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불화 때문에 미치겠습니다. 도와주세요ㅠㅠ

훈훈2014.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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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20대중반의 평범한 남자대학생입니다.

제가 이곳에 글을 남기는 것은 심각한 저희집 가정불화 때문에 많은분들에게 조언을 구하고자 함이니 제발 사람목숨 하나 살려주시는셈 치시고 형편없는 글이 길더라도 꼭 좀 읽어주십시오.

 

 

저희집은 부모님과 큰누나 작은누나, 그리고 저 이렇게 5명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저는 어릴적부터 애교도 많고, 맘이 굉장히 여린편이였습니다. 밖에서는 안그러는데, 집에만 가면 어머니한테 애교를 잔뜩 부리는 아기죠.

저희 본가는 지방, 큰누나는 경기도쪽에서 공직생활하다가 시집을 가게됐고, 작은누나도 시집을 가게되어 본가 바로 앞동에 거주하고 있으며, 저는 홀로 서울로 대학을 와서 나름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 자랑은 아니고, 저는 어릴적부터 조금 애늙은이같은 기질이 있었습니다. 힘들어도 힘든 내색 잘안하고, 그냥 제 할 일 알아서 묵묵히 하는?? 그래서 부모님께서 저를 더 각별히 아끼신것도 없잖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게 20대중반이 되니깐요. 미쳐버리겠더라고요. 제가 누구인지를 모르겠는거에요. 힘들때는 울고, 소리도 질러보고 해야하는데 그런방법을 전부 잊어버린겁니다. 제 친구들은 모두 제가 너무나도 유복한 가정에서 화목하게 자라왔을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희집은 그렇게 부유한 편도 아니였고, 화목한 것은 더더욱 아니였는데 말이죠. 얼마전 정말 친한친구들한테 결국 술 한잔 하며 속얘기를 했더니, 애들이 기겁하더군요. 꿈에도 몰랐다고... 그렇게 저는 제 자신을 감춘 체 24년을 살아왔습니다.

 

각설하고..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잠시 삼천포로 빠져 죄송합니다

제가 학교생활을 하다보니 시기를 놓쳐 군대를 남들보다 조금 늦은시기에 다녀왔습니다. 2013년 10월 딱 1년전이죠. 제가 말년휴가를 나갈때가 되어 집에다가 연락을 하는데, 아무도 받지 않는것입니다. 그런데 느낌이라는게 있잖아요. 직감이 팍하고 오더군요. 갑자기 떨려오는 손을 부여잡고, 큰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아버지가 집을 발칵 뒤집어 놓으셨다고 하더라고요.

 

간단하게 요약정리하겠습니다.

 

아버지 - 결혼할 때 선박회사근무. 일에 자주 질리곤 하셔서, 여러번 이직을 하고, 다치셔서 쉬시기도 하다가 결국 다시 선박회사 엔지니어로 들어가셨습니다.

 

어머니 - 결혼 후, 아버지가 허리를 다치셔서 일을 못하시게 되자, 줄곧 생계를 책임지셨습니다. 제가 중1 때까지 어머니가 모든 집안의 생계를 담당하셨으니깐요. 새벽에는 우유배달, 오전 오후에는 백화점 매장일을 보셨습니다.

 

3남매 - 큰 탈 없이 학업을 마치고, 각자 알아서 미래를 개척해나갔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뭐냐면, 제가 어릴적부터 아버지가 집에서 쉬셨거든요. 어머니보다는 아버지를 보는 시간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아버지에게 쉽게 정을 붙일수가 없더군요. 너무 무서웠습니다. 집에서 쉬시면서 저희 3남매 수학공부를 가르치셨는데, 문제를 풀어내지 못하면 인정사정없이 고문에 가까운 폭력을 휘두르셨습니다. 방문을 걸어잠구시고, 행여나 누나들의 비명이 바깥으로 퍼져나오면 더 때리셨고요. 저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구석에 틀어박혀 울기만 했습니다.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초등학생이던 작은누나를 눕혀놓고 집에있던 통기타를 들어 사정없이 내려치던 모습, 그리고 이제 갓 초등학생이던 저에게 중학교 수학문제를 가져다 놓고, ‘내가 담배 한 대 피고 올 동안 이 문제 못풀면 죽을줄 알아라’ 하고 말씀하시던 그 모습..... 트라우마로 남아 아직도 꿈을 꿉니다. 정말 지독하게 폭력을 휘두르셨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가정교육을 엄격히 받는 집들이 많았기 때문에, 저희집도 그 가정들의 일부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 처참했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가 어머니께는 폭력을 휘두르지는 않았는데, 언성을 자주 높이셨고, 저희에게만 유독 폭력을 많이 쓰셨습니다.

사실 어머니는 생계를 책임지시느라 가정일에는 거의 신경을 못쓰셨습니다. 새벽에는 우유배달하시고, 오전부터 늦은저녁까지는 백화점일을 하셨다고 제가 위에다 적어놨는데요.

갑자기 어머니가 쓰러지셔서 누나들과 제가 새벽5시부터 우유배달을 며칠동안 하던 것도 기억이 납니다. 그때는 제가 참 어렸었나봐요. 어머니가 쓰러져 고통스러워 하시는 모습이 맘에 걸리기보다는 누나들과 한 아파트 수백가구를 돌며 우유배달하던게 즐거웠어요. 저 철없죠?

제가 초등학교 입학하고 얼마뒤 우리나라에 경제위기가 찾아왔죠. 모두가 힘들어했고, 저역시 그 시기는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습니다. 매일 김치반찬 하나로 1년가까이 버텨왔거든요.

저희집은요. 라면 사먹을 돈도 없고, 쌀을 살 돈도 없어서 외할머니께서 보내주신 쌀로 근근히 버텨왔습니다. 어머니가 고생하신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렇다고 집에만 계시는 아버지를 원망하지는 않았어요. 왜냐하면 저희를 낳아주신 고마운 분이였기 때문이죠.

저는 중학교를 들어갔을때도, 교복을 살 돈이 없어서 옆집의 형이 졸업하고 난 헐어버리고, 형편없이 큰 교복을 물려받았었습니다. 입학식 첫 날부터 아이들에게 놀림받았고, 처음으로 집에 가서 울면서 얘기 했습니다. 그 때, 어머니가 새로 교복을 사주셨던 기억이 나네요.

중학교 2학년때쯤인가? 아버지가 다시 선박일을 나가신다고 했습니다. 기뻤죠. 집에 수입이 늘어나는 거니까... 그리고 커갈수록 드리워진 아버지의 폭력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참 행복했습니다.

아버지가 선박회사로 가시면, 보통 6개월에 1~2번 집에오시니까. 그 때만 잘 넘기면 됐어요.

오히려 저희 가정은 더욱 화목해졌습니다.

공부에 취미를 붙이지 못했던 큰누나의 공무원임용소식, 작은누나의 대학수석합격, 저의 고등학교 수석합격, 저희 3남매 정말 지독한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부모님 두 분 다 저희를 자랑스러워해주셨죠.

아버지도 저희가 차츰 나이가 들수록 폭력을 쓰시는 횟수는 많이 줄어드셨습니다. 몇 년간 참 화목하다고 생각했던 저희집에 다시 검은 그림자가 찾아오기 시작한 것은 5년전쯤?

열심히 살아오신 두분 덕분에 20평 남짓하던 아파트에서 35평 아파트로 이사를 가게되었습니다. 모든일이 잘 풀려가는 듯 했어요.

이사를 가고나서 저랑 저희 엄마는 울면서 서로를 안아줬어요. 이제 우리에게도 새로운 행복이 찾아오려나보다...

근데 아버지가 일본의 도박인 빠찡코?에 손을 대시기 시작합니다. 제가 고등학생이 되던때부터 보통 아버지는 6개월 근무하고 6개월은 집에서 쉬셨습니다. 뭐 크게 상관은 없었어요. 왜냐하면 저는 학교에 살다시피 했거든요. 새벽같이 나가서 밤늦게 들어오는게 저의 일상이였어요.

하지만 집에오면 찌든 담배냄새에 아버지가 제 방을 차지하고, 인터넷게임만 하시는 겁니다.

어쩌다가 시간이 나서 가족끼리 놀러가자고 하면 귀찮다고 만류하셨어요.

날이 갈수록 인터넷게임과 빠찡코에 빠지셨지만, 나머지 가족들은 아버지 성격을 알기 때문에 그냥 아무말도 안하기로 했습니다.

 

 

2013.10월 아버지가 임산부인 누나에게 폭력을 행사한 것도 모두 도박이 잘 풀리지 않아서 그랬을 것이라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아버지의 한달 급여는 500만원정도, 하지만 1년에 6개월근무하기 때문에 3000만원정도가 연수입이였습니다. 그걸로 모든걸 해결해야 했습니다. 어머니는 몸이 급격히 안좋아지셔서 제가 고2때부터 일 그만두셨고요. 그런데 아버지는 매 월200~300만원정도를 빠찡코에 쏟아부으셨던겁니다.)

 

 

저는 원래 서울의 모대학 법학과에 수시합격을 하게되었지만, 저는 가족들 몰래 연극영화과 진학을 목표로 삼고 공부와 실기에 주력하게 되었습니다. 모두 나자빠질 노릇이였죠.. 하지만 지방학생이였던 저는 실기학원을 따로 다니지도 않고, 혼자 입시를 준비했습니다. 그 결과 서울의 명문대 연극영화과와 중,하류급 대학의 연극영화과에 동시에 합격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 역시 저를 명문대에 보내고 싶어하셨지만, 아버지가 도박으로 모두 돈을 탕진해버리다시피하셨고, 아버지는 죽어도 연극영화과 진학은 안된다고 하셨습니다. 일체 생활비지원도 안해주신다고 선포하셨고요.

결국 저는 중,하류급 대학의 수석입학조건으로 대학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워낙 예술계열은 등록금도 비쌌기 때문에 달리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어리석게도 그 당시 학자금 대출 이런것들은 생각을 못해봤었네요.

아무튼 결국 저는 지금의 대학교에서 제 꿈을 찾아나서기 시작했습니다. 예술을 하다보니 아르바이트 할 시간은 없고, 집에다가 손은 벌려야 하는데 맘고생하실 어머니가 걱정이 되어, 차마 그러지를 못했습니다. 간간히 영화나 드라마 엑스트라 알바는 단기알바가 가능했기 때문에, 그런걸로 생활비를 충당하기도 했고요. 그래도 부모님께 부끄러운 행동을 할만한 자식은 아니였다고 생각합니다.

 

2013년.10월의 가정불화는 결국 제가 나서서 일단락 지었고, 아버지와 누나들의 관계는 소원해졌지만, 부모님 두 분의 관계는 어느정도 제가 풀어드렸습니다.

아버지도 더 이상 도박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셨고, 어머니 병간호에 힘쓰시겠다고 하셨고요.

 

그런데 언제부터였는지, 아버지가 약간 정신이상상태를 보이시기 시작합니다. 친척들 앞에서 어머니한테 잘해주는 연기를 하시겠다면서.... 깔깔 웃어대시더라고요. 그 뿐 아니라 제 앞에서 어머니와 누나들을 욕하기 시작하고, 큰누나의 출산이 임박해오자 어머니는 전전긍긍하셨어요.

아버지가 갑자기 아이가 되는것처럼 떼를쓰며, 누나의 산후조리를 어머니가 가는것에 대해 굉장히 탐탁치않게 여기셨거든요. 시댁어른들은 도대체 뭘하냐며, 왜 당신이 가냐고... 전 솔직히 이 때 아버지한테 실망했습니다. 아무리 큰누나와 사이가 안좋다해도 딸이 손주를 낳는다는데, 친정엄마의 보살핌을 막는다는게 상식선에서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제가 결국 또 나서서 아버지를 설득했고, 어머니는 누나가 있는 경기도로 향했습니다.

그게 올 초였구요. 저는 이번2학기부터 복학을 했는데, 생활비를 벌고자 올 전반기에는 입시학원에서 강사로 활동했습니다. 아버지가 외로워하실까봐 퇴근길에 매일 맛있는 음식을 사오는가하면, 용돈도 쥐어다드리고, 옷도사드리고요. 아버지와 함께 집에있는 1달정도가 1년 같았지만, 그래도 잘해드리려고 참 노력 많이 했습니다. 한 참 누나 산후조리기간 때, 어머니가 환갑이셨습니다.

왠일로 아버지가 어머니를 뵈러 올라가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그런 아버지께 어머니와 맛있는 것이라도 사드시라고, 또 용돈을 보내드렸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큰 매형이 어머니를 모시고 나갔는데, 아버지가 식당에서 그런말씀을 하셨대요. 어머니는 악마같은 여자다. 집안살림을 정말 못한다. 너 내 딸이랑 결혼한거 후회할 것이다. 이집안 여자들은 다 똑같다.. 네...이런말만 하면 다행이게요. 작년은 또 아버지 환갑이셨는데, 그 때 값비싼 한식집에서 저희 가족들끼리 외식도 했고, 두 누나들이 아버지 환갑선물로 고급안마의자까지 선물해주셨는데..... 도대체 자기 환갑때 해준게 뭐냐며, 서운하다고 말씀하셨다네요.. 어머니는 창피함에 얼굴을 들지 못하셨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그 다음날 바로 집에 내려오셨고, 제가 퇴근하고 왔을 때는 글하나 남겨놓고 종적을 감추셨습니다. 글 즉슨, ‘내가 인생을 헛살았다. 내가 죽거든 화장하여 바다에 뿌려주거라.’ 이게 주된 내용이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본인 스스로 쉽게 목숨을 끊지 않을 분이시라는 것을.... 이런 비슷한 경우 몇 번 겪어봤었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넘겼습니다. 아버지가 외로움타시지않게, 사랑한다, 보고싶다는 문자도 매일 남겨드렸고요.

 

그렇게 아버지는 올 4월부터 7월까지 행적을 감추셨고, 어머니는 산후조리를 마치고 다시 본가로 내려오셨습니다. 그 때, 아버지는 갑자기 집안의 생계지원을 끊으셨습니다. 퇴직하시고, 매 달마다 60만원정도의 연금이 나오는 걸로 되어있었는데, 아버지는 어머니가 괘씸하다는 이유로 어머니가 빼서 쓰지 못하도록 막으셨습니다. 결국 저의 월급, 그리고 어머니는 몸이 불편하신 노인들 목욕을 씻기러 다니시면서 받아오신 일당으로 생활을 해나갔습니다.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살만했습니다. 아니 사실 행복했습니다. 어머니와 저는 다툴일이 없었으니깐요.

 

한창 아이들 기말고사 기간이라 예민해져있던 7월초쯤, 저는 잠시 방에서 잠을자다가 엄마와 작은누나가 하는 얘기를 듣습니다. 아버지에게 여자가 생긴 것 같다는.....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정말 미쳐버리겠더군요. 한평생 자기만 바라보고 살아온 여자를 두고 다른 여자와 바람이 났다는.... 저만 몰랐습니다. 제가 조금 생각이 많고 예민하다보니, 어머니와 누나들은 걱정이 되어 이같은 아버지의 만행을 저에게는 숨겼습니다.

저는 당장 저희 본가 대문의 디지털도어록 비밀번호부터 바꿨습니다. 참으로 애석하게도, 아버지는 큰누나와 다툰날을 기억하고 평생을 저주하겠다며 그날을 비밀번호를 설정해두시고, 죽어도 못바꾸게 하는겁니다. 어머니와 저는 그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을 들어올때면 미쳐버릴 것 같았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그리고 아버지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언제까지 이런식으로 행동하실꺼냐고, 저도 클만큼 컸고, 알꺼 다 안다고, 아버지에게 실망스럽다고.. 아버지 때문에 너무 힘들다고 했더니, 저보고 속시원히 말잘했다면서 이 참에 인연끊고 살자고 답이 오더라고요. 저는 그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처음으로 하는 아버지에 대한 반항이였고, 그 때는 아버지가 정말 죽을만큼 미웠으니깐요.

 

7월 중순쯤이였습니다. 아이들 기말고사가 끝나고 학원선생님들하고 회식한 날이라 간만에 푹쉬고 있었습니다. 꿈자리가 너무 뒤숭숭해서 잠에서 딱 깼는데, 얼마 뒤 집 초인종이 울리더군요. 아....아빠다. 하고 생각했는데, 진짜 아버지였던겁니다.

아빠는 저희가 본인을 쫓아내려고 모두가 작당모의했다고 생각하셨고, 저더러 집을 나갈 것을 강요하셨고요. 저도 물러서지않고 약간 대들었습니다. 집을나가겠다고 한 다음 씻으려고 화장실을 들어갔는데, 밖에서 어머니 비명소리가 나는 겁니다. 아버지가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든욕을 하며 어머니를 사방팔방 끌고다니며 매질을 하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아버지를 말렸죠. 그랬더니 아버지가 부엌으로 달려가 칼을 가져오셨어요. 다 죽여버리겠다고요. 정말 이대로 엄마와 제가 죽겠구나 했지만 식탁의자를 들고 필사적으로 방어했습니다.

그랬더니 또 옆에 있던 어머니를 끌고 안방으로 들어가려고 하더군요. 저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말렸는데, 본인의 유리재질 재떨이를 들고와 제 안면부와 머리통을 수십차례 때리면서 죽어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눈알이 터질 것 같았고, 정말 죽는다는게 이런건가?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머니를 구해야했고, 저도 하고싶은게 많은 욕심많은 청년이였습니다. 이대로 죽기에는 너무 억울했습니다.

어머니를 모시고 집밖으로 나와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아...그런데 대한민국 경찰들..정말 너무 화났습니다. 밍기적밍기적 오는것부터 해서 귀찮다는 표정에.... 그 때 엉엉 울었습니다. 진짜 서글프더군요. 더 이상 아버지의 이런 행동들을 지켜보고 싶지 않아서 파출소에 가서 무조건 사건처리 해달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또 쉽사리 말씀을 못하시더군요. 그 마음도 이해는 했습니다. 어머니와 제가 파출소에서 진술을 하고 나오는데, 아버지도 파출소에 들어오시더군요. 그토록 자신이 미워하던 고모와, 큰아버지와 함께요. 어찌나 순경분들 앞에서 예의바르고, 불쌍하신 표정을 지어대시던지... 아버지가 저대신 연기하셔도 되겠더라고요.

 

어머니와 저는 아버지가 조사받는동안 재빨리 집에들어가서 필요한짐을 간단히 꾸려서 작은누나네 집으로 향했습니다. 병원에 갔더니 어머니와 저는 각각 전치3주가 나왔고요.

아버지는.............저를 존속폭행 피의자로 고소를 하셨고, 경찰서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제가 식탁의자로 자기를 수차례 내리쳐서 손가락이 부러졌다고 진술을 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하늘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감히 어느자식이 함부로 아버지를 때리겠어요. 알고보니 아버지가 올해 집을 나가셨을 때 일용직 근무를 하시며 손가락이 다치신 것을..... 제가 그렇게 만들었다고 진술을 했던겁니다.. 그 때부터 저는 더 이상 그 분을 아버지라고 여기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전치 5주 진단서를 경찰서에 제출하셨고, 저는 구속위기에 처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아버지의 위증사실이 밝혀져 무혐의 처리가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친가쪽 친척분들에게 제가 아버지를 때린 패륜아로 만들어버렸고, 어머니를 동네 창녀로 만들어버리셨습니다. 본인의 세계에 아예 빠져버리신 다음 울며불며, 자신이 불쌍하다는 것을 어필하고 다니셨다네요. 어머니와 누나들, 그리고 저 단숨에 가정파탄자와 아버지와 지아비를 버린 매정한 가족으로 낙인찍혀있었어요.

너무 어이가 없었고, 결국 저희는 법적 소송진행을 하기로 했습니다. 소송을 시작한 이후로 그렇게 협박전화를 하던 친척분들 연락 한 통 없어지더군요. 그나마 제 힘든마음을 이해해주던 사촌형도 아버지가 저와 형사이를 이간질 시켜놓아서 완전 멀어져버렸고요.

아버지는 저와 어머니를 상대로 항소를 준비하신답니다.

저.... 꿈꾸는 것 같아요. 아니면 드라마를 한편 찍고 있다고 해야하나?? 아무렇지않게 모든일이 잘 될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자꾸만 불안하고 슬퍼지는건 어쩔 수 없나봅니다.

진지하게 이민까지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아버지가 저희를 찾아내어 모두 죽여버릴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혀있어요.

아버지가 저에게 주신 마지막 연락이 ‘너는 대학졸업할때까지 2년 시간 더 준다. 각오해라’ 녹음 같은거 다 해놓긴 했는데, 법정에서 얼마나 제대로 판결을 내려줄지는 모르겠네요.

 

 

여러분!! 여기서 제일 힘든건 어머니가 맞을텐데, 저도 위로받고싶네요. 누나들은 남자가 되어가지고 이만한일에 힘들어하냐라고 오히려 다그치는데, 저.. 자꾸 용기를 잃어갑니다.

서울에서 혼자 사니까 자꾸 이상한 생각만 드네요. 저 위로좀 해주세요. 정말 죽을만큼 힘듭니다. 그리고 이거 부모님 이혼시켜드려야 하는거 맞는거지 진지하게 조언좀 부탁드려요.

외가친척분들은 소송 멈추고 다시 잘해보라고 하는데, 저는 아닌 것 같거든요.

부탁드리겠습니다. 좋은말씀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