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니루봉다리

미시사가2004.01.05
조회32,214

요즘들어 가끔씩 만나게 되는 한국 사람들을 보면서

참 많은 사람들이 고국을 떠나 낯선 이국에서의 새 삶을 사는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불과 3~4년전에만 해도 내가 사는 동네에 한국 사람이라곤 한 두어집 있을까 말까였는데

엊그제 작은 아이 학교 open house 엘 가보니  아마 족히 여섯명은 넘게 한국 학생들이 있는걸 보니 많이 늘긴 했나보다.

요즘에 이민을 오거나 유학을 오는 사람들을 보면

여기에 살고 잇는 나보다 더 많은 지식과 정보를 가지고 있어서 가끔은

여기 살고 있는 난 도데체 몰 하고 있었나 하는 한심함까지도 들게 될때가 있다..

 

여기 캐나다에 이민 오기 훨씬전에...

우리부부는 미국에서 잠시 살았던 적이 있었다...

미국에 대한 정보가 전무인 우리한테..(미국이란 그냥 잘 사는 나라 큰나라 라고만 알고 있었음) 

특히 나한테는 매일이 실수였고 해프닝이었다.

 

그땐 지금처럼 많은 정보를 구할만한 인터넷도 없었고..

또 영어실력 역시 중고등학교때 배운 문법실력에... 대학때 폼으로 다닌 영어학원 실력이 전부였던

정말 아무것도 없어서,  어쩌면 무식해서 용감했는지...몰라도

난 그렇게 막 태어난 우리 큰애를 데리고 과감하게 미국행 비행기를 탔었다.

 

미국엔 사기꾼 많대.. 조심해야해...

어리숙하게 보이지 말구... 정신 똑바로 차리고...

그저 조심해.. 뭐든지.... 제발.....

그리고 어디어디 가면 엄마 친구가 .. 아빠 친구가 있으니까

무슨 일 생기면 전화해서 물어보고 도와달라고 해라....

 

라는 부모님들의 걱정과 부모님 친구분들의 전화번호와 주소가 적힌 종이가

우리부부의 미국살이 정보 전부였었다.

우리가 도착해서 살아야할 아파트에 먹을거라곤 한국에서 가져온 고추장 볶은거.. 김... 뭐 그런거와

공항에 내려 아는 분 도움으로 LA 한인 마켓에서 대충 장을 봐온게 전부 였었다..

미국에.. 그것도 한국 사람이라곤 유학생이 몇명 밖에 없는 작은 도시에 살아야 했던 우리에게

 남편은 내 걱정이 태산이었다.

더구나 도착하고 바로 이틀뒤에 학교로 가야만 했던 남편에겐 6개월 딸아이와 난 큰 걱정이 아닐수 없었다.....

 

학교가는 첫날 남편은 내가 불안해 보이던지...

 

나 없는 동안 집에 가만히 있어...

이따가 학교 다녀와서 나랑 나가면 되니까 괜히 혼자 나가지말구....

얼릉 올께....

 

아라써... 걱정하지마..

 

이렇게 남편을 안심시켜 학교에 보냈지만...

호기심이 많은 나한테 남편이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까지 내 엉덩이는 좀이 쑤셔 가만 있질 못했다.

 정말 엄청시리 길게만 느껴졌었다,

 

그래... 오기전에 살짝 나갔다 오면 모를거야..

그리고 뭐 별일이야 있겠어...

집근처인데..몰,,,,

 

그때 난 정말 과감했고 용감했었다...

겨우 6개월짜리 딸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드디어 새로운 세상으로의 한발을 내딛였다.

 

아파트 현관만 나서도 벅적벅적.. 시끌시끌...

불과 50미터도 안되는 거리에 상가들이 즐비했던 한국과는 달리

 지나가는 자동차 외엔 사람들을 별로 볼수도 없었고 정말 조용하고 평화롭게만 보였다.

늘 영화에서나 보던 이쁘장하게 생긴 집들...

커다란 가로수가 길 양옆으로 펼쳐져 있는 길들..

그 자체만으로도 마치 내가 영화속 한 장면의 주인공이 된듯 한 착각속에 걷던중...

어제 남편과 차를 타고 지나쳐오면서 봣던 마켓이 생각이 났었다..

차로 금방이었으니까 별로 안멀거 같기도 하고...

또.... 쇼핑이... 너무 하고 싶었다..

 

마자... 집에 잼도 없고 버터도 없는데...라는

핑계거리를 만들어서는 난 그 마켓으로 향했다..

차로 볼땐 가까웠는데 가도 가도 마켓은 보이질 않고 ..

에이... 그냥 집에 가자... 하고 돌아서려는데 저쯤에서 마켓이 보이는거였다..

걸음이 빨라졌다..

 

마켓에 도착....

입에 쩌~~억 벌어졌다

 

와~~~~~~~~딥따리 크다...

라고 큰 소리가 목까지 쑥!  나오는걸 꾹 참고 안으로 들어갔다..

 

무슨 물건들이 이렇게 많은거야....

남대문 도깨비 시장에서 조금씩 보던 미제 물건들은 정말 새발에 피도 아니었다..

사실 그때만해도 한국엔 지금처럼 이마트 나 킴스클럽이나 하는 대형 매장이 없었을때였고

겨우 백화점 지하 마켓이나 아파트 상가의 슈퍼마켓이 전부였던 나에겐

이래서 미국이 큰나라 인가봐 하는 단순한 생각까지 들게 만들 정도로 커다란 큐모의 마켓이었다.

 

애초에 잼하고 버터만 사가지고 나오겠다고 했던것이

처음 보는 물건들이 잔뜩 쌓여있는 그렇게 큰 마켓에서 달랑 잼하고 버터만 사가지고

나온다는건 어린아이손에 아이스크림 쥐어주고서  딱 한입만 먹으라고 하는,,,,,

정말 견디기 힘든 고행에 극기 훈련과도 같은거였을거다..

 

이건 몬지...

요건 어떻게 먹는건가...

저건 무슨 맛이 나는걸까....

 

바구니 안에 하나만  하나만 더 하고 넣은게 그만 열개가 넘고도 남았다..

집에까지 들고갈 일이 걱정이지만....그래도 비닐봉지 두개로 나눠 담아

 유모차  양쪽 손잡이에 걸고 가면 문제 없겠다 생각하고선 계산대 앞에 섰다...

 

노랑머리에 괜히 옆에 있기만 해도 주눅들만하게 이쁘장하게 생긴 백인여자가

HI~~~~

인사를 하자마자 나에게  또 몬가를  *&$#%$^  영어루  물어봤는데... 난 통 알아들을수가 없었다..

 

pardon me???

 

라고  내가 되묻자 그여자는 나에게 또박또박 이렇게 다시 물었다..

 

plastic or paper???

 

paper  는 알아듣겠는데 plastic 은 도데체 몰 말하는건지... 통 알수가 없었다..

플라스틱 통을 사라는거야... 아니면 사은품으로 플라스틱통을 준다는거야...???

 

우물쭈물  머뭇거리기엔 내가 너무 촌스러운거 같아서

난 그냥 뒤에 들리던 paper 라는 말로 대답을 했다.(사실 이게 맞는건지도 모른체)

 

paper..(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그러자  그여자 옆에 있던 다른 여자가 계산된 내 물건들을 종이 봉투에 담는거였다..

 

어~~!!!

저 봉투는 그...뭐냐... 영화나 광고에서 보면 주인공들이 시장에서 쇼핑을  하면

멋지게 봉투를 옆에 끼고 그 종이 봉투위로는 바케뜨 빵이 혹은 길쭉한 샐러리가

삐죽이 나와있던... 바로 그 종이 봉투....

 

돈을 치루고 물건을 받아 들은 나에게 그 백인 여자는

have a nice day!!!!!

라고 인사를 하는데... 그 말조차도 그당시 나에겐 영화의 한 대사처럼 들렸었다.

 

야아~~~~~~~~~~

오늘 나 완벽한 영화 찍는거네...

폼~~죽이는데....

 

라는 생각이 든지 바로 일분도 채 안지나서 내가 출연한 그 영화는 이미 종영 되었고

그 다음부턴 바로 인간 다큐멘터리 .. 인간의 한계에 도전한다..내지는 도전!! 체력 어디까지인가...

뭐 그런 프로그램의 주인공이 되어있었다...

 

한손으론 그 멋진 종이에 담긴 물건들을 부여잡고

한손으로 유모차를 밀어가면서....

정말 찔찔 식은땀까지 빼가면서  어떻게 집까지 왔는지

정말 죽을만큼 고생했던 적이 있었다.

집에 와서 내가 얼마나 고생을 하며 물건을 사왔는지 남편한테 생생하게 전달하고 싶었지만..

했다가는 혼만 날거 같아서 입을 꾹 다물고 후들후들 거리는 팔만 연신 두들겨 댔던 기억이 났다..

 

그리고 난후 난 그 플라스틱 이 도데체 뭘까...정말 궁금했다.

이나라는 비닐봉지에 안남아 주는건가???

 한인 마켓에서는 분명 비닐 봉지에 담아줬는데...

도데체 알수가 없었다. 그 플라스틱의 정체를....

 

다음날 난  그 답을 얻기위해 학교에서 돌아온  남편을 꼬셔서 마켓에 갔었다.

가서 남들이 어떻게 하는가 자세히 눈여겨 보았더니...

비닐봉지를 달라고 할땐 플라스틱이라고 말하는걸 알아 냈다...

 

그 좋은 비닐봉지...(비니루봉다리) 의 원어는 바로 플라스틱 백 이라는걸 그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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