올렸는데,
헤어지고 두번 째로 볼 때는 그를 생각하고 있었다.

참 웃기지, 그 와중에 노래는 너무너무 좋구나.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흐르고, 밥이 들어가지 않고, 사람들 만나는게 두렵고.

이건 이별로 슬퍼하는 사람들이 모두 겪는 과정일테니 굳이 늘어놓진 않겠다.
난생 처음으로 판에서 '헤어진 다음날'게시판을 들어가서 헤어진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었다.
위로 아닌 위로가 되는 것도 같았고, 그래 그 사람은 바로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갈텐데 나만 이러고 있을 수 없잖아? 나도 자기 계발 하면서 이겨나야겠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테니 시간이 빨리 가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러 글을 읽다가 그가 나와 헤어진 이유를 찾았다.
그가 '나도 모르겠어'라고 말한 그 정말 모르겠다는 말투, 그리고 그 말이 가장 힘들었는데, 그 답을 찾은 후로는 갑자기 마음이 편안해졌다.
3개월정도 만나고 헤어졌다는 글의 댓글에,

 

"3개월정도의 교재면 사랑이 식었다기보다는....

인상이 좋아서, 성격이 좋은 것 같아서, 본인과 맞는 부분들이 많아서,

여러 이유로 상대에 대한 호감도가 높고 상대도 본인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져주면

이성에 대한 호감도로 교재를 시작해보지만 몇달의 시간이 흐르고 호감도는 사라졌는데

더 이상의 감정으로 발전이 안 될 경우가 있더라구요. 그럴 경우 정말 난감해요.

분명 좋은 사람이고 싫지 않은데 가슴이 확실하게 알려주거든요. 사랑이 아니라고..
또 이상하게 상대를 만나서 데이츠를 할 때면 더 확실히 깨달아요. 정말 사랑이 아니구나!"

 

 

 

자기도 정말 모르겠다는 그의 말에 이제 내가 답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호감이 좋아함으로 발전하지 않은건 그의 탓이 아니다.
그가 나에 대한 마음이 아직 '호감'에 머물 동안, 나는 먼저 '좋아함', 혹은 '사랑'에 도달해있었는지도 모른다.
헤어진 바로 다음에는 나에 대한 자책도 해보았지만, 결국 문제는 사람을 대하는 개인의 '마음'의 차이에 있다는 걸 깨달은 순간.
이 문제는 누구의 잘못도 아닌게 되었다.
더이상 그의 '냉정함'과 '너무나도 이성적임'에 대해 원망할 필요도 없었다.

명쾌하게 답을 얻고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헤어진 다음날'에 무수히 등장하는 '후폭풍'이 그에게는 절대 오지 않을거라는 것도 알고, 기대하지도 않는다.
다만 나중에 그가 미치도록 빠져든 여자가 생겼을 때, 그 여자가 그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다면, 그 때 그가
'아, 그 때 그 애 기분도 이런것과 같았을까? 그 애도 나를 이정도로 좋아했었을까?'라는 생각은 해줬으면 좋겠다.
그 생각을 하면서도 그를 좋아하는 내 마음의 크기가 어느정도였었는지를 그가 알 방법은 없겠지만 말이다.

 

 

이 글을 쓰면서도 그를 '좋아한다'고 표현해야 할지, '사랑한다'라고 표현해야 할 지 고민이 된다.
그에게 '사랑해'라는 말을 한 번도 해본적이 없고,
그가 나를 향하는 마음보다는 그를 향하는 나의 마음의 크기가 더 컸고,

그에게 빠져가는 속도도 내가 훨씬 빨랐다는 걸 알기에 내가 먼저 '사랑해'라고 하면
상대가 부담을 느낄 것도 같아서 한 번도 하지 못했지만, 한번은 할껄, 하는 생각이 든다.

 

 

헤어졌지만 난 아직도 그를 좋아한다.
그에게 행복했고, 좋아했고, 앞으로 일들이 잘 되길 빈다는 문자를 보냈고, 그도 나에게 고마웠다고, 좋은 사람 만나라고 답장했다.
이런 문자가 오가고, 나는 아직도 그가 보고싶고 잘 해보고 싶지만 다시 연락할 마음은 없다.
사실 소식은 궁금해서 그가 먼저 그러지 않는 이상 페이스북 친구를 끊을 마음은 없다.

그냥 페이스북 보면서 '아 얘도 접속해있네, 살아있구나.'정도는 알고싶다.
후에 다른 여자친구가 생겨서 그녀와 찍은 사진이 올라온다면, 그땐 모르겠다.
하지만 그게 당장 다음주, 한달 뒤가 아닌 이상 나도 그땐 무뎌져서 괜찮아져 있을 것 같다.
깊지도 않았던 그의 한 번 떠나간 마음을 다시 돌릴 수 없는걸 알기에 먼저 연락은 하지 않겠다.
그냥 그의 바람대로 내가 많이 좋아하는 만큼 나를 좋아해줄 남자를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아직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했다'라고 말할 수 있기 까지의 시간과 과정이 두렵지만, 어쩌겠는가?
다시 원래의 나로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이번 만남과 이별로 나도 새로 배운 것이 있고 성장한 점이 있으니, 다음 연애는 좀 더 잘 해볼 수 있지 않을까?

 

 

만났던 기간보다도 중요한건 상대를 대했던 '마음의 깊이'인 것 같다.

사랑을 '받는' 기쁨보다 사랑을 '주는' 기쁨이 더 크다는 걸 이 사람을 통해 알게되었다.
사랑에 빠진 사람에게 시간은 절대적인 기준으로 흐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