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협 곽원갑

hanolduol2006.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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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협 곽원갑 대협 곽원갑 백과사전 연관이미지 쿵푸 대협 곽원갑 대협 곽원갑곽원갑은 자는 준경으로 조상의 적은 하북성 동광안락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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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대초 천진, 정해, 소남하촌에서 거주하였고, 정무체육회의 창시자이며 근대의 유명한 애국 무술가 이다.

곽원갑은 어려서부터 약하고 병이 많앗다고 한다. 그 부친인 곽은제는 이름을 날리던 비종권 스승이었다.그는 곽원갑이 무술을 익히면 후에 곽씨 집안의 명성에 누가 될 것으로 걱정하여 그에게 기예를 전수하지 않았다.


그러나 곽원갑은 스스로 뜻을 높이 세우고 매출 자세히 부친이 형제들에게 기예를 전수해줄때 눈여겨 보고 집밖의 대추나무 숲에 숨어서 열심히 수련했다.

나중에 부친이 알고 벌을 주었다.

곽원갑은 절대 다른 사람들과 비무를 하지 않고, 곽가의 체면을 손상시키지 않겟다는 서약을 하고서 겨우 다른 형제들과 같이 무술을 익힐수 있었다.

곽원갑은 자질이 뛰어나고 총명하며, 의지가 남달랐다.무술은 발전이 빨라 형제들 중에 독보적이었다. 부친은 이를 보고는 예전의 생각을 바꾸어 그에게 기예를 전수했다.

후에 곽원갑은 무술로서 친구를 사귀고, 각 가문의 장점을 모아서 조상으로 부터 전해지던 비종권(秘宗拳)을 미종예로 발전시켰다. 이로서 조상으로 부터 전해져오던 권법을 최고의 경지에 이르도록 하였다.


광서22년(1986년), 산동대협인 유진성이 그의 명성을 듣고 천진으로 찾아와서 곽원갑의 제자가 되기를 청하였다.곽원갑은 그가 정직한 것을 보고 제자로 거두었다.이로써 곽가권은 "집안에서만 전하고 집 밖으로는 전하지 않는다"는 선례를 깨버렸다.

곽원갑은 의협심이 강했다.

광서24년(1898년), 담사동이 변법에 실패하여 죽고, 대도왕오(왕자빈)가 난을 피해 천진으로 왔다.곽원갑과는 한번에 바로 친구가 되었다.

나중에 왕자빈이 북경에서 난을 당하고, 팔국연합군에 의하여 효수되었다.곽원갑은 유진성과 몰래 북경성에 들어가 수급(죽은 사람의 팔과 몸체등)을 훔쳐왔다.그리고 <노잔윤기>의 작자인 유악의 도움을 받아 대도왕오의 몸과 머리를 합쳐서 묻어줌으로써 친구의 의리를 다하였다.

선통 원년(1909년) 영국의 대력사 오피인이 상해에서 광고를 내어 중국을 동아병부(아시아의 병든 늙은이)라고 모욕햇다.곽원갑은 친구들의 초청을 받아 상해로 가서 비무를 하였따.상대방은 곽원갑의 권법이 무서운 것을 알고, 만금을 서로 내어 보증금으로 하자고 하였다. 곽원갑은 친구들의 지원으로 만금을 내어 보증금을 걸었다. 상대방이 질질끌며 지연하자, 곽원갑은 신문에 광고를 내었다.


세상은 우리나라를 병든 늙은이 나라라고 비웃었다."나는 병든 늙은이 나라의 한 병든 늙은이이다. 천하의 건장한 자들과 싸워보고 싶다"

 

고 하였다. 상대방은 감히 싸우지 못하고 도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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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6월1일 곽원갑은 무술계의 친구들의 도움하에 상해에서 "중국정무체조회(후에 정무체육회로 개명)"를 만든다.손중산 선생도 곽원갑을 찬양하여 "만일 국가를 강하게 하고자 한다면, 사람마다 무술을 익히지 않으면 안된다"는 신념과 곽가권을 세상에 전한 높은 뜻을 찬영하면서 친필로 "상무정신"이라는 네 글자를 써서 정무체육회에 준다.


1910년 9월, 일본율회 회장이 10명의 고수를 데리고 와서 곽원갑과 대련하나 곽원갑에게 패하고 만다.일본인은 술을 대접하다가 기침을 하는 것을 보고 치료를 하게 한다. 곽원갑은 일생을 솔직하게 살았으나 부지불식간에 중독되어 9월14일 사망하니 향년 42세이다.

나중에 상해 정무회는 곽원갑의 동생인 원경(元卿), 둘재아들 동각(東閣)이 물려받는다, 각지의 분회가 계속 만들어지고 십수년 후에는 중국내외에 정무 분회가 43곳에 이르고, 회원은 40만을 넘어선다.

출처:무예사랑(http://www.muyelo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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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가지고있는 자료에서 보면 곽원갑이 대협이라는 호칭을 얻게된것은 의화단 사건에서 외국인 선교사와 신자들을 보호하고 의화단의 두령의 목을 베면서부터로 알고있습니다. 그사건이 신문에 크게보도가 되어서 대협 곽원갑 이라는 명칭을 얻으셨고 일본인과 시합을 한것은 제자였던 유진성과 씨름꾼의 시합이었는데 유진성이 이기자 일본인 의사 아끼노가 이에 앙십을 품고 독살했다고 하느군요

 

사망하신 시기는 42세 라고도 하고 48세라고도 하는데 진공철 의 정무호십년 무술발전사에 의하면 1909년 53세에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