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일제시대..우리 민족은 일제의 억압과 고통 속에 살았다..반발이 있었고, 민족을 위해 노력한 독립투사들이 있었다..3.1 운동이 있었고, 만주에서 독립군이 일제와 싸우기도 했으며,많은 애국 인사들이 투옥되고 옥사하기도 했다.. 안중근의사 윤봉길의사 등의 민족을 위한 투쟁이 있기도 했다..또한 당시 애국 언론과 많은 글들이 이 사실들을 남겨 알리고 있다. 그 보다 더 극심하고 인권조차 말할 수 없는 환경과 착취로 인한 고통의 시기를 보내며.로마의 노예로까지 불리운 유대민족,그리고 그 시절 탄생한 바이블..우리는 바이블의 그 어느 구석에서도, 로마를 원망하거나 로마에 대한 공격적인 문구를 찾아불 수가 없다..도리어, 빌라도와 그의 부인은 예수를 도운 인물로 부각시키고, 바울은 로마인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고 하며,같은 민족을 예수를 모함하고 죽인 나쁘고 못된 사람들로 묘사하기까지 한다..(어떤 사람은, 마귀와 돼지 이야기가 로마병사들을 빗댄 말이라 주장하기도 하지만, 확증된 일도 아니니 제외한다..) 물론 이해되는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로마인들이 봐서는 노예라 밖에 볼 수 없는 유대인들에게 또 그로인한 강압과 죽임이 쉽게 이뤄지는 그 시대에, 바이블을 포함하여, 로마에 대한 비난 문서의 (시간이 오래 걸리는 필사만 가능했던)제작이나, 소지나, 거의 불가했을 것이다. 그로 인해, 그 당시의 상황이나 현상을 진솔하게 표현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제한된 환경에서, 잘해야 허용된 범위를 걱정하며.. 비유나 비현실적인 글로 희망과 환상만을 그려낼 수는 있겠다..그렇지 않으면, 당장 죽음일테니까.. 또한 무자비했다 하고, 통일을 원했던 로마황제 콘스탄티누스가 주도한 니케아 공회에서 정리된 바이블은,설사 미미하더라도, 로마에 대한 비난이나, 불리한 말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다시 한번, 정리 되었을 것이라 상상할 수 있다. 잔혹했던 로마제국은,예수의 부활쇼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두려움도 없이,성전을 부서 버리고, 아직도 이스라엘 장교들이 임관할 때, 선서를 한다는 마사다에서 900여명의 자살등, 수많은 희생을 치룬 전투를 끝으로, 무참하고 잔혹하게 이스라엘을 멸망시켰지만,비상식적으로, 바이블에는 그 어디도 폭압의 지배자 로마를 욕하는 말이 없다.. 상식이 통한다면, 기독인들은 생각을 해 봐야 한다..일제의 억압을 경험한 우리는,더욱 심했고, 길었던, 유대에 대한 로마의 폭정과 핍박과 억압과 말살, 그 온갖 원망과 함께 원수라 칭해도 모자를 로마제국과 그 시대를 살았다는 예수, 그리고 그 모습을 예수를 위주로 적었다는 바이블의 모습... 사실이라 믿을 수 있겠는가?일부, 사실이라 해도 로마에 대한 또 로마에 의해 조작되어진 어용성을 의심해 볼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275
어용 소설
우리의 일제시대..
우리 민족은 일제의 억압과 고통 속에 살았다..
반발이 있었고, 민족을 위해 노력한 독립투사들이 있었다..
3.1 운동이 있었고, 만주에서 독립군이 일제와 싸우기도 했으며,
많은 애국 인사들이 투옥되고 옥사하기도 했다..
안중근의사 윤봉길의사 등의 민족을 위한 투쟁이 있기도 했다..
또한 당시 애국 언론과 많은 글들이 이 사실들을 남겨 알리고 있다.
그 보다 더 극심하고 인권조차 말할 수 없는 환경과 착취로 인한 고통의 시기를 보내며.
로마의 노예로까지 불리운 유대민족,
그리고 그 시절 탄생한 바이블..
우리는 바이블의 그 어느 구석에서도, 로마를 원망하거나 로마에 대한 공격적인 문구를 찾아불 수가 없다..
도리어, 빌라도와 그의 부인은 예수를 도운 인물로 부각시키고, 바울은 로마인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고 하며,
같은 민족을 예수를 모함하고 죽인 나쁘고 못된 사람들로 묘사하기까지 한다..
(어떤 사람은, 마귀와 돼지 이야기가 로마병사들을 빗댄 말이라 주장하기도 하지만, 확증된 일도 아니니 제외한다..)
물론 이해되는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로마인들이 봐서는 노예라 밖에 볼 수 없는 유대인들에게
또 그로인한 강압과 죽임이 쉽게 이뤄지는 그 시대에,
바이블을 포함하여, 로마에 대한 비난 문서의 (시간이 오래 걸리는 필사만 가능했던)제작이나, 소지나, 거의 불가했을 것이다.
그로 인해, 그 당시의 상황이나 현상을 진솔하게 표현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제한된 환경에서, 잘해야 허용된 범위를 걱정하며..
비유나 비현실적인 글로 희망과 환상만을 그려낼 수는 있겠다..
그렇지 않으면, 당장 죽음일테니까..
또한 무자비했다 하고, 통일을 원했던
로마황제 콘스탄티누스가 주도한 니케아 공회에서 정리된 바이블은,
설사 미미하더라도, 로마에 대한 비난이나, 불리한 말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다시 한번, 정리 되었을 것이라 상상할 수 있다.
잔혹했던 로마제국은,
예수의 부활쇼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두려움도 없이,
성전을 부서 버리고,
아직도 이스라엘 장교들이 임관할 때, 선서를 한다는 마사다에서 900여명의 자살등,
수많은 희생을 치룬 전투를 끝으로, 무참하고 잔혹하게 이스라엘을 멸망시켰지만,
비상식적으로, 바이블에는 그 어디도 폭압의 지배자 로마를 욕하는 말이 없다..
상식이 통한다면, 기독인들은 생각을 해 봐야 한다..
일제의 억압을 경험한 우리는,
더욱 심했고, 길었던, 유대에 대한 로마의 폭정과 핍박과 억압과 말살,
그 온갖 원망과 함께 원수라 칭해도 모자를 로마제국과 그 시대를 살았다는 예수,
그리고 그 모습을 예수를 위주로 적었다는
바이블의 모습...
사실이라 믿을 수 있겠는가?
일부, 사실이라 해도 로마에 대한 또 로마에 의해 조작되어진
어용성을 의심해 볼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