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전 남편과 저는 8개월정도 연애를 했습니다. 시부모님과 남편이 원래 사이가 좋지 않아 부모님께도 도움받지 못하고, 취업준비중이라 연애기간동안 남편이 저에게서 빌려가 쓴 돈이 천오백만원, 결혼식 끝나자마자 카드 청구서가 팔백만원. 이런 것을 양쪽 부모님 모르신채로 상견례를 했습니다. 시댁이 미국이라 한국에 나오신 시어머님과 이모님들만 인사하고 한국에서의 결혼 날짜를 잡았습니다. 결혼식을 한국에서 , 미국에서 한번씩 하기로 했습니다. 혼수 얘기가 나오다보니 돈 얘기가 나왔습니다. 양가 부모님 반대하시고, 결혼얘기 없던 걸로 하자고 하셨습니다. 이거 돈때문에 서로 코가 끼어서 하는거 아니냐고. 그래도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앞으로 잘 살면 되지 않겠냐면서 양가 부모님을 설득했습니다. 결혼식전에도 파란만장했습니다. 예물때문에, 예단때문에, 이바지때문에.. 계속해서 문제가 일어났고, 결국 이바지음식은 두번이나 준비해야했습니다. 이렇게까지 결혼을 시켜야하며 속상해하시는 친정부모님, 우리 집안을 어떻게 보길래 하며 속상해하시는 시댁부모님. 결혼을 하는 우리 당사자도 서로가 미워 보일정도로 너무 힘들게 결혼했습니다. 제주도로 신혼여행가서 현금이 달랑 30만원 있더군요. 그것도 남편이 비행기 마일리지가 있어서 제주도로 갔던 거였는데, 호텔에 숙박하기엔 너무 부족한 돈이었습니다. 민박집 잡고, 3일 내내 비가 쏟아지는 신혼여행을 한숨과 슬픔으로 지내고, 신랑은 악몽까지 꾸면서 힘들게 여행하였습니다. 평생에 한번 달콤해야하는 신혼여행이 그렇게 진흙탕에 빠진 운동화마냥 더러운 기분일줄이야. 두달후 미국 시댁에 들어갔습니다. 남편의 군대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한국에 있을순 없었습니다. 당장에 왜 왔냐고 호통치시는 부모님, -너희 때문에 손님같이 가서 아들 결혼식 보고 오는 부모가 되었다. -미국서 했으면 부조금이 얼마가 들어오는데, 그것도 다 날렸다. 거의 매일 그런 얘길 들으면서 지냈습니다. 그동안 우리때문에 많이 속상하셨구나 하며 반성하기도 하고, 때론, 다른집에서 청첩만 들어와도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게 되고. 그래도 제 나름으로는 집안 분위기를 바꾸고자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그렇게 6개월, 근데 그게 모두 허사였고, 남편과 부모님은 계속 평행선만 그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한국에 두고온 카드빚때문에 마음이 무거웠고, 계속해서 이자는 늘어갔습니다. 남편은 외국으로 취업을 나가고, 저는 한국 친정으로 들어갔습니다. 8백만원 카드 빚중에 2백은 저의 돈으로 막았었지만, 6백만원은 계속해서 불어나고 있었기에 서로 열심히 해서 빚청산하고 자리를 잡자는게 저희 목표였습니다. 한국에서 저는 이곳저곳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카드빚 정리를 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친정으로 들어온 저때문에 친정부모님들 한숨소리가 나날이 커져갔습니다. 게다가 남편도 외국취업했지만, 월급도 제대로 못받고 국제미아가 되는 지경이었습니다. 친정에서는 저도 눈치밥을 먹는 신세였기에 오라는 말도 못했습니다. 남편은 결국 모두 접고, 친정으로 들어왔습니다. 친정에서 2개월을 지내는 동안 한국에서의 취업을 다시 준비해야했습니다. 수입도 없이 이리저리 술로 전전하는 사위가 곱게 보일리 만무한 울 친정엄마의 호통과 욕설에 남편이 상처를 많이 받았습니다. 결국 2개월만에 집을 나가 일주일을 연락이 없는 남편을 저는 더이상 감당하지 못할거라 생각하고 수소문 끝에 연락하여 이혼하자 하였습니다. 그동안은 남편의 레파토리-이혼하자-였는데, 내가 하니까 왠지 끝장일거 같았습니다. 남편은 칼같은 성격이라 이혼하자면 할거 같아 제가 더 두려웠습니다. "당신 지금 나가면 나 못볼줄 알아(제발 가지마..), 이혼하자.위자료 1억원 내놓고가.(제발 이혼얘기하지마.)" 사랑하면서도 마음속에 없는 말을 하고, 내가 이렇게 힘든데 잡아주지 않고 달아나버리는 남편을 원망하고 미워했습니다. 굳게 마음먹고, 한달동안 연락을 끊었습니다. "나만이라도 강해져야한다" 마음 편할리 없는 제 마음을 다잡느라 다짐하고 또 다짐하면서 연락을 끊었습니다. 근데 그때 남편에게 상처가 되었나봅니다. 요즘도 술먹고 들어와서 그 얘길 하면서 독한년이라 합니다. 남편이 지방에 취업 되었다고 메일을 받았습니다. 한번 만나야 되지 않겠냐고, 오랫만에 만나 서먹하고 어색한 분위기로 있다가 서로 티격태격 싸우고, 상처주고. 우연히 식당에서 남편의 구두를 보았을때 머릿속이 멍해지고,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노가다판에 나갔었다고 하더니만, 구두에 하얗게 시멘트먼지를 얹은채였습니다. 내가 김밥집 아르바이트를 하는건 견딜수 있어도, 남편이 그러고 다니는 건 도저히 볼수 없었습니다. 그러고 사는 남편이 밉고, 그러고 사는 내가 참 많이 미웠습니다. 눈물도 매말라, 한숨만 나왔습니다. 그날 이후 어색하게 엉성한 화해를 하고, 지방으로 떠나보냈습니다. 전화와 이메일로 소식을 전하면서 애틋하게 느껴지고, 난 다시한번 이사람을 사랑하는걸 알았습니다. 얼마후 해외지사로 파견근무 신청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먼데서 혼자 고생할텐데, 어떻게 해야 하는건지 알지도 못한채 또다시 해외로 떠나보냈습니다. -3개월정도후에 자리잡으면 부를께. 라는 말을 남긴채 남편의 월급이 한달한달 통장으로 들어오는걸 보고, 고마움과 그리움에 울던 날도 있었습니다. 돈이 카드빚을 다 갚고도 이제 모여지기까지 했습니다. 3개월쯤 되던 어느날, 남편이 한국일 정리하고 들어오라고 했습니다. 저는 두말도 않고 갔습니다. 물론 저의 일도 있었고, 친정식구들, 친구들, 선후배들.. 모두에게 못내 아쉬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두번째 이별은 그리 슬프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해외지사 파견자이기에 집과 자동차를 받아 쓰고 있었지만, 그나라 치안도 안좋고, 여러 불편한 것을 참고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혼자 쓸쓸히 지내던 남편을 보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남편의 단점이랄까, 그중 한가지.. 결정하고 얘기하기. 상의란 없습니다. 미국에 돌아가 사업을 할 생각이랍니다. 보름만에 미국 시댁으로 들어갔습니다. 왜 또 왔냐, 물론 반기지 않는 시부모님과 다시 함께 살아야했습니다. 말도 설고, 사람도 설고.. 그야말로 남편만 믿고 따라왔습니다. 항상 바쁜 남편과 항상 외로운 나..대화도 없고, 살갑게 지내지도 못했습니다. 계속해서 이틀에 한번꼴로 싸우고, 이혼하자는 남편. 결혼전 돈때문에 계속해서 마음에 짐을 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저대로 시부모님 눈밖에 나고, 힘든 나날이었습니다. 사업을 계획하고 준비하느라 한달, 두달 수입도 없이 지내면서 가지고 왔던 돈은 슬슬 녹아없어지고, 3개월만에 딱 떨어졌습니다. 빚을 얻어서 생활비 쓰면서도, 주변에서 안되는 사업이니 그만두라는 말에도 전혀 아랑곳 않고, 계속해 준비하더니 이제 8개월. 다음달에 드디어 수입이 있을 예정이라고 참 좋아라했습니다. 이제 빚도 다 갚고, 돈모아 살수 있을거라고 둘이서 참 좋아했었습니다. 그렇게 좋아라 했던거 희망을 안고 살자 했던것이 불과 이틀전이었습니다. 그러나, 어제밤 술을 먹고 들어온 남편.. 그리 취하지도 않고 아침 6시에 들어왔습니다. 두서없이 떠들기에 술이 취해서 그런가했는데, 날보고 멀쩡하게 얘기합니다. -난 널 사랑한 적 없고, 사랑하려고 많이 노력했지만, 잘 안된다. 이제 날 놔줘라. -넌 너의 갈길, 난 나의 갈길 가자. 이렇게 살면 둘다 불행해진다. -난 널 믿을 수가 없다. 도저히 안되겠다. -난 그동안 너의 천오백만원의 노예였다. 돈벌면 당장 갚아줄꺼다. 그동안 술먹으면 이런 얘길 간혹 한적이 있고, 술깨면 기억이 안난다기에 그냥 무시하고 지내왔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멀쩡하게 나한테 얘기를 하는데 기가 막히고 환장할 노릇이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걸 왜 모르냐고 물으니까, 진심으로 느껴지지 않는답니다. 서로 잘났다고 한참을 말다툼을 하다가 제가 격분하여 약상자를 꺼내들고 그안에 든 모든 약을 입에 다 털어넣기 시작했습니다. 이제껏 사랑하던 사람이 날 사랑하지 않는다니 배신감과 상실감은 이루 말할수 없었습니다. -쌩쇼하네. 너 별거 다 한다. 약을 다 먹고, 국제전화를 돌렸습니다. 한국시간 토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전화를 모두 안 받습니다. 할머니댁에 전화해서 뜬금없이 건강하게 안녕히 계시라고 하고 끊었습니다. 여기 시간은 일요일 오전. 어디라도 나가고 싶었습니다. 그대로 있다가는 내 목과 남편의 목을 조르고 말것 같았습니다. 마침 집에 와 있던 형님(남편의 누나)에게 나간다고 얘길하고 나갔습니다. 허우적대듯 길로 나섰는데 갈곳이 없었습니다. 물론 오라는 곳도 없습니다. 무작정 근처 한인교회로 들어가 앉았습니다. 예배가 시작하려면 아직도 먼 시간이었습니다. 꿈을 꾸는 듯 했습니다. 뭔가 잘못된 꿈.. 내가 원치 않은 꿈. 머릿속이 온통 새하얗습니다. 마치 새하얀 페인트를 뒤섞듯이 머릿속이 물결칩니다. 예배가 끝난후 전화방을 찾아 친구에게 전화했습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전화했다가는 한바탕 눈물을 쏟고 나서야 진정이 되는듯했습니다. 근처 공원을 몇바퀴돌다가 단란한 가족들이 지나갈때마다 가슴이 저렸습니다. 먹은 약들이 뭔진 몰라도 속이 울렁거려 걸을수가 없었습니다. 다시 허우적허우적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남편은 여전히 자고 있었습니다. 나보다 더 사랑한다는 강아지를 안고. 이 힘든 하루, 길기만 했습니다. 여전히 꿈인지 생시인지.. 제발 깨어나길.. 지금도 남편은 외출중입니다. 이제는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지도, 미워하지도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답답합니다. 나는 아직도 남편을 사랑하는데, 남편의 이혼요구를 들어줘야하는 건지. 타지에서 외롭게 가슴에 묻은 얘기입니다. 기나긴 저의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언부탁드립니다.
이 남자의 여자로 살기
결혼전 남편과 저는 8개월정도 연애를 했습니다.
시부모님과 남편이 원래 사이가 좋지 않아 부모님께도 도움받지 못하고, 취업준비중이라
연애기간동안 남편이 저에게서 빌려가 쓴 돈이 천오백만원,
결혼식 끝나자마자 카드 청구서가 팔백만원.
이런 것을 양쪽 부모님 모르신채로 상견례를 했습니다.
시댁이 미국이라 한국에 나오신 시어머님과 이모님들만 인사하고
한국에서의 결혼 날짜를 잡았습니다.
결혼식을 한국에서 , 미국에서 한번씩 하기로 했습니다.
혼수 얘기가 나오다보니 돈 얘기가 나왔습니다.
양가 부모님 반대하시고, 결혼얘기 없던 걸로 하자고 하셨습니다.
이거 돈때문에 서로 코가 끼어서 하는거 아니냐고.
그래도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앞으로 잘 살면 되지 않겠냐면서 양가 부모님을 설득했습니다.
결혼식전에도 파란만장했습니다.
예물때문에, 예단때문에, 이바지때문에.. 계속해서 문제가 일어났고,
결국 이바지음식은 두번이나 준비해야했습니다.
이렇게까지 결혼을 시켜야하며 속상해하시는 친정부모님,
우리 집안을 어떻게 보길래 하며 속상해하시는 시댁부모님.
결혼을 하는 우리 당사자도 서로가 미워 보일정도로 너무 힘들게 결혼했습니다.
제주도로 신혼여행가서 현금이 달랑 30만원 있더군요.
그것도 남편이 비행기 마일리지가 있어서 제주도로 갔던 거였는데,
호텔에 숙박하기엔 너무 부족한 돈이었습니다.
민박집 잡고, 3일 내내 비가 쏟아지는 신혼여행을 한숨과 슬픔으로 지내고,
신랑은 악몽까지 꾸면서 힘들게 여행하였습니다.
평생에 한번 달콤해야하는 신혼여행이 그렇게 진흙탕에 빠진 운동화마냥 더러운 기분일줄이야.
두달후 미국 시댁에 들어갔습니다.
남편의 군대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한국에 있을순 없었습니다.
당장에 왜 왔냐고 호통치시는 부모님,
-너희 때문에 손님같이 가서 아들 결혼식 보고 오는 부모가 되었다.
-미국서 했으면 부조금이 얼마가 들어오는데, 그것도 다 날렸다.
거의 매일 그런 얘길 들으면서 지냈습니다.
그동안 우리때문에 많이 속상하셨구나 하며 반성하기도 하고,
때론, 다른집에서 청첩만 들어와도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게 되고.
그래도 제 나름으로는 집안 분위기를 바꾸고자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그렇게 6개월, 근데 그게 모두 허사였고, 남편과 부모님은 계속 평행선만 그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한국에 두고온 카드빚때문에 마음이 무거웠고, 계속해서 이자는 늘어갔습니다.
남편은 외국으로 취업을 나가고, 저는 한국 친정으로 들어갔습니다.
8백만원 카드 빚중에 2백은 저의 돈으로 막았었지만, 6백만원은 계속해서 불어나고 있었기에
서로 열심히 해서 빚청산하고 자리를 잡자는게 저희 목표였습니다.
한국에서 저는 이곳저곳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카드빚 정리를 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친정으로 들어온 저때문에 친정부모님들 한숨소리가 나날이 커져갔습니다.
게다가 남편도 외국취업했지만, 월급도 제대로 못받고 국제미아가 되는 지경이었습니다.
친정에서는 저도 눈치밥을 먹는 신세였기에 오라는 말도 못했습니다.
남편은 결국 모두 접고, 친정으로 들어왔습니다.
친정에서 2개월을 지내는 동안 한국에서의 취업을 다시 준비해야했습니다.
수입도 없이 이리저리 술로 전전하는 사위가 곱게 보일리 만무한 울 친정엄마의 호통과 욕설에
남편이 상처를 많이 받았습니다.
결국 2개월만에 집을 나가 일주일을 연락이 없는 남편을 저는 더이상 감당하지 못할거라 생각하고
수소문 끝에 연락하여 이혼하자 하였습니다.
그동안은 남편의 레파토리-이혼하자-였는데, 내가 하니까 왠지 끝장일거 같았습니다.
남편은 칼같은 성격이라 이혼하자면 할거 같아 제가 더 두려웠습니다.
"당신 지금 나가면 나 못볼줄 알아(제발 가지마..),
이혼하자.위자료 1억원 내놓고가.(제발 이혼얘기하지마.)"
사랑하면서도 마음속에 없는 말을 하고, 내가 이렇게 힘든데 잡아주지 않고 달아나버리는
남편을 원망하고 미워했습니다.
굳게 마음먹고, 한달동안 연락을 끊었습니다. "나만이라도 강해져야한다"
마음 편할리 없는 제 마음을 다잡느라 다짐하고 또 다짐하면서 연락을 끊었습니다.
근데 그때 남편에게 상처가 되었나봅니다. 요즘도 술먹고 들어와서 그 얘길 하면서 독한년이라 합니다.
남편이 지방에 취업 되었다고 메일을 받았습니다. 한번 만나야 되지 않겠냐고,
오랫만에 만나 서먹하고 어색한 분위기로 있다가 서로 티격태격 싸우고, 상처주고.
우연히 식당에서 남편의 구두를 보았을때 머릿속이 멍해지고,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노가다판에 나갔었다고 하더니만, 구두에 하얗게 시멘트먼지를 얹은채였습니다.
내가 김밥집 아르바이트를 하는건 견딜수 있어도, 남편이 그러고 다니는 건 도저히 볼수 없었습니다.
그러고 사는 남편이 밉고, 그러고 사는 내가 참 많이 미웠습니다. 눈물도 매말라, 한숨만 나왔습니다.
그날 이후 어색하게 엉성한 화해를 하고, 지방으로 떠나보냈습니다.
전화와 이메일로 소식을 전하면서 애틋하게 느껴지고, 난 다시한번 이사람을 사랑하는걸 알았습니다.
얼마후 해외지사로 파견근무 신청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먼데서 혼자 고생할텐데, 어떻게 해야 하는건지 알지도 못한채 또다시 해외로 떠나보냈습니다.
-3개월정도후에 자리잡으면 부를께. 라는 말을 남긴채
남편의 월급이 한달한달 통장으로 들어오는걸 보고, 고마움과 그리움에 울던 날도 있었습니다.
돈이 카드빚을 다 갚고도 이제 모여지기까지 했습니다.
3개월쯤 되던 어느날, 남편이 한국일 정리하고 들어오라고 했습니다.
저는 두말도 않고 갔습니다.
물론 저의 일도 있었고, 친정식구들, 친구들, 선후배들.. 모두에게 못내 아쉬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두번째 이별은 그리 슬프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해외지사 파견자이기에 집과 자동차를 받아 쓰고 있었지만,
그나라 치안도 안좋고, 여러 불편한 것을 참고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혼자 쓸쓸히 지내던 남편을 보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남편의 단점이랄까, 그중 한가지.. 결정하고 얘기하기. 상의란 없습니다.
미국에 돌아가 사업을 할 생각이랍니다.
보름만에 미국 시댁으로 들어갔습니다.
왜 또 왔냐, 물론 반기지 않는 시부모님과 다시 함께 살아야했습니다.
말도 설고, 사람도 설고.. 그야말로 남편만 믿고 따라왔습니다.
항상 바쁜 남편과 항상 외로운 나..대화도 없고, 살갑게 지내지도 못했습니다.
계속해서 이틀에 한번꼴로 싸우고, 이혼하자는 남편.
결혼전 돈때문에 계속해서 마음에 짐을 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저대로 시부모님 눈밖에 나고, 힘든 나날이었습니다.
사업을 계획하고 준비하느라 한달, 두달 수입도 없이 지내면서
가지고 왔던 돈은 슬슬 녹아없어지고, 3개월만에 딱 떨어졌습니다.
빚을 얻어서 생활비 쓰면서도,
주변에서 안되는 사업이니 그만두라는 말에도 전혀 아랑곳 않고,
계속해 준비하더니 이제 8개월.
다음달에 드디어 수입이 있을 예정이라고 참 좋아라했습니다.
이제 빚도 다 갚고, 돈모아 살수 있을거라고 둘이서 참 좋아했었습니다.
그렇게 좋아라 했던거 희망을 안고 살자 했던것이 불과 이틀전이었습니다.
그러나, 어제밤 술을 먹고 들어온 남편.. 그리 취하지도 않고 아침 6시에 들어왔습니다.
두서없이 떠들기에 술이 취해서 그런가했는데, 날보고 멀쩡하게 얘기합니다.
-난 널 사랑한 적 없고, 사랑하려고 많이 노력했지만, 잘 안된다. 이제 날 놔줘라.
-넌 너의 갈길, 난 나의 갈길 가자. 이렇게 살면 둘다 불행해진다.
-난 널 믿을 수가 없다. 도저히 안되겠다.
-난 그동안 너의 천오백만원의 노예였다. 돈벌면 당장 갚아줄꺼다.
그동안 술먹으면 이런 얘길 간혹 한적이 있고, 술깨면 기억이 안난다기에
그냥 무시하고 지내왔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멀쩡하게 나한테 얘기를 하는데 기가 막히고 환장할 노릇이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걸 왜 모르냐고 물으니까, 진심으로 느껴지지 않는답니다.
서로 잘났다고 한참을 말다툼을 하다가 제가 격분하여 약상자를 꺼내들고 그안에 든 모든
약을 입에 다 털어넣기 시작했습니다.
이제껏 사랑하던 사람이 날 사랑하지 않는다니 배신감과 상실감은 이루 말할수 없었습니다.
-쌩쇼하네. 너 별거 다 한다.
약을 다 먹고, 국제전화를 돌렸습니다.
한국시간 토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전화를 모두 안 받습니다.
할머니댁에 전화해서 뜬금없이 건강하게 안녕히 계시라고 하고 끊었습니다.
여기 시간은 일요일 오전. 어디라도 나가고 싶었습니다.
그대로 있다가는 내 목과 남편의 목을 조르고 말것 같았습니다.
마침 집에 와 있던 형님(남편의 누나)에게 나간다고 얘길하고 나갔습니다.
허우적대듯 길로 나섰는데 갈곳이 없었습니다. 물론 오라는 곳도 없습니다.
무작정 근처 한인교회로 들어가 앉았습니다. 예배가 시작하려면 아직도 먼 시간이었습니다.
꿈을 꾸는 듯 했습니다. 뭔가 잘못된 꿈.. 내가 원치 않은 꿈.
머릿속이 온통 새하얗습니다. 마치 새하얀 페인트를 뒤섞듯이 머릿속이 물결칩니다.
예배가 끝난후 전화방을 찾아 친구에게 전화했습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전화했다가는 한바탕 눈물을 쏟고 나서야 진정이 되는듯했습니다.
근처 공원을 몇바퀴돌다가 단란한 가족들이 지나갈때마다 가슴이 저렸습니다.
먹은 약들이 뭔진 몰라도 속이 울렁거려 걸을수가 없었습니다.
다시 허우적허우적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남편은 여전히 자고 있었습니다. 나보다 더 사랑한다는 강아지를 안고.
이 힘든 하루, 길기만 했습니다. 여전히 꿈인지 생시인지.. 제발 깨어나길..
지금도 남편은 외출중입니다.
이제는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지도, 미워하지도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답답합니다.
나는 아직도 남편을 사랑하는데, 남편의 이혼요구를 들어줘야하는 건지.
타지에서 외롭게 가슴에 묻은 얘기입니다.
기나긴 저의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언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