戰則戰矣 不戰則假我道 전직전의 부전직가아도 싸우고 싶거든 싸우고 싸우기 싫거든 길을 빌려달라 (※여기서 假는 가식 가명 등의 거짓이란 뜻으로 쓰이지만 한문에서는 빌리다 라는 뜻으로 더 많이 쓰인다.) 임진왜란이 시작되면서 일본의 장군 소서행장이 동래부사 송상현에게 했던 말이다.... 무엇을 빌려달란 말인가? 당시한족의 나라인 명(明)나라를 치려면 조선을 거쳐야 하는데 명나라를 치기 위해선 조선의 길을 빌려야 한다는 말이다. 무슨 말도 안되는 핑계인가? 남지나해를 거쳐서 장강을 통해 그곳을 점령하여 농경지나 얻을 것이지 뭐하러 열대지방의 사람들이 머나먼 추운지방인 북경으로 쳐들어가는 것인가? 일본의 가식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애초에 조선을 점령하여서 그후에 명나라를 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임진왜란 이전만해도 일본은 조선의 해안가에 몰래 침략해서 무고한 백성들을 죽이고 쌀을 훔치고 조선의 군대가 오기전에 달아나는 해적에 불과한 족속들이었다. 임진왜란때 倭人들이 조선 팔도의 대부분을 손에 넣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아니, 오히려 우리가 먼저 일본을 치자는 설이 나왔을 정도였다. 하지만 일본은 더이상 옛날의 해적이 아니었다. 서양문물을 받아들이고 그 서양문물중에 강력한 전쟁무기로 쓰인 '조총'을 받아들였다. 단지 조총 때문에 우리는 임진왜란 초기에 저 평안도 함경도지역까지 밀려났는가? 현존하는 우리의 활은 사냥용 화살이다. 경기할때는 145m거리의 과녁을 5개의 화살을 쏘아 누가 더 많이 맞혔는가를 겨룬다. 군대용 화살은 현재 전하지 않는다. 군대의 화살은 그보다 몇배는 더 멀리 나갔다. 조총의 유효사거리는 100m정도 밖에 안된다. 게다가 조선은 당시의 과학기술 치고는 화약무기들이 굉장히 발전되어있었다. 무기의 성능만 가지고 본다면 조선의 압승이다. 하지만 그걸로는 충분치 않다. 그렇다면 조선은 왜 졌는가? 비록 변방지역에는 전투가 잦았으나 내륙지방은 200년간의 평화를 누린다. 조선의 무기고는 관리를 안해서 무기들이 모두 녹이 쓸었고 군사들은 훈련을 안했다 임진왜란이 일어날 것을 예견한 학자들이 있었으나 당파싸움에 휘말려있던 정부는 요망한 소리라고 그런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백성들마저도 평화롭게 살고싶은던 바램대로 자신이 더 마음이 안심이 가는 쪽의 이야기를 믿고싶은 심정때문이 그것을 믿었던 것이다. 왜가 동래에 상륙하자 모든 봉화대에 불이 다섯개가 피어 오르고 조선팔도의 백성들은 200년간 난을 겪어보지 못하다가 통곡을 한 것이다. 대부분의 전투가 속수무책이었다. 다행히도 이순신, 김덕령, 곽재우, 김응서 등과같은 불세출의 영웅들이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내어 패망만은 막았다. 안타깝게도 우리 가문은 장군가문이지만 임진왜란 당시에는 글읽는 선비로 업을 전환하였었다. 그래서 나의 직계조상은 임진왜란당시의 영웅은 없다. 선조는 저 멀리 평안도로 피난을 갔다 강원도는 산골이지만 왜군에게 들키면 답이 없기에 평안도에 있는국경으로 가서 명나라에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당시 명나라는 조선과 일본이 같이 손을잡아 명나라를 치려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기때문에 구원병을 요청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다행히도 전설로 전해져서 진위여부는 알수없지만 여러 외교관들의 노력의 결실로 명나라 조정에서는 "명나라를 치려는 왜군을 막아 싸웠으니, 의리를 지켜야한다"는 논리로 명나라는 구원병을 보내주었다. 임진왜란은 조선, 명 연합군의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조선이 훈련을 하지않고 무기고의 무기들이 녹슬게 한 것에 대한 피해는 막대하였다. 왜군에 의해 코없이, 귀없이 사는 사람들이 많았고 몇년간 농사를 짓지않아 땅은 황폐해 졌다. 신분을 증명하는 문서가 많이 사라져 양반들이 조선 인구의 80%이상을 차지하게 된 것도 이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내가 왜 이 이야기를 하는가? 최근에 일어난 군대에서의 몇가지 안좋은 일이 있었다. 내부에서 벌써 문제가 있는데 아무리 우리의 무기가 뛰어나도 그렇지, 군대가 악행을 세습하는 곳인가? 우리에게 뛰어난 탱크와 자주포등이 있지만 50년전의 총이라고 사람을 죽일수 없는 총이겠는가? 전쟁의 승패는 무기의 성능으로 결정하는게 아니라 사람의 결단으로 결정되는 것이다. 서로 헐뜯고 비난하는데 전쟁에서 상관의 명령을 따르고 싶겠는가? 강태공의 육도에 이런말이 있다 "말에서 내려서 걷고 비와도 비를 막는 도구를 쓰지않으며, 밥도 졸병들과 같이 먹으면 병사들은 목숨을 걸고 따를 것입니다." 또 요임금이 거친기장밥을 먹고 비단옷이 아닌 삼베옷을 입어서 백성들이 그 검소함을 좋아하였다는 말이 있다. 상관에게 버릇없이 대들고 그러는 것도 문제지만 아랫사람에게 학대를 하는 것도 문제이다. 윗사람 되는 자들은 한번 깊이깊이 생각해보소
전직전의 부전직가아도
戰則戰矣 不戰則假我道
전직전의 부전직가아도
싸우고 싶거든 싸우고 싸우기 싫거든 길을 빌려달라
(※여기서 假는 가식 가명 등의 거짓이란 뜻으로 쓰이지만 한문에서는 빌리다 라는 뜻으로 더 많이 쓰인다.)
임진왜란이 시작되면서 일본의 장군 소서행장이 동래부사 송상현에게 했던 말이다....
무엇을 빌려달란 말인가? 당시한족의 나라인 명(明)나라를 치려면 조선을 거쳐야 하는데 명나라를 치기 위해선 조선의 길을 빌려야 한다는 말이다.
무슨 말도 안되는 핑계인가? 남지나해를 거쳐서 장강을 통해 그곳을 점령하여 농경지나 얻을 것이지 뭐하러 열대지방의 사람들이 머나먼 추운지방인 북경으로 쳐들어가는 것인가?
일본의 가식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애초에 조선을 점령하여서 그후에 명나라를 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임진왜란 이전만해도 일본은 조선의 해안가에 몰래 침략해서 무고한 백성들을 죽이고 쌀을 훔치고 조선의 군대가 오기전에 달아나는 해적에 불과한 족속들이었다.
임진왜란때 倭人들이 조선 팔도의 대부분을 손에 넣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아니, 오히려 우리가 먼저 일본을 치자는 설이 나왔을 정도였다.
하지만 일본은 더이상 옛날의 해적이 아니었다.
서양문물을 받아들이고 그 서양문물중에 강력한 전쟁무기로 쓰인 '조총'을 받아들였다. 단지 조총 때문에 우리는 임진왜란 초기에 저 평안도 함경도지역까지 밀려났는가?
현존하는 우리의 활은 사냥용 화살이다. 경기할때는 145m거리의 과녁을 5개의 화살을 쏘아 누가 더 많이 맞혔는가를 겨룬다. 군대용 화살은 현재 전하지 않는다. 군대의 화살은 그보다 몇배는 더 멀리 나갔다.
조총의 유효사거리는 100m정도 밖에 안된다.
게다가 조선은 당시의 과학기술 치고는 화약무기들이 굉장히 발전되어있었다. 무기의 성능만 가지고 본다면 조선의 압승이다.
하지만 그걸로는 충분치 않다.
그렇다면 조선은 왜 졌는가?
비록 변방지역에는 전투가 잦았으나
내륙지방은 200년간의 평화를 누린다.
조선의 무기고는 관리를 안해서 무기들이 모두 녹이 쓸었고 군사들은 훈련을 안했다
임진왜란이 일어날 것을 예견한 학자들이 있었으나
당파싸움에 휘말려있던 정부는 요망한 소리라고 그런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백성들마저도 평화롭게 살고싶은던 바램대로 자신이 더 마음이 안심이 가는 쪽의 이야기를 믿고싶은 심정때문이 그것을 믿었던 것이다.
왜가 동래에 상륙하자 모든 봉화대에 불이 다섯개가 피어 오르고 조선팔도의 백성들은 200년간 난을 겪어보지 못하다가 통곡을 한 것이다. 대부분의 전투가 속수무책이었다.
다행히도 이순신, 김덕령, 곽재우, 김응서 등과같은 불세출의 영웅들이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내어 패망만은 막았다. 안타깝게도 우리 가문은 장군가문이지만 임진왜란 당시에는 글읽는 선비로 업을 전환하였었다. 그래서 나의 직계조상은 임진왜란당시의 영웅은 없다.
선조는 저 멀리 평안도로 피난을 갔다 강원도는 산골이지만 왜군에게 들키면 답이 없기에 평안도에 있는국경으로 가서 명나라에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당시 명나라는 조선과 일본이 같이 손을잡아 명나라를 치려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기때문에 구원병을 요청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다행히도 전설로 전해져서 진위여부는 알수없지만 여러 외교관들의 노력의 결실로 명나라 조정에서는 "명나라를 치려는 왜군을 막아 싸웠으니, 의리를 지켜야한다"는 논리로 명나라는 구원병을 보내주었다.
임진왜란은 조선, 명 연합군의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조선이 훈련을 하지않고 무기고의 무기들이 녹슬게 한 것에 대한 피해는 막대하였다.
왜군에 의해 코없이, 귀없이 사는 사람들이 많았고 몇년간 농사를 짓지않아 땅은 황폐해 졌다. 신분을 증명하는 문서가 많이 사라져 양반들이 조선 인구의 80%이상을 차지하게 된 것도 이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내가 왜 이 이야기를 하는가?
최근에 일어난 군대에서의 몇가지 안좋은 일이 있었다. 내부에서 벌써 문제가 있는데 아무리 우리의 무기가 뛰어나도 그렇지, 군대가 악행을 세습하는 곳인가?
우리에게 뛰어난 탱크와 자주포등이 있지만 50년전의 총이라고 사람을 죽일수 없는 총이겠는가? 전쟁의 승패는 무기의 성능으로 결정하는게 아니라 사람의 결단으로 결정되는 것이다.
서로 헐뜯고 비난하는데 전쟁에서 상관의 명령을 따르고 싶겠는가?
강태공의 육도에 이런말이 있다
"말에서 내려서 걷고 비와도 비를 막는 도구를 쓰지않으며, 밥도 졸병들과 같이 먹으면 병사들은 목숨을 걸고 따를 것입니다."
또 요임금이 거친기장밥을 먹고 비단옷이 아닌 삼베옷을 입어서 백성들이 그 검소함을 좋아하였다는 말이 있다.
상관에게 버릇없이 대들고 그러는 것도 문제지만
아랫사람에게 학대를 하는 것도 문제이다.
윗사람 되는 자들은 한번 깊이깊이 생각해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