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살인마와 통화를 했다 - 16

무념무상2014.09.17
조회1,402
출처:웃대, 피더스님

 

안녕하세요^^

무념무상입니다.

그간 별 탈 없이 잘 들 지내셨는지요..

전에 올리다 중단된 글이 다시 올라와

대략 7개월만에 다시 올립니다.

요즘 계절이 바뀌며 아침 저녁으로 많이 쌀쌀하네요

몸관리 유의 하시고

오늘 하루 마무리 잘 하시길 바랍니다. 

 

----------------------------절 취 선 ----------------------------

 

“무언가 짚히시는게 있으십니까?”


얼빠진듯한 표정을 짓고있는 내 얼굴을 바라보며, 형사는 그렇게 말했다. 무례하고 오만하단건 변함없지만, 역시 이 사람은 대하기가 어렵다. 아니, 정확히는 다루기가 어렵다. 형사를 다루고 싶다는 생각 따위는 전혀 없지만, 무언가 대화가기 자체가 어렵다고 표현하는게 좋을것이다.


껄끄럽다. 이 사람과 대화를 하고있으면 긴장을 풀 수가 없었다. 표정, 몸짓, 말투 등등 모든 것을 꿰뚫어보고 있다는 듯한 사람이다. 한 마디로, 평범하게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소리였다. 그렇기에, 나는 이 사람은 정말 형사라는 직업에 어울리는 성격을 가지고있다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면, 탐정 정도.


“아뇨, 아닙니다.”


“그렇습니까.”


그렇게 말하곤, 형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순간 내게 수갑을 채우려는건가? 하는 착각에 빠졌지만 나는 금세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럴리가, 범인을 잡는다는 행위가 그렇게 터무니없이 이뤄질리가.


“돌아가시는 겁니까? 급하게 찾아와서, 급하게 돌아가시네요.”


“뭐, 그렇죠. 범인보다 급해야, 범인을 잡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군요.”


형사는 어느새 신발을 다 신은 채였다. 돌아가려는 형사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여전히 자리에 앉아,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고 있을 뿐이였다. 김지희에 관한 내용을, 살인마에 관한 내용을 말이다.


“그럼 전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거리낌없이 도어락을 해제하곤, 형사는 문 바깥으로 한 발자국을 내딛으며 말했다. 그 순간, 나는 마구잡이로 뒤엉켜져있던 머릿속의 생각들을 뒤로 미룬채, 그대로 자리에 앉은 자세를 유지하며 형사의 뒷모습을 향해 입을 열었다.


“형사님.”


그러자 그는 행동을 멈춘 채, 고개만을 뒤로 돌림으로써 내 부름에 답했다. 무슨 일이냐고, 나에게 말해보라는 듯한 태도였다. 이 남자는 여전히 무례하다. 오만하고, 껄끄럽다.


“방금 말하셨던 그 손톱의 상처 말인데요.”


그러자 형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내가 지금 중요한 증언이라도 내뱉는게 아닐까, 하는 기대감을 품은건가? 그렇다면 틀렸다. 내가 지금 하려는 말은 어찌보면 상당히 무례한, 거만하다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의 문장이였다.


“혹시 저 말고, 그 상처에 대해 캐물을 상대가 또 있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대답해도 상관없는 질문이라면’ 이라고, 나는 덧붙혔다. 그러자 형사는, 강현우는 입고있던 가죽 점퍼의 지퍼를 끝까지 올리곤,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꿰뚫어지고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 이 남자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걸까.


짧은 침묵이 지나자, 형사는 드디어 굳게 닫힌 입을 열기 시작했다.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역시 그렇겠죠, 심지어 저는 지금 용의자니까.”


“이태호씨가 용의자라서가 아닙니다, 원래 일반인에겐 알려드릴 수 없는 범위의 질문이였습니다.”


나는 그에 수긍하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 형사는 ‘그럼 이만’ 이라는 말을 건네곤 몸의 대부분을 문 밖으로 내밀었다. 하지만, 문을 완전히 닫기 전, 작은 틈새 사이 너머로, 그는 내게 말했다.


“어쩌면, 조만간 사건이 해결될지도 모릅니다.”





*







현재 시각, 오후 8시. 형사가 돌아간 뒤로 대략 5시간 30분 정도가 지났다. 나는 시간 동안, 김지희가 살고있던 빌라의 주변 집들을 샅샅히 뒤져댔다. 당연하게도, 살인마를 찾기 위해 만들어낸 질문은 똑같았다. 대학교의 앙케이트. 소설가라고는 하지만, 딱히 내 머리가 뛰어나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더 좋은 방안은 떠오르지 않았기에.


하지만 수색을 끝낸 뒤, 나는 애써 다른 방안을 만들어낼 필요가 없었다고 생각했다. 이번 술래잡기의 결말을 말하자면, 완벽히 내 패배였다. 살인마는 찾지 못했다. 아니, 내가 예상하고있던 살인마와 비슷한 나이대를 가진 여성을 어느정도 만나긴 했지만, 짧은 대화를 통해 얻은 결론은 모두 ‘NO’ 였다.


어쩌면 내 방안이 너무 미흡했을지도 모른다. 대학교의 앙케이트라니. 확실히, 젊은 여성과 짧은 대화를 나눈다, 라는 목적에는 어느정도 걸맞은 것 같지만, 이건 확실히 잘못됐다. 요즘 세상은 각박하다. 집에서 편히 쉬고있는 사람들 눈에 비친 나는, 잡상인 혹은 전도사들과 똑같이 보였을것이다. 그렇기에 문을 연 사람이 상당한 귀차니즘의 소유자라면 집에 여자가 있던 없던 내가 문전박대를 당하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물건에 흥미가 없는 사람은 잡상인을 반기지 않는다. 신과 믿음에 흥미가 없는 사람들은 전도사를 반기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 역시, 젊은 여성들의 다이어트 방법이라는 시덥잖은 앙케이트를 건네는 나에게 흥미를 가질 사람들은 아마 많지 않겠지.


아니, 분석적인 문제를 제쳐두고라도, 이 방안은 애초에 근본적으로 잘못됐다. 젊은 여성과의 짧은 대화라고? 틀렸다. 나는 조금 더 긴 대화를 나눴어야했다. 나는 그 형사처럼 다른 사람의 심리를 꿰뚫어볼 수 있을 정도의 통찰력을 지닌 것도 아니고, 추리 소설에 등장하는 탐정도 아니였다. 단순히 몇 마디 나눴다고 상대가 살인마인지 아닌지를 판별하는건 애시당초 나에겐 무리였다.


아니, 그렇게 따지고보면 긴 대화를 나눴더라고 하더라도 내가 상대의 정체를 알아내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머릿속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게 일인 소설가로썬, 애시당초 이 술래잡기는 내게 불리한 게임이였다.


“하아….”


옅은 짜증감과 깊은 피곤함을 담배 연기를 통해 내뱉었다. 이제 어쩐다. 같은 집을 또 다시 방문할 수는 없었다. 심지어 똑같은 방법으로. 아니, 다른 방안을 찾아낸다 하더라도, 같은 집을 다시 방문할 수 없다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어떡해야할까. 담배를 한 모금 더 빨아들이며, 나는 다시 생각한다.


살인마가 제안한 이번 술래잡기에서 내가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김지희의 집 주변을 뒤져 살인마를 찾아내거나, 김지희를 미끼로 써, 그녀를 죽이려고 다가오는 살인마를 잡아내거나. 아니, 애시당초 나는 살인마의 말을 믿어야할까? 자신이 김지희의 집에서 그렇게 멀리 떨어져있지 않은 곳에 살고있다는 그 말을? 아니, 믿어선 안됀다.


살인마는 이미 한번의 거짓말 경험이 있었다. 아니, 한번이 아니라 여러번. 원래 나를 알고있었음에도 그걸 부정했다. 일부러 내게 전화했으면서도 우연인 척 했다. 나와 김지희의 관계를 알고있었음에도 모른척 했다. 여러모로, 믿어선 안됀다. 하지만, 이것마저 거짓이라면 내가 살인마를 찾을 가능성은 한없이 낮아지게 된다. 혹시, 그녀는 아주 멀리 살고있는게 아닐까. 살인을 저지를때만 일부러 이 동네에 와서 일을 벌이는게 아닐까.


그렇다면, 내가 이 게임에서 살인마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단 한가지. 김지희를 미끼로 쓰는 것 뿐이다. 그렇지만 이건 애초에 너무 패널티가 컸다. 살인마에게서 김지희를 지키라고? 살인마는 당연하게도 흉기를 들고 나타날 것이다. 흉기없이, 맨 주먹대 맨 주먹이라면 어느정도 승산은 있겠지만, 흉기가 등장한다면 이야기는 다르다.


“그렇다면 어쩌지.”


문득, 낮에 형사와 나눴던 대화의 내용이 떠올랐다. 손톱 상처. 그리고 김지희가 범인일수도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김지희가 범인? 있을 수 없다. 그럴리가 없다. 김지희는 단순한 편의점 아르바이트 생일 뿐이였다. 더 높지도, 낮지도 않다. 딱 그 정도 인물이였다. 물론 이 동네에서 나와 안면이 있는 유일한 사람이였지만, 나는 그 관계가 절대로 깊지 않다고 생각한다. 동네에서 아는 사람이 있는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내 경우엔 그런 상대가 단 한명일 뿐이였다. 그다지 놀랄만한 일이 아니였다.


나는 김지희가 처음으로 이 사건에 연루되었던 일을 떠올렸다. 23일 새벽, 김지희가 평소에 아르바이트를 하던 그 편의점 앞에서, 사건은 시작됐다. 나와 통화를 하고있던 살인마가, 김지희를 목표물로 삼았다. 처음엔 그게 우연인줄로만 알았지만 그게 아니였다. 살인마는 일부러, 김지희를 노린 것이다. 그녀가, 이 동네에서 유일하게 나와 안면이 있다는 상대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서.


그리고 그 상황에서, 김지희의 행동은 정말로 순수했다. 순수하게,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었다. 살인마와 지나치는 그 순간까지도, 그 표정은 유지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은 언제일까, 그래, 그 다음 날, 아니지, 아니야. 23일 새벽 두 시에 처음 만났고, 23일 오후 3시 30분 쯤. 편의점의 오른편 골목에서 김지희는 살인마에게 덮쳐졌다. 회칼을 들고있는 미치광쟁이 싸이코패스한테. 그때, 김지희의 얼굴에는 눈물이 묻어져있었다. 너무도 갑작스럽게 자신의 눈 앞에 나타난 공포에. 언제나 온순한 성격이었던 그녀였지만, 그 상황에선 나에게 소리까지 질렀었다. 당연한 반응이다. 평범한 사람이 보일만한 당연한 반응.


“오해인가.”


그저 오해. 어쩌면 내가 이렇게 고민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 상처는 그저 단순히, 이 사건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시덥잖은 일 때문에 생긴걸지도 모른다. 내게 보인 그녀의 반응을 거짓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현실적이였다. 연기? 아니, 그녀가 그 정도의 뛰어난 연기력을 가지고있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녀의 꿈은 연기자가 아니였다. 뭐였을까, 그래. 사진 작가. 그녀의 꿈은 사진작가였다. 확실하다, 그녀에게서 들었기 때문이다. 전에 그녀의 집에 방문했을 때, 그녀는 자신의 방, 책장 위에 올려져있던 한 장의 사진을 내게 보여주며 말했다.


「전 오빠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소설가는 예술가잖아요. 저는 사진 작가라는 예술가를 꿈꾸고 있는데, 그게 그렇게 쉽지많은 않더라구요. 그래서 그런지 오빠를 조금 존경하고있는 것 같아요.」


소설가는 예술가다. 자신은 예술가를 꿈꾼다. 그래서 나를 존경한다. 생각해보면 말도 안되는 논리로 시작한 그 이야기는, 그녀가 사진 공모전에서 이미 두 번 정도 떨어졌다는 비극적인 결말과 함께 끝을 맺었다.


그녀가 보여준 사진에는 세 명의 얼굴이 찍혀있었다. 꽤나 젊어보이는 남자와 여자, 그리고 그 둘 사이에 서있는 어린 여자아이. 나는 한 눈에, 이게 가족 사진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하지만 사진의 초점은 꽤나 빗나가있었다. 그렇기에 인물의 얼굴은 조금 흐릿하고 보였고, 뒤의 배경 역시 잘 보이지 않았다. 사진을 찍을 때 손이 흔들렸던 것일까. 내가 그녀에게 의문을 제기하자, 그녀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처음이였거든요, 사진을 찍은건’ 이라며 웃어 넘겼다.


이야기가 조금 길어졌지만, 결론은 그녀의 연기력은 그렇게 뛰어나지 않을거라는 것이다. 역시, 그 상처는 단순한 우연인걸까. 거기까지 생각하자, 이번엔 또 다른 의문이 떠올랐다. 형사가 내게 건넨 마지막 한 마디.


‘어쩌면, 조만간 사건이 해결될지도 모릅니다.’


그건 무슨 뜻일까. 범인의 윤곽이 잡혔다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어떻게? 경찰을 신용하지 못하고 있었던건 아니였다. 요즘 세상의 수사력은 내 생각보다 훨씬 더 굉장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경찰이 그녀를 잡기 힘들거라고 생각한건 사실이다. 살인마는 똑똑했다. 적어도 강현우 형사보다는.


뜬끔없지만, 문득 타임머신을 타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임 머신을 타고 미래로 가면, 그러니까 1년 정도의 미래로 간다면. 지금 내게 일어난 사건은 전부 해결되어 있지 않을까? 그럼 난 이 사건의 결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지 않을까. 아무리 그래도, 1년 후까지 내가 살인마와 전화 통화를 하고있을거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담배를 비벼끄곤, 나는 집으로 향했다. 일단은 쉬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하루종일 바쁘게 뛰어다는 것 같았다. 샤워를 해야겠지. 아까전엔 형사 때문에 재대로 씻지도 못했으니까 말이다.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 안으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익숙한 집 안의 향기가 콧 속으로 들어오자 그 사실만으로 평온을 되찾는 느낌이였다. 역시 우리 집의 향기가 최고다. 오늘 맡은 남의 집의 향기만 대채 몇 개일까. 코를 찌르는 악취가 풍겨오던 집 들도 적진 않다.


나는 서둘러 옷을 빨래통에 집어던지고, 화장실로 향했다. 목덜미에 맺힌 땀방울을 한시라도 빨리 씻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





「못 찾겠다 꾀꼬리?」


내가 그 문자를 본 건, 샤워를 마치고 사이다 한 모금을 목 뒤로 넘긴 후 였다. 거실에 멍하니 앉아 휴대폰을 화면을 작동시키자, 화면의 윗편에 읽지 않은 메시지 하나가 날아와있었다. 발신인은 「미친년」.


못 찾겠다 꾀꼬리라는건, 확실히 술래잡기에서 쓰이는 말이긴 하다. 술래가 참가자들을 찾지 못했을 때. 게임을 리셋시키기 위하여 외치는 항복 선언. 문장의 끝 부분에 ‘?’ 가 들어간걸 보아, 이 녀석은 지금 내가 그 상황에 처해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물론, 정답이지만.


「못 찾겠다 꾀꼬리」


나는 그대로 문자를 전송했다. 어찌보면 너무 가볍게 생각했던 것 같았다. 상대는 살인마다, 살인마를 상대로 이리 가볍게 패배를 인정하면 어쩌자는 걸까. 나는 이러면 살인마가 어느정도의 핸디캡을 내게 부여해줄지도 모른다는 안이한 생각을 하고있었다.


하지만.


「조금 더 힌트를 줄까?」


그 안이한 생각은 딱 들어맞았다.


「힌트?」


「그래, 힌트」


힌트라고? 살인마가, 상대방에게 힌트를 준다고?


「말해봐」


그리고 잠깐의 시간이 흘렀다. 긴 문장을 타이핑하고 있는걸까? 내 예상에 대답하듯, 그녀에게서 날아온 문자의 양은 단답형이 아니였다.


「난 아저씨가 그렇게 멍청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그렇게 똑똑하다고 생각하지도 않거든. 아저씨는 독심술사도 아니고 심지어 탐정도 아니잖아. 나를 알아내려면 상대방에 대해서 알아낼 시간을 좀 더 늘려야될 것 같은데? 그런 짧은 대화로 내 정체를 밝혀낼만큼 머리가 좋진 않잖아.」


순간,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런 짧은 대화. ‘그런’, ‘짧은’, ‘대화’. 그 녀석은 지금 내 머리가 좋지 않다고 비꼬고 있는게 아니였다. 말 그대로 힌트. 그것도 자신에게 상당히 위태로울법한. 그 정도로 거대한 힌트를 내게 건네고 있는 것이였다.


「요컨대」


한 마디의 문장이 내게 전송되고, 그 뒤로 15초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방금 씻고 나왔는데, 내 등뒤에는 이미 소름이 돋아 차가워져있었다. 이 녀석은, 아니, 나는….


「대학교의 앙케이트 같은 걸로는 힘들다 이 말이지.」


틀림없다.


이 녀석은 오늘 나를 만났다. 아니, 내 시점에서 말하자면, 나는 오늘 이 녀석을 만났다. 확실하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오늘 하루종일 떠들고 다녔던 저 질문을 알고있을리가 없다. 어디서 만난거지? 내가 오늘 찾아다닌 가구의 수만 몇일까.


10? 20? 아니 어쩌면 30 가구를 넘길지도 모른다. 시간상으로 조금 무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도 않다. ‘대학교의 앙케이트’ 라는 내 말을 듣자말자 대화를 거부한 집들도 많았다. 그렇기에 그 정도가 적당하다. 그렇다면 그 집들중에, 이 여자가 있었던걸까? 나는 이 여자를 오늘 만난걸까?


하지만 대채 누가? 아니, 대채 어느 집이였던거지? 확실히 나는 통찰력이 뛰어난 편이 아니다. 그렇기에 상대의 정체를 알아내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 만난 사람들중에 살인마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은 없었다. 체형도 맞지 않았으며, 뿜어져나오는 인상도, 분위기도 하나같이 모두 달랐다. 그나마 이 사람이 살인마에 가장 가까울것이다, 라고 할만한 사람조차 없었다.


대채 이 여자는 정체가 뭐지? 이 여자야말로, 꿈이 연기자 지망생인건가? 아니, 아니. 재대로 생각하고 있는 꿈이 있다면 지금 나와 살인게임을 행하고 있을리는 없겠지. 그렇다면 대채 이 여자는….


힌트는 재대로 건네받았다. 확실히 상당히 거대한 힌트였지만, 나로썬 여전히 살인마의 정체를 짐작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다시 한번 더 이 여자를 떠보기 시작했다.


「그건 힌트가 아니라 충고라고 하는 게 더 적당할 것 같은데.」


답장은 바로 날아오지 않았다. 1분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내 휴대폰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뭐야, 눈치 못 챈거야?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머리가 나쁜것 같은데?」


아니, 눈치는 이미 챘다. 살인마는 지금 내가 자신과 만났다는 사실을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이였다. 그렇다면, 만약 이 말이 사실이라면 자신이 김지희의 집 주변에 살고있다고 말한 살인마의 말은 거짓이 아니라는게 된다. 그리고 나 또한, 살인마를 찾는 범위를 조금 정도 더 좁힐 수 있겠지.


「힌트라며?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걸 줘야하는거 아닌가?」


나는 그렇게 말했다. 살인마가 ‘그럼 다른 힌트를 줄게’ 라며, 또 다른 말을 꺼내길 원했다. 범위는 좁아졌지만 아직까지는 너무 뭉툭하다. 확실한 방법이 없었다. 여기서 조금만 더 좁힌다면, 그럼 정말 내가 이 여자를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살인마는 내 예상과 다른 대답을 꺼냈다.


「아니, 난 힌트를 줬어, 눈치 못 챈건 아저씨 탓이잖아? 문자니까 저장되어 있을거아니야. 그거 보면서 머리 굴려보던가.」


젠장할, 역시 실패였다.


「쪼잔한 년」


그 한 마디를 끝으로, 나와 살인마의 대화 역시 끝이 났다. 나는 피곤한 몸을 침대 위에 눞혔다. 휴대폰은 침대 옆에 아무렇게나 던져두었다. 내일은 어떡해야할까. 오늘 찾아다녔던 집을 다시 한번 뒤져봐야하나? 하지만 무슨 명분으로?


생각이 깊어지기 시작하자, 나는 고개를 저으며 머릿속을 정리했다. 오늘은 아주 복잡한 날이였다. 이것저것 여러가지 생각이 많이 들어온 날. 김지희에 관한 것도, 형사에 관한 것도, 살인마에 관한 것도. 수많은 생각들이 날을 곤두세우곤 머릿속을 찔러댔다.


생각은 내일 하기로 하자, 그렇게 마음 먹었다. 어찌됐던 내가 살인마를 찾을 가능성이 조금은 높아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에 나는 무의식적으로 옅은 미소를 지으며, 스스륵 눈을 감았다. 잠이 몰려왔고, 나는 곧바로 몸을 맡겼다.


내일로, 지옥같은 사건이 시작된지 3일이 지난 9월 25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