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길어요. 새해가 오기 전에는 적어보고 싶었다올해가 가기 전 그 전에는 적어서 남겨두고 싶었다. 너와의 기억을 ,아직도 생생한것 같다. 네게 처음 연락이 왔던 부산에 가던 ktx 안 내가 듣던 노래, 그리고 그날의 기분까지도. 정말 덤덤하게 적어보고 싶은데 몇줄 쓰지도 않았는데 마음이 찌릿찌릿하네, 정말로 더웠던 그날 부산에 가던나, 사실 그전부터 나도 너를 알고 있었다. 사람이 괜찮던데 , 사실 그날 부산에 가면서도 네 이야기를 한 번 했었다. 괜찮던데... 하지만 그뿐이였는데 네게 연락이 올줄 몰랐었다. 네게 연락이 처음 왔을땐 뭔데? 이런 생각 뿐이였다. 직업상 번호를 알려달라는 사람은 몇 있었지만 한번도 알려준적은 없었기 때문에 손님일거라는 생각은 상상도 못했다. 같이 일하던 오빠의 카톡을 보고서야 알았다. 그가 번호를 알려줬으며 네가 내가 말하던 너라는걸. 사실 순간적으로 너무 행복했었다. “헐 나좀전만해도 얘 이야기했는데 나 얘한테 카톡옴ㅋㅋㅋ”대학을 가고 그만두고 또다시 재수를 하고 대학을 가고 또다시 자퇴를 하고 이일을 시작하면서 연애를 단 한번했었다. 뭐 너도알다싶이 남자가 없었던것은 아니다. 다만 난 잊지못하는 사람이 있었던것뿐, 그 사람을 오랬동안 기다렸을뿐, 그렇다고 해서 아예 안만난것도 아니다. 썸도 있었다 분명. 사귀지 않았을뿐, 사실 무서웠다 그땐, 누군가를 좋아한다는건 애정을 갈구하는 내겐 너무나도 무서운 일이니까. 지금도 무서운건 사실이다. 내가 이사람을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었는데 이사람의 마음이 변할까봐 무서워하는 겁쟁이 찌질이다. 그러다가 내 옆에있던 아주 오래봐왔던 한사람과 아주 짧게 만났다 딱 이맘때 12월 크리스마스 전 토요일이였던가, 일요일 이였던가. 브아솔 공연을 보러갔다가 그 사단이 났지. 하지만 그 연애도 일주일을 못갔다. 사실 누구보다 오래 봐왔던 이 사람을 이성으로 만나기가 무서웠고 그도 나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고 그렇게 내 스무살 이후의 연애는 그렇게 끝이났다. 그리고 또다시 시작된 2014년, 하던일이 너무나도 힘이들었고 잠시 쉬어가자는 의미로 선생님과 상담 후, 지금 이 회사와 관련된 곳에서 6개월만 일하기로 했다. 그래 그곳, 너와 내가 만나게된 그곳이였다. 사실 페이도 맞지 않았고 그저 조금 알바 하듯, 공부할것 마저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내가 하려고 하는길을 가기위해서 선택한 일이 였다. 그런데 생각보다 즐거웠다. 쉬엄쉬엄 하자 쉬엄쉬엄 가자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이 공간 같이 일하던 사람들 점장님이 모두 좋았다. 뭐 페이는 힘들었지. 매니저로 일하다가 아르바이트생 월급을 받으니 적금을 깰 수밖에 하지만 일이 좋았고 즐거웠다. 그공간에서 일하던 6개월은 아직도 기억이난다. 네 연락과 함께 시작된 부산여행 반짝 반짝 빛나던 5월의 부산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나와 함께 여행을 간 사람들도 드디어 뭔가 시작되는거냐며, 한번도 일하면서 손님을 만난적은 없지않았느냐, 힘들어 하더니 이제 드디어 시작인거냐, 많은 바람이 있었던것도 사실.뭐 여하튼 설레던 그순간이 아직은 반짝반짝하다.아, 부산에서 다시 서울로 돌아오던날, 내가 집에 갈때까지 연락을 하던 네가 기억나,사실 요즘 가끔씩 서울역에서 집으로 가는 일이 두어번 있었다.그때마다 그 버스를, 볼때마다, 네가 기억나, 너와 카톡을 하며 전전긍긍하며 기다리던 그때가 기억나 마음이 아프더라. 눈물이 나진 않았지만 너무 보고싶더라 네가.그리고 월요일 나는 출근을 했고 그날도 네게 카톡이 왔다.사실 나는 널 만날 생각이 없었다. 왜냐하면 난 이미 알고있었으니까. 넌 머지않은 미래에 한국을 떠날사람이라는걸. 그래서 온전한 마음을 표현하고 싶지 않았다. 혼자서 하는것에 편안해 보이는 나지만 사실 그 누구보다 혼자임이 싫고 두렵고 애정이 필요한게 나라는걸 알기때문이였다. 하지만 하필 그날 같이 일하던 오빠가 내가 부산으로 여행을 다녀온다는 말에 본인이 오전에 일하겠다고 해준 배려에 너와내가 끝나는 시간이 맞아 떨어졌고. 우린 자연스럽게 맥주를 마시러갔지. 사실그때도 무서웠다 네가 참 내스타일이셔서.맥주를 마시고 나서부터 제대로 기억이 지금도 없다. 나 술 참 잘마시는데 말이지..소주를 세병을 마셔도 취하지도 않는 내가. 청하를 밤새도록 네명이서 한박스도 더마시던 내가 그날의 그시간은 기억이 없다. 대화가 통하던 너와 나, 끝도없이 사귀자던 너 분명 싫다고 했던것 같은데. 너와 내가 손을잡고 걷고 있더라. 앜ㅋㅋㅋㅋㅋㅋ진짜 기억이 안난다. 이제와서 모른척 할 이유가 없는데 난 정말 기억이 안난다. 여튼 그렇게 시작된 우리 즐거웠다. 동갑내기 연애는 처음이였다. 사실 외적으로 보면 넌 참 조용하고 조곤조곤하며 진중한 스타일이고 난 참 드세고 성격파이며 조울이 있는스타일 이지만 사실 알고보면 우린 정 반대였지. 난 참 생각이 많고 상처를 많이 받았던 사람이였고 넌 참 밝고 명랑하며 모든게 많이 즐겁던 아이였지. 그러던 우리는 참 잘만났다. 걸릴까봐 걱정도 했지만. 사실 난 단번에 엄마한테 들켰지 “딸아 니 연애하지? 얼굴이폈네? “ 7월에 떠나던 너. 우리가만난건 5월 사실 항상 널보며 불안했던건 사실, 하지만 맹목적으로 애정을 주던 너, 그래서 난 동하기 시작했다. 사실 불타오르던 널 보며 당황스러웠던 적이 없었다면 당연히 너도 아닌걸 알겠지. 안그래 보여도 난 사실 굉장히 보수적이다. 단 한번도 그러한 일이 없었고 지금도 적지 않은 나이지만 경험에 대해서 보수적이였고, 뭐 결국넌 한차례도 성공하지 못했지만 나는 후회가 없다. 네가 아닌 누구였어도 사실 난 아직 무섭다.소개 해준 오빠에게 결국 들켰고 점장님도 아시고 나름대로 즐겁던 연애였다. 사실 내가 해본 연애중 가장 정상적이고 행복했다. 내가 그랬잖아, 내 이상형은 단 하나다.내가 퇴근하고 혹은 학교가 끝나고 힘이들때, 내 옆에서 조곤조곤 오늘하루 이야기해주고 들어주면 손잡고 걷고싶은사람. 그런사람이라고, 그게 너였다. 손잡고 걸으면 그냥 그것만으로도 행복하던 나였다. 난 네가 돈이없는게 문제가 된적이 한번도 없었다. 나는 버는입장 이였고 너는 학교에 돌아가기 전 한국에 있던 상황이였고, 네가 미안해하는게 싫었다. 내가 그랬잖아 우리아버지 사업하신다고, 그래서 어릴때부터 우리아버진 나와 오빠에게 항상 말씀하셨다고, “돈은 언제나 돌고 돈다, 네 손에 없다고 보챌 돈이라면 어짜피 돌아오지 않는다고, 그냥 네가 쥘수 있는만큼 쓸줄도 알아야 네게 돈이 돌아 올테니 쓸줄도 알고 벌줄도 아는 사람이 되라고 여자도 남자도 그럴줄 알아야 한다고.” 사실 우리집이 어려운것도 아니고 조금은 넉넉한 편이니까 , 나혼자 살수도 있었고 힘들게 살진 않았다. 너도 모르는건 아니였고, 사실 네가 조금 미안해 할때마다 내가 더 불안했다. 설마 네가 이러는게 마음이 떠나서 그러는건 아닐지... 다 적어보고 싶은데 마음이 아파서 적을때마다 아릿해서 그만적을란다.그냥 적어보고 싶었다. 네가 다시 그 나라로 떠난 후 힘들었다. 안힘들었다면 거짓말이다.나는 이곳에서의 6개월 근무가 끝나고 예전 회사로 돌아갔다.출퇴근 4시간 지옥같은 2호선, 8월부터 시작된 아침 9시부터 10까지 쉬지않고 이어지던 수업. 네가 떠나고 사실 힘들었지만 다행이다 싶었다. 바쁘니까 외롭지 않더라.그렇게 한달 반 너와연락이 이어졌다. 하루 한번일지라도 , 전화통화는 없었다. 사실 알고 있었어 네가 내게 마음이 떠났다는걸, 떠나기전 네가 했던 그 의미심장한 말. 그냥 내가 마음대로 해석했다. 난 바쁠거고 너또한 졸업하기위해선 바쁠것이다. 그냥 지내보자. 만날인연이라면 다시 만나겠지. 내년초에는 내가 갈게. 그 내년초가 다음주다.처음으로 네가 힘들다고 말하던날. 너와 연락하던 그때 나는 미안하지만 너무 피곤했다.쉬지않고 수업을 해야 했으며, 사람을 상대해야 했으며 쉬지않고 공부해야했다. 여자이기 때문에 사실 차별 받지 않는다면 거짓이다. 이 회사에서 단 두명뿐인 여자직원 이였고, 제일 어렸고 그래서 더 열심히 해야했다. 그 어느직원보다 많은 자격증이 필요했고, 많이 다녀야했고, 항상 웃어야 했으며, 항상 먼저와서 늦게까지 내 할 일을 마무리 지어야 했다.심지어 그 달은, 수업이 11시가 되어야 끝났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몸이 너무 힘들어서 곧 쓰러질것같아 중간중간 직원들이 돌아가며 링겔을 맞고 오기까지 했으니까.그래, 네 답장을 기다리다가 난 잠이들었다.다행이지 않니? 매번 새벽 두 세시가 되어야 잠에들던 나였다. 불면증이 심했고난 신경안정제를 달고살았다. 수면유도제는 아예 들지를 않았고, 상담을 받으러 다니던 나였다. 그러던 내가 지쳐 잠이 들었는데. 넌 화가 났는지. 나에게 실망을 했는지 그 이후로 단 한번도 연락이 없었다. 지금 12월 22일 까지도.정말 미안하다고 나는 네게 연락을 했고 너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그리고 일주일 나는 네가 너무 걱정된다는 말을 보냈고 너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그렇게 나는 너와 나의 팔찌를 빼서 화장대 위에 올려 두었고. 더욱 바빠졌다.어제까지만 해도 두달동안 단 하루 쉬었다. 그날도 쉬자마자 몸살이나서 아무것도 못하고 누워만 있었다. 어찌나 억을하던지. 그날은 꼭 정동진에 가서 너를 보내주고 싶었다. 너와갔던곳을 지우고싶었다. 바보같지만... 너와 함께 신던 신발, 네가 좋아하던 옷, 너와 맞춘 팔찌, 그 새벽에 내가 보고싶다고 우리집까지 뛰어오던 너를 보던 그 곳 사실 출근길에 항상 지나가는데 아직도 네가 둥둥 떠다닌다. 누가보면 난 참 평온하다. 잘 웃고 혼자 잘 먹고 잘 다닌다. 너를 만나던 시절따윈 하나도 없던것처럼. 난 참 잘 버티고 있다고 한다. 너와 잘 헤어진건지 잘 만나고 있는건지 묻지도 않고 잘 버티고 있다고 할만큼.사실 난 아직도 실감하지 못하고있다. 내 사랑이 내 애정이 가던곳이 있던 내가 갑자기 끊어진 연락으로 갈길을 찾지 못하고있다. 미처 다 주지못한 내 사랑을. 이 난감함을. 이 허무함을. 온전한 네 몫이였는데. 네가 사라졌다. 그렇다고 해서 버리자니 네가 그립고 내가 안고있자니 내마음이 너무 뾰족하게 돌아다닌다. 그래서 그 마음이 아직도 어둡진 내안에 맴돈다.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고 있지만. 네가 날 사랑해주던 눈빛, 내이름을 부르던 네 목소리 네 손을잡고 걷던 그길을 보면 아직도 날 그시절로 돌아가게한다.하지만 이제 다르게 생각하려고 한다.무슨 이유때문에 헤어졌든 나의 모든 걸 감당할만큼 날 사랑하지 않았던거고지금도 연락 없는 건 내 생각 가끔할 수도 있겠지만 다시 날 붙잡을만큼 내가 소중하지 않았던거다 내가 그 사람 미워하고 그리워하고 있을 시간에 그 사람은 자기할 거 하면서 즐거운 하루를 보내겠지 먼저 연락할 용기가 없어서 못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마 내가 정말 필요하다면 없는 용기 짜내서라도 연락했을거고 자존심 굽혀서라도 미안하다했을걸?이유가 어떻든 간에 난 그 이유보다 못한거야 이 글을 읽고 마음을 고쳐잡았다. 난 널 참 많이 사랑했지만. 넌 날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았다는걸 받아들이기로 했다. 다행인지 아닌지 11월부터 11월월이 끝나기 전까지 소개를 다섯명이나 받았다. 다행인지 그후에 연락도 온다. 하지만 동하지 않는다 더 이상. 아직 바쁘다. 오늘에서야 워크샵인데 자료준비를 하고 수업준비를 하다가 잠시 짬을내서 쓰다보니 엄청 길어졌다. 쓰다가 하던일을 마무리 하고 다시 켜니 다섯시 반이네, 일곱시 수업을 준비하러 가야하는데 아직 못한말이 있어서 몇자 더 적을게.내 스물 세 살 내가 너를 만난건 참 좋은 기억이였다.우리의 끝은 그 마지막은 정확히 언제였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관계가 끝났다는건 알수 있으니까. 얼마 남지 않은 한해 잘 마무리하고 나도 열심히 살아가고 있어. 그때 우리 , 참 우린 좋았다.참 소란했던시절에 그대라는 이름. 1
헤어진 후 네게 하고싶던 이야기.
많이 길어요.
새해가 오기 전에는 적어보고 싶었다
올해가 가기 전 그 전에는 적어서 남겨두고 싶었다. 너와의 기억을 ,아직도 생생한것 같다.
네게 처음 연락이 왔던 부산에 가던 ktx 안 내가 듣던 노래, 그리고 그날의 기분까지도.
정말 덤덤하게 적어보고 싶은데 몇줄 쓰지도 않았는데 마음이 찌릿찌릿하네,
정말로 더웠던 그날 부산에 가던나, 사실 그전부터 나도 너를 알고 있었다.
사람이 괜찮던데 , 사실 그날 부산에 가면서도 네 이야기를 한 번 했었다. 괜찮던데...
하지만 그뿐이였는데 네게 연락이 올줄 몰랐었다.
네게 연락이 처음 왔을땐 뭔데? 이런 생각 뿐이였다.
직업상 번호를 알려달라는 사람은 몇 있었지만 한번도 알려준적은 없었기 때문에
손님일거라는 생각은 상상도 못했다. 같이 일하던 오빠의 카톡을 보고서야 알았다.
그가 번호를 알려줬으며 네가 내가 말하던 너라는걸. 사실 순간적으로 너무 행복했었다.
“헐 나좀전만해도 얘 이야기했는데 나 얘한테 카톡옴ㅋㅋㅋ”
대학을 가고 그만두고 또다시 재수를 하고 대학을 가고 또다시 자퇴를 하고
이일을 시작하면서 연애를 단 한번했었다. 뭐 너도알다싶이 남자가 없었던것은 아니다.
다만 난 잊지못하는 사람이 있었던것뿐, 그 사람을 오랬동안 기다렸을뿐,
그렇다고 해서 아예 안만난것도 아니다. 썸도 있었다 분명. 사귀지 않았을뿐,
사실 무서웠다 그땐, 누군가를 좋아한다는건 애정을 갈구하는 내겐 너무나도 무서운 일이니까.
지금도 무서운건 사실이다. 내가 이사람을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었는데
이사람의 마음이 변할까봐 무서워하는 겁쟁이 찌질이다.
그러다가 내 옆에있던 아주 오래봐왔던 한사람과 아주 짧게 만났다
딱 이맘때 12월 크리스마스 전 토요일이였던가, 일요일 이였던가.
브아솔 공연을 보러갔다가 그 사단이 났지. 하지만 그 연애도 일주일을 못갔다.
사실 누구보다 오래 봐왔던 이 사람을 이성으로 만나기가 무서웠고
그도 나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고 그렇게 내 스무살 이후의 연애는 그렇게 끝이났다.
그리고 또다시 시작된 2014년, 하던일이 너무나도 힘이들었고 잠시 쉬어가자는 의미로
선생님과 상담 후, 지금 이 회사와 관련된 곳에서 6개월만 일하기로 했다.
그래 그곳, 너와 내가 만나게된 그곳이였다. 사실 페이도 맞지 않았고 그저 조금 알바 하듯,
공부할것 마저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내가 하려고 하는길을 가기위해서 선택한 일이 였다.
그런데 생각보다 즐거웠다. 쉬엄쉬엄 하자 쉬엄쉬엄 가자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이 공간 같이 일하던 사람들 점장님이 모두 좋았다. 뭐 페이는 힘들었지.
매니저로 일하다가 아르바이트생 월급을 받으니 적금을 깰 수밖에
하지만 일이 좋았고 즐거웠다. 그공간에서 일하던 6개월은 아직도 기억이난다.
네 연락과 함께 시작된 부산여행 반짝 반짝 빛나던 5월의 부산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나와 함께 여행을 간 사람들도 드디어 뭔가 시작되는거냐며, 한번도 일하면서
손님을 만난적은 없지않았느냐, 힘들어 하더니 이제 드디어 시작인거냐,
많은 바람이 있었던것도 사실.
뭐 여하튼 설레던 그순간이 아직은 반짝반짝하다.
아, 부산에서 다시 서울로 돌아오던날, 내가 집에 갈때까지 연락을 하던 네가 기억나,
사실 요즘 가끔씩 서울역에서 집으로 가는 일이 두어번 있었다.
그때마다 그 버스를, 볼때마다, 네가 기억나, 너와 카톡을 하며 전전긍긍하며
기다리던 그때가 기억나 마음이 아프더라.
눈물이 나진 않았지만 너무 보고싶더라 네가.
그리고 월요일 나는 출근을 했고 그날도 네게 카톡이 왔다.
사실 나는 널 만날 생각이 없었다. 왜냐하면 난 이미 알고있었으니까.
넌 머지않은 미래에 한국을 떠날사람이라는걸. 그래서 온전한 마음을 표현하고 싶지 않았다.
혼자서 하는것에 편안해 보이는 나지만 사실 그 누구보다 혼자임이 싫고 두렵고 애정이 필요한게 나라는걸 알기때문이였다.
하지만 하필 그날 같이 일하던 오빠가 내가 부산으로 여행을 다녀온다는 말에 본인이
오전에 일하겠다고 해준 배려에 너와내가 끝나는 시간이 맞아 떨어졌고.
우린 자연스럽게 맥주를 마시러갔지. 사실그때도 무서웠다 네가 참 내스타일이셔서.
맥주를 마시고 나서부터 제대로 기억이 지금도 없다. 나 술 참 잘마시는데 말이지..
소주를 세병을 마셔도 취하지도 않는 내가. 청하를 밤새도록 네명이서 한박스도 더마시던 내가
그날의 그시간은 기억이 없다. 대화가 통하던 너와 나, 끝도없이 사귀자던 너 분명 싫다고 했던것 같은데. 너와 내가 손을잡고 걷고 있더라. 앜ㅋㅋㅋㅋㅋㅋ진짜 기억이 안난다.
이제와서 모른척 할 이유가 없는데 난 정말 기억이 안난다. 여튼 그렇게 시작된 우리 즐거웠다.
동갑내기 연애는 처음이였다.
사실 외적으로 보면 넌 참 조용하고 조곤조곤하며 진중한 스타일이고 난 참 드세고 성격파이며 조울이 있는스타일 이지만 사실 알고보면 우린 정 반대였지.
난 참 생각이 많고 상처를 많이 받았던 사람이였고
넌 참 밝고 명랑하며 모든게 많이 즐겁던 아이였지. 그러던 우리는 참 잘만났다.
걸릴까봐 걱정도 했지만. 사실 난 단번에 엄마한테 들켰지
“딸아 니 연애하지? 얼굴이폈네? “
7월에 떠나던 너. 우리가만난건 5월 사실 항상 널보며 불안했던건 사실,
하지만 맹목적으로 애정을 주던 너, 그래서 난 동하기 시작했다.
사실 불타오르던 널 보며 당황스러웠던 적이 없었다면 당연히 너도 아닌걸 알겠지.
안그래 보여도 난 사실 굉장히 보수적이다. 단 한번도 그러한 일이 없었고
지금도 적지 않은 나이지만 경험에 대해서 보수적이였고,
뭐 결국넌 한차례도 성공하지 못했지만 나는 후회가 없다.
네가 아닌 누구였어도 사실 난 아직 무섭다.
소개 해준 오빠에게 결국 들켰고 점장님도 아시고 나름대로 즐겁던 연애였다.
사실 내가 해본 연애중 가장 정상적이고 행복했다.
내가 그랬잖아, 내 이상형은 단 하나다.
내가 퇴근하고 혹은 학교가 끝나고 힘이들때, 내 옆에서 조곤조곤 오늘하루 이야기해주고 들어주면 손잡고 걷고싶은사람. 그런사람이라고,
그게 너였다.
손잡고 걸으면 그냥 그것만으로도 행복하던 나였다.
난 네가 돈이없는게 문제가 된적이 한번도 없었다. 나는 버는입장 이였고
너는 학교에 돌아가기 전 한국에 있던 상황이였고, 네가 미안해하는게 싫었다.
내가 그랬잖아 우리아버지 사업하신다고,
그래서 어릴때부터 우리아버진 나와 오빠에게 항상 말씀하셨다고,
“돈은 언제나 돌고 돈다, 네 손에 없다고 보챌 돈이라면 어짜피 돌아오지 않는다고, 그냥 네가 쥘수 있는만큼 쓸줄도 알아야 네게 돈이 돌아 올테니 쓸줄도 알고 벌줄도 아는 사람이 되라고 여자도 남자도 그럴줄 알아야 한다고.”
사실 우리집이 어려운것도 아니고 조금은 넉넉한 편이니까 ,
나혼자 살수도 있었고 힘들게 살진 않았다. 너도 모르는건 아니였고,
사실 네가 조금 미안해 할때마다 내가 더 불안했다. 설마 네가 이러는게 마음이 떠나서
그러는건 아닐지... 다 적어보고 싶은데 마음이 아파서 적을때마다 아릿해서 그만적을란다.
그냥 적어보고 싶었다. 네가 다시 그 나라로 떠난 후 힘들었다. 안힘들었다면 거짓말이다.
나는 이곳에서의 6개월 근무가 끝나고 예전 회사로 돌아갔다.
출퇴근 4시간 지옥같은 2호선, 8월부터 시작된 아침 9시부터 10까지 쉬지않고
이어지던 수업. 네가 떠나고 사실 힘들었지만 다행이다 싶었다. 바쁘니까 외롭지 않더라.
그렇게 한달 반 너와연락이 이어졌다. 하루 한번일지라도 ,
전화통화는 없었다.
사실 알고 있었어 네가 내게 마음이 떠났다는걸, 떠나기전 네가 했던 그 의미심장한 말.
그냥 내가 마음대로 해석했다. 난 바쁠거고 너또한 졸업하기위해선 바쁠것이다.
그냥 지내보자. 만날인연이라면 다시 만나겠지.
내년초에는 내가 갈게.
그 내년초가 다음주다.
처음으로 네가 힘들다고 말하던날. 너와 연락하던 그때 나는 미안하지만 너무 피곤했다.
쉬지않고 수업을 해야 했으며, 사람을 상대해야 했으며 쉬지않고 공부해야했다.
여자이기 때문에 사실 차별 받지 않는다면 거짓이다. 이 회사에서 단 두명뿐인 여자직원 이였고, 제일 어렸고 그래서 더 열심히 해야했다. 그 어느직원보다 많은 자격증이 필요했고,
많이 다녀야했고, 항상 웃어야 했으며, 항상 먼저와서 늦게까지 내 할 일을 마무리 지어야 했다.
심지어 그 달은, 수업이 11시가 되어야 끝났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몸이 너무 힘들어서 곧 쓰러질것같아 중간중간 직원들이 돌아가며
링겔을 맞고 오기까지 했으니까.
그래, 네 답장을 기다리다가 난 잠이들었다.
다행이지 않니? 매번 새벽 두 세시가 되어야 잠에들던 나였다. 불면증이 심했고
난 신경안정제를 달고살았다. 수면유도제는 아예 들지를 않았고,
상담을 받으러 다니던 나였다. 그러던 내가 지쳐 잠이 들었는데. 넌 화가 났는지.
나에게 실망을 했는지 그 이후로 단 한번도 연락이 없었다. 지금 12월 22일 까지도.
정말 미안하다고 나는 네게 연락을 했고 너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리고 일주일 나는 네가 너무 걱정된다는 말을 보냈고 너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렇게 나는 너와 나의 팔찌를 빼서 화장대 위에 올려 두었고. 더욱 바빠졌다.
어제까지만 해도 두달동안 단 하루 쉬었다. 그날도 쉬자마자 몸살이나서 아무것도 못하고
누워만 있었다. 어찌나 억을하던지. 그날은 꼭 정동진에 가서 너를 보내주고 싶었다.
너와갔던곳을 지우고싶었다. 바보같지만...
너와 함께 신던 신발, 네가 좋아하던 옷, 너와 맞춘 팔찌, 그 새벽에 내가 보고싶다고 우리집까지 뛰어오던 너를 보던 그 곳 사실 출근길에 항상 지나가는데 아직도 네가 둥둥 떠다닌다.
누가보면 난 참 평온하다. 잘 웃고 혼자 잘 먹고 잘 다닌다.
너를 만나던 시절따윈 하나도 없던것처럼. 난 참 잘 버티고 있다고 한다.
너와 잘 헤어진건지 잘 만나고 있는건지 묻지도 않고 잘 버티고 있다고 할만큼.
사실 난 아직도 실감하지 못하고있다. 내 사랑이 내 애정이 가던곳이 있던 내가
갑자기 끊어진 연락으로 갈길을 찾지 못하고있다. 미처 다 주지못한 내 사랑을.
이 난감함을. 이 허무함을. 온전한 네 몫이였는데. 네가 사라졌다.
그렇다고 해서 버리자니 네가 그립고 내가 안고있자니 내마음이 너무 뾰족하게 돌아다닌다.
그래서 그 마음이 아직도 어둡진 내안에 맴돈다.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고 있지만. 네가 날 사랑해주던 눈빛,
내이름을 부르던 네 목소리 네 손을잡고 걷던 그길을 보면 아직도 날 그시절로 돌아가게한다.
하지만 이제 다르게 생각하려고 한다.
무슨 이유때문에 헤어졌든 나의 모든 걸 감당할만큼 날 사랑하지 않았던거고
지금도 연락 없는 건 내 생각 가끔할 수도 있겠지만
다시 날 붙잡을만큼 내가 소중하지 않았던거다
내가 그 사람 미워하고 그리워하고 있을 시간에
그 사람은 자기할 거 하면서 즐거운 하루를 보내겠지
먼저 연락할 용기가 없어서 못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마
내가 정말 필요하다면 없는 용기 짜내서라도 연락했을거고 자존심 굽혀서라도 미안하다했을걸?
이유가 어떻든 간에 난 그 이유보다 못한거야
이 글을 읽고 마음을 고쳐잡았다. 난 널 참 많이 사랑했지만.
넌 날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았다는걸 받아들이기로 했다.
다행인지 아닌지 11월부터 11월월이 끝나기 전까지 소개를 다섯명이나 받았다.
다행인지 그후에 연락도 온다. 하지만 동하지 않는다 더 이상. 아직 바쁘다.
오늘에서야 워크샵인데 자료준비를 하고 수업준비를 하다가
잠시 짬을내서 쓰다보니 엄청 길어졌다. 쓰다가 하던일을 마무리 하고 다시 켜니 다섯시 반이네, 일곱시 수업을 준비하러 가야하는데 아직 못한말이 있어서 몇자 더 적을게.
내 스물 세 살 내가 너를 만난건 참 좋은 기억이였다.
우리의 끝은 그 마지막은 정확히 언제였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관계가 끝났다는건 알수 있으니까. 얼마 남지 않은 한해 잘 마무리하고
나도 열심히 살아가고 있어.
그때 우리 , 참 우린 좋았다.
참 소란했던시절에 그대라는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