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굴곡 뒤에 행복 그리고 후회

영주시2014.12.02
조회379

한 4년전쯤에 적은 글인데 인터넷 뒤지다 보니까

있어서 올려봅니다........

 

 

 

 

내용이 좀 지루할 수 있을 만큼 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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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살아온 인생사이자 제가 시련속에서 느낀것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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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함이 어떤건지 절대 놓치면 안되는 것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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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내용은 지루하지 않을테니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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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22년동안 마음둘곳이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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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도 속시원하게 털어놓고 싶은데 그럴수 없어서 이렇게 적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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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심은 있어서 누군가와 대면하고 이런 속 마음 터놓을 자신도 없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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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이 너무 길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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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인척들에게 많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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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들이 제 글을 보지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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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두 살 터울에 동생이 있습니다 그때는 저와 동생 무지 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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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이였구요 저는 6학년 동생은 4학년 철없고 세상물정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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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모르는 개구쟁이였습니다. 부모님은 아주 힘든일을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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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큰아버지가 어업을 하셨는데 아버지는 젊었을때 큰 아버지의 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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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원으로 일을했습니다. 오랫동안 큰아버지에게 월급을 못 받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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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아버지가 어선을 받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어선을 받기로 한 기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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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남지 않았을때 큰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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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어선을 받아서 아버지가 직접 어업을 하셔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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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엄마란 사람이 그냥 못주겠답니다. 월급도 아주 오랫동안 못받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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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선을 제값을주고 사가라는 겁니다...그래서 아버지는 어쩔 수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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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선을 제값주고 사시고 그렇게 힘들게 어업을 하셨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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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엄마란 사람은 참...큰아빠와 저희 아버지는 나이차이가 15~20살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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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시는데 큰엄마가 일찍 시집와서 아버지와 아버지 아래 삼촌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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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 구박을 했다 합니다. 자신의 시어머니 앞에서는 천사가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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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삼촌들 앞에서는 악날한 여우같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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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선가게 사장이된 고양이같은 인간이 되어버린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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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일하는건 무지 힘든일이에요 제가 어렸을때 울면서 졸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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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항을 하실때 따라갔습니다...추운 겨울날 이였는데 큰 파도와 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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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불고 바닷물이 튀어 너무춥고 위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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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나이였지만 이렇게 힘들고 위험하게 살아가시는 부모님을 봤을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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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가슴이 너무나 아파왔습니다.....저와 동생 그리고 가족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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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일을 하시는 부모님은 너무 감사하고 존경스러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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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보면 부모 자식 사이에 당연한 이치라고 볼 수 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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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힘들게 일하시면서 집도사고 돈도 점점 모아가고 저희 가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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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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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은 정말 너무 정이 많은분들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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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길가에 가여운 사람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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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하시는 분이 셨습니다. 고향에 독거노인 두분이 같은 대문에 다른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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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계셨는데 어머니는 시간이 나시면 찾아가 음식도 해드리고 용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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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리고 외롭지 않게 해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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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참... 아버지의 어머니 저에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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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를 너무 사랑하셨나봅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10년도 더 지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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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할아버지가 어떤 할머니분과 같이 사시게 되었는데 새 할머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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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쌀쌀맞고 차갑게 대하셨습니다. 물론 아버지는 나쁜 사람이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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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자신의 어머니의 대한 그림움과 자신의 아버지에게 배신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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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끼신게 아닌가 생각드네요 아버지는 아픔이 있으 셨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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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너무 괴로워하시고 술을 많이 드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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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아버지는 할머니에게 자식들중 가장사랑을 받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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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정이 너무 많으시고 좋은 분이 셨지만 술을 드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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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분노를 억제하지 못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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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술드시면 어떤게 억울하고 분하신건지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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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집에 한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폭력성도 있엇고 이성을 잃으실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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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었습니다. 아버지가 그러실때마다 어머니와 저 동생은 아버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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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이 깨실때까지 다른곳에 가있어야 했습니다....아버지가 술이 깨실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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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몇 번의 아픔을 격어야 했지만. 어느 날 아버지가 그렇게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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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시던 술을 맥주조차 한모금 조차도 마시지 않으시고 평화롭고 화목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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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을 이끌어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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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때는 아무것도 몰라서 명절이면 너무 설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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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척들을 보고싶어서 새벽부터 큰집에가고 그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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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금은 명절에 혼자 있게되네요.....저도 어른이 되면서 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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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걸 알게 되었으니까요. 정말 가끔식 티비에서 가정불화 이혼 가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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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뉴스를 볼때는 이해를 못했습니다. 가족이란 참 행복하고 소중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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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혼을하고 싸우고 헤어져야 하는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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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은 저와 동생 그리고 부모님 서로를 우리가족을 사랑하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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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목했고 행복했습니다. 어느 날 항구에 갔다가 동생이 선착장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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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졌는데 아버지가 바로 물속에 뛰어들어 동생을 구하셨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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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너무 행복했어요 어찌본다면 아들을 구하는건 당연한 것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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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 순간 행복을 느끼고 사랑을 받고있고 아빠가 자랑 스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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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저희 가족의 행복을 오래 허락하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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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은 같은 날 사고로 저와 동생만 남겨두시고 이 세상을 떠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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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살이였던 저는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연락을 받고 동생을 잡고 아무말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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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펑 울었죠... 차마 동생에게 말을 할수 없었습니다...나보다 더 어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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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울면서 친인척 동네 주민분들이 소식을 듣고 저희 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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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이기 시작했어요... 잠시 후 차를타고 사고현장으로 가서 아버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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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에게 들려서 오시는 모습을 봤습니다... 힘이 없이 무기력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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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진 팔과 굽어진 몸....제가 알던 아빠의 모습이 아니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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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언제가 저희 가족을 지켜 주 실줄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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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저 낯선 아버지의 모습은 본 순간 꿈이길 바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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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꿈이고 싶었습니다. 부모님은 그렇게 구급차에 실려 장례식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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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구되셨고 저와 동생도 장례식장으로 향했습니다. 너무 슬프고 아무생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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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지 않고 힘든데 친가와 외가 식구들이 어떤이유에서 싸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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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유인지는 몰라도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장례식장인데 꼭 싸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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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는지 이게 친인 척들에게 받는 상처의 시작이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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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 오시는 분들이 상주인 저에게 눈물을 흘리시면 다독여 주실때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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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펑 울고싶었지만 저보다 두살 더 어린 동생이 더 슬퍼할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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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지는 눈물을 꼭 참고 밖에 나가서 울고 들어오곤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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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당이 안되는 이순간 부모님을 보내드리는 길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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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낯선 장래식장에서 빨리 빠져나오고 싶은 생각만 가득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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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흘러 간지도 모를 만큼 장례를 마치고 집에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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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가 어른들이 회의를 하셨습니다. 앞으로 저와 동생을 어떻게 할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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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중 누군가 저에게 물었습니다 누구와 살꺼냐고 전 어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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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슬퍼서 아무런 대답도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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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현실을 받아드리기 싫었고 부모님과 살고싶다고 하고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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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끼리 회의 하시고 저희집에 둘째 큰집식구들이 들어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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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봐주기로 했습니다. 지금 나에게 닥친 현실이 너무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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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 하고싶지 않았죠...부모님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 사는것도 싫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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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와 동생을 바라보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도 감당하기 힘든 지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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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피하고 싶었어요 세월이 약이라는걸 알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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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무정한 시간은 너무나 천천히 흘러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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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저와 동생을 가엽게 보는게 싫어서 철없이 컴퓨터 게임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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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외면했죠...게임을하면 슬픈 현실을 잠시남아 잊을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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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은 너무 슬프니까 게임은 죽어도 다시 살아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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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하면 그때 슬픈만큼 펑펑 한없이 울걸 그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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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너무나 그립고 슬프고 부모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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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면 가슴아프지만 눈물이 흐르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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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펑펑 소리내 울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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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 전 중학생이되고 슬픔은 조금씩 아물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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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초등학생때부터 운동선수를 했습니다.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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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원해서 했던 운동이 아니고 관둘 수도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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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선수 출신이시면 아시겠지만 운동시간도 엄청나고 강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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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하고 정신적 육체적으로 무지 힘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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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폭력도 엄청나죠 가르치기 위함이란 말은 포장지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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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 계시지 않으니 관두고 싶어도 관두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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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구에게도 말을 할 수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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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운동장소가 바뀌게 되면서 버스를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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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만 했습니다. 12km 이상 떨어진 곳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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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큰 아버지에게 버스비를 2~3천원씩 받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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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을 다녔는데 어느 날 큰 아버지가 안계셔서 큰엄마란 사람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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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비를 달라고 말했는데. 돈이 없다고 차비를 주질 않는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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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있는거 다 봤는데...화장대 위에도 보이고 가방에도 보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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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미칠 것 같았어요 자존심은 강해서 누구하테 돈 빌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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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을 안가버리면 코치에게 폭행당하고 정말 싫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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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엔 자존심 버리고 친한 친구들에게 차비를 빌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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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을 하러가게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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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에게 점점 저에게도 분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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쌓이기 시작했고 분노가 치밀어 올라 미칠 것 같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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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분노를 억누르면 참고 지냈는어요 같이 살면 살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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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불만과 큰엄마와의 마찰은 잦아 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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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 두분이 돌아가셔서 보험금도 작은돈은 아닐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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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선과 어구들 집에 기계들을 팔았을 돈도 적지 않았을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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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과 저에게 정부지원금도 50만원정도 매달 지급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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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무리 아낀다 하더라도 운동하러 가는데 차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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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줄때가 있고 동계훈련 휴가를 마치고 합숙소로 돌아갈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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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숙비가 없다며 주지않아 가지 못하면서 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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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을 관두게 되었습니다 저도 원해서 하던건 아니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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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합숙비를 주지않아 운동을 못하겠다고 코치에게 말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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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 죽일듯이 통화로 겁을주어 두려워 한겨울에 집앞까지 찾아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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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치를 피해서 무릎까지 쌓인 눈이 덮힌 산으로 도망도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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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 화장실에서 자기도하고 한달동안 도망 다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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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큰집은 음식점을 하는데 어느날 잘 다니고 있는 동생이 학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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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온다고 학원에서 전화가와서 동생에게 학원을 안가는 이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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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으니 큰엄마가 학원비를 주지 않았다 합니다. 그리고 그시간에 동생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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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를 자신들의 음식점 서빙을 보게했어요 정말 싫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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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인 나이에 중국집에서 서빙을 한다는게 너무 창피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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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을 다니는 동생을 학원비를 안주고 일하게하는 그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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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미칠 것 같았죠 길게는 아침부터 저녁 8시 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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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서빙일이 끝나고 용돈으로 5천원정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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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고 했지만 안주는 날이 많았어요 종일 일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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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큰아버지 큰어머니와 저희는 세대차이도 있고 다른 가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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였기에 생각과 개념 가치관의 차이는 분명 있었 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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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가 있어서 커진일도 있엇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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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치아 교정으로 초등학교 2학년쯤 부터 치아 교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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쭉 해왔습니다. 1년만 더하면 교정이 다되는데 큰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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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말도없이 치아교정을 중단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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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랬동안 돈들여 받아왔던 교정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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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 바다에서 고생하신 돈으로 받아온 교정 치료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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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하고싶다고 말을 꺼낼수가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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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 살아 계실때는 이쁜옷도 자주 사주시고 학교가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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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 앞에서 당당하고 잘 지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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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해 명절도 아니고 가끔 명절에 보여주기 식으로 값싼 옷을사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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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화 같은건 만원짜리 사주는게 다였습니다 신발 바닥이 떨어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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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 다니기도 했어요 그리고 학교에서 장학금이 나왔는데 사촌누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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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장학금으로 저와 동생 옷을 사줬습니다. 전 방에 있엇고 큰어머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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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오셨고 사촌누나랑 이야기 하는소릴 들으니 너무 화가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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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돈을 왜 저희 옷을 사줬냐고 사촌누나에게 큰어머니가 혼내 시는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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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받은 장학금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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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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쌓였던 제 감정들이 머리 끝까지 올라와 대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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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돈이 없냐고 부모님 보험금 선박 처분한돈 어구 처분한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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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지원금 다 어떻게 했냐고 따지니 다 빚갚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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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나와 버렸어요....그당시 부모님의 빚은 아버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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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분 보증서준 1000만원 정도가 다였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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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어른들이 하시는 이야기를 들으면 재밌고 모르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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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게되어서 좋아했거든요 그래서 부모님이 하시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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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들어서 대부분 다 알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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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은 외출했다가 집에 왔는데 큰어머니가 잠깐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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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자는거에요. 아침에 용돈 달라고 했다고 잔소리 할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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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기싫어서 전 방으로 들어왔는데 사촌형이 저보고 나오라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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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촌형이 왜그러냐고 묻길래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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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하는소리가 니들만 빼놓고 매형이랑 자기네 식구들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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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먹고와서 그거 때문에 그러냐는 겁니다 정말 기가 막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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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그들이 밥을먹었는지 뭐했는지 알지도 못했는데 그런말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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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제 얼굴을 벽으로 밀치고 눌렀습니다. 정말 눈물이 쏟아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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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말로 죽여 버리고 싶었습니다.. 부모님이 계실때는 제가 사촌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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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따르고 정말 좋아하는 사촌형이 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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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되버린 관계가 너무 싫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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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렇게 좋아하고 따르던 형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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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서로 미워하고 시러하면서 지내게된 자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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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방으로 들어가 너무 서러워서 울면서 잠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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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을 관두게 되면서 자유롭고 시간이 많아지게된 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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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라는 것이 저에게 너무나도 행복한 시간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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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학교에 일찍가서 축구를하고 점심시간에 폭우가 쏟아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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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를하고 수업을 마치고도 축구를하고 전 축구를 너무 좋아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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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화가 구멍이나서 큰아버지께 축구화를 사달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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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안된다고 했고 운동화를 신고 하라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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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버지 어렸을때는 다 운동화신고 했어 축구화가 어딨어"-큰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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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사촌누나가 남자친구를 집에 데려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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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야기 까지한 사람이라 매형이라고 불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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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에서 내릴께 있다고 내리자고 해서 차에와서 물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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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다보니까 축구화가 있엇어요 축구를 너무 하고싶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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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화를 살수없어서 이러면 안돼지만 그 축구화를 몰래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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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축구를하고 집에 축구화를 가져왔다가 그걸 매형이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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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가져간 사실을 알게되었는데 매형이 엄청화를 내면서 혼내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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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거에요 제 이기적인 생각인지는 몰라도 축구화 하나 사고싶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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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수 없고 내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들어줬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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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그날도 서럽게 울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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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정말 하루에 용돈 천원받기도 힘들고 옷같은것도 잘 사주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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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친구들 앞에서 당당하지 못하고 위축되고 학교도 다니기가 싫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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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계실때는 학교생활 잘하고 친구들과도 참 잘 어울렸는데 당당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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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배가 아파서 점심시간에 급식실에 가지않고 책상에 엎드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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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엇는데 저보다 한 살 많은 누나가 저에게 사귀자고 고백을 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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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중학교때부터 좋아했던 누나인데 정말 그 순간만큼은 행복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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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잠시 저는 현실을 직시했어요. 용돈은 며칠에 한번 천원 받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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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까하고 옷도 없고...경제 능력이 없는 학생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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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했죠.. 아니 아무말 못했어요.....사귀고 싶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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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는 며칠 후에 자퇴를하고 다른 곳으로 떠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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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하는데 있어서 돈이 다는 아니지만 어느정도 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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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어야 하는거라 생각했고 사랑하는데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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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돈이 필요한건 아니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을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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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저에겐 또 한번의 사랑이 찾아왔어요 같은 학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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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크고 피부 하얗고 이쁜 여자아이 내성적인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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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이뻐서 고백하면 바로 거절 할꺼라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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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만 했는데 이러다간 놓칠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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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딱 감고 고백해서 사귀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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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친구의 집은 저희 집과 10km이상 떨어진 곳이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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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데이트는 못했지만 돈이 생기면 바로바로 저금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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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원정도 모이면 영화를 보러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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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은 그친구 집에서 가까웠죠 그렇게 영화를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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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좋았어요 돈이 없어 음료와 팝콘은 사주지 못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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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는것만으로도 서로 행복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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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다 보고나면 돈이 없어서 다른건 할 수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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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다니거나 학교나 공원같은 곳에가서 앉아서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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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눴죠 그렇게 만날때마다 밤12시까지 같이 있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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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지곤 했는데 처음에는 돈이 없어서 만나고 집에올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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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km가 넘는거리를 새벽까지 걸어오곤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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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행복 했습니다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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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는 내가 걸어 가는걸 알았는지 집에갈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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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비를 주더라구요 자존심은 있어서 괜찮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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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택시비 있다고 그러니까 괜찮다며 받으라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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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아이였어요 그래도 안받았더니 택시가 있는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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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걸어가면서 택시 기사님에게 택시비를 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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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가라며 달려가는 겁니다...눈물이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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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친구에게 고마움과 미안함 그리고 부모님도 원망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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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낳아놓고 먼저 가셨냐고...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실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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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하는 말이였는지 빨리 며느리감을 대려오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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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자주 하셨어요........엄마가 여자친구를 봤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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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 예뻐하셨을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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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생활 하면서 선물하나 사주지 못하는 못난 제 자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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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싫고 미안해서 결국엔 헤어지게 되었어요.

.

.

.

.

저는 자퇴를 결심하고 자퇴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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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이 제가 자퇴를 할때 니가 자퇴하면 동생도

.

똑같이 자퇴하고 그런다고 하시고 실망해 하셨지만

.

저는 정말 그게 최선인줄 알았습니다. 자퇴한건 정말 후회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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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게 직업에는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다시 없을 학창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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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힘들고 슬픈 시간이였지만 돌아가고 싶을 정도로

.

그립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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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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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퇴를 하고나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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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 바다에서 힘들게 돈벌어서 지어서 이사온 집이

.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집이 명의가 큰아버지 명의로

.

바뀌어 있다는걸요 생각 해보니까

.

부모님이 돌아가신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때 큰아버지가

.

도장과 종이를 주시면서 종이에 도장을 찍으라고 하셨어요

.

전 어리고 부모님이 돌아가신지 1년도 안된 상태였기 때문에

.

도장을 찍어줬어요. 어려서 몰랐지만 부동산 매매 계약서의

.

도장을 찍은거죠 그 당시에는 집명의를 바꾼다는 말도 없었고

.

자기가 직접 찍지 왜 저와 동생에게 찍으라고 했던건지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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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주민분에게 들은건데 큰아버지가 저희집을 팔려고

.

부동산에 내놨고 부동산에서는 손님을 데리고 저희 집을

.

보러왔길래 부모님과 친하게 지내던 분들이 그집 사시면

.

천벌 받는다고 사지말라고 하셨다고...고마운 분들 때문에

.

아직까지 그집은 지켰어요. 부모님과 마지막으로 함께했던

.

공간 월세 살면서 서러워 하셨을 부모님을 기쁘게 해준 집인데

.

큰아버지 말로는 저희 집 팔아서 저랑 동생 장가갈때 전세를

.

얻어 주려고 팔려고 했던거라고....웃기는 소리죠

.

제 주변 사람들과 동네 분들에게 전세를 얻어 주려고 팔려고

.

했던거 아닐까라고 물음을 던지면 십중팔구가 아님 십중십

.

모든 사람들이 말도 안된다고 합니다. 팔았으면 절대 안준다고..

.

저는 그 사람들이 정말 용서 할수 없을만큼 화가나고 분노했죠

.

저녁에 큰어머니 큰아버지가 집에 오셨고 저는 화난 목소리로

.

따졌어요. 어떻게 집을 팔려고 하냐고 힘들게 일하시다 돌아가신

.

부모님 생각이 자꾸들어 저는 이성을 잃어 주방에서 칼을 들고

.

제방에다 가져다 놓고 정말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어요.

.

그 사람들을 찌르고 싶다는 생각도 했어요....

.

그렇게 언성을 높이며 싸우다가 전 제방에 두었던 칼을 손에

.

꽉쥐고 나왔는데 찌를 용기가 생기지 않아서 울면서 내가

.

죽어버리겠다고 칼을가지고 집밖으로 나가는데 갑자기 손가락들이

.

주먹쥘때 방향이 아닌 반대 방향으로 꺽여 버리는거에요

.

가위바위보할때 "보" 처럼 칼을놓치고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고고

.

주저 앉아서 생각 했어요 부모님이 저를 말리신 거라고......

.

잠시후 외가 쪽에서 이모였던가 삼촌이 와서 절 외할머니 댁으로

.

데리고 갔어요. 그렇게 큰집 식구들은 집을구해서 저희 집에서 나갔고

.

외가쪽에선 저희 집을 친가에서 팔수있다고 외삼촌과 이모가 큰 아버지를

.

만나서 공동명의로 명의 변경을 했어요. 더 이상 부모님과 살았던

.

소중한 공간이였던 부모님,동생,나의 우리집 이였지만.

.

그 사람들로부터 더렵혀진 추억이 있는 집이기도 했기에

.

집이 싫어졌어요.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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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저는 18살때부터 집에서 나와

.

일을 시작 했습니다. 아르바이트 공사현장 서빙등 먹고 살려고

.

이런 저런일을 다하면서 지냈습니다. 몇 달뒤에 저는 다른 지역으로

.

가면서 그때부터 외롭게 타지에서 일하면서 지내왔어요...

.

.

.

.

큰집 식구가 저희 집에서 나갔고 빈집이된집은 사글세를 줬습니다.

.

동생은 16살이였고 외할머니댁에 지내고 있엇습니다.. 저에게

.

삼촌과 이모들이 외할머니가 저희집에 들어가서 동생이 졸할때

.

까지라도 같이 사시는게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했고 저도 동생

.

혼자 있는 것 보다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하지만 외할머니는 좀 막말도하시고 성격이 차가워 고민은 했지만

.

이모와 삼촌들의 설득에 집에 들어와 사시라고 했습니다.

.

처음에는 외할머니가 안들어온다고 했습니다. 이유는

.

친가에서 외가쪽에서 애들집을 해먹는다고 생각할꺼라고

.

친가쪽에서 집을 팔려고했을때 친가쪽에 어찌 인간이

.

부모잃은 아이들집을 가만두지않고 그러냐고 했던 장본인 입니다.

.

사글세 살던 사람들이 계약 기간이 다되어 나가고 다시 빈집이 되었고

.

할머니도 마음을 바깟는지 저희 집으로 가신다고 하셨고 며칠뒤

.

동생과 외할머니,외삼촌식구들이 저희 집에 들어가서 살게되

.

얼마지나지 않아 걱정했던것처럼 동생은 외할머니의 잔소리에

.

견디지 못하고 따로방을 잡고 지내게 되었고..

.

동생이 살지 않으니 저희집에 사시는 외할머니와,삼촌이

.

사글세를 사시겠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250만원을 받았습니다.

.

부동산에 내놓으면 450만원이 상의 사글세도 받지만 외가 친척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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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해야할 효도를 이렇게라도 해드리고 싶었습니다.

.

그렇게 1년이 지나가고 사글세를 줘야하는데 주지 않아서

.

물어보니 사글세를 주지 못하겠다는 겁니다.

.

저와 동생이 가끔 저희집에 들어와 있는 외삼촌에게 돈이

.

없을때마다 조금씩 붙여달라고 했는데 그렇게 많이 되지도 않는데

.

1년동안 동생과 제가 삼촌에게 달라고하여 받은돈은 50만원도

.

되지 않았습니다. 이때 부터 사람은 돈 앞에서 다 똑같다는

.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만큼 제 마음의 상처도 커져만 갔어요

.

제가 사회 생활을 아무것도 없이 맨몸으로 나가서 일을 하다보니

.

처음엔 옷도 필요하고 신발도 사고 월급도 많지 않아서 가끔씩

.

생활비가 모잘라서 가끔 보내달라고 했던거였는데 큰돈이 아니였습니다.

.

해봐야 5만원 10만원 입니다 일년에 많아야 3번인데

.

한번은 제가 돈이 정말 급해서 외삼촌에게 돈좀 보내달라고 했었는데

.

그때 저희집에 사는 삼촌은 돈이 없다고 하였고 다른외삼촌이

.

하는말이 돈을 보내줄테니까 할머니를 몇년만 집에서 그냥 사시게하고

.

하라고 하는겁니다 저도 돈이 급했고 저와 동생의 미래를 생각해주지

.

않는다는 그런 느낌이 들긴했지만 돈이 급해서 그렇게 하자는 식으로

.

이야기가 되버렸습니다. 큰집에서 들어와 살때 애들하테 어떻게

.

저럴수가 있으냐며 애들 미래를 생각해주지 않냐는말 어떻게 집을

.

팔려고 했냐고 천사같은 사람들이나 하는 말들을 했던 사람들인데...

.

일을 하면서 부모님이 없다는 생각과 동생 생각만하면

.

눈물나고 좋았던 친인척과의 관계가 돈떄문에 이렇게 까지

.

되냐는 생각도 들고 돈이 정말 무섭다는 생각들로 머리에 가득차고

.

고등학교 자퇴라는 학력으로 좋은 직장을 구하기도 힘들었고

.

제 의지도 약하고 나태했기에 사회생활 하면서 돈을 모으질 못

.

했습니다...좌절도하고 작은 시련이 닥쳐도 전 크게 무너졌습니다.

.

그땐 제가 의지하고 마음 둘곳 마음둘 사람이 없었습니다...

.

속시원하게 털어놓고 싶어도 친적들에겐 하고싶지 않았고 동생에게는

.

차마 힘들다는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

.

.

.

제가 19살에 삼촌 소개로 어떤 한 공장에들어 갔는데

.

어린나이에 적응도 힘들고 사수가 불임이라 저에게 스트레스를

.

풀고 기본급과 상여금이 상당한 회사라

.

그 사수의 처남을 회사에 넣으려고 팀원들이 저를 못살게

.

텃새부리고 힘들게해서 결국엔 관두게된적도 있엇어요

.

.

.

.

.

그렇게 또 방황을 하면서 다른지역으로 가고 다른 일을

.

하고있엇습니다. 어느날 이모에게서 연락이와서 하는말이

.

어머니가 가입하신 저와동생의 보험을 큰집에서 해약할수 있으니

.

큰집에가서 그 증권을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전 여자인 이모라

.

저희를 생각해줘서 고마워 했습니다.보험이 만기가되어

.

보험만기로 받을 돈과 일을 하면서 모아둔 돈으로 방을 얻으려

.

보험사에 전화를 해보니 이모가 해약을하고 돈을 받아갔다는 겁니다.

.

정말 배신감에 이모를 찾아가 왜 그랬냐고 그게 어떤 돈인데

.

다른것도 아니고 교육보험인데 그걸 해약 해서 다 써버리냐고

.

그랬더니 이모가 상가를 계약하다 사기를 당해서 그랬다는 겁니다.

.

그러면서,,,화를 내는겁니다. 미안하다는 그런말은 듣지도 못했구요

.

정말 돈이고 사람이고 다 싫어졌습니다...

.

.

.

.

 

그렇게 저는 충격에 또 한번 무너져 내렸고 군대를

.

가야할 시기가 왔어요부모님이 안계셔서 군대를 안가도 되지만...

.

일을하다 면제서류를 준비할 시간이 촉박했고 남자는 군대를

.

다녀와야 한다고 생각했고 지금까지 제가 격었던 것들로부터

.

마음을 추스려보고 생각하는 시간을 갖으려 입대를 했습니다.

.

102보충대로 가고 거기서도 면제대상자나 징집 대상자가 아닌

.

사람들은 나오라고 했지만 그냥 군대를 다녀올 생각이였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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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지 않았고 며칠뒤 저는 화천15사단 훈련소로 가게 되었고

.

춘천에 자대 배치를 받았습니다. 자대배치를 받고 부대를 갔는데

.

실내 체육관에서 온 부대원들이 삼겹살 과일 소주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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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를 하고있엇죠 일년에 한번 있다는 부대 축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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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어벙벙하고 뭔가 내가 생각했던 군대가 아닌것같아 이상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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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응하려고 노력하면서 군생활을 시작했어요 군대라는 단체에

.

소속되고 긴장을 하면서 2주정도 화장실을 가지못했습니다..

.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자대배치를 받고 긴장이 풀렸던건지

.

화장실에 갔늗데 변이 너무 딱딱해져 치질로 출혈이 너무심해서

.

외진을 나가게되었습니다. 진료를 받아보니 수술을 해야한다해서

.

입원을하고 수술을하고 2달 가까이 군병원에서 지냈습니다

.

그리고 자대로 복귀를 하게되었는데 제가 부모님이 안계시고

.

동생도 있는데 입대를 하여서 행보관,주임원사님 중대장님과

.

면담을 하면서 다들 하시는 말씀이 왜 입대를 했고 왜 면제 신청을

.

하지않았느냐고 물으셔서 일하다가 면제시기를 놓쳤고 남자에겐

.

군생활은 꼭 필요 한 것같아서 입대를 했다고 말씀드렸더니

.

주임원사님과 행보관님이 매일 부르셔서 면제신청하고

.

제대를 하라고 하셔서 안하겠다고 버텼습니다..

.

힘들고 외롭던 사회 생활속에서 군대에는 전우도

.

동기도 있고 운동을 하면서 단체생활에 있숙해서

.

군생활이 힘들지 않았습니다. 부모님과의 사별로 정신적

.

충격과 고등학교 자퇴라는 학벌 의욕이 없었던 제가

.

아무리 발버둥처도 제자리 걸음이였던 사회 생활에서의

.

저는 똑같은 계급에 같은 조건이 주어진 군대에서

.

누구 보다도 군생활 잘하고 남들보다 항상 앞서 있엇고

.

제한된 것들은 좀 많았지만 군생활이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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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저의 군생활 6개월동안 행보관님과 주임원사님의

.

설득과 군병원에서 했던 치질수술이 잘안되어 심해졌고

.

제 가정사를 다 알고계신 행보관님께서 니가 돈을 많이벌고

.

성공해야 부모님이 좋아하실꺼고 돈때문에 너에게 상처준

.

사람들에게 보란듯이 잘사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

하셨습니다. 그 걱정과 관심과 사랑이 담긴 충고를 듣고

.

고민을 참 많이 했습니다. 지금 나가자니 지금까지 했던

.

군생활이 아깝기도했지만 빨리 나가서 돈 버는게 현실적이기

.

때문에 면제신청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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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면담 4시간씩 했습니다 대대장님2시간 주임원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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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 행보관님1시간 대대장님이 군생활 처음 하신곳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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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고향과 같아서 더 신겨을 써주셨습니다.

.

정말 욕심 없고 진심으로 걱정해주고 따뜻한 분들이 계셔서

.

제 과거의 생활과는 너무나도 좋은 세상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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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동안 군생활을 하면서 조금은 성숙해져 사회로 다시

.

나왔습니다.. 제대후 어떤 일을하든 열심히해서 돈도 많이벌고

.

꼭 성공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다짐했습니다.

.

.

.

.

사회로 나와서 다시 일을하면서 지내고있엇습니다.

.

어느날 술을 마시고 집으로 가다가 너무 멀고

.

너무 피곤해서 찜질방에 가게되었고 샤워를하고

.

찜질복으로 환복을하고 찜징방으로 내려가

.

티비를 보고있는데 저와 티비사이에 어떤 여자가

.

딱 앉아 버려서 티비를 가렸습니다...

.

뒷태가....너무 이뻤습니다....ㅋㅋㅋ

.

그렇게 관심을 갖게되고 보석방에 들어가길래;;

.

보석방에 따라가보니 그 여자애는 잠들어 있었고

.

고민을 했습니다. 수줍움이 많은 저로써는 처음보는

.

여자에게 연락처를 물어보거나 대쉬를 하지 못하기에

.

다시 나가려던 찰나에 머리맡에 핸드폰이 보이는겁니다.

.

그여자 아이의 핸드폰으로 제폰으로 문자를 보내고

.

연락처를 저장한 다음에~ 아침에 문자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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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제가 어제 찜질방에 어디쪽에 있던 사람인데

.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 그쪽 폰으로 제폰에 문자보내서

.

번호 알게되서 연락한거라고 솔직하게 말했더니

.

그 여자도 저를 인지 하고있더군요...

.

그래서 용기내서 혹시 식사 안했으면 같이 식사하러

.

가자고 했는데 순간 제 심장은 엄청난 속도르 요동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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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하면 어쩌지 창피할것 같기도하고 아쉬울 것 같고

.

별 생각을 다하면서 긴장하고 있엇는데 그 여자아이는

.

바로 허락해서;;;; 오랜시간 죽어있던 연애세포가....ㅋ

.

정말 외롭고 힘들고 상처받은 제 마음은 그여자 아이를

.

알게되면서 제가 활력소가 되주고 행복하게 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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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때 부모님과 행복했던 시간이 짧고 그 화목했던 가정이

.

너무 그리워 일찍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고싶었는데 돈없으면

.

결혼은 꿈도 못꾸는 세상이라 어려서 돈 빨리 성공하지 못하면

.

결혼 못하겠다는 생각을하면서 지냈엇죠. 그 여자아이와

.

친해지고 서로에대해서 더욱 많이 알게되었는데 그여자아이는

.

고등학교 때문에 영주에서 구미로 혼자 전학을와서 지냈고

.

서로 타지에 나와 외롭게 지냈기에 마음 맞는 부분이 많아

.

사귀게 되었어요 그렇게 그아이는 19살 저는 22살

.

그 여자 아이는 정말 착했어요 가정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

부모님에게 용돈 받지도않고 오히려 알바를 하면서 어머니에게

.

용돈도 보내주는 천사였어요 그 여자 아이를 보면 행복하고

.

평생을 행복하게 같이 하고싶어서 일도 엄청 열심히하고 지냈어요

.

여자친구가 졸업할때가 되었고 제가 일하는 모습들이 힘들어 보였는지

.

알바를 바꾼다고하는거에요 그것도 학교를 다니면서 야간에 알바를

.

한데서 말렸죠 왜 야간알바를 하려고 하는거냐고 하니까 돈벌고 싶데서

.

내가 돈벌고 있고 필요한게 있으면 말하라고했더니 자기는 저에게

.

받기만하고 해준게 별로 없어서 미안하다면서....ㅠㅠ생각하는게...

.

참 고마웠어요. 행복하기도 했구요~~~ 그렇게 며칠 뒤

.

여자친구는 알바를 시작했고 야간에 밤새고 학교가는 모습이

.

너무 힘들어 보여서 안스러웠어요. 알바를 바꾸기 전에는

.

학교 끝나고 바로와서 밤12시까지 찜질방 캐셔알바를 했거든요

.

서로 작은 선물 해주기도하고 밥도같이 먹고 영화도보고 행복하게

.

지내고 있엇는데 제 생일이 다가왔어요 13살 이후로 누구도 챙겨주지

.

않던 제 생일을 축하해주고. 챙겨주고 너무너무 행복해서 부모님이

.

돌아가신 그리움 아픔과 여지것 사람들에게 받았던 상처가 기억나지

.

않을 만큼요...그렇게 지내다가 여자친구가 졸업을 하고 영주로 가야

.

하는데 취업을 한다고 구미에 남는다고해서 저희는 동거를 시작했어요.

.

서로좋아하고 결혼까지 생각할만큼 좋았으니까요.

.

동거를 하니깐 돈이 많이 들더라구요 한달에 250~350정도 벌었는데

.

벌어도 쓰는게 많아돈이 모이지 않았어요 그리고 여자친구도 LG에

.

입사를 하고 여자친구도 수입이 생겼고 제대하고 돈이 없던터라

.

급하게 번다고 제가 시작했던일은 일용직 일이여서 일당받고 일을했고

.

이젠 안정적인 일을 하고싶고 일자리를 구하려고 잠시 쉬게되었습니다.

.

이여자아이와 행복하게 결혼생활을 꿈꾸며 저희집에 있는 외할머니에게

.

전화를해서 2년뒤에 집을달라고 했어요 집을 전세를 주거나 팔아서

.

동생하고 나눠서 서로 전세라도 얻고 싶었거든요 그럼 월세로 지출이

.

없으니 돈모으기도 좋아질꺼고 빨리 결혼생활 하고싶은 제 소망이에

.

한걸음 더 빨리 다가갈수 있을 것 같아서 생각만으로도 행복에 빠져있었죠

.

그런데 이모와 외삼촌들이 하는말이 외할머니가 사시면 얼마나 사시냐고

.

돌아 가실때까지 집을 그냥 놔두라는 겁니다 솔직하게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

애들집 팔려고 했다고 그렇게 친가쪽 욕하던 외가쪽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니까

.

정말 돈에 미친 사람들 같고 솔직하게 7년이나 저희집에서 꽁짜로 살았으면

.

이제는 저와 동생 미래를 생각해서 줘야 할때 아닌가 이런생각도 들었죠

.

그리고 시에서 수로 공사한부분 때문에 지반이 약해져 침하되 건물에 붙어있는

.

계단 부분이 금이가 갈라지고 보수를 전혀하지 않아 많이 낡아가고

.

있어서 더욱 화가나고 여자친구를 만나면서 잡았던 마음이 또 무너져 내렸어요

.

일도 쉬고 있는 상황이였고 전 다시 돈에 눈먼 친척들을 생각하면 치가떨리고

.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고 제 삶이 평범한 삶이 아니란것을 생각하게되고

.

여자친구를 만나면서 다잡았던 마음이 무너지면서 방황하고 게임을 하게되었어

.

요 게임하면 중독성있고 폐인을 만들고 나쁘기도 하고 그렇지만 저에게는 어린

.

나이에 부모님에대한 슬픔과 그리움을 잊게 해준 어쩌면 고맙기도한게 게임이

.

거든요 부모님 생각나고 슬퍼지면 게임하면서 조금만 생각하려고 했엇기에...

.

그렇게 방황하면서 게임을하니 여자친구도 제가 겜만 하고있는게 한심했는지

.

조금씩 변해가더라구요 저에게 닥친 상황은 말하지 않았고 저는 2달정도

.

게임만하면서 돈다쓰고 여자친구의 월급으로 생활비를 쓰면서 이러면 안되겠다

.

싶어서 일용직일이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일을 다시 다니게되었고 어느날 동생

.

이 에게 연락이와서 돈좀 보내달라고 했서 몇 만원을 보내줬어요 저에게 동생은

.

이세상에 하나뿐이 없는 핏줄이고 옆에서 보살펴주지 못한 형으로써 너무

.

미안하고 그리운 사람이거든요 또 제가자퇴하면서 절보고 그대로 자퇴하는걸

.

멀리 떨어져 있어서 말리지도 못하고 죄책감도 들고 저보다 2살이나 더 어렸던

.

14살이란 나이에 부모님을 잃은 세상을 격어야하는 아이니까 더욱더 소중하거

.

든요 그런데 여자친구가 제가 게임에 빠져있던거 때문에 화가 안풀린건지 착하

.

던 아이가 동생에게 몇만원 보내준걸로 조금 기분 나쁘다는 식으로 말을하면서

.

그걸로 다퉜습니다 제 입장에선 솔직하게 원룸 월세지만 여자친구 학교다니고

.

LG에 입사하기 전까지 새벽부터 나가서 밤9시까지 일하고 들어오고 힘들게 벌

.

어서 그돈으로 생활비를 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집문제로 힘들어서 잠깐 방황

.

하고 겜하면서 시간을 보낸건 잘못이고 알지만 그래도 동생하테 돈보낸걸로 머

.

라고 하니깐 친가와 외가가 돈때문에 변해버리고 그랬던 것들이 생각나고 여자

.

친구에게 너무 서운하고 실망 스러운거에요 너무착한 여자아인데 그러니까...

.

서로 감정상해서 말싸움하다가 제가 여자친구 따귀를 때려어요.....절대 안되는

.

건데 따귀를 때려버리고......그 즉시 후회하고 했지만 여자친구도 상처가 컸나봐

.

요....따지고 보면 제가 겜에 빠지지 않고 잘했으면 여자친구도 동생에게 보내는

.

돈에 대해서 아무런 말도 안하고 분명 잘했다고 했을 천사인데......

.

그렇게 연락안하고 떨어져 지내다가 제가 빌고 빌어서 다시 만났어요

.

어느날 둘이 걷는데 같이 가자니깐 그냥 혼자 걸어가버려서 왜 내말 안들어주냐

.

고 (저는 진짜 글쓰면서 보니까 쓰레기 였어요ㅠㅠ 여자친구가 울고불고

.

게임좀 그만하고 자기에게 관심좀 주라고 6개월을 그랬는데....) 화냈죠 화 안내

.

기로 했는데 너무 제가 울고불고 빌고해서 다시만난거라 제가 초라해보여서

.

화나진 않았는데 화난척 그렇게 말한건데 그뒤로 우린 다시 헤어졌어요...

.

그렇게 아무런 의욕없이 지내다가 여자친구가 너무 보고싶어서 몇번 찾아갔엇

.

고 여자친구도 그리웠는지 만나줬는데 사귀는 사인지는 모르겠는데 제가 너무

.

여자친구가 그립고 후회하고 있어서 무릎꿇고 자존심 다버리고 용서 해달라고

.

빌었는데 가야된다고 가버렸어요 한참을 그자리에서 있다가 여자친구가 간쪽

.

으로 가봤는데 어떤 카페에 남자랑 있는 모습을 보고 너무 가슴이 아팠어요 후

.

회도 많이 하게되고 그렇게 돌아가서 집에있는데 보고 싶어서 미칠것같고 너무

.

가슴이 아파서 길거리나 같이 살았던 원룸 어딜 다니든 구미에서는 여자친구와

.

의 추억이 너무 많아 힘들어서 견딜수가 없어서 방을빼고 다른 지역으로 왔지만

.

계속 보고싶네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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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부모님이든 이성친구든 주변에 소중한 사람에게는 잘해줘야 하는것같아요

.

사람들은 몰라요 저도 그랬고 항상 늘 곁에 있을때는 그 소중함을 모르죠

.

잃게되면 그때서야 알게되죠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데요 너무 슬픈 현실이죠

.

저도 여자친구가 떠날지 몰랐어요 전에 여자친구에게 헤어지자고 했더니

.

짐싸서 나가더니 30분정도 있다가 전화가와서 받아보니 자기가 버스 타려고

.

승강장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발목을 삐끗해서 못걷는다고 데려와 달라고

.

해서 데리러 갔는데 짐작은 했지만 발목을 삐끗한척 연기하는게 어설퍼서

.

거짓말인걸 알았거든요 어색한 연기로 집에 다와서 까지도 연기 하는데 정말

.

속으로 사랑스럽고 귀여워서 혼났어요~ 안아주니까 자기 버리지 말아달라고

.

울면서 폭~ 안기는데 정말 좋았어요 이래서 전 여자친구가 절 안떠날줄 알았어

.

요 지금도 후회합니다. 다시는 만나지 못할 여자친구지만 혹시나 만나게되면

.

정말 행복하게 해주고 싶네요....저처럼 가슴에 부모님 여자친구 담고 살지

.

마시고 잘해주세요~ 뿐만아니라 주변 사람들 모두에게요....

.

아직도 하고싶은 이야기가 많은데 이만 줄일께요 지금까지 다 읽어 주신 분이

.

있을지 모르겠는데 있다면 정말 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내용이 길어서 횡설수설 해보이고 오타도 많을꺼지만....

.

참 첫사랑의 정의를 내리면 처음 사랑하고 사귀게된 사람이라고 하자나요

.

근데 첫사랑은 정말 사랑하고 몇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고 그리운 사람이

.

첫사랑인것 같아요.... 제 첫사랑은 바로위의 여자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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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 미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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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로드 하려니 조금 아쉽네요 이 글 쓰는데 완전 오래 걸렸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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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더 떠들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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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위에 적었던 했던 말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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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어린나이에 깨달은게 있다면 제글을 읽고 있으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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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분들은꼭 부모님에게 잘 해드리세요 정말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뼈저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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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합니다...살아 계실때 자주 찾아뵙고 효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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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감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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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 계신다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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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저와 비슷한 상황에 이거나 아닌 부모님이 있고 학생들에게 하고싶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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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어른들이 하는 말씀은 거의다 맞아요 저처럼 잡아주는 사람이 없었고 생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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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아 자퇴하려는 학생들이 있다면 절대 자퇴만은 하지마세요 이 세상 살아가기

.

정말로 힘들어요 학벌을 중요시하는 사회에서 살아남기 정말 힘듭니다

.

물론 저의 지금 직장은 특수해서 학벌은 상관없지만 대부분이 학벌을 중요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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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저도 학교 졸업안해도 사회에 나가서 돈벌어서 장사하면 성공하고 돈 많이

.

벌줄 알았어요 그런데 돈 버는것도 힘들고 사업도 쉬운게 아니에요 망할수도있

.

고... 참 그리고 자기가 하고싶은걸 빨리 찾으세요. 저는 운동하다 관두고 제가

.

하고싶은일을 못찾아서 그냥 흘려보낸 허송세월이 너무 아까워요. 하고싶은 일

.

이 있다면 이미 반은 성공한거같아요 하고싶은 일에 집중하고 공부하고 시간 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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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해서 그 분야에서 알아주는 사람이 되어 돈도 많이 벌고 행복한 인생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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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주위에 저처럼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소년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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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이된 아이들이 있다면 신경 써주세요 부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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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 친인척들에게 빼앗기는 소년소녀 가장들이 많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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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금 정말 힘들다 생각 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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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절 하시는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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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슬프고 절망적일때 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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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어렵고 힘든 분들을 생각 했습니다. 여러분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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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불행하다 생각하고 힘들어도 여러분들보다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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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고 어려운 사람들도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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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이 힘겨운 세상 꼭 이겨서 행복하게 살꺼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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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인 생각으로 여러분들의 행복을 찾아가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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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빠 너무 보고싶고 그립고 사랑해..........

다음 생이 있다면 그땐 나랑 동생이 엄마 아빠할께.....

그래서 내가 엄마 아빠 고생안시키고 내가 고생할께

아빠 어렸을때 아빠 일할때 타는 트럭타고 학교 앞에 지나갈때

친구들이 볼까봐 운동화 끈매는척 숙였었는데 미안해....

그땐 어려서 트럭타는게 부끄러웠엇어....

엄마 엄마가 해주는 밥먹고싶다..

엄마가 챙겨줬던 생일들이 너무 그리워.....

마음약하고 여린 우리엄마 고마워 너무

지금 엄마아빠 천국에 있지...?

이세상에서 고생만 했으니까 거기서 편하게 잘 지내...

하늘은 착한 사람을 먼저 데려간다는 말있지 난 그말믿어

엄마아빠가 힘드니까 하늘이 쉬게해주려고 천국으로 보내준거야

그러니까 우리걱정 말고 하늘에서 편하게 쉬세요!

내가 동생 잘 챙기면서 살아갈께 엄마 아빠 대신해서 노력할께

참 동생하테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싶은데 왜 못할까...

엄마아빠가 없으니까 엄마 아빠 몫까지 내가 해야하는데..

엄마 아빠가 동생 꿈에 나타나서 내가 무지 사랑한다고 전해줘.......

생각 해보니까 엄마아빠에게 한번도 사랑한다고 말 못했네...

이제는 백번이고 천번이고 천만번이고 할 수 있는데...

엄마 아빠 천국에 가기전에 많이 해둘껄....

내가 지금 사랑한다고 엄청많이 하는데 엄마 아빠

천국에서 내가 사랑한다고 하는말 다 들리지?

엄마아빠가 없으니까 엄마 아빠 몫까지 내가 해야하는데..

엄마 아빠가 동생 꿈에 나타나서 내가 무지 사랑한다고 전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