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없이 이별을 당한 사람의 증상

누나아니야2014.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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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못 믿는다.

아니, 못 만난다라는 게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또다시 믿어버릴까 봐 두려워 아예 만남의 기회조차 차단한다.

보통 이런 걸 두고 마음의 문을 닫는다고 표현한다.

서툴지만 뜨거웠던 그런 사랑을 두 번 할 힘도 용기도 없어진다.

하게 되더라도 계산 없는 사랑은 이제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누굴 만나도 사랑하는 일보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애쓰는 연애를 한다.

헤어짐을 항상 염두에 두며 상대방보다 자신이 먼저 끝낼 수 있기를 기도한다.

물론 그런 자신이 못났다고 생각하긴 한다.


현재 상당히 평화롭다.

아주 자연스럽고 평온하게 일상으로 돌아간다. 웃고 울고 혼자 잘 먹고 잘산다.

세상이 그 사람 중심으로 돌던 시절 따윈 애초에 없었던 것처럼.

폭풍 같던 이별기를 거치면 아주 능청스러울 정도로 본래의 자신으로 돌아간다.

그때, 주위 지인들은 안심하며 때론 장난스레 그 사람의 이야기를 꺼내 놀리기도 한다.

그들이 보기에 정말 괜찮아 보이기 때문이다.

본인 역시 심드렁하게 받아치는 여유도 생긴다.

그러나 잠자기 전,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

친구의 연애담을 듣고 난 뒤 같은 멍해지는 시간의 85%는

그 사람과의 우연한 재회를 상상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미처 다 주지 못한 사랑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뒤처리가 매우 난감해진다.

헤어진 시간은 계속 흐르는데 마음은 여전히 그때 그 상태이다.

온전히 그 사람의 몫이었는데... 줄 방향을 잃어버리니 

마음속이 다 써버린 스프레이통처럼 처치 곤란이다.

그냥 버리자니 수거되지 않을 것 같고, 설명서대로 하자니 송곳으로 구멍 내기가 두렵다.

다 쓴 줄 알았는데 아닐까 봐 혹시나 터져버려 또다시 다칠까봐

항상 마지막 순간에 약해진다.

그래서 아직도 책상 밑 어둡진 공간을 구른다.


사실 돌이켜 보면 꼭 그 사람이 아니어도 상관은 없던 일이었다. 

열렬히 사랑했지만, 목숨 바칠 정도의 절절한 사랑은 아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땐 왜그리도 매달렸는지 조금 창피스럽기도 하다. 

게다가, 이젠 그 사람 얼굴마저 흐릿하다.

다만, 그 사람이 날 사랑해주던 눈빛, 목소리, 살 냄새가 나를 또 그 시간으로 돌아가게 할 뿐이다.

지금 내가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