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부터 아프리카 알제리에 불붙기 시작한 독립의 열기는 프랑스에 대한 전쟁으로 발전했다.
특히 민족해방전선(FLN)을 중심으로 8년간 프랑스와 격렬한 알제리 전쟁은 제1차 베트남 전쟁과 함께 식민주의의 심장에 마지막 숨통을 끊는 사건이었다.
그런데 당시 지단의 아버지는 하르키(Harki)라는 조직에 속했는데 이들은 베르베르족의 일부인 카빌리족의 후손이다. 카빌리족은 오스만 제국 침공 및 이슬람과 오랫동안 싸워왔으며 이슬람에 대한 반발로 오래전부터 천주교를 믿어온 이들이었는데 이 전쟁에서 프랑스군에 가담해 알제리 독립군과 치열하게 전투를 벌였다. 즉 한국으로 치면 조선인이 일본순사가 되어 조선인들을 탄압하고, 일본군에 입대하여 독립군에게 총질한 자들이라고 보면 된다. 지단의 아버지 역시 이 전쟁에 말려들게 된다. 문제는 알제리 독립전쟁 와중에 이들이 프랑스군을 편들어 싸웠기에, 알제리 독립이 이뤄지자 전국적으로 하르키들은 길거리에 끌려나가 맞아죽거나, 아니면 알제리군에게 교수형을 당해야 했다. 이 때 20만명의 하르키(가족까지 160만명) 중에서 살아서 프랑스로 도주한 자는 3만명에 불과했다. 이 때 지단의 아버지도 겨우 목숨을 건져 프랑스로 달아날 수 있었다.
그러나 지단의 아버지를 비롯한 하르키들은 프랑스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고 프랑스를 위해 싸웠지만, 이미 알제리를 잃은 프랑스에게 있어서 하르키란 귀찮은 불청객일 뿐이었다. 당연히 이들에게 돌아오는 것이라곤 차별 뿐이었다. 직장을 다니다가도 하르키 출신이라는 것이 밝혀지면 동료들의 눈치에 그만둬야 했다. 지금도 실직자의 35%가 하르키 및 알제리 출신의 후손이라니 더이상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그래서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3D업종 뿐이었다(지단의 아버지도 항만에서 짐꾼으로 일했다.).
그래서 많은 하르키의 자식들은 사회적 냉대에 결국 나쁜 길로 빠진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들이 집단으로 거주한 지역이 그 유명한 프랑스의 제 7구역이었다.) 그나마 이후 현재 알제리에선 감정이 희석된건지, 다시 알제리로 돌아가서 사는 하르키들도 늘고 있다고 한다. 알제리 대통령도 하르키 문제를 "우리가 할일은 심판하는게 아니라 이해하는 것"이라며 지단을 위로하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남아공 월드컵 당시 지단은 알제리대표팀을 응원했으며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이는 마찬가지였다.
한 알제리인이 프랑스의 축구영웅이 된 사연
지네딘 지단은 알계리계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나 프랑스의 축구영웅이 되었다. 그러나
그 속에는 가슴아픈 역사적 사실이 있었다.
1954년부터 아프리카 알제리에 불붙기 시작한 독립의 열기는 프랑스에 대한 전쟁으로 발전했다.
특히 민족해방전선(FLN)을 중심으로 8년간 프랑스와 격렬한 알제리 전쟁은 제1차 베트남 전쟁과 함께 식민주의의 심장에 마지막 숨통을 끊는 사건이었다.
그런데 당시 지단의 아버지는 하르키(Harki)라는 조직에 속했는데 이들은 베르베르족의 일부인 카빌리족의 후손이다. 카빌리족은 오스만 제국 침공 및 이슬람과 오랫동안 싸워왔으며 이슬람에 대한 반발로 오래전부터 천주교를 믿어온 이들이었는데 이 전쟁에서 프랑스군에 가담해 알제리 독립군과 치열하게 전투를 벌였다. 즉 한국으로 치면 조선인이 일본순사가 되어 조선인들을 탄압하고, 일본군에 입대하여 독립군에게 총질한 자들이라고 보면 된다. 지단의 아버지 역시 이 전쟁에 말려들게 된다. 문제는 알제리 독립전쟁 와중에 이들이 프랑스군을 편들어 싸웠기에, 알제리 독립이 이뤄지자 전국적으로 하르키들은 길거리에 끌려나가 맞아죽거나, 아니면 알제리군에게 교수형을 당해야 했다. 이 때 20만명의 하르키(가족까지 160만명) 중에서 살아서 프랑스로 도주한 자는 3만명에 불과했다. 이 때 지단의 아버지도 겨우 목숨을 건져 프랑스로 달아날 수 있었다.그러나 지단의 아버지를 비롯한 하르키들은 프랑스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고 프랑스를 위해 싸웠지만, 이미 알제리를 잃은 프랑스에게 있어서 하르키란 귀찮은 불청객일 뿐이었다. 당연히 이들에게 돌아오는 것이라곤 차별 뿐이었다. 직장을 다니다가도 하르키 출신이라는 것이 밝혀지면 동료들의 눈치에 그만둬야 했다. 지금도 실직자의 35%가 하르키 및 알제리 출신의 후손이라니 더이상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그래서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3D업종 뿐이었다(지단의 아버지도 항만에서 짐꾼으로 일했다.).
그래서 많은 하르키의 자식들은 사회적 냉대에 결국 나쁜 길로 빠진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들이 집단으로 거주한 지역이 그 유명한 프랑스의 제 7구역이었다.) 그나마 이후 현재 알제리에선 감정이 희석된건지, 다시 알제리로 돌아가서 사는 하르키들도 늘고 있다고 한다. 알제리 대통령도 하르키 문제를 "우리가 할일은 심판하는게 아니라 이해하는 것"이라며 지단을 위로하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남아공 월드컵 당시 지단은 알제리대표팀을 응원했으며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이는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