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 같은 친엄마의 차별대우

아항2014.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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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우선 방탈 죄송합니다. 이곳이 사람들이 가장 많이 봐서요. 저와 저의 부모님에 대해 잘못한 것이 있으면 쓴소리 듣고 고치고 저도 안정을 좀 찾고 싶어서 주변에 이야기 하자니 부모님 욕듣게 하는것 같고 친척에게도 형제에게도 속시원히 이야기 할 수 없어서 객관적으로 사람들은 저의 상황을 어떻게 생각할까 고민도 되고 궁금해서 올립니다. 글이 좀 길어질 것 같습니다. (오타가 있다면 양해 부탁드립니다.)


저는 딸딸딸 아들 4남매중 둘째 입니다. 어릴때 부터 알게모르게 언니와 여동생 사이에서 많이 치이고 자라서 제가 느끼기에 자격지심이 많은것 같습니다. 막내는 한참이나 뒤에 나와서 지금은 돌아가신 할머니와 함께 살때도 할머니는 아들이 태어났을 때 눈물을 보이며 좋아는 하셨어도 살아계시는 동안에는 손녀와 손주를 차별하여 대하지는 않으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어르신이라 뭐 그러셨을수도 있겠지만 제가 알아차릴 정도는 아니었으니 괜찮았습니다.


여러분들이 궁금해하실 저희 엄마는 지금까지 저희들 키워 오면서 진심으로 힘든 시간들을 많이 보내오셨습니다. 아버지가 지금까지도 재정적인 지원을 전혀 해 주시지 않아서 혼자서 온갖 궂은일 하시며 사남매를 다 키우다 시피 하셔서 사실 이 부분은 존경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 부분은 정말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저희 언니와 여동생은 학창시절에 공부를 잘 했습니다. 어린시절 저는 공부에 그다지 취미가 있지 않고 다른 곳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너무 세세하게 말씀드릴 수 없어서 예체능이라고 해두겠습니다. 언니와 동생은 공부를 잘 했고 학력도 좋습니다. 그에 비해 저는 중.고등때 공부에 취미가 없다보니 언니나 동생보다 등수도 밀리고 성적표 들고간 다음날 여름에 체육복 반바지 입으면 성적 떨어졌다고 부모님에게 맞고 자라서 다리에 시퍼렇게 멍이생겨서 창피한 적이 많았습니다. 언니와 여동생은 정상궤도를 달려 둘다 대학원까지 나왔습니다. 저는 뒤늦게 공부에 관심이 생겨서 20대 중반쯤 유학을 가고 싶어서 계속 말리셨는데 고집부려서 유학 다녀왔습니다. 자립을 하고싶어서 5년동안 벌은 돈을 가지고 유학을 시작했고 목표는 언어연수 였습니다. 다니던 직장에서 외국어를 너무 강조하다 보니 저도 발전하고 싶고 스펙도 쌓아 외국어도 잘 하고 싶었고 다시 돌아오면 조금 더 능력있는 나로 거듭나고 싶기도 한 마음도 있었지만 사실은 집에서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집에 자식들이 많다보니 몇십년을 개인방이 없이 살았고 10년전 드디어 내 방이 간신히 생겼을 때는 작은 옥탑방의 반을 커텐을 치고 살았습니다. 식구들은 아래층에 살고 저와 여동생은 옥탑방에 있었는데 옥탑방 중에서도 저는 거실 동생은 방이었습니다. 여름엔 장마가져서 벽지가 곰팡이로 번졌고 여름과 겨울 모두 밖의 온도와 다를것 없는 옥탑방에서 현재까지 살고 있습니다. 이사올 당시 저만 거실에서 커텐치고 살았고 다른 형제들은 모두 방이 있었습니다. 아래층방을 쓰던 언니는 새로 온 집이 교통이 좋지 않아서 얼마후 학교 근처로 엄마가 전세를 얻어주셨고 언니가 쓰던 그 방은 현재 막내동생이 쓰고 있습니다. 저는 유학을 다녀온 사이 제 방은 창고로 변해 있어 결혼한 여동생이 쓰던 방으로 들어갔는데 이 방에도 동생이 결혼전 사용하던 동생짐이 아직도 가득합니다. 제 짐은 놓을 곳이 없어서 솔직히 방을 많이 어질러 놓았습니다. 


유학 다녀오니까 이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졸업하고 귀국했을 때 동생짐을 제 방이었던 창고? 로 옮기고 뭐 좀 꾸미고 싶어도 손도 못대게 하시고 엄마는 버리는 것을 참 싫어하셔서 제 창고방에 있던 장롱 색이 맘에 들지 않아 버리려고 나사를 풀고 조립되 있는 부분들을 분리하려고 내려가다가 혼났습니다. 다시 가져다 놓으라고 하셔서 어쩔 수 없이 제자리로 돌려 놓았고 쓰레기 하나하나 버릴때마다 뭐가 나왔나 검사하시는 바람에 마음대로 쓰레기도 버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쓰레기를 버려야 할 때에는 엄마가 안계시는 날 확인이 안되도록 몰래 가져다 버리거나 아니면 방을 제 마음대로 어질러 놓았습니다. 제 짐을 보관할 곳이 없으니 자연스럽게 그 짐들이 바닥에 질서 없이 있는 것 뿐이고 이러다 보니 자기합리화로 들릴 수 있겠지만 청소하는게 싫어졌습니다. 쓰레기 버릴 때마다 잔소리 듣는것도 스트레스고 위에 언급해 드린 장롱은 이 집으로 이사올 때 엄마가 새로 구입하신것이 아니라 밖에서 남이 버린거 주워온것 이었는데도 내 마음대로 뭔가 할 수도 없고 제 방이 창고로 변한 그 곳에는 온갖 잡동사니들이 쌓여 있습니다. 엄마의 옷이 가장 많습니다. 엄마도 어렵게 사셔서 옷을 구입한건 없고 남들이 준 옷들을 아까워서 버리지 못하시는 것 같아요. 길에서 이것저것 잘도 주워오시는데 사실 쓸모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만좀 주워오라고 해도 어디 멀쩡한게 버려져 있으면 아프시다면서 힘은 또 어디서 나는지 엘리베이터도 없는 꼭대기층까지 집에 어울리지도 않는 분위기의 옷장, 서랍장, 엄마들이 아기들 다치지 말라고 바닥에 까는 퍼즐식 매트까지 주워오셔서 집이 잡동사니 천국 같습니다.


한번은 화장실에서 제가 일을 보고 있는데 위에 층에 아무도 없어서 화장실 문을 꼭 잠그지 않은것은 제 잘못이지만 문은 분명 닫혀있었고 제가 받아야 하는 전화가 왔다며 문을 벌컥 열으셔서 전화받으라고 하셔서 화들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노크" 란 에티켓이 있는데 그런거 없이 자녀의 의사와 상관없이 화장실에서 일을 보고 있는데 전화를 받는 사람이 어디에 있나요. 


엄마도 이제 슬슬 나이가 있으시다는건 알았지만 얼마전에 엄마가 화장실 청소를 하시는데 깜짝 놀랬습니다. 고무장갑도 없이 맨 손으로 수건로 화장실 변기를 닦으셨어요. 순서는 화장실 변기 안-> 받침-> 뚜껑 -> 그리고 물내리는 곳 위 커버 -> 거울-> 세면대  

유학할 때 한달에 한번 씩 cleaning check 을 의무적으로 해야해서 화장실 청소할 때 이 순서로 하리라고 상상도 못했습니다. 거울 -> 세면대 -> .... 맨 마지막이 변기 전용 세제나 도구로 사용하고 마무리 했었는데 엄마가 맨 손으로 저렇게 하는 걸 보고나서 정말 구역질이 났습니다.

물론 손은 잘 닦으셨겠지만 그 손으로 그날 저녁밥을 하셨습니다. 고무장갑이라도 끼셨으면 좋았을텐데... 어릴땐 안그랬는데 엄마가 귀찮아지셨는지 우리집 걸래는 수건과 걸래가 구분이 없습니다. 그 걸래가 세탁기에 들어가 세탁이 되면 빨아 나오면 수건이 되는 때도 있는걸 유학 다녀온 후 얼마전에 알았습니다. 


얼마전에 남동생이 학교공부가 끝나고 집으로 복귀하면서 부터 저는 뭔가 이상했습니다. 음식으로 저를 차별하시는것을 알아차렸는데 집에 사람 인원수만큼 찬반이 나오면 제가 뭐좀 먹으려고 처음 젓가락을 가져다 대면 이미 그 반찬을 먹은 동생과 저를 번갈아보며 '아유~ 그거 xx이(남동생)주려고 했던거였다고 말씀하셔서 한번은 제가 너무 속이상해서 내가 먹는게 그렇게 아깝냐고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동생이 그런말이 아니쟎아~ 라고 엄마편을 들길래 나는 그렇게 들리는데 그런말이 아니면 뭐냐고 물었습니다. 동생과 엄마는 끝까지 저에게 오해라고 했습니다. 사실 엄마는 일부러 그러신게 아니겠지만 알게 모르게 밥을 차릴때 반찬도 다릅니다. 아마도 엄마는 남동생이 엄마를 나중에 모실꺼라는 생각을 염두해 두고 엄마가 더 잘 챙기는것 같기는 합니다. 


뭐 방도 이렇고 밥먹을때도 속상하고 엄마와 남동생이 이럴때마다 독립하고 싶어서 살살 집을 보러 다녔습니다. 저도 제 방 예쁘게 꾸며 놓고 제 짐들 잘 정돈 되어 있는 그런곳에서 너무 너무 살고 싶어요. 집에서는 여동생과 엄마 짐으로 가득한 창고방을 볼때마다 한숨이 나옵니다. 그런데 한국에는 부동산이 너무 이상해서 보증금이 너무 비싼데 집은 코딱지 만하고 화장실도 더럽고 독립할 수 있는 여건이 안되더라고요. 


위에가 지난 봄에 이런적이 있어서 열받아서 일주일을 일부러 밥먹으라고 해도 같이 안먹었습니다.그런데 지난주에 또 같은 반찬으로 똑같은 일이 일어나서 이번에도 오해냐고 물었더니 동생은 또 모르고 그랬답니다. 엄마랑 너는 두번이나 오해냐고 두번이나 모르고 그랬냐고 엄마 안계시는 어제 밤에 말다툼을 했습니다. 남동생에게 그렇게 좋은 모범을 보인 누나는 아니었던거 인정합니다. 그래도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서 이번엔 정말 집을 나가려고 남들은 하하호호 웃는 추석날 오늘 저혼자 집을 보러 갑니다. 


엄마는 교육이 중요하다는거 너무 뼈저리게 느끼시는 분이시라서 다른 형제들은 대학원까지 나왔는데 저도 대학 졸업장 받는거 보고 싶으셨다고 하셨고 엄마와 저의 목표가 달랐던건 저는 외국어만 배우고 오고 싶었고 엄마는 저의 졸업장이 목표였습니다. 저때문에 막판에 학비 도와주시느라고 고생 많이 하셨다는거 압니다. 어학연수 마치고 제돈이 떨어지면 돌아오려고 했는데 학교에 들어가는게 어떻겠냐고 적극 권유하셔서 대학에 갔는데 학비가 좀 많이 비쌌습니다. 졸업을 2년 앞두고 부모님 두분 다 많이 아프셔서 돌아오려고 비행기표 까지 끊어 놓았는데 오지 말라고 불같이 화를 내시는 바람에 못왔습니다. 졸업할때까지 생활비를 벌었고 다행히 장학금을 받기는 했지만 full장학금은 아니어서 모두 다 충족시키지는 못했고 부모님이 졸업장을 너무 원하시던 터라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서 부모님께 염치 불구하고 학비를 받았습니다. 유학 하는동안 일하고 공부하고 몸 망가져 가면서 제대로 못챙겨먹었어도 한국에서 고생하시는 부모님에 비하랴 하면서 이를 악물고 공부했고 졸업했습니다. 그렇게 고생해서 졸업했는데 귀국해서 이전에 일하던 그 직장으로 다시 들어갔는데 뭐 월급은 차이가 없더군요. 이럴줄 알았으면 어학만하고 와도 되는거였는데 몇년동안을 못먹고 못입고 외롭고 의료보험도 없어서 아픈거 참아가면서 내가 왜 견디었나 싶었어요.


엄마한테 받은거 다 갚아드려야지 하는 마음으로 돌아왔는데 함께 살기 위해서 서로 노력해야 하는데 저는 이 집에서 도저히 살 수가 없습니다. 뭐 그깟 반찬 하나때문에 그러냐고 하실 수도 있는데 얼마전에 알아보니 저의 집의 세대주 명의가 남동생이름으로 되어있고 언니는 전세집이 있고 여동생은 시집가서 잘 삽니다. 뭐 그럴수 있습니다. 제가 나중에라도 외국으로 다시 가거나 시집을 가버리면 동생이 집이 있어야 누군가 시집을 올테니까 집은 괜찮습니다. 늦게 공부 시작해서 빨리 자리 못잡은 저의 잘못이겠지만.... 자꾸 사소한것 가지고 차별하는 모습에 어리석게도 효도 하고 싶은 마음이 많이 없어졌습니다. 저는 부모님께 바라는게 집이 아니라 동등한 대우, 일을 마치고 편안하게 쉴수 있는 보금자리와 함께 행복하게 앉아 식사하며 웃을 수있는 자리였습니다. 


계속 이런일이 반복이 되다보니 저녁에 집에와서 밥을 먹고 싶어도 같은 사건이 무한 반복이라서 함께 밥을 먹지 않기로 했습니다. 마음도 편하지 않고 식사도 제대로 못해서 속상한데 엄마는 시집을 가야만 이 집에서 나갈 수 있다고 주장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저는 다릅니다. 생활 습관도 다르고 이렇게 매일 저녁마다 이런 마음으로 부딪히고 싶지않아서 최대한 늦게 집에 들어오려고 합니다. 작년에도 엄마랑 갈등이 많아서 혼자서 therapist에게도 찾아가 봤습니다만 해결되는건 없었어요. 심리학적으로도 분석을 좀 받고 싶은데....너무 속상한 말인데 아무도 저를 지켜주지 않으니까 저 스스로라도 저를 지켜내야 하는게 맞는것 같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