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도우익이 가장 두려워하는 위안부 피해자들...

언더테이커2014.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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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겨울부터 1942년 여름까지 일본군은 승승장구하며 동남아시아 일대를 점령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대동아공영권이라는 이름하에 아시아를 해방시킨다는 논리를 들고 나왔다. 당시 홍콩을 점령한 일본군은 영국여성 특히 백인 젊은여성들을 잡아들여 성노예로 삼았다. 황인이 백인을 정복하는 것이 대동아공영권의 의미를 보여주는 것이라 하였으나 실제로는 일본군인 일부의 더러운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것에 불과했다.

 

이후 일본군은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던 자바와 수마트라 일대를 점령했다. 그리고 당시 그곳에 머물던 네덜란드의 백인여성들도 그들의 성노예가 되었다.

 

 당시 18세의 나이에 일본군에 끌려가 성노예가 된 네덜란드인인 얀 할머니..

당시 할머니는 죽을 때까지 밝히지 않으려 했으나... 한국,중국인등의 위안부 할머니들의

모습에 용기를 얻어 백인 위안부의 실체를 공개했다. 이 고백은 당시 동양인의 문제로만 취급하며

외면했던 유럽각국과 미국이 위안부 문제의 실체를 알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일본우익들은 결코 밝혀지기를 원치 않았던 백인여성의 성노예문제가 드러나게 되자 위기감을 느꼈다.

 

예를들어 시오노 나나미는, 일본 월간지 문예춘추(文藝春秋) 10월호 기고문에서 "위안부 이야기가 (유럽에) 퍼지면 큰일"이라면서 "(일본 정부가)그 전에 급히 손을 쓸 필요가 있다"고 썼다 그러면서 아사히신문이, 제주도에서 위안부 200명을 강제연행했다는 '요시다 증언' 관련 과거기사를 취소한 것을 "세계를 향해 홍보하라"고 주문하였다.(우리가 그토록 명저라고 칭송하고 베스트셀러가 된 로마인이야기의 저자이다).

 

그녀는 일본우파의 강력한 지지자이며 지금도 위안부에 대해 중국과 한국을 믿느냐고 반문하는 중이다. 시오노 나나미를 비롯한 일본의 극우들은 이렇게, 위안부 강제성을 '군과 관헌에 의한 직접적인 강제연행'으로 한정한 채, 아사히가 기사를 취소했으니 '강제성'도 없다는 아전인수를 끊임없이 강화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우익들이 두려워 한것은 오직 백인여성만을 건드렸다는 점이며 여전히 이에대해 눈치를 보고있는 중이다. 그러나 주변국의 성노예들에 대해서는 힘이 없던때에 당연했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